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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라의 오디오북 (Novella Audio Books), 뽕 나도향 2/2ㅣ한글자막(CC), 한국단편소설오디오북ㅣ책 읽어주는 노벨라

뽕 나도향 2/2ㅣ한글자막(CC), 한국단편소설오디오북ㅣ책 읽어주는 노벨라

삼돌은 한 길이나 되는 철망을 어느결에 뛰어 넘었는지 저만치 달아나서 안협집을 불렀다

어서 와요 어서 어서

하지만 안협집은 다리가 떨려서

빨리 나와지지를 않는다

죽을 힘을 다 해 달아나려고

한아름 잔뜩 따 담은 뽕을 내던지고 철망으로 기어 나왔다 철망을 기어나오긴 나왔지만

치맛자락이 걸려서 잡아당긴다

그에 더 질겁을 해서 그대로 쭉 찢고 나오려 하는데 이미 때는 늦었다

뽕밭 지키던 남자는 안협집을 잡았다

이 도둑년 남의 뽕을 네 것 처럼 따가

온 참 이년 며칠째야 벌써

이렇게 남에걸 건깡깡이로 먹으면 체하지 않을 줄 알았냐

저리 가자

안협집은

살려 주세요 제발 잘못했으니 살려만 주세요

난 오늘이 처음이예요

저 삼돌이 놈이 날마다 따갔지 난 죄가 없어요 하고 손이 발이 되도록 빈다

듣기 싫어 이년아 무슨 변명이냐

육시를 하고도 남을 년 같으니

왜 감옥소 콩밥 맛이 고소하냐

그저 잘못했습니다

삼돌은 보이지 않고 뽕지기는 안협집 손목을 끌고 뽕밭으로 들어갔다

이리 와 외양도 반반히 생긴 년이 뭐 할 게 없어 뽕서리를 다녀

하더니 성냥불을 그어 대고 안협집을 들여다 본다

흐흥

그는 의미 있는 웃음을 웃어 버렸다

안협집은 이 웃음에 한가닥 희망을 얻었다

그 웃음은 안협집의 손아귀에 자기를 갖다 쥐어 준다는 웃음이다

안협집은 따라서 방싯 웃었다

그 웃음 한 번이 넉넉히 뽕지기 마음을 반 이상이나 흰죽 풀어지듯 했다

안협집은 끌려갔다

지가 철석 같은 간장을 가진 놈이 아닌 바엔 한 번이면 놓아 줄걸

그는 자기 정조를 팔아서 죄를 면할 수 있음을 알았다

그래서 마지못하는 체하고 끌려갔다

삼돌은 멀리서 정경만 살피다 안협집을 뽕지기가 데리고 가는 걸 보더니

두 눈에서 쌍심지가 돋았다

하 이놈이 호랑이 삼돌이를 모르는 모양이군

하지만 대관절 어떻게 할 셈이지

이놈 안협집만 건드려 봐 내 정강마루를 두 토막 내놀 터이니

오늘 밤엔 꼭 내 것이 되는걸 그랬지

어디 가까이 좀 가볼까

이젠 단판씨름이라 주먹이 시비 판단을,하는 때이다

다시 철망을 넘어서 들어갔다

들어가선 이곳저곳 귀를 기울이더니

이구석 저구석으로 돌아다녀 보았다

저쪽에서 웅얼웅얼 인기척이 나더니 아무 말이 없다 한 두 서너 시간 그 넓은 뽕밭을 헤매고

또 거기에 닿은 과목밭 참외밭

나중엔 그 옆의 원두막까지 가봤다

그러나 삼돌이 뽕나무밭 가운데 부풀덤불을 보지 못한 것이다

그는 입맛만 다시면서 집으로 와서 주인에게 그 이야기를 했다

노파의 눈은 등잔 만해지더니 두 손 두 다리가 사시나무 떨듯 한다

이거 일났구나 어쩌면 좋단 말이냐

좌불안석을 할 때 삼돌은 분한 생각에 곰방대만 똑똑 떨고 앉았다

그날 새벽 안협집이 무사히 왔다

머리에 지푸라기가 묻고 몸매무시가 말이 아니다

에그 어떻게 왔어 응

주인은 눈에 눈물이 고인 채 어루만진다

뭘 어떻게 와요 밤새도록 놈하고 싱강이 하다가 그대로 왔지 그대로 놓아 주던가

놓아 주지 않고 붙잡아 두면 어쩔거야

일이 너무 싱겁다

삼돌이만 혼자말처럼

헤이구 내가 잡혔더면 콩밥을 먹었을텐데

여편네니까 무사했지

주인은 그래도 마음이 안 놓여서

그래 잘 놓아 주었으니 다행이지 그나저나 뽕은 어떻게 되었수

아 뺏겼죠

인제 아무 일 없으려나

일은 무슨 일예요

그날 밤 삼돌은 혼자 앉아서 생각하길

복 없는 놈은 하는 수가 없어

그러나 내가 다 눈치 챘으니까

노름꾼놈이 오거든 이르겠다고 위협을 하면

지도 발이 저려서 그대로는 못 있지

내 입을 안 씻기고 될 줄 알어

그 후부터는 삼돌은 안협집을 보면

뽕지기놈 보고 싶지 않우 하고 오며 가며 맞대놓고 빈정대기도 하고

빗대 놓고 웃기도 한다

뽕이나 또 따러 가지요

이러는 바람에 온 동네에서 다 알았다 안협집은 분해서 죽겠는데

하루는 삼돌이 안협집이 이불을 펴고 막 누우려는데 찾아와서

추근추근 가지도 않고

삼보 서방이 올 때도 되었네요

하며 눈치를 본다

안협집은 졸음이 와서 눈꺼풀이 뻣뻣해 오는데 삼돌이 가지도 않는 것이 귀찮아서

누가 알아요 오고 싶으면 오고 가고 싶으면 가겠지

하고 벽에 비스듬히 기대앉는다

삼돌의 눈에는 그 고단해하면서

비스듬히 누워서 눈을 감을랑말랑한 안협집의 목덜미 밑이며

볼그레한 두 볼이 몹시 정욕을 일으켰다

그래서 차츰차츰 말소리가 음흉해 간다

그쪽은 사람을 너무 가립니다

그러지 마슈

나도 지금은 남의 집 머슴이지만

젊었을 때는그래도 행세하는 집에서 났다구요

지금은 그놈의 원수 같은 돈 때문에 이렇게 됐지만

하고 말을 더 건네려 하는데

안협집은 별 시러베 자식 다 보겠다는 듯 대답이 없다

뭐 그럴 거 있소

오늘은 내 청을 한번 들어주시요

하고 바싹 달려드는 바람에

반쯤 감았던 안협집의 눈은 똥그래지며

어느결에 삼돌의 뺨에 손뼉이 올라가 정월의 떡치듯 철썩 한다

이놈 아무리 쌍녀석이기로 이게 무슨 버르장머리냐

냉큼 나가

호령이 추상 같다

삼돌은 따귀를 비비면서 성이 꼭두까지 일어나서

뭣이 어쩌고 어째 횡 어디 또 한번 때려 봐라

일이 이렇게 되었으니 자기가 하려던 것은 이루고 마는 게 상책이다

이래도 소문은 날 것이고 저래도 소문은 날 것이니

이왕이면 만족이나 채우고 소문이 나더라도 나는 것이

자기에겐 이로울 것 같았다

더구나 안협집으로 말하자면

온 동네에서 판박아 놓은 화냥년이니

한 번 화냥이나 두 번 화냥이나

남과 내가 무엇이 다를 것이 있으랴 하는 생각도 났다

도리어 자기의 만족을 한 번 얻는 것이

사내로서 일종의 자랑인 것 같이 생각이 되었다 그는 두 팔로 안협집을 힘껏 껴안고

내가 호랑이 삼돌이다

니가 만일 내 말을 들으면 무사하지만

그렇지 않으면 그대로 두진 않을 거야

너 니 남편이 오기만 하면 모조리 꼬아 바칠 거야

뽕 따러 갔던 날 일까지 모조리

무식한 놈이라 야비한 곳이 있다

안협집은 그 소리가 얼마나 사내답지 못 한건지 알 수 없었다

쇠 같은 팔이 자기 허리를 누를 때

눈을 감고 한 번만 허락할까 하다가

그 말을 듣고서 그만 얼굴에 침을 뱉었다

이 더러운 녀석

니가 그까짓 걸로 날 위협한다고

내가 말을 들을 줄 아니

하고 소리를 질렀다

삼돌은 손으로 안협집의 입을 막았지만 때는 늦었다

마침 마을 다녀오던 이장의 동생이

이 소리를 듣고 문을 열었다

삼돌은 무안해서 얼굴이 붉어지며 안협집을 놓았다

안협집은 분해서 색색대며

저놈 보세요

아닌 밤중에 혼자 자는데 와서 귀찮게 굽니다

저 죽일 놈이요

좀 끌어내다 엄히 다스려 주세요

이장의 동생은 안협집의 행실을 아는 고로

삼돌이만 보내려고

이놈이 할 일이 없거든 자빠져 자기나 하지

왜 아닌 밤중에 남의 계집 방에서 지랄이야

냉큼 네 집으로 가

두 눈이 등잔 만해진다

네 그런 게 아니라 실없이 기롱을 좀 했더니

듣기 싫다

공연히 어름어름하면서 이놈아

너는 사람을 죽여도 기롱으로 아냐

삼돌은 쫓겨났다

이장의 동생은 악을 쓰며 욕하고

푸념을 하는 안협집을 향해

젊은것이 늦도록 사내 녀석들을 방에다 붙이니까 그런 꼴을 당하지

누가요

그만 둬 어서 잠이나 자

하며 문을 닫아 주고 가버렸다

삼돌은 앙심을 먹었다

안협집을 어떻게 해서든지 한번 골리겠다는 생각이

가슴속에 탱중했다

안협집은 독이 났다

삼돌이란 놈 한테 분풀이를 하려는 생각이 머리끝까지 올라왔다

이튿날 동네에 소문이 났다

삼돌이 놈이 뺨을 맞았다지

녀석이 음침하잖아

그렇지만 계집이 단정하면 감히 그런 맘을 먹겠어

그렇구 말구

제 행실이야 판에 박은 행실이니까

지가 먼저 꼬리를 쳤던 게지

이 소리가 바람에 떠돌아오자 안협집은 분했다

요조숙녀 보다는 빙설 같은 여잔데 이런 누추한 소문을 듣는 것 같았다

맘에 드는 서방질은 부정한 일이 아니요 죄가 아니요 모욕이 아니지만

마음에 없는 놈에게 그런 소리를 듣고 당하는 것은 무서운 모욕 같았다

그는 그 길로 삼돌의 주인에게로 갔다

삼돌이 녀석 내쫓으세요

주인은 벌써 알고 있었지만 안협집 편은 안 들었다

다만 달래려는 수작으로

뭘 내쫓을 것까지 있어 그만한 일에

그저 눈감아 두지

왜 눈을 감아요

주인은 속으로 웃었다

소 한 필을 달라면 줄지언정

삼돌이를 내보내 하였다

내쫓아선 또 뭘 하겠나

어림없는 년

니가 떠들면 떠들수록 니 밑구멍 들춰서 남 보이는 것이지

하는 듯 쳐다보며 맨 나중엔 아주 잘라 말을 해버렸다

나는 못 내보내겠소

안협집은 분해서 집에 와서 머리를 쥐어뜯으며 울었다

그리고 또 결심했다

두고 봐 너희들까지 삼돌이를 싸고도니

영감만 와 봐라

하루는 정말 영감이 왔다

안협집은 곤두박질을 하면서 맞이했다

아이그 어서 와요 영감

노름꾼 김삼보는 눈이 똥그래졌다 무슨 큰 좋은 일이나 생겼나 했다

딴 때와 유달리 반가워하는 것이 의심스럽고 이상했다

방에 들어 앉자마자 얼마나 땄느냐는 말도 물어 보지 않고

삼돌이 놈에게 욕 당할 뻔했다는 말을 넋두리 하듯 이야기했다

사람이 분해서 죽겠네요

이것도 모두 영감 잘 못 둔 탓이야

오죽 영감이 위엄이 없어 보이믄

그 따위 녀석이 그런 짓을 하겠어요

영감이라고 있으나 없으나 마찬가지지

일년 열두 달 계집이 죽거나 살거나 내버려두고 돌아만 다니니까

영감은 픽 웃었다

왜 내 잘못인가

오죽 행실을 잘 가지면 그 따위 녀석에게 그 꼴을 당해

김삼보는 분이 나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계집의 소행을 짐작도 하려니와

그놈의 주먹도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계집이 먹여살리라는 말이 없고

이혼 하자는 말만 없는 것이 다행이어서

서방질을 해도 눈 감아 주고

무슨 짓을 하든 그저 코대답만 해주는 터라

그런 소리는 귓전으로 들릴 뿐이다

내가 행실 잘못 가진 게 뭐예요

안협집은 분풀이라도 해줄 줄 알았는데

도리어 타박을 주니 분한데 악까지 났다

글쎄 뭐냐고요 뭐 어디 대봐요

당신이 내 행실 그른 걸 봤어요

봤으면 본 대로 말을 해봐요

하긴 김삼보는 꼭 집어 말할 것은 없었다

그는 그저 그런 눈치만 챘지 반박 할 증거는 없다

본 거나 다름없지

뭐가 본 거나 다름없어

일년 열 두 달 계집이 죽든 살든 내버려뒀다가

이제 와서 한다는 소리가 그것 밖에 없어

살기 싫거든 그냥 살기 싫다고 그래 사내답게

가만 왜 냄새가 나지 또 어디다가 계집을 얻어 논 모양이지

이년이 뒈지지를 못해서 기를 쓰나

그래 이놈아

니까짓 녀석 아니면 서방 없을까봐 그러니

더러운 녀석

김삼보의 주먹은 안협집의 등줄기를 후렸다

이년 그래도 잔소리야

주둥이 좀 닥치지 못하겠니

이렇게 서로 툭닥거리며 싸우는 판에

뒷집에서 삼돌이 이 소리를 듣고 아주 중요한 척하고 따라왔다

삼보 김서방 언제 오셨소

하고 마당에 들어섰다

김삼보는 그놈의 상판을 보니 참았던 분이 꼭두까지 올라온다

삼돌인 제법 웃음을 띄우고

허허 오래간만에 만나셔서 내외분 싸움이 웬일이시우

어디서 한잔을 했는지 얼굴이 불그레하다

김삼보는 눈을 흘겨 뚫어지도록 삼돌을 쳐다봤다

이놈아 남이 부부 싸움을 하든 말든 웬 참견이야

삼돌은 주춤했다

그는 비지 같은 눈꼽이 낀 눈을 꿈뻑꿈뻑하더니

그렇게 역정 내실 것 까지야 말 좀 했기로

이놈아 네가 왜 참견이냐고

참견할 건 없어도 흥정은 붙이고

싸움은 말리랬으니까 말이죠

나는 싸움 좀 못 말린단 말이요

하고 술 냄새를 풍기며 다가앉는다

이놈아 술을 먹었거든 곱게 삭여

이번엔 삼돌이 놈이 빌붙는다

나 술 먹고 어찌하든 김서방이 뭔 상관이요

이놈아 남의 부부싸움에 참견을 하니까 그렇지

주고받다가 김삼보가 삼돌이의 멱살을 쥐었다

이 녀석 니가 무슨 뻔뻔으로 이따위 수작이냐

이놈 내 계집 왜 건드렸니

삼돌은 조금 발이 저렸으나 속으로 흥 하고 웃었다

요까짓 게 누구 멱살을 쥐어 앙징하게

하더니

김삼보의 팔을 잡아 마당에다 내려갈기니

개구리 떨어지듯 캑 한다

요놈의 자식아 내 말 좀 들어 보고 말을 해

니계집 험절을 모르고 덤비기만 하면 강산이냐

이 동네 반반한 사내 양반 쳐놓고

니계집 건드리지 않은 놈이 없다

이놈 꼭 집어 말을 하라면 위에서 아래로 내리섬기마

이놈 너도 계집 덕분에 노자에 노름 밑천 실컷 얻어 썼지

그래 집이라고 오면 옥양목 버선 벌이나 얻어 가지고 가는 거

모두 어디서 나온 것으로 아냐 이 땅딸보 오리궁둥아

아무리 속이 밴댕이 같기로 그리고 또 들어 봐라

나중에는 주워먹다 못해 뽕지기까지 주워먹었다

안협집이 파래서 달려든다

이놈 니가 봤냐

보나 안 보나 마찬가지지

이 녀석 니 말 안 들으니까 된말 안 된말 주둥이질을 하는구나

동네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안협집은 삼돌에게 발악을 하고 김삼보는 듣고만 있다

한참 있더니 듣다듣다 못하는 듯이 삼돌이 안협집에게 달려들며

이년이 뒈지려고 기를 쓰나

하고 주먹을 들었다

동네 사람들이 호령을 하고 말렸다

이놈 얼른 저리 가거라

삼돌은 변명을 하며 뻗딩겼다

하지만 여러 사람에게 저리로 끌려가 버렸다

사람들이 헤어지자 노름꾼은 계집의 머리채를 잡았다

그는 삼돌에게 태질 당한 것이 분했다

그뿐 아니라 그렇게까지 계집년의 행실을 온 동네에서 아는 것이 더 분했다

이년 더러운 년

뽕밭에는 몇 번이나 갔니

발길로 지르고 주먹으로 패고

머리채를 잡아당기고 땅에다 질질 끌었다

그는 이를 갈고 어쩔 줄을 몰라했다

계집은 울고 발버둥질을 쳤다

죽여라 죽여

그럼 살려줄 줄 알았니 이년

들어앉아서 하는 게 그런 짓 밖엔 없어

김삼보는 자기의 무딘 팔다리가

계집의 따뜻하고 연한 몸에 닿을 때 적지 않은 쾌감을 느꼈다

그는 그럴수록 더욱 힘을 주어 때릴만큼 속에 숨겨 있던 잔인성이 북받쳐 올라왔다

맞은 안협집은 당장에 죽을 것 같았다

그는 생각하기를 이왕 이리된 바에야 모두 말해 버리고

저하고 갈라서면 고만이지

언제는 귀밑머리 풀고 사주단자 보내고

사당에 예배드린 내외냐

저는 저고 나는 난데 왜 이렇게 때리는거야 하는 생각에

이거 놔 내 말하지

하고 머리를 붙잡았다

뽕밭엔 한 번밖에 안 갔어 어쩔 거야

삼보는 더욱 머리채를 잡아챘다

이년 한 번

이번엔 더 때렸다

안협집은 말한 것이 후회가 됐다

삼보는 그래도 거짓말을 한다고

그대로 엎어 놓고 짓밟았다

안협집은 기절을 했다

삼보는 귀로 안협집의 숨소리를 들어 봤다

그러나 숨소리가 없다

그는 기겁을 해서 약국으로 갔다

그의 팔다리는 떨렸다

그가 의사에게서 약을 지어 가지고 왔을 때

안협집은 일어나 앉아 있었다

삼보는 반갑기도 하고 분하기도해서 약을 마당에 팽개쳤다

그리곤 밤새도록 서로 말이 없었다

이튿날 벙어리들 처럼 말 없이 서로 앉아 밥을 먹고

마주 앉아 쳐다보고

또 말 없이 서로 옷도 주고받아 갈아입고 하루를 더 묵어 삼보는 또 가버렸다

안협집은 여전히 동네 공청 사랑에서 잠을 잤다 누에는 따서 삼십 원씩 나눠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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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돌은 한 길이나 되는 철망을 어느결에 뛰어 넘었는지 저만치 달아나서 안협집을 불렀다

어서 와요 어서 어서

하지만 안협집은 다리가 떨려서

빨리 나와지지를 않는다

죽을 힘을 다 해 달아나려고

한아름 잔뜩 따 담은 뽕을 내던지고 철망으로 기어 나왔다 철망을 기어나오긴 나왔지만

치맛자락이 걸려서 잡아당긴다

그에 더 질겁을 해서 그대로 쭉 찢고 나오려 하는데 이미 때는 늦었다

뽕밭 지키던 남자는 안협집을 잡았다

이 도둑년 남의 뽕을 네 것 처럼 따가

온 참 이년 며칠째야 벌써

이렇게 남에걸 건깡깡이로 먹으면 체하지 않을 줄 알았냐

저리 가자

안협집은

살려 주세요 제발 잘못했으니 살려만 주세요

난 오늘이 처음이예요

저 삼돌이 놈이 날마다 따갔지 난 죄가 없어요 하고 손이 발이 되도록 빈다

듣기 싫어 이년아 무슨 변명이냐

육시를 하고도 남을 년 같으니

왜 감옥소 콩밥 맛이 고소하냐

그저 잘못했습니다

삼돌은 보이지 않고 뽕지기는 안협집 손목을 끌고 뽕밭으로 들어갔다

이리 와 외양도 반반히 생긴 년이 뭐 할 게 없어 뽕서리를 다녀

하더니 성냥불을 그어 대고 안협집을 들여다 본다

흐흥

그는 의미 있는 웃음을 웃어 버렸다

안협집은 이 웃음에 한가닥 희망을 얻었다

그 웃음은 안협집의 손아귀에 자기를 갖다 쥐어 준다는 웃음이다

안협집은 따라서 방싯 웃었다

그 웃음 한 번이 넉넉히 뽕지기 마음을 반 이상이나 흰죽 풀어지듯 했다

안협집은 끌려갔다

지가 철석 같은 간장을 가진 놈이 아닌 바엔 한 번이면 놓아 줄걸

그는 자기 정조를 팔아서 죄를 면할 수 있음을 알았다

그래서 마지못하는 체하고 끌려갔다

삼돌은 멀리서 정경만 살피다 안협집을 뽕지기가 데리고 가는 걸 보더니

두 눈에서 쌍심지가 돋았다

하 이놈이 호랑이 삼돌이를 모르는 모양이군

하지만 대관절 어떻게 할 셈이지

이놈 안협집만 건드려 봐 내 정강마루를 두 토막 내놀 터이니

오늘 밤엔 꼭 내 것이 되는걸 그랬지

어디 가까이 좀 가볼까

이젠 단판씨름이라 주먹이 시비 판단을,하는 때이다

다시 철망을 넘어서 들어갔다

들어가선 이곳저곳 귀를 기울이더니

이구석 저구석으로 돌아다녀 보았다

저쪽에서 웅얼웅얼 인기척이 나더니 아무 말이 없다 한 두 서너 시간 그 넓은 뽕밭을 헤매고

또 거기에 닿은 과목밭 참외밭

나중엔 그 옆의 원두막까지 가봤다

그러나 삼돌이 뽕나무밭 가운데 부풀덤불을 보지 못한 것이다

그는 입맛만 다시면서 집으로 와서 주인에게 그 이야기를 했다

노파의 눈은 등잔 만해지더니 두 손 두 다리가 사시나무 떨듯 한다

이거 일났구나 어쩌면 좋단 말이냐

좌불안석을 할 때 삼돌은 분한 생각에 곰방대만 똑똑 떨고 앉았다

그날 새벽 안협집이 무사히 왔다

머리에 지푸라기가 묻고 몸매무시가 말이 아니다

에그 어떻게 왔어 응

주인은 눈에 눈물이 고인 채 어루만진다

뭘 어떻게 와요 밤새도록 놈하고 싱강이 하다가 그대로 왔지 그대로 놓아 주던가

놓아 주지 않고 붙잡아 두면 어쩔거야

일이 너무 싱겁다

삼돌이만 혼자말처럼

헤이구 내가 잡혔더면 콩밥을 먹었을텐데

여편네니까 무사했지

주인은 그래도 마음이 안 놓여서

그래 잘 놓아 주었으니 다행이지 그나저나 뽕은 어떻게 되었수

아 뺏겼죠

인제 아무 일 없으려나

일은 무슨 일예요

그날 밤 삼돌은 혼자 앉아서 생각하길

복 없는 놈은 하는 수가 없어

그러나 내가 다 눈치 챘으니까

노름꾼놈이 오거든 이르겠다고 위협을 하면

지도 발이 저려서 그대로는 못 있지

내 입을 안 씻기고 될 줄 알어

그 후부터는 삼돌은 안협집을 보면

뽕지기놈 보고 싶지 않우 하고 오며 가며 맞대놓고 빈정대기도 하고

빗대 놓고 웃기도 한다

뽕이나 또 따러 가지요

이러는 바람에 온 동네에서 다 알았다 안협집은 분해서 죽겠는데

하루는 삼돌이 안협집이 이불을 펴고 막 누우려는데 찾아와서

추근추근 가지도 않고

삼보 서방이 올 때도 되었네요

하며 눈치를 본다

안협집은 졸음이 와서 눈꺼풀이 뻣뻣해 오는데 삼돌이 가지도 않는 것이 귀찮아서

누가 알아요 오고 싶으면 오고 가고 싶으면 가겠지

하고 벽에 비스듬히 기대앉는다

삼돌의 눈에는 그 고단해하면서

비스듬히 누워서 눈을 감을랑말랑한 안협집의 목덜미 밑이며

볼그레한 두 볼이 몹시 정욕을 일으켰다

그래서 차츰차츰 말소리가 음흉해 간다

그쪽은 사람을 너무 가립니다

그러지 마슈

나도 지금은 남의 집 머슴이지만

젊었을 때는그래도 행세하는 집에서 났다구요

지금은 그놈의 원수 같은 돈 때문에 이렇게 됐지만

하고 말을 더 건네려 하는데

안협집은 별 시러베 자식 다 보겠다는 듯 대답이 없다

뭐 그럴 거 있소

오늘은 내 청을 한번 들어주시요

하고 바싹 달려드는 바람에

반쯤 감았던 안협집의 눈은 똥그래지며

어느결에 삼돌의 뺨에 손뼉이 올라가 정월의 떡치듯 철썩 한다

이놈 아무리 쌍녀석이기로 이게 무슨 버르장머리냐

냉큼 나가

호령이 추상 같다

삼돌은 따귀를 비비면서 성이 꼭두까지 일어나서

뭣이 어쩌고 어째 횡 어디 또 한번 때려 봐라

일이 이렇게 되었으니 자기가 하려던 것은 이루고 마는 게 상책이다

이래도 소문은 날 것이고 저래도 소문은 날 것이니

이왕이면 만족이나 채우고 소문이 나더라도 나는 것이

자기에겐 이로울 것 같았다

더구나 안협집으로 말하자면

온 동네에서 판박아 놓은 화냥년이니

한 번 화냥이나 두 번 화냥이나

남과 내가 무엇이 다를 것이 있으랴 하는 생각도 났다

도리어 자기의 만족을 한 번 얻는 것이

사내로서 일종의 자랑인 것 같이 생각이 되었다 그는 두 팔로 안협집을 힘껏 껴안고

내가 호랑이 삼돌이다

니가 만일 내 말을 들으면 무사하지만

그렇지 않으면 그대로 두진 않을 거야

너 니 남편이 오기만 하면 모조리 꼬아 바칠 거야

뽕 따러 갔던 날 일까지 모조리

무식한 놈이라 야비한 곳이 있다

안협집은 그 소리가 얼마나 사내답지 못 한건지 알 수 없었다

쇠 같은 팔이 자기 허리를 누를 때

눈을 감고 한 번만 허락할까 하다가

그 말을 듣고서 그만 얼굴에 침을 뱉었다

이 더러운 녀석

니가 그까짓 걸로 날 위협한다고

내가 말을 들을 줄 아니

하고 소리를 질렀다

삼돌은 손으로 안협집의 입을 막았지만 때는 늦었다

마침 마을 다녀오던 이장의 동생이

이 소리를 듣고 문을 열었다

삼돌은 무안해서 얼굴이 붉어지며 안협집을 놓았다

안협집은 분해서 색색대며

저놈 보세요

아닌 밤중에 혼자 자는데 와서 귀찮게 굽니다

저 죽일 놈이요

좀 끌어내다 엄히 다스려 주세요

이장의 동생은 안협집의 행실을 아는 고로

삼돌이만 보내려고

이놈이 할 일이 없거든 자빠져 자기나 하지

왜 아닌 밤중에 남의 계집 방에서 지랄이야

냉큼 네 집으로 가

두 눈이 등잔 만해진다

네 그런 게 아니라 실없이 기롱을 좀 했더니

듣기 싫다

공연히 어름어름하면서 이놈아

너는 사람을 죽여도 기롱으로 아냐

삼돌은 쫓겨났다

이장의 동생은 악을 쓰며 욕하고

푸념을 하는 안협집을 향해

젊은것이 늦도록 사내 녀석들을 방에다 붙이니까 그런 꼴을 당하지

누가요

그만 둬 어서 잠이나 자

하며 문을 닫아 주고 가버렸다

삼돌은 앙심을 먹었다

안협집을 어떻게 해서든지 한번 골리겠다는 생각이

가슴속에 탱중했다

안협집은 독이 났다

삼돌이란 놈 한테 분풀이를 하려는 생각이 머리끝까지 올라왔다

이튿날 동네에 소문이 났다

삼돌이 놈이 뺨을 맞았다지

녀석이 음침하잖아

그렇지만 계집이 단정하면 감히 그런 맘을 먹겠어

그렇구 말구

제 행실이야 판에 박은 행실이니까

지가 먼저 꼬리를 쳤던 게지

이 소리가 바람에 떠돌아오자 안협집은 분했다

요조숙녀 보다는 빙설 같은 여잔데 이런 누추한 소문을 듣는 것 같았다

맘에 드는 서방질은 부정한 일이 아니요 죄가 아니요 모욕이 아니지만

마음에 없는 놈에게 그런 소리를 듣고 당하는 것은 무서운 모욕 같았다

그는 그 길로 삼돌의 주인에게로 갔다

삼돌이 녀석 내쫓으세요

주인은 벌써 알고 있었지만 안협집 편은 안 들었다

다만 달래려는 수작으로

뭘 내쫓을 것까지 있어 그만한 일에

그저 눈감아 두지

왜 눈을 감아요

주인은 속으로 웃었다

소 한 필을 달라면 줄지언정

삼돌이를 내보내 하였다

내쫓아선 또 뭘 하겠나

어림없는 년

니가 떠들면 떠들수록 니 밑구멍 들춰서 남 보이는 것이지

하는 듯 쳐다보며 맨 나중엔 아주 잘라 말을 해버렸다

나는 못 내보내겠소

안협집은 분해서 집에 와서 머리를 쥐어뜯으며 울었다

그리고 또 결심했다

두고 봐 너희들까지 삼돌이를 싸고도니

영감만 와 봐라

하루는 정말 영감이 왔다

안협집은 곤두박질을 하면서 맞이했다

아이그 어서 와요 영감

노름꾼 김삼보는 눈이 똥그래졌다 무슨 큰 좋은 일이나 생겼나 했다

딴 때와 유달리 반가워하는 것이 의심스럽고 이상했다

방에 들어 앉자마자 얼마나 땄느냐는 말도 물어 보지 않고

삼돌이 놈에게 욕 당할 뻔했다는 말을 넋두리 하듯 이야기했다

사람이 분해서 죽겠네요

이것도 모두 영감 잘 못 둔 탓이야

오죽 영감이 위엄이 없어 보이믄

그 따위 녀석이 그런 짓을 하겠어요

영감이라고 있으나 없으나 마찬가지지

일년 열두 달 계집이 죽거나 살거나 내버려두고 돌아만 다니니까

영감은 픽 웃었다

왜 내 잘못인가

오죽 행실을 잘 가지면 그 따위 녀석에게 그 꼴을 당해

김삼보는 분이 나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계집의 소행을 짐작도 하려니와

그놈의 주먹도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계집이 먹여살리라는 말이 없고

이혼 하자는 말만 없는 것이 다행이어서

서방질을 해도 눈 감아 주고

무슨 짓을 하든 그저 코대답만 해주는 터라

그런 소리는 귓전으로 들릴 뿐이다

내가 행실 잘못 가진 게 뭐예요

안협집은 분풀이라도 해줄 줄 알았는데

도리어 타박을 주니 분한데 악까지 났다

글쎄 뭐냐고요 뭐 어디 대봐요

당신이 내 행실 그른 걸 봤어요

봤으면 본 대로 말을 해봐요

하긴 김삼보는 꼭 집어 말할 것은 없었다

그는 그저 그런 눈치만 챘지 반박 할 증거는 없다

본 거나 다름없지

뭐가 본 거나 다름없어

일년 열 두 달 계집이 죽든 살든 내버려뒀다가

이제 와서 한다는 소리가 그것 밖에 없어

살기 싫거든 그냥 살기 싫다고 그래 사내답게

가만 왜 냄새가 나지 또 어디다가 계집을 얻어 논 모양이지

이년이 뒈지지를 못해서 기를 쓰나

그래 이놈아

니까짓 녀석 아니면 서방 없을까봐 그러니

더러운 녀석

김삼보의 주먹은 안협집의 등줄기를 후렸다

이년 그래도 잔소리야

주둥이 좀 닥치지 못하겠니

이렇게 서로 툭닥거리며 싸우는 판에

뒷집에서 삼돌이 이 소리를 듣고 아주 중요한 척하고 따라왔다

삼보 김서방 언제 오셨소

하고 마당에 들어섰다

김삼보는 그놈의 상판을 보니 참았던 분이 꼭두까지 올라온다

삼돌인 제법 웃음을 띄우고

허허 오래간만에 만나셔서 내외분 싸움이 웬일이시우

어디서 한잔을 했는지 얼굴이 불그레하다

김삼보는 눈을 흘겨 뚫어지도록 삼돌을 쳐다봤다

이놈아 남이 부부 싸움을 하든 말든 웬 참견이야

삼돌은 주춤했다

그는 비지 같은 눈꼽이 낀 눈을 꿈뻑꿈뻑하더니

그렇게 역정 내실 것 까지야 말 좀 했기로

이놈아 네가 왜 참견이냐고

참견할 건 없어도 흥정은 붙이고

싸움은 말리랬으니까 말이죠

나는 싸움 좀 못 말린단 말이요

하고 술 냄새를 풍기며 다가앉는다

이놈아 술을 먹었거든 곱게 삭여

이번엔 삼돌이 놈이 빌붙는다

나 술 먹고 어찌하든 김서방이 뭔 상관이요

이놈아 남의 부부싸움에 참견을 하니까 그렇지

주고받다가 김삼보가 삼돌이의 멱살을 쥐었다

이 녀석 니가 무슨 뻔뻔으로 이따위 수작이냐

이놈 내 계집 왜 건드렸니

삼돌은 조금 발이 저렸으나 속으로 흥 하고 웃었다

요까짓 게 누구 멱살을 쥐어 앙징하게

하더니

김삼보의 팔을 잡아 마당에다 내려갈기니

개구리 떨어지듯 캑 한다

요놈의 자식아 내 말 좀 들어 보고 말을 해

니계집 험절을 모르고 덤비기만 하면 강산이냐

이 동네 반반한 사내 양반 쳐놓고

니계집 건드리지 않은 놈이 없다

이놈 꼭 집어 말을 하라면 위에서 아래로 내리섬기마

이놈 너도 계집 덕분에 노자에 노름 밑천 실컷 얻어 썼지

그래 집이라고 오면 옥양목 버선 벌이나 얻어 가지고 가는 거

모두 어디서 나온 것으로 아냐 이 땅딸보 오리궁둥아

아무리 속이 밴댕이 같기로 그리고 또 들어 봐라

나중에는 주워먹다 못해 뽕지기까지 주워먹었다

안협집이 파래서 달려든다

이놈 니가 봤냐

보나 안 보나 마찬가지지

이 녀석 니 말 안 들으니까 된말 안 된말 주둥이질을 하는구나

동네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안협집은 삼돌에게 발악을 하고 김삼보는 듣고만 있다

한참 있더니 듣다듣다 못하는 듯이 삼돌이 안협집에게 달려들며

이년이 뒈지려고 기를 쓰나

하고 주먹을 들었다

동네 사람들이 호령을 하고 말렸다

이놈 얼른 저리 가거라

삼돌은 변명을 하며 뻗딩겼다

하지만 여러 사람에게 저리로 끌려가 버렸다

사람들이 헤어지자 노름꾼은 계집의 머리채를 잡았다

그는 삼돌에게 태질 당한 것이 분했다

그뿐 아니라 그렇게까지 계집년의 행실을 온 동네에서 아는 것이 더 분했다

이년 더러운 년

뽕밭에는 몇 번이나 갔니

발길로 지르고 주먹으로 패고

머리채를 잡아당기고 땅에다 질질 끌었다

그는 이를 갈고 어쩔 줄을 몰라했다

계집은 울고 발버둥질을 쳤다

죽여라 죽여

그럼 살려줄 줄 알았니 이년

들어앉아서 하는 게 그런 짓 밖엔 없어

김삼보는 자기의 무딘 팔다리가

계집의 따뜻하고 연한 몸에 닿을 때 적지 않은 쾌감을 느꼈다

그는 그럴수록 더욱 힘을 주어 때릴만큼 속에 숨겨 있던 잔인성이 북받쳐 올라왔다

맞은 안협집은 당장에 죽을 것 같았다

그는 생각하기를 이왕 이리된 바에야 모두 말해 버리고

저하고 갈라서면 고만이지

언제는 귀밑머리 풀고 사주단자 보내고

사당에 예배드린 내외냐

저는 저고 나는 난데 왜 이렇게 때리는거야 하는 생각에

이거 놔 내 말하지

하고 머리를 붙잡았다

뽕밭엔 한 번밖에 안 갔어 어쩔 거야

삼보는 더욱 머리채를 잡아챘다

이년 한 번

이번엔 더 때렸다

안협집은 말한 것이 후회가 됐다

삼보는 그래도 거짓말을 한다고

그대로 엎어 놓고 짓밟았다

안협집은 기절을 했다

삼보는 귀로 안협집의 숨소리를 들어 봤다

그러나 숨소리가 없다

그는 기겁을 해서 약국으로 갔다

그의 팔다리는 떨렸다

그가 의사에게서 약을 지어 가지고 왔을 때

안협집은 일어나 앉아 있었다

삼보는 반갑기도 하고 분하기도해서 약을 마당에 팽개쳤다

그리곤 밤새도록 서로 말이 없었다

이튿날 벙어리들 처럼 말 없이 서로 앉아 밥을 먹고

마주 앉아 쳐다보고

또 말 없이 서로 옷도 주고받아 갈아입고 하루를 더 묵어 삼보는 또 가버렸다

안협집은 여전히 동네 공청 사랑에서 잠을 잤다 누에는 따서 삼십 원씩 나눠 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