남산 지하 조사실, 스물 다섯 번째-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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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 지하 조사실, 스물 다섯 번째
수사관은 나의 인간적인 양심에 호소하며 나에게 이야기 했다. 나 역시 그의 말이 한군데도 틀린 곳이 없다고 생각했다.
“인간성을 포기한 사람에게 어떻게 인간적인 대우를 해 줄 수 있겠나? 무슨 일이든지 그 일을 꼭 해야 할 때가 있는 법이지. 만일 그 시기를 놓치면 그 가치는 점점 줄어드는 것이야. 나는 빨리 결단을 내리라는 충고를 해주고 싶다. 알아듣겠지?”
나는 수사관의 이야기가 계속되는 동안 울기만 했다. 특히나 비행기에 탔던 사람들이 대부분 불쌍한 근로자였다는 대목에서는 약간의 양심의 가책을 느꼈다. 내가 그의 말에 동요의 빛을 보이자 수사관은 독약앰플 사진을 내 옆에 들이밀며 말을 이었다.
“인간의 생명을 이렇게 경시하는 조직에 너는 이용당한거야.”
내가 비밀을 지키기 위해 독약 엠플을 깨문 사실을 두고 하는 말이었다.
“좋은 일에 이용당했다면 보람이 있지만 무고한 인명을 살상하는 악한 일에 이용당한 것은 바보나 할 짓이야. 그걸 깨닫지 못하는 것은 더 바보스러운 일이고, 정의의 일을 하다가 불의를 좇을 경우에는 배신자라고도 하고 변절자라고도 하지만 불의에서 정의로 돌아가는 것은 정의의 투사라고 한다. 너같이 어린 여자를, 무고한 사람을 죽이는 살인자로 만든 것이 불의이고 악이라는 것을 우리는 깨닫게 해 줄 인간적 책임이 있어. 너를 올바르게 인도하려는 것을 나쁘다고 말 할 수 있겠나?”
그는 열변을 토했다. 나는 그의 말을 더 이상 들을 수가 없어서 다른 생각에 몰두했다. ‘이번 임무의 목적은 올림픽을 개최하여 두 개의 조선을 조작 책동하는 적들에게 큰 타격을 주기 위한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조국통일을 위해서는 아주 중요한 과업이다. ' 중요성을 강조하던 부장 동지의 말을 상기하고 조선 사람의 민족적 사명이며 염원인 민족통일을 위해서 이 정도의 희생은 어쩔 수 없다고 마음을 다졌다. 어떠한 간교한 꼬임에 부딪치더라도 조국과 당, 위대한 수령님과 친애하는 지도자 동지에 대한 의리를 배신하지 않으리라 결심을 굳혔다. 내 애국지심에 추호의 동요도 있을 수 없다고 외쳤다.
수사관들은 하루 종일 침이 마르도록 이야기했고 나는 입을 다문 채 고개를 숙이고 울다가 이야기를 듣다가 했다. 그러는 동안에도 내 머릿속에서는 쉴 새 없이 새로운 각본을 쓰기에 바빴다. 저녁식사를 하고 나서야 나는 입을 열었다. 지금까지 말한 내용을 토대로 하여 대충의 새 각본이 완성되었다. 그들이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는 북과의 관계에 그들이 납득할 만큼 첨가시킨 내용이었다.
“내 이름은 빠이추이후이가 맞습니다. 중국 흑룡강성 오상현에서 중국인 부모 사이에 태어났으나 아버지가 누구 인지도 모르는 사생아였습니다. 5살이 되자 어머니 진화는 북조선 사람과 재혼하여 평양으로 가 버리고 나는 광주에 있는 외조부 집에서 자랐습니다.”
나는 어느 정도는 그들이 요구하는 상황과 엇비슷한 쪽으로 몰고 나갈 계산이었다.
“내가 어머니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이름과 생년월일, 그리고 북조선으로 시집갔다는 것뿐이었습니다. 1984년 내가 스무 살 되던 해 7월에 광주에서 사귄 친구 5명과 마카오로 밀항해서 도박장 호텔 종업원으로 일할 때 우연히 조선 식당에 들어가 식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거기에서 북조선 무역 대표부에 있다는 어떤 남자를 알게 되었습니다.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우리 어머니가 북조선에 시집갔다는 말을 했더니 그가 어머니 이름과 생년월일을 적어달라고 했습니다.”
내가 태어난 우리의 조국에 대해서 말하다나니 가슴이 벅차오르는 심정이었다.
나레이션 : 대남공작원 김현희의 고백, 랑독에 박수현이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