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형저축 시대
이규상 :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생생경제> 이 시간 진행에 이규상입니다. 이현주 : 안녕하세요. 이현줍니다.
<생생경제> 서울과 워싱턴을 연결해 우리 생활 속 생생한 경제 소식을 전합니다. INS - 은행 현장 사운드
이규상 : 지난 6일 남쪽 은행은 직장인들을 대상으로 ‘재산 형성 저축' 줄여서 ‘재형저축' 상품을 내놨습니다. 1976년 도입돼 남한 주민들의 재산 형성에 큰 도움을 준 고마운 저금이었는데 1995년 없어졌다가 18년 만에 부활한 겁니다.
INS - 시민들: 옛날에 있었죠. 그 땐 굉장히 좋았죠. 근로자들이 많이 가입했고, 불입금액도 많았어요. 예전에 있던 재형저축이 다시 생기니까 좋긴 한데 꼼꼼히 따져봐야 할 것 같아요.
이현주 : 1976년 당시 재형저축은 연 20%의 높은 이자를 보장했습니다. 3년만 넣어도 원금의 두 배 가까운 큰돈을 마련할 수 있는데요. 이렇게 높은 이자가 가능했던 건 서민들의 재산 형성을 위해 정부가 보조금을 지원했기 때문입니다. 새로 출시된 재형저축의 이자는 연 4%가 조금 넘습니다. 이자에 대한 세금은 면제되지만 7년 간 이 저금을 꾸준히 부어야 한다는 부담도 있습니다.
INS - 은행 관계자: 새 정부 들어 복지 재원 충당을 위해 비과세나 감면 혜택은 점차 줄고 있습니다. 재형저축은 절세 폭을 감안하면 5.2%의 고금리 효과가 있습니다.
이규상 : 물가는 올랐는데 이자율은 5분 1로 줄었네요. 그래도 시중 저금보다 이자가 높아서 인기가 좋습니다. 출시 2주일 만에 100만 계좌를 돌파했습니다.
이현주 : 은행에 돈을 저금하면 도대체 찾을 수 없는 북쪽에서는 은행 저금으로 재산을 불리는 일이 있을 수 없습니다. 남쪽에선 서민들이 재산을 모으는 가장 보편적이고 고전적인 방법입니다. 남쪽 주민들, 그냥 평범한 서민들은 어떻게 돈을 모으고 있을까요.
오늘 그 얘기 해봅니다. 평남 문덕 출신 탈북자 김정순 선생과 함께 합니다.
기자 : 안녕하세요. 일주일 만에 뵙겠습니다. 한주 동안 어떻게 지내셨습니까?
김정순 : 잘 지냈습니다.
기자 : 선생님, 은행 통장 갖고 계십니까?
김정순 : 네, 5개입니다. 농협, 외환, 국민, 하나, 우리... 국민 은행 것은 일체 자동이체 되는 것이고...
기자 : 공과금이나 세금이 매달 통장에서 자동으로 매달 빠져나간다는 얘기죠?
김정순 : 네, 그렇습니다. 그리고 농협은행은 정착 지원금이 들어오고 하나은행은 저축 통장입니다. 우리은행은 일하면 수입을 넣는 통장으로 해서 5개 있습니다.
기자 : 남쪽의 보통 사람보다 더 많이 갖고 계시네요. (웃음) 요즘 진짜 인기 있는 게 재형저축, 직장인들이나 개인 사업자가 일정 금액을 다달이 저금하면 7년이 지난 뒤 연 4% 넘는 이자를 붙여 탈수 있는 저금입니다. 선생님은 근로자가 아니어서 재형저축 가입 대상이 아니지만 재형저축 말고도 비슷한 상품이 많죠? 하나 갖고 계십니까?
김정순 : 내가 지금 하나은행 통장에 돈을 넣었는데 매달 5만원씩 이자가 나옵니다.
기자 : 매달 50달러 정도의 이자를 받는 거네요. 남쪽에서 재산이 불리는 방법이 여러 가지 있지만 서민들에게 가장 익숙한 방법은 매달 조금씩 금액을 떼어서 저금해서 저축액을 늘리는 것이죠.
김정순 : 네, 그리고 우리는 이 사회를 아직 잘 모르죠. 그러니까 그게 제일 안전하고 편하단 말입니다. 북한에서는 저금을 해도 찾지 못하고 이자도 안 붙지만 여기는 은행에 돈을 더 부으면 이자가 더 붙고 이게 아주 재미나더란 말입니다.
기자 : 지금 통장에 넣어놓은 금액은 어떻게 모은 건가요?
김정순 : 처음에 하나원에서 나올 때 정착금도 받았고 생활에는 크게 돈이 들어가는 게 없어서 국가에서 60세 이상은 생계비도 나오잖아요. 사회 복지에서 도와주는 것도 있고요. 제가 여기 나온 지 3년 되는데 아직도 쌀을 사 먹어본 적이 없습니다. 수급비를 받는 동안 쌀이 나오죠. 북한에서 살던 거 생각하면 돈이 별로 안 듭니다.
기자 : 북한은 사회주의 여기는 자본주의 국가, 남쪽에서 생활비가 더 많이 들어야 정상 아닙니까?
김정순 : 북한은 정책상 경제 활동에서 자본주의는 아닙니다. 그러나 사회주의는 더더욱 아니죠. 돈 없으면 한발자국도 살아 못 가는 사회입니다. 병원 같은 곳도 일단 수급자는 배려가 있고 크게 돈 들어갈 일이 없으니까 자기가 옷이나 비싼 거 사 입고 그러지 않으면 돈을 모을 수 있어요. 하루 나가서 어디서 아르바이트 하면 적으면 5만원, 많으면 7만원 주는데 그거 차곡차곡 저금하면 영 재미있습니다.
기자 : 이렇게 말씀하시는 걸 청취자들이 들으면 남쪽에 살고 있는 탈북자들이 모두 그렇다고 생각하실 수 있는데 선생님은 혼자 살지 않습니까? 가족이 있으면 돈이 많이 들어갑니다.
김정순 : 근데 내가 딸을 둘을 데리고 왔는데 부부 간에 사는 딸네는 생활이 더 좋아요. 차도 한 번에 샀다고 하고 생활이 더 유족하고요.
기자 : 남쪽에선 중간 정도의 생활을 유지하는 계층을 중산층이라고 하는데요. 따님 정도면 중산층인가요?
김정순 : 아니죠. 남한에서 보면 중산층 못 되죠. 그래도 만족합니다. 여기 와서 열심히 살면 그 이상도 할 수 있고요. 가족 중에 제가 제일 약골입니다.
기자 : 남쪽에선 돈 벌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김정순 : 일의 귀천을 안 갖고 열심히 일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북한에서는 식당이 최고 고급 일인데 남쪽에서는 식당에서는 안 좋은 일로 생각하죠. 실제 식당이서나 일을 하려면 일자리 많지 않습니까? 내가 생각할 때는 일자리가 왜 없다고 그러는지 모르겠어요. 더한 행복을 얻으려고 하기 때문에 그런 것 같고 또 그런 게 있어야 사회도 발전을 하겠지요. 사실 북한만큼 일자리가 없는 곳은 없습니다.
기자 : 국민 전부가 배치를 받지 않나요?
김정순 : 다 공짜일이죠. 노임도 못 받고 배급도 못 타고요. 세대주들이 일 안 나가면 집결소도 가고 심하면 교화도 가고 그러죠. 북한은 내 몸도 국가 겁니다. 실상 북한에서는 서민 100%가 다 실업자랑 같은 거예요.
기자 : 그럼 북한에서는 어떻게 돈을 모으나요?
김정순 : 북한에서는 장사하는 사람이 그런대로 돈이 많다고 하는데 여기 와서 보니까 여기는 개인 재산도 보호해주고 국가에서 대출도 해주고 그러잖아요. 주민들이 살아가도록 보장해주는 걸 여기선 정치라고 하는데 북한은 그렇지 않습니다. 생각해보면 서민이 잘 살길 바라질 않는 사회죠.
기자 : 요즘 북한에도 돈 많이 번 사람들이 생긴다면서요?
김정순 : 처음엔 국정 가격으로 사다가 야매로 팔 수 있는 권한이 있는 사람들이 돈을 벌었죠. 천 편류 하나에 국정가격으로 3-4월에 사다가 장마당에 넘기면 5천원, 6천원을 받습니다. 폭리죠. 그러다나니까 권한을 가진 사람이 돈을 벌었고 그 다음엔 돈이 돈을 번거죠. 서민들은 권력이 없으니 장사하다가도 안전원에게 회수당하고요. 권력이 있는 사람은 부자가 되고 권력이 없는 사람은 더 힘들죠.
기자 : 권력을 갖고 돈을 번거네요. 남쪽은 어떤 사람이 돈을 버는 것 같습니까?
김정순 : 자기가 능력 있는 사람이요. 내가 능력이 있으면 누구든 할 수 있더란 말입니다. 공부도 그렇고요. 진짜 열심히 살자고 하자고 하는 사람은 이 제도가 좋습니다.
기자 : 열심히 하면 얼마든 할 수 있다는 말씀이네요.
김정순 : 여기는 자기 노력에 의한 공정한 돈, 북한에선 돈을 벌려면 간부는 부정을 하지 못하면 돈을 못 벌고 평민은 도둑질 하지 못하면 돈을 못 벌어요. 내가 여기 처음 와서 일했는데 3일치 노임 타갔고 너무 좋아서 휘파람을 불며 오던 그 생각이 아직도 나요. 지금 한 달에 천 달러를 벌어도 그처럼 좋진 않을 것 같아요.
기자 : 그런데 남한에서도 조금 더 살면 더 잘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 마련인데요.
김정순 : 맞아요. 처음에 와서는 내부 설비 좋기에 만족하고 살았는데 3년을 사니까 나도 어디 조용한데다 주택을 짓고 살았으면 좋겠다, 내 집에서 텃밭도 가꾸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내가 이 정도이니 여기 사람들은 더 욕심이 나겠죠?
기자 : 사실 돈을 버는데 한계가 있으니까요. 그걸 어떻게 쓰고 또 어떻게 모으느냐 하는 게 중요합니다. ‘재테크'라는 얘기 들어보셨습니까?
김정순 : 네, 생각은 했는데 지금은 내가 아는 조건 아래서 하자고 욕심은 안 냈습니다. 처음에는 북한처럼 생각하니까 돈을 은행에 넣었다가 못 찾으면 어쩌나 북조선에서 전쟁을 하려고 하는데 이러다 떼는 거 아닌가 해서 집에 그냥 뒀어요. 그러다나니까 밖으로 나와 다닐 때는 너무 걱정이 되는 거예요. 그래 가만 한 3년 즈음 살고 보니까, 저금을 하면 이자가 나온다고 하잖아요? 한 달에 4만원씩 받아도 일 년이면 오십만 원 아니야요? 처음에 은행원은 많은 돈을 현금을 싸가지고 가니까 다들 놀래요. 그래도 친절하게 다 알려주더라고요. 진작 넣을까 후회되더란 말입니다. (웃음)
기자 : 지금 5퍼센트 정도 이자를 받는데 더 이자가 높은 은행이 있다면 어쩌시겠어요?
김정순 : 옮겨야죠.
기자 : 바로 이런 게 재테크인데요. 이건 소극적인 재테크고 적극적인 재테크는 따로 있어요. 땅 사도 사고 (웃음) 주식도 하고요.
김정순 : 아직도 북한에 살던 관점이 있어서 땅을 멀리 사놓으면 어떤 다른 사람이 땅을 쓸 것 같아요. 그래서 그런 생각은 아직 없습니다.
기자 : 남쪽에선 멀리 땅을 사놓아도 국가에서 보증해주는 증서가 있습니다.
김정순 : 여기 개인 재산을 국가에서 담보를 해주지만 북쪽에는 그런 게 없으니까 모르죠. 지금은 그냥 저축 열심히 해야죠. 아직은 확고하게 알지 못하니까 함부로 하면 안 되고요.
기자 : 사실 열심히 살아서 조금씩 저축을 해서 그 저축으로 잘 살 수 있는 나라가 좋은 나라인데요.
김정순 : 그럼요. 자본주의가 북한에선 개인만 알고 강자가 약자를 누른다고 생각했는데 실제 보니 자본주의가 서민을 위한 제도였습니다.
기자 : 너무 후한 점수 아닌가요? 사실 보완이 많이 된 거죠. 자본주의에서 빈부의 격차는 어쩔 수 없으니 가난한 사람도 능력 있으면 부자로 살 수 있게 해주는 정책을 만들어 보완합니다. 이런 보완이 아직 완벽하진 않고요.
김정순 : 그래도 여기 와서 내 60년 평생 번 것보다 더 벌었어요. 그렇다고 해서 제가 북한에서 놀고먹지 않았습니다. 실제 북한에서 일은 더 했습니다. 우리 큰 사위도 그래요. 북한에서 일하듯 하면 여기선 영웅 되요... 그렇게 말합니다.
기자 : 일해서 내 것이 차려진다는 기쁨이 크죠.
김정순: 내 것이라니까 힘들 줄도 모르죠. 하루 종일 힘들게 일해도 저녁에 돈 타갔고 오는 기쁨이면 피로가 다 사라져요. 사실 북쪽 사람들은 욕심이 많지 않아요. 그저 강냉이 밥이라도 맘 편히 먹고 나가서 열심히 일 할 수만 있으면 욕심이 없갔는데 그걸 못해주니 탈북자도 생기고 그러는 거죠. 솔직히 고향 그립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갔나요? 하루라도 빨리 이 제도가 좋은 걸 인식하고 내부에서 많이 노력해주길 간절한 마음으로 바래봅니다.
이규상 : 20일 남한 신문에 재밌는 기사가 실렸습니다. 사실 재밌다기 보다는 남한 사람들도 쓴 웃음 한번 짓게 만든 기사입니다.
이현주 : 요즘 인기 있는 재형저축... 선보는 자리에 나가서 “재형저축에 들었다”고 말하면 퇴자 맞을 가능성이 높답니다. 28살 직장인 유모 씨도 최근 선 자리에서 무심코 재형저축에 들었다고 말했는데 여성의 표정이 급격히 싸늘해졌습니다. 재형저축은 연봉 그러니까 한 해 노임이 5천만 원, 약 5만 달러 이하의 직장인이나 연간 종합소득이 3천 5백만 원, 3만 5천 달러 이하의 개인 사업자만 가입할 수 있게 제한하고 있으니 재형저축을 들었다면 연봉이 5천 아래라는 얘기죠? 선보러 나온 여성들은 그 이상을 기대하고 있다는 건데 신문은 이런 세태가 서글프다고 꼬집었습니다.
이규상 : 요즘 남한의 젊은 친구들이 너무 눈만 높다는 생각도 들죠? 남한에서도 언젠가부터 알뜰살뜰 아껴 한 푼 두 푼 모은 걸로는 잘 살 수 없다... 이런 분위기가 팽배한데 그런 사회 분위기를 잘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이현주 : 펀드, 증권, 채권, 실물 투자 등 현란한 재테크 기술이 넘치는 시대... 작은 이자를 받고 그냥 다달이 얼마의 돈을 은행에 넣는 저금은 너무 우직해서 고리타분해 보이기도 하지만요. 여전히 김정순 선생처럼 열심히 사는 남한의 평범한 사람들의 작지만 큰 희망입니다.
이규상 : 오늘 <생생 경제> 여기까집니다. 지금까지 진행에 워싱턴에서 이규상, 서울에서 이현주였습니다.
이현주 : 저희는 다음 주 수요일 다시 인사드리죠. 청취자 여러분, 안녕히 계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