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 지하 조사실, 스물 한 번째-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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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 지하 조사실, 스물 한 번째
“마카오에서 많은 남자들과 호텔에도 가고 신이찌와 장기간 동거도 했는데 아직까지 남녀 관계가 없었다는 게 말이 돼? 편하게 살자는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칼까지 맞아가며 정조를 지킬 필요가 있었을까?”
그 질문은 말할 수 없이 치욕적이었다. 나는 이 말에 독이 나서 숙이고 있던 고개를 번쩍 쳐들었다.
“그렇게 궁금하면 나를 병원에 데리고 가서 검사를 해보면 될게 아니에요? 지체 높은 신분은 아니지만 몸 파는 여자는 결코 아니에요. 내 몸 간수만은 소중히 했어요.”
나는 항의하면서 소리 내어 흑흑 흐느껴 울었다. 궁지에 몰린 답답함이 엉뚱한 데서 분노로 터졌다.
“하여튼 나는 아무것도 모르니까 죽이든 살리든 마음대로 해 보세요.”
내친 김에 나는 배짱을 부리며 침대에 가서 누워 버렸다. 그 동안의 긴장 때문인지 머리가 지끈지끈 아프고 온 전신이 쑤셨다.
‘어떻게 한다? 이젠 아무런 방도가 없질 않은가? 그저 바레인에서 죽었어야 되는 건데...' 질긴 내 목숨이 한없이 원망스러웠다. 울어서 해결될 일도, 배짱을 부려서 될 일도 아니었다. 말로 풀어 나가야 할 일이었지만 더 이상 할 말이 없을 정도로 막다른 골목에 부딪쳐 있는 상태였다. 누구와 의논할 수도 지도를 받을 수도 없는 오로지 나 혼자만의 힘으로는 고통을 견뎌 낼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이럴 때는 어떻게 하라고 교육을 시키지 않은 북의 지도 방침에 화가 났다. ‘비밀을 고수할 수 없을 때는 자결하라' 고만 했지 자결할 수 없을 때는 어떻게 하라고 가르쳐 준 일이 없다. 우물 안의 개구리처럼 가르치는 대로만 따라 온 우리 공작원들은 스스로 창의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것이다.
저녁식사가 끝나고도 심문은 계속되었다. 식사 후 내 대답은 그들이 무성의하다고 느낄 수밖에 없는 정도였다.
“잘 모르겠습니다.” “기억이 안 납니다.”
두 대답 중의 하나였으니까.
수사관이 백지에 진술 내용을 정리해서 적으라고 원주필을 손에 쥐어 줄 때는 겁에 질려 전기에 감전된 것처럼 몸을 움츠렸다.
“오늘은 그만하고 재우도록 해.”
심문하던 수사관이 그 말을 했을 때 나는 그 말이 너무나 반가워서 벌떡 일어나 “고맙습니다. 안녕히 주무세요.” 라고 인사까지 했다. 긴긴 하루였다. 세상이 그냥 오늘로 끝이 났으면 싶었다. 시계를 붙들어 매어서 시간이 멈출 수도 있으련만. 또 내일이 있다는 사실이 가슴을 무겁게 짓눌렀다. 머릿속은 이미 뒤엉킨 실타래처럼 엉망이었고 나중에 한 진술 내용도 잘 기억 할 수가 없었다. 앞과 뒤를 아무리 꿰어 맞추려 해도 꿰어지지가 않았다. ‘에라, 모르겠다. 또 닥치는 대로 대처하는 수밖에.....'하며 자포자기하는 심정이 되기도 했다. 눈물이 끝도 한도 없이 솟았다.
12월 20일. 아침은 어김없이 왔다. 눈을 감으면서 그것으로 이 세상이 끝이기를 두 손 모아 빌었지만 역시 아침은 다가왔다. 일어나자마자 나는 멀쩡한 옷까지 다 걷어 욕탕으로 갔다. 빨래를 시작했다. 집에서는 어머니에게 꾸중을 듣거나 동생들과 다투어 속이 상할 땐 땀이 나도록 빨래를 하고 나면 속이 후련해지고 기분도 풀렸다. 그래서 초대소에서도 집 생각 등 쓸데없는 잡념이 들 때나 기분이 나쁠 때는 일부러 큰 빨래를 만들어 빨곤 했다. 넘어야 할 태산은 많은데 아무런 방도도 없이 걱정만 하고 있자니 걱정은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것 같았다. 잠시라도 이를 잊기 위해 빨래 잔치를 한바탕 벌인 것이다.
나레이션 : 대남공작원 김현희의 고백, 랑독에 박수현이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