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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김영하의 ‘책 읽는 시간’ 팟캐스트 (Reading Time podcast), Episode 40 - 이기호 "원주통신" - Part 2

Episode 40 - 이기호 "원주통신" - Part 2

그럼 일단 한번 들어보시고요. 그 뒤에 계속 이야기를 나누어 보겠습니다.

원주통신

[토지]를 쓴 소설가 박경리 선생이 우리 동네로 이사를 온 것은 일천구백팔십년도의 일이었다. 선생의 정확한 주소는 강원도 원주시 단구동 742-9번지. 우리집은 선생의 집에서 오십 미터쯤 떨어진 742-1번지였다. 선생과 같은 동네에서 살았지만 그렇다고 내가 선생과 특별한 인연을 맺은 것은 아니였다. 일천구백팔십년도라면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한 지 이제 막 일 년이 지났을 때였다. 그건 즉, 내가 팔팔에 육십사 같은 고난도의 구구단을 외우느라 온갖 핍박과 어마어마한 스트레스를 달게 받고 있던, 그런 시절이란 소리이다. 그러니 이웃에 새로 이사 온 소설가 할머니에게 관심을 기울일 만한 여력이 없었던 것이다. 뭐 가끔 심심할 때 혼자 찾아가서 초인종 한번 누르고 다시 등돌려 열심히 도망치는 일을 몇 번 했지만 그거야 박경리 선생만 당한 것도 아니었으니까. 동네 어른들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 해에는 우리동네에 불란서 풍 신형주택 열 다섯 채가 처음으로 완성된 해이기도 했다. 동네 주민들 대부분이 살던 집을 헐고 그 자리에 새로운 집을 지었지만, 문제는 과도한 은행대출이자로 기둥을 세우고, 온돌을 깔고, 대문을 세웠다는 점이었다. 그러니 어쩌겠는가. 부부가 두 손을 꼭잡고 '우리 앞으로 딱 십년만 고생하자. 그러면 이 집이 진짜 우리집이 되는거다. 덤벼라 대출이자여! 우리부부가 있다!' 하며 투지를 불태울 수 밖에. 아버지들은 버스비를 아끼기 위해 해가 뜨기도 전에 도시락 가방 달랑 들고 일터를 향해 가열차게 걸어갔고, 어머니들을 우르르 한 집에 모여 아침부터 저녁까지 스웨터 뜨게질을 했다. 어머니들은 대바늘 두개를 잡고 한 번 자리에 앉으면 요지부동 움직이질 않았다. 아들이 신작로에서 넘어져 무릎이 깨져도, 시골에서 오랫만에 시어머니가 올라와도, 엇저녁 먹었던 순두부가 대장에서 파도쳐도, 그저 묵묵히 한땀 한땀 주문양을 향해 화살 처럼 생긴 대바늘을 바지런히 움직이고 또 움직였다. 그러니 동네 맨 끝집, 슬레브 위층집에 누가 새로 이사를 왔든 그 사람이든 설령 소설가이든, 무당이든, 대통령이든, 그러거나 말거나였다. 혹 박경리 선생도 함께 뜨개질을 했다면 모를까.

선생의 존재가 동네 사람들에게 처음으로 확연히 부각된 것은 그로부터 칠년이나 더 지난 후의 일이었다. 동네 사람들이 선생의 소설을 단체로 읽었다거나, 선생이 새로 동네의 반장이 되었다거나 했던 것은 아니고, 그게 다 드라마 때문이었다. 그해 가을 KBS에선 선생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 '토지'가 방영되기 시작했다. 이재은과 안연홍이라는 어린 아역배우가 '어린 서희' 역을, 당대 청소년들의 열렬한 지지와 애정을 받고있던 신인 탤런트 최수지가 '성인 서희' 역을, 윤성원이라는 산적처럼 생긴 배우가 '길상' 역을 맡아 열연했던 드라마는 그야말로 전국적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특히 '어린 서희'가 '조준구' 역을 맡은 연규진에게 내뱉은 대사, "찢어 죽이고, 말려 죽일게야! "는 전국민의 유행어가 되기도 했다. 부부싸움을 할 때도, 축구를 하다가 패스를 하지 않는 친구에게도, 수학 문제를 제대로 풀지 못하는 학생에게도 서로가 서로에게, "찢어 죽이고, 말려 죽일게야! "하며 소리치는 바람에 온 나라가 다소 으스스한 분위기로 변하기도 했다. 드라마가 인기를 끌면서 선생을 바라보는 동네 주민들의 눈도 달라졌다. 동네 어른들을 그때까지도 계속 대출이자와 싸우고 있었지만 그래도 그동안 원금을 많이 갚아나간 덕에 이전 보다는 한결 여유로운 표정들이었다. 일테면, 이전까지 뜨개질이 전투적이었다면, 그땐 뭐, 뜨개질을 하다가 잠깐 화투도 치고, 화장실도 가고, 텔레비전도 보고 하는 식이었다. 그렇게 느슨하고 산만한 뜨개질을 하면서 어머니들은 각자 자신과 박경리 선생과의 인연을 경쟁적으로 늘어놓기도 했다. 하지만 그 인연이라는 것이 좀... 그러니까 대부분 우리동네 슈퍼마켓에서 찬거리를 사다가 우연히 선생과 만난 것, 버스를 타러가다가 동네 골목길에서 선생과 가볍게 목례를 나눈 것, 자세히 보니 선생이 입고 있는 스웨터와 자신이 입고 있던 스웨터가 엇비슷했다는 것, 그것이 전부였다. 한 아주머리는 자신이 이미 드라마가 방영되기도 전에 슈퍼 여편네와 외상값 문제로 싸울 때,"찢어 죽이고, 말려 죽일게야! "라는 말을 했다며 아무래도 선생니 그때 자신의 말을 엿들은 것 같다고, 아니, '서희'의 실제 모델이 자신인 것 같다고, 연이어 신뢰할 수 없는 말들을 반복적으로 함으로써 동네 아주머니들의 빈축을 사기도 했다. 나? 나는 솔직히 그때까지도 선생의 얼굴을 모르고 있었다. 우연이라도, 단 한번이라도 동네 골목길에서 선생과 마주친적이 없었다. 대신 나는 혼자서 선생의 집 앞을 찾아가곤 했다. 선생의 집 대문 옆 개나리 가지 사이에 숨어서, 나는 독학으로 담배를 배웠다. 그곳이 우리 동네에서 가장 안전하고 또 가장 경치가 좋은 곳이었기 때문이었다. 담배를 피우다가 가끔씩 뒤돌아 선생의 집을 바라보기도 했다. 선생의 집은 마치 사람이 살지 않는 집 처럼 늘 조용하고 적막했다. 때때로 희미한 불빛이 새어나오기도 했지만 그 불빛 때문에 오히려 더 외롭고 쓸쓸해 보였다. 그래서 나는 그 불빛 때문에 담배를 꼭 한 대씩 더 피우고 내려가곤 했다. 그러니까 그것이 선생과 나의 인연이라면 인연이었다. 담배를 꼭 한 대씩 더 피우게 만드는 인연. 그것이 전부였다. 아. 하지만 이제 고백 해야겠다. 나 또한 동네 아주머니들 처럼 학교에만 가면 박경리 선생과의 인연을 부풀리고 또 부풀렸다. 그게 다 최수지 때문이었다. 아이들과 목소리를 높혀, "최수지는 내 꺼다!," "아니다. 내 꺼다! "하며 싸울 때, 나는 늘 선생과 이웃사촌이라는 프리미엄을 내세워 친구들을 제압하곤 했다. 학교에는 한 때 내가 박경리 선생의 외손자라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선생과 이미 그렇게 합의를 봤다는, 전혀 이치에 맞지 않는 말을 하기도 했다. 그러면 아이들은 이내 풀이 죽어, 그럼 자기는 어떻게 안연홍이라도 안 되겠냐며, 내게 은밀이 부탁을 해오기도 했다. 나는 나도 모르게 우쭐한 심사가 되어, "뭐, 어렵지만 할머니께 한 번 말해보지. "하며 호기롭게 담배연기를 내뿜기도 했다. 부끄럽지만 그게 사실이었다.

그렇게 또 몇 년이 지나갔다. 드라마도 끝났고, 동네 사람들의 대출이자와의 기나긴 싸움도 모두 끝이났다. 동네 사람들은 원금과 대출이자를 모두 갚자마자 하나, 둘, 시내 중심가로 이사를 나가기 시작했다. 원금을 갚고, 이자를 다 갚고 보니 집은 이미 낡을 대로 낡은 상태가 되어있었다. 그래서 다들 융자를 다시 얻어 원주 시내에 새로 지어진 아파트로 이사를 했다. 우리집도 예외는 아니어서, 또다시 얼마간의 빚을 얻어 시내 중심가에 있는 이십팔평짜리 아파트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이사를 가기 전날 밤, 나는 마지막으로 박경리 선생집을 찾아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오랫동안 담배를 피웠다. 그때까지도 나는 박경리 선생을 한번도 만나보지 못한 상태였다. 그리고 선생 또한 그때까지도 [토지]를 다 끝마치지 못한 상태였다. 일천구백구십삼년도 였다. 그러니까 선생이 우리동네로 이사를 온지 꼬박 십삼년이 흐른 뒤였다. 그 십삼년 동안 선생은 계속 한 소설만 쓰고 있었고 나는 초등학교와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어느새 대학생이 되어있었다. 그런 생각을 하다보니 나는 갑자기 막막하고 안 쓰러운 생각이 들었다. 뭔 할말이 그렇게 많아요. 나는 선생에게 그렇게 말하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근 십삼년 만에 처음으로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 조용히 선생의 대문 앞으로 걸어갔다. 선생의 집은 언제나 처럼 깊은 침묵속에 잠겨있었다. 예전엔 그렇지 않았는데, 대문 이곳 저곳에 페인트 칠이 일어나 있었다. 나는 그 대문을 바라보며 숨을 한번 크게 들이마셨다. 그러고는 재빠른 동작으로 초인종을 누른 후 다시 등을 돌려, 타다다다닥, 뒤를 돌아보지 않고 달아났다. 잘 있어요, 선생님. 얼른 소설도 끝내시고요. 건강도 하시고요. 뛰면서 나는 선생께 난생 처음으로 인사를 드렸다. 한번도 만나지 못한 사이였지만, 그래도 선생은 내 이웃이 분명했으니까. 선생이 소설 [토지]를 다 끝낸 것은 그로부터 다시 일년이 지난, 일천구백구십사년 늦은 봄날의 일이었다.

세월이 또 흐르고 흘렀다. 그러니까 이제 그날 밤, 그 눈 내리던 겨울 밤의 이야기를 할 차례가 온 것이다. 내가 다시 한번 박경리 선생과의 인연을 떠올리고, 선생을 만나기 위해 멀고도 먼 길을 떠났던 그 밤의 이야기를.


Episode 40 - 이기호 "원주통신" - Part 2 Episode 40 - Lee Ki-ho "Wonju Communication" - Part 2

그럼 일단 한번 들어보시고요. Then listen once. 그 뒤에 계속 이야기를 나누어 보겠습니다. After that, we will continue to talk.

원주통신

[토지]를 쓴 소설가 박경리 선생이 우리 동네로 이사를 온 것은 일천구백팔십년도의 일이었다. It was 1,900 years ago that the novelist Park Gyeong-ri, who wrote [Land], moved to our neighborhood. 선생의 정확한 주소는 강원도 원주시 단구동 742-9번지. The teacher's exact address is 742-9, Dangu-dong, Wonju-si, Gangwon-do. 우리집은 선생의 집에서 오십 미터쯤 떨어진 742-1번지였다. My house was 742-1, about fifty meters from the teacher's house. 선생과 같은 동네에서 살았지만 그렇다고 내가 선생과 특별한 인연을 맺은 것은 아니였다. I lived in the same town as the teacher, but that did not mean that I had a special relationship with the teacher. 일천구백팔십년도라면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한 지 이제 막 일 년이 지났을 때였다. 그건 즉, 내가 팔팔에 육십사 같은 고난도의 구구단을 외우느라 온갖 핍박과 어마어마한 스트레스를 달게 받고 있던, 그런 시절이란 소리이다. 그러니 이웃에 새로 이사 온 소설가 할머니에게 관심을 기울일 만한 여력이 없었던 것이다. 뭐 가끔 심심할 때 혼자 찾아가서 초인종 한번 누르고 다시 등돌려 열심히 도망치는 일을 몇 번 했지만 그거야 박경리 선생만 당한 것도 아니었으니까. Well, sometimes, when I was bored, I went to visit alone, pressed the doorbell, turned my back and ran away a few times. 동네 어른들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Neighborhood adults weren't very different. 그 해에는 우리동네에 불란서 풍 신형주택 열 다섯 채가 처음으로 완성된 해이기도 했다. It was also the first year that fifteen new French-style houses were completed in our neighborhood. 동네 주민들 대부분이 살던 집을 헐고 그 자리에 새로운 집을 지었지만, 문제는 과도한 은행대출이자로 기둥을 세우고, 온돌을 깔고, 대문을 세웠다는 점이었다. 그러니 어쩌겠는가. So what can I do? 부부가 두 손을 꼭잡고 '우리 앞으로 딱 십년만 고생하자. The couple held their hands together and said,'Let's suffer for just 10 years. 그러면 이 집이 진짜 우리집이 되는거다. Then this house becomes my real home. 덤벼라 대출이자여! 우리부부가 있다!' 하며 투지를 불태울 수 밖에. 아버지들은 버스비를 아끼기 위해 해가 뜨기도 전에 도시락 가방 달랑 들고 일터를 향해 가열차게 걸어갔고, 어머니들을 우르르 한 집에 모여 아침부터 저녁까지 스웨터 뜨게질을 했다. 어머니들은 대바늘 두개를 잡고 한 번 자리에 앉으면 요지부동 움직이질 않았다. When the mothers grabbed the two needles and sat down once, they didn't move. 아들이 신작로에서 넘어져 무릎이 깨져도, 시골에서 오랫만에 시어머니가 올라와도, 엇저녁 먹었던 순두부가 대장에서 파도쳐도, 그저 묵묵히 한땀 한땀 주문양을 향해 화살 처럼 생긴 대바늘을 바지런히 움직이고 또 움직였다. Even if the son fell on the new road and broke his knees, even if the mother-in-law came up after a long absence in the countryside, even if the sundubu who had eaten dinner waved at the captain, he just silently moved the big needle that looked like an arrow toward the sheep. 그러니 동네 맨 끝집, 슬레브 위층집에 누가 새로 이사를 왔든 그 사람이든 설령 소설가이든, 무당이든, 대통령이든, 그러거나 말거나였다. So, whether someone new moved to the last house in the neighborhood, the upper floor of the Slav, whether he or she was a novelist, a shaman, a president, or not. 혹 박경리 선생도 함께 뜨개질을 했다면 모를까. I wonder if Park Kyung-ri also knit together.

선생의 존재가 동네 사람들에게 처음으로 확연히 부각된 것은 그로부터 칠년이나 더 지난 후의 일이었다. It was seven years later that the teacher's presence became apparent to the local people for the first time. 동네 사람들이 선생의 소설을 단체로 읽었다거나, 선생이 새로 동네의 반장이 되었다거나 했던 것은 아니고, 그게 다 드라마 때문이었다. It wasn't that the people in the neighborhood read your novel as a group, or that the teacher became the new head of the town, but it was all because of the drama. 그해 가을 KBS에선 선생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 '토지'가 방영되기 시작했다. In the fall of that year, on KBS, the drama'Land,' based on the teacher's novel, began to air. 이재은과 안연홍이라는 어린 아역배우가 '어린 서희' 역을, 당대 청소년들의 열렬한 지지와 애정을 받고있던 신인 탤런트 최수지가 '성인 서희' 역을, 윤성원이라는 산적처럼 생긴 배우가 '길상' 역을 맡아 열연했던 드라마는 그야말로 전국적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Young child actors named Lee Jae-eun and Ahn Yeon-hong play the role of'Young Seo-hee', the new talent Choi Soo-ji, who was receiving passionate support and affection from contemporary teenagers, plays the role of'Adult Seo-hee', and an actor who looks like a bandit named Yoon Sung-won plays the role of'Kilsang'. The drama that I did was truly popular nationwide. 특히 '어린 서희'가  '조준구' 역을 맡은 연규진에게 내뱉은 대사, "찢어 죽이고, 말려 죽일게야! In particular,'Young Seo-hee' gave a line to Yeon Gyu-jin, who played the role of'Jun-koo Jo', "I'll tear it up and dry it up! "는 전국민의 유행어가 되기도 했다. 부부싸움을 할 때도, 축구를 하다가 패스를 하지 않는 친구에게도, 수학 문제를 제대로 풀지 못하는 학생에게도 서로가 서로에게, "찢어 죽이고, 말려 죽일게야! "하며 소리치는 바람에 온 나라가 다소 으스스한 분위기로 변하기도 했다. "The screaming screamed, and the whole country turned into a rather eerie atmosphere. 드라마가 인기를 끌면서 선생을 바라보는 동네 주민들의 눈도 달라졌다. 동네 어른들을 그때까지도 계속 대출이자와 싸우고 있었지만 그래도 그동안 원금을 많이 갚아나간 덕에 이전 보다는 한결 여유로운 표정들이었다. The local adults were still fighting loan interest until then, but they were more relaxed than before because they paid off a lot of the principal. 일테면, 이전까지 뜨개질이 전투적이었다면, 그땐 뭐, 뜨개질을 하다가 잠깐 화투도 치고, 화장실도 가고, 텔레비전도 보고 하는 식이었다. 그렇게 느슨하고 산만한 뜨개질을 하면서 어머니들은 각자 자신과 박경리 선생과의 인연을 경쟁적으로 늘어놓기도 했다. 하지만 그 인연이라는 것이 좀... 그러니까 대부분 우리동네 슈퍼마켓에서 찬거리를 사다가 우연히 선생과 만난 것, 버스를 타러가다가 동네 골목길에서 선생과 가볍게 목례를 나눈 것, 자세히 보니 선생이 입고 있는 스웨터와 자신이 입고 있던 스웨터가 엇비슷했다는 것, 그것이 전부였다. But that relationship is a bit... So, most of the time, when I was buying a street food at a supermarket in my neighborhood, I met my teacher by chance, I was going to take the bus and had a lightly salute with the teacher in the streets of the neighborhood. That the sweater I was wearing was similar, that was all. 한 아주머리는 자신이 이미 드라마가 방영되기도 전에 슈퍼 여편네와 외상값 문제로 싸울 때,"찢어 죽이고, 말려 죽일게야! One very head said, "I'll tear it up, dry it up and kill it!" "라는 말을 했다며 아무래도 선생니 그때 자신의 말을 엿들은 것 같다고, 아니, '서희'의 실제 모델이 자신인 것 같다고, 연이어 신뢰할 수 없는 말들을 반복적으로 함으로써 동네 아주머니들의 빈축을 사기도 했다. 나? 나는 솔직히 그때까지도 선생의 얼굴을 모르고 있었다. 우연이라도, 단 한번이라도 동네 골목길에서 선생과 마주친적이 없었다. 대신 나는 혼자서 선생의 집 앞을 찾아가곤 했다. 선생의 집 대문 옆 개나리 가지 사이에 숨어서, 나는 독학으로 담배를 배웠다. 그곳이 우리 동네에서 가장 안전하고 또 가장 경치가 좋은 곳이었기 때문이었다. 담배를 피우다가 가끔씩 뒤돌아 선생의 집을 바라보기도 했다. 선생의 집은 마치 사람이 살지 않는 집 처럼 늘 조용하고 적막했다. 때때로 희미한 불빛이 새어나오기도 했지만 그 불빛 때문에 오히려 더 외롭고 쓸쓸해 보였다. 그래서 나는 그 불빛 때문에 담배를 꼭 한 대씩 더 피우고 내려가곤 했다. 그러니까 그것이 선생과 나의 인연이라면 인연이었다. 담배를 꼭 한 대씩 더 피우게 만드는 인연. 그것이 전부였다. 아. 하지만 이제 고백 해야겠다. 나 또한 동네 아주머니들 처럼 학교에만 가면 박경리 선생과의 인연을 부풀리고 또 부풀렸다. 그게 다 최수지 때문이었다. 아이들과 목소리를 높혀, "최수지는 내 꺼다!," "아니다. 내 꺼다! "하며 싸울 때, 나는 늘 선생과 이웃사촌이라는 프리미엄을 내세워 친구들을 제압하곤 했다. 학교에는 한 때 내가 박경리 선생의 외손자라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선생과 이미 그렇게 합의를 봤다는, 전혀 이치에 맞지 않는 말을 하기도 했다. 그러면 아이들은 이내 풀이 죽어, 그럼 자기는 어떻게 안연홍이라도 안 되겠냐며, 내게 은밀이 부탁을 해오기도 했다. 나는 나도 모르게 우쭐한 심사가 되어, "뭐, 어렵지만 할머니께 한 번 말해보지. "하며 호기롭게 담배연기를 내뿜기도 했다. 부끄럽지만 그게 사실이었다.

그렇게 또 몇 년이 지나갔다. 드라마도 끝났고, 동네 사람들의 대출이자와의 기나긴 싸움도 모두 끝이났다. 동네 사람들은 원금과 대출이자를 모두 갚자마자 하나, 둘, 시내 중심가로 이사를 나가기 시작했다. 원금을 갚고, 이자를 다 갚고 보니 집은 이미 낡을 대로 낡은 상태가 되어있었다. 그래서 다들 융자를 다시 얻어 원주 시내에 새로 지어진 아파트로 이사를 했다. 우리집도 예외는 아니어서, 또다시 얼마간의 빚을 얻어 시내 중심가에 있는 이십팔평짜리 아파트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이사를 가기 전날 밤, 나는 마지막으로 박경리 선생집을 찾아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오랫동안 담배를 피웠다. 그때까지도 나는 박경리 선생을 한번도 만나보지 못한 상태였다. 그리고 선생 또한 그때까지도 [토지]를 다 끝마치지 못한 상태였다. 일천구백구십삼년도 였다. 그러니까 선생이 우리동네로 이사를 온지 꼬박 십삼년이 흐른 뒤였다. 그 십삼년 동안 선생은 계속 한 소설만 쓰고 있었고 나는 초등학교와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어느새 대학생이 되어있었다. 그런 생각을 하다보니 나는 갑자기 막막하고 안 쓰러운 생각이 들었다. 뭔 할말이 그렇게 많아요. 나는 선생에게 그렇게 말하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근 십삼년 만에 처음으로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 조용히 선생의 대문 앞으로 걸어갔다. 선생의 집은 언제나 처럼 깊은 침묵속에 잠겨있었다. 예전엔 그렇지 않았는데, 대문 이곳 저곳에 페인트 칠이 일어나 있었다. 나는 그 대문을 바라보며 숨을 한번 크게 들이마셨다. 그러고는 재빠른 동작으로 초인종을 누른 후 다시 등을 돌려, 타다다다닥, 뒤를 돌아보지 않고 달아났다. 잘 있어요, 선생님. 얼른 소설도 끝내시고요. 건강도 하시고요. 뛰면서 나는 선생께 난생 처음으로 인사를 드렸다. 한번도 만나지 못한 사이였지만, 그래도 선생은 내 이웃이 분명했으니까. 선생이 소설 [토지]를 다 끝낸 것은 그로부터 다시 일년이 지난, 일천구백구십사년 늦은 봄날의 일이었다.

세월이 또 흐르고 흘렀다. 그러니까 이제 그날 밤, 그 눈 내리던 겨울 밤의 이야기를 할 차례가 온 것이다. 내가 다시 한번 박경리 선생과의 인연을 떠올리고, 선생을 만나기 위해 멀고도 먼 길을 떠났던 그 밤의 이야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