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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발췌문 (Literary Excerpts), 배명훈, 「티케팅 & 타게팅」(2)

배명훈, 「티케팅 & 타게팅」(2)

이상한 합동작전

팬덤 안에 있는 사람이나 밖에서 관찰하는 사람이나 모두가 어느 정도는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팬질이란 참 이상한 짓이다. 정상적인 인간의 선호체계와는 조금 다른 맹목적인 선호체계를 내면화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보통 공연장에서 제일 좋은 자리는 1층 약간 앞쪽 가운데 어딘가다. 정확히 어디인지는 콕 집어서 말하기 어렵지만 아무튼 맨 앞자리는 아니라는 뜻이었다. 그런데 팬덤이 생각하는 좋은 자리는 무조건 무대에서 제일 가까운 자리다. 여기서부터 비극이 시작된다. 전날 밤 작전장교 아가씨가 한 이야기도 바로 그 지점에서 시작되는 것이었다.

“열성적인 팬들은 티케팅이 어려워요. 그런데 팬 아닌 사람한테 부탁하면 의외로 어렵지 않게 표를 건져 오거든요. 저도 사실 팬으로 시작한 게 아니고 부탁받아서 티케팅하다가 팬이 돼버린 경우인데, 자, 여기 이 그림을 보세요. 여기가 무대고 이 앞이 객석이에요. 사이트가 마비되는 경우에는 눈으로 직접 확인하는 게 쉽지 않지만, 마비가 안 되고 5분이든 10분이든 매진될 때까지 한 번에 쭉 진행되는 콘서트를 보면 티켓이 팔려 나가는 게 눈으로 보여요. 빈자리 클릭해서 결제 버튼 눌렀다가, ‘다른 고객님이 이미 선택하신 자리입니다' 하는 안내문이 떠서 다시 자리 선택 화면으로 돌아와 보면 조금 전보다 몇 줄 더 뒤로 밀려나 있거든요. 무대에서 가까운 맨 앞줄부터, 마치 들불 번지듯 뒤쪽을 향해 예매 가능한 좌석의 한계선이 쭉 밀려 나가는 모양이 보이는데, 우리 티케팅도 원리는 마찬가지예요. 이건 결국 남아 있는 자리 중에서 제일 좋은 자리를, 그러니까 무대에서 제일 가까운 자리를 골라서 결제 화면으로 빠르게 넘어가는 싸움인데, 서버가 다운돼서 눈으로 확인은 못 해도 서버 안 어딘가에서는 분명히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을 거라고요. 들불 번지듯 자리가 뒤로 밀려 나오는 현상이요. 이 선을 파악하는 게 중요해요. 현재 시점에서 예매 가능한 영역의 경계선이 어디까지 밀려와 있는지. 이건 별다른 요령이 있는 게 아니고, 사실 누구나 파악할 수 있는 거거든요. 그런데 열성팬들은 이걸 못 해요.” “왜요?” “꼭 실제 경계선보다 살짝 앞쪽을 클릭하거든요. 한 칸이라도 더 앞에서 보려고.” “나는 안 그런데. 안전하게 하려고 하는 건데요.” “본인은 안 그렇다고 생각하는데, 현재 그 불길이 어디까지 와 있는지 파악하는 순간에 이미 객관적인 판단이 안 되는 거예요. 마음이 앞쪽으로 쏠려 있으니까요. 이쯤이면 안전하겠지 생각하는 거기가 사실은, 1초 전에는 안전했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이미 확률이 낮아진 지점일 수 있거든요. 그 한 칸 차이가 승패를 가르니까. 빈자리가 보였는데 내가 클릭해 들어가는 순간, 다른 누군가가 딱 0.001초쯤 빨리 클릭해 버린 거죠. 그러면 거의 손에 들어왔다가 놓쳤다는 생각에 정신이 혼미해지는데, 게다가 그런 일을 한 번만 하는 게 아니라 두 번 세 번 자꾸 반복하는 거예요. 결과는 역시 실패일 거고, 그때부터 사기가 꺾이는 거예요. 실수가 나오고 비합리적인 선택이 많아지고, 그럼 그냥 그날은 루저가 되는 거죠.”

나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딱 내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아서였다. 비합리적인 선택, 팬이니까 하게 되는 빤한 실책, 좋은 자리에 욕심을 내지 않고 그냥 티켓을 구하는 것 자체를 목표로 삼는 사람은 좀처럼 범하지 않는다는 바보 같은 실수들.

어쩐지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이미 눈이 객관성을 잃어버려서 남들은 다 파악할 수 있는 단순한 패턴을 몇 번을 반복해도 또 파악하지 못하게 되어 있다는 그 말이. 어떻게 보면 참 어리석은 선택이지만 그 어리석음이 곧 팬심 그 자체라는 말이.

“그럼 어떻게 해야 되는 거죠? 어떻게 해야 티케팅에 성공할 수 있나요?”

9시 45분. 긴장감이 서서히 고조되어 갔다. 혹시라도 사이트가 조금 일찍 열릴지도 모르는 일이었으므로, 누군가 한 명은 컴퓨터 앞에 붙어서 최소한 10초 간격으로 계속해서 새로 고침을 하고 있어야 했다. 엘레나 언니가 그 역할을 하고 있는 사이, 스페인 아가씨가 그날의 전략목표를 다시 한 번 확인해 주었다. 팬이면 당연히 하게 된다는 그 비합리적인 선택을 우회할 수 있는 방법.

그것은 분업이었다. 제1목표, 제2목표, 제3목표. 전략 목표를 세 등급으로 확실히 구분해서 세 사람이 각자 자기가 맡은 구역만 확실하게 책임지는 전략이었다.

“…… 아시겠죠? 상황이 상황이고 하니, VIP석은 노리지 않습니다. 제1전략목표는 포기하고 셋이서 제2, 제3전략목표만 확실하게 노린다고 보시면 돼요. 두 분은 제3목표를 노리세요. 앞쪽 자리 넘보지 마시고 뒤쪽에서부터 확실하게. 생각보다 훨씬 뒤쪽을 노리셔야 돼요. 아예 맨 뒤에서부터 경쟁해 들어오는 사람들도 많으니까 너무 뒤쪽 말고 적당히, 안전을 우선으로. 딱 보시면 감으로 아실 거예요. 이 정도, 아시겠죠? 이 정도 위치를 노리시는데, 상황 봐서 최대한 안전하게 선택하세요. 그리고 제2목표는 제가 노릴게요. 자리 배분에 관해서는 나중에 다시 이야기하자고요. 저는 어차피 자리에는 큰 욕심 없으니까. 오케이?”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새삼스럽게, 자꾸 고개를 끄덕이고만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분업, 전략목표, 동료에 대한 신뢰. 나는 내가 비로소 그 핵잠수함의 일원이 된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같은 배를 탄 공동운명체의 일원이 된 느낌. 느슨하기만 했던 내 잠수함 생활에 난데없이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오랜만에 되살아난 야생의 감각, 진짜 승부가 펼쳐지는 일촉즉발의 상황. 그 한가운데에 내가 있었다. 비록 최상위 포식자는 아니었을지 몰라도.

긴장감이 어느새 온몸을 결박해 들어왔다. 다리가 됐든 손끝이 됐든, 어딘가 한 군데는 계속해서 일정한 리듬을 반복하고 있었다. 점점 빨라지기만 하는 심장박동과는 전혀 다른 리듬. 내 안에서 퍼져 나가는 고삐 풀린 박자를 가리기 위해, 내 안에서 비롯되지 않은 규칙적인 박자를 나도 모르는 새 어디선가 끌어온 듯한 느낌.

작전장교 아가씨의 목소리가 조금씩 떨리는 게 느껴졌다. 9시 52분. 서서히 말수를 줄여야 할 시간. 엘레나 언니가 콧노래를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혹등고래들의 노래였다. 나도 몇 소절을 따라 부르다가 다시 잠자코 모니터를 응시했다. 클릭, 클릭, 그리고 또 클릭.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9시 58분. 이제 곧 운명을 걸어야 할 시간. 마우스 클릭하는 소리만이 조용한 인터넷 카페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다시 9시 59분으로 숫자가 바뀌고, 10초, 20초, 마음속 초침이 잰걸음으로 시간을 재촉했다.

그리고 마침내 10시 정각.

“시작됐어.”

엘레나 언니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첫 번째 클릭을 했다. 사방이 온통 고요해지고, 인터넷 연결속도가 갑자기 느려졌다. 예상대로였다. 당황할 필요는 전혀 없었다. 하지만 화면 넘어가는 속도가 한없이 느려지자 초조한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느릿느릿 천천히. 공연날짜 선택 화면이 간신히 나타났다. 어차피 하루뿐인 공연, 날짜를 고르고 시간을 고르는 건 어차피 군더더기에 불과했지만, 미리 대비하고 있었던 우리에게는 나쁘지 않은 절차였다. 세상 어딘가, 대비하고 있지 않던 누군가는 그 순간 무슨 동작을 취해야 다음 화면으로 넘어가는지 몰라 한순간이라도 더 머뭇거리게 될 테니까.

날짜와 시간을 선택한 다음 좌석 선택 아이콘을 클릭했다. 중복클릭이 되지 않게 정확히 딱 한 번. 다시 화면이 느려졌다. 작업진행을 알리는 작은 막대기가 천천히 오른쪽으로 옮겨가고 있었다. 튕기지 말고 그대로 조금만 더! 간절한 마음으로 모니터를 노려보았다. 그리고 그 순간, 그 마음이 통했는지 화면이 넘어갔다. 그러자 눈앞에 공연장 좌석이 펼쳐졌다.

위쪽이 무대 쪽. 이미 불길이 번져오기 시작한 모양인지 무대 주변 좌석 수백 개가 이미 하얀색으로 표시되어 있었다. 누군가 이미 좌석을 선택한 다음 결제 화면으로 넘어가 버린 좌석이라는 의미였다. 아직 아무도 선택하지 않은 보라색, 녹색, 노란색 구역에도 이미 가운데부터 크게 구멍이 뚫려 있었다.

‘늦었어!' 한순간 그런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그러나 다음 순간, 한결 침착해진 내 눈에 다른 광경이 보였다.

‘아니야, 승부는 이제부터야. 이 정도면 생각보다 많이 남은 거야!' 머릿속에 공연장 풍경이 펼쳐졌다. 그 넓은 공연장 한가운데에 두 팔을 벌리고 서 있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어디든 달려가 앉기만 하면 될 것 같은, 손에 잡힐 듯 가까이 다가와 있는 좌석들.

모험을 걸 만한 광경이었다. 그래도 무리는 하지 않았다. 부채꼴 모양으로 번져 가는, 하얀색 좌석과 색깔 있는 좌석들 사이의 예리한 경계선. 그 선이 보였다. 그리고 나에게 주어진 임무대로 그 선 훨씬 뒤쪽에 있는 좌석 두 개를 클릭했다.

“하나씩 클릭하는 게 확률은 높겠지만, 우리한테 필요한 티켓은 세 장. 그래도 두 개씩은 클릭을 해야 돼요.”

작전장교 아가씨의 말이 떠올랐다. 순식간에 두 자리를 클릭한 다음, 재빨리 ‘선택완료' 아이콘으로 마우스를 옮겼다. 그리고 클릭! 대화창이 떴다.

─ 다른 고객님께서 이미 선택하신 좌석입니다!

실패였다. 숨이 턱 막혔다. 다시 좌석 선택 화면이 떴다. 몇 초밖에 지나지 않은 것 같았는데, 하얀색 영역이 좀 더 뒤쪽까지 밀려나 있었다.

다시 좌석 두 개를 클릭하고 화면이 바뀌기를 기다렸다. 1초, 2초, 3초……. 그러나 이번에는 화면이 바뀌지 않았다. 그리고 아무것도 없는 흰색 화면! 연결이 끊어졌다. 실패였다. 새로 고침 키를 눌렀으나 먹히지 않았다. 처음부터 다시 접속해 들어가야 했다.

클릭, 클릭, 클릭, 클릭, 클릭. 시간이 한참이나 흘렀다.

옆자리에서 의미를 알 수 없는 탄식이 터져 나왔다. 나는 즐겨찾기 주소를 클릭해 다시 예매 사이트에 접속했다. 적어도 3분은 소요된 것 같았다. 연결 상태는 아까보다 훨씬 더 나빠져 있었다. 이제 속도는 무의미해진 시간. 몇 번을 다시 시도한 끝에 겨우겨우 날짜 선택 화면으로 넘어갔다. 다시 몇 번을 시도한 끝에 좌석 선택 화면을 불러내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다시 또 새하얀 화면!

그곳은 온통 눈밭이었다. 색깔 있는 좌석은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이미 불길이 휩쓸고 지나간 듯 남아 있는 거라곤 온통 하얗게 불타버린 잿더미뿐. 맨 구석에 색깔 있는 자리들이 몇 개 보였다. 나는 재빨리 그곳으로 마우스를 옮겼다. 그리고 클릭.

“아, 좌석 표시는 왜 이렇게 작게 해놓은 거야!”

‘선택완료' 아이콘을 클릭했다. 생각할 수 있는 가장 빠른 속도로. 다시 대화창이 떴다. ‘다른 고객님께서 이미 선택하신 좌석입니다!' 내 입에서도 탄식이 터져 나왔다. 모니터에는 도로 좌석 선택 화면이 펼쳐져 있었다. 이제는 거의 아무것도 남지 않은 하얀색 화면. 마지막 남은 녹색 좌석 몇 개로 마우스를 갖다 댔다. 표적이 몇 개밖에 남지 않았다는 건 아직 좌석을 차지하지 못한 사람 모두가 그 몇 개를 향해 달려들 거라는 뜻이었다. 그러니 결과는 보나마나였다.

─ 다른 고객님께서 이미 선택하신 좌석입니다!

다시 숨이 콱 막혔다. 끝이었다. 이제 남은 좌석은 하나도 없어 보였다. 실패였다. 익숙한 패배감이 새삼스럽게 엄습해 왔다.

“아직 끝난 게 아니죠.”

그때 스페인 아가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긴장한 탓인지 잔뜩 가늘어진 목소리였다.

그 말대로였다. 이제부터가 시작이었다. 나는 마음을 가다듬고, 몇 분간 해오던 동작을 기계적으로 반복했다. 우리 작전장교가 제시한 두 번째 필승전략, 그것은 바로 리바운드였다.

나는 여전히 느려 터진 인터넷 화면을 바라보며 새로 고침 키를 계속 눌러대고 있었다. 느릿느릿, 그 갑갑한 화면을 열 번이 넘도록 반복하자 하얗기만 하던 화면 한가운데에 녹색 자리 하나가 갑자기 생겨났다. 얼음을 뚫고 자라난 작은 풀잎처럼. 나는 그곳을 클릭해 들어갔다. 좌석 크기가 너무나 작아서 한 번에 정확히 집어내는 건 무리였다. 두 번 만에 좌석을 클릭한 다음 재빨리 선택완료 버튼을 눌렀다.

실패였다. 어디선가 난생처음 들어 보는 이상한 감탄사가 들려왔다. 독일어인지 스페인어인지 구별조차 할 수 없는 이상한 말이었다. 나는 눈꺼풀을 닫듯 귀를 닫고 내 눈앞에 펼쳐진 화면에 집중했다. 그리고 다시 클릭. 몇 번이고 반복해서 새로 고침을 눌렀다. 싸움에 지친 삶, 그러면서 자연히 승부의 세계를 멀리하게 된 몸. 평화주의자가 되겠다는 결심, 순간의 승부에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들을 걸지 않겠다는 선언. 느긋해진 신경반응. 안식에 익숙해진 삶. 난데없이 떨어진 핵잠수함이라는 공간. 난데없이 떨어진 이상한 타겟. 그리고 전장.

새로 고침 속도가 조금 더 빨라졌다. 네트워크가 빨라진 것인지 신경반응 속도가 빨라진 것인지 둘 다인지조차 알 수 없었다. 그 모든 게 연결된 듯한 무아의 경지. 화면에 초록색 표적 하나가 나타났다. 공략할 수 있는 유일한 표적. 타겟이 시야에 들어오는 동시에 마우스가 그쪽을 향해 빠른 속도로 날아갔다. 크루즈미사일처럼 빠르고 정확한 동작이었다. 클릭해야겠다는 판단마저 생략된, 오로지 표적과 나 사이에서만 존재하는 완전한 합일의 순간.

타겟을 이해했다. 내가 곧 타겟이 되고 타겟은 곧 내가 되었다. 그것은 바로 나였다. 나는 이미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분명 그런 착각이 들었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기적이 일어났다. 결제 화면이 갑자기 눈앞에 펼쳐진 것이었다.

나는 호흡을 멈추고 결제 정보를 입력했다. 스페인 아가씨가 한 말이 떠올랐다.

“일단 좌석을 선택하고 나면 속도는 신경 쓰지 않아도 돼요. 결제과정이 진행되는 동안은 자리를 맡아 둔 걸로 생각해도 좋으니까. 하지만 안심하기는 일러요. 왜냐하면 여기서 오류가 나는 경우가 많거든요.” “오류가 나면 어떻게 되는데요?” “끝이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뜻이에요. 그래서 리바운드가 필요한 거예요. 다른 사람들도 분명히 오류가 나게 돼 있으니까. 좌석이 하얀색으로 변해 있다고 예매가 끝난 건 아니라는 뜻이에요. 누군가는 결제 중간에 문제가 생겨서 다시 좌석 밖으로 튕겨 나가게 돼 있거든요.” “끔찍하네요.” “끔찍하죠. 하지만 그건 어쩔 수 없는 현실이에요. 그러니까 실패했다고 좌절하지 말고 마지막까지 끈기 있게 기다리라는 거예요. 몇 번이고 반복해서. 아셨죠?”

조심조심, 카드 정보를 입력하고 틀린 숫자가 없는지 번호를 확인했다. 티켓수령 방법을 ‘현장수령'으로 선택하고, 예매 사이트에 저장된 개인정보를 확인한 다음 카드 비밀번호를 또박또박 입력한 후 중복클릭이 되지 않게 조심조심 전송 버튼을 클릭했다. 달칵.

시간이 완전히 멈춘 것만 같았다. 그야말로 운명적인 순간이었다. 다시는 없을 기회, 할 수 있는 건 전부 끝마치고 서버의 선택만을 남겨 둔 순간.

‘그래, 이만하면 충분히 했어. 이래도 안 되면 인연이 아닌 거지.' 땀이 났다. 최근 5년간 겪었던 것 중 가장 스릴 넘치는 순간이 틀림없었다. 이게 뭐하는 짓인가 하는 생각이 밀려왔다. 하지만 동시에, 더할 나위 없이 후련한 기분에 온몸이 가벼워졌다.

‘아무튼 진짜로 미친 짓이야. 내가 이 시간에 이런 데서 이런 거 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우리 연구소 소장님이 참 기특해하시겠구나, 에휴.' 바로 그때, 운명의 대화창이 나타났다. 처음 본 대화창이었다. 나는 그때까지도 내가 숨을 멈추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갑자기 한숨이 터져 나왔다. 동시에 나지막한 목소리로 이런 말이 함께 튀어나왔다.

“저, 성공한 것 같아요!”

나는 눈을 크게 뜨고 마지막 대화창을 확인했다.

─ 예매가 완료되었습니다.

오전 10시 16분 30초 언저리. 영원과도 같았던 어느 찬란한 아침에 전달된 승전보였다.

이상한 핵잠수함

“뭐? 회항해도 되냐고? 그쪽에서 하겠다면 해야지 뭐. 그렇다고 회항 못 하게 막고 있을 것도 아니잖아.”

보안 회선을 통해 연구소에 직접 연락을 취했다. 모두가 예상했던 것처럼, 그런 걸 왜 묻느냐는 질문이 되돌아왔다. 나도 그런 걸 왜 물어보라고 하는지 이해가 안 된다고 대답해 주었다. 콘서트도, 티케팅도, 제4의 팬도, 그리고 우리의 기막힌 거래도, 그 어떤 이야기도 꺼내지 않았다. 마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잠수함으로 돌아왔다. 등줄기가 온통 땀에 젖은 데다, 갑자기 긴장이 풀린 탓에 온몸이 기진맥진 녹초가 되었지만, 그런 내색은 전혀 하지 않았다.

그날 우리는 모두 네 장의 티켓을 구했다. 내가 한 장, 우리 에이스인 작전장교 아가씨가 두 장, 거의 10시 30분까지 매달린 끝에 엘레나 언니가 겨우겨우 한 장. 엘레나 언니는 그날 내내 물도 한 잔 제대로 못 마실 정도로 완전히 지쳐 있었다.

“두 번은 절대로 못 하겠다. 한 시간 만에 5년은 늙은 것 같아.”

다시 잠수함에 실려 기지에 도착할 때까지 엘레나 언니는 내내 몸살을 앓았다. 물론 표정은 내내 밝아 보였다. 우리의 스페인 작전장교 아가씨는 다시는 우리 방을 찾아오지 않았다. 직접 대화를 나눠 본 건 아니지만, 아마도 그날 우리가 저지른 일을 영원히 비밀로 해두고 싶어 하는 눈치였다.

그래도 티켓 배분은 어렵지 않았다. 엘레나 언니와 나는 어차피 각자 본인이 산 티켓을 챙기면 되는 거였고, 스페인 아가씨가 산 두 장의 티켓은 본인과 정체를 알 수 없는 결정적 조력자에게 각각 한 장씩 돌아가면 그만이었다. 그리고 그 일은 엘레나 언니나 나로서는 더 이상 궁금해할 필요가 없는 일이었다. 말하자면 그건, 군인들이 알아서 할 일이었으니까.

워낙 비밀스러운 작전이었기 때문에 엘레나 언니와 나는 기지로 돌아가는 내내 환호성을 최대한 아껴야 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끼리 있을 때만 축가를 불렀다. 그것도 사람 노래가 아니라 고래들의 노래로 대신해서 불러야 했다. 바다는 여전히 시끄러웠고, 고래들은 끈질기게 잠수함을 따라왔다. 나도 잘 아는 노래가 온 바다에 울려 퍼졌는데, 그 사이에는 우리 두 사람의 목소리도 끼어 있었다.

그 노래에 한껏 취해 있다가, 나는 문득 철이 들듯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 이건 또 뭐하는 짓일까. 내가 왜 이 시간에 여기에 앉아서 고래 노래 따위를 따라 부르고 있는 거지?

하지만 또 한편으로 이런 생각도 들었다. 타겟이 있는 삶. 그건 정말로 남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그렇게 쓸데없이 무모하기만 한 걸까. 누군가는 말한다. 그렇게 힘들게 티켓을 구해 봐야, 그래서 결국 콘서트에 가봐야, 그냥 그 자리를 가득 메운 수천 명 팬 중 하나밖에 더 되는 거냐고. 심지어 어느 팬은 이렇게도 말했다. 가수가 자기를 봤다고 주장하는 팬들은 언제나 등장하기 마련이지만, 사실 그 가수는 그런 거 안 본다고. 새우젓 먹을 때 새우랑 눈 마주치는 사람이 어디 있냐고. 하지만 그들도 이건 몰랐을 것이다. 그 아무렇지도 않은 새우젓 몇 마리가 고래보다 더 큰 핵잠수함 한 대를 완전히 바보로 만들기도 한다는 걸.

항해 마지막 날 저녁에는, 언제나 그렇듯 거의 모든 승무원이 식당에 모여 그동안 아껴 두었던 비장의 식재료들을 털어 마지막 만찬을 떠들썩하게 즐겼다. 항해 일정이 예상보다 훨씬 짧아져서 그 어느 때보다도 풍족한 만찬이었다. 그 식사 중간에 호기심을 참지 못한 엘레나 언니가 식당 대형 모니터에 JYJ 멤버 셋이 함께 출연한 광고를 띄웠는데,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그 광고를 바라보는 130여 명의 사람들 중에는 얼굴에 숨길 수 없는 미소를 떠올리며 서로를 향해 알 듯 말 듯한 신호를 흘리고 있는 네 명의 열성팬도 포함되어 있었다. 나, 엘레나 언니, 작전장교 아가씨, 그리고 그날에야 비로소 정체를 드러낸 우리의 든든한 고위층 조력자. 나는 남들이 못 알아볼 정도로 고개를 살짝 숙여 부함장의 결단에 경의를 표했다.

‘부함장이었다니! 아무튼 참 미친 잠수함이야.' 이상한 해피엔딩

임무가 끝나고, 우리는 모두 무사히 육지로 돌아갔다. 각자의 나라로, 혹은 저마다의 위치로. 세상은 한동안 평화로웠다. 핵잠수함이 미사일을 발사할 일은 당분간 일어날 것 같지 않았고, 그에 따라 내 수상한 연구도 차질 없이 착착 진행되어 갔다. 엘레나 언니는 정말로 고래에게 노래를 가르치기 시작했는데, 성공 여부를 말하기에는 아직 시간이 좀 더 필요할 것 같았다.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우리 스페인 작전장교 언니의 초고속 승진에 관한 이야기인데, 아쉽게도 이 이야기는 전부 비밀로 묶여버려서 더는 할 말이 남아 있지 않다.

그리고 물론 말할 필요도 없이, 그해 독일 콘서트는 대단히 훌륭했다.

《문장웹진 12월호》

배명훈(裵明勳, 1978년 6월 5일 ~ )은 대한민국의 과학소설 작가이다.

서울대학교 외교학과를 졸업 후, 서울대학교 대학원 외교학과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석사학위논문 《'슐리펜 플랜' 논쟁의 전략 사상적 기초》로 사회과학대학 우수논문상 수상) 2005년 〈Smart D〉로 과학기술 창작문예 단편부문을 수상했다. [1] 같은 해 11월 25일 환상문학 웹진 거울에 〈다이어트〉를 발표하면서 필진으로 합류한 이래 다양한 매체를 통해서 작품을 발표하고 있다. 《에스콰이어》 2007년 1월호에서 "The Newest: 2007년 우리가 주목해야 할 대중문화 예술의 첨병 14인"에 선정되었다. 2010년에는 '안녕, 인공존재! '로 2010 문학동네 젊은작가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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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명훈, 「티케팅 & 타게팅」(2) Myung Hoon Bae, "Ticketing & Targeting" (2)

이상한 합동작전

팬덤 안에 있는 사람이나 밖에서 관찰하는 사람이나 모두가 어느 정도는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팬질이란 참 이상한 짓이다. 정상적인 인간의 선호체계와는 조금 다른 맹목적인 선호체계를 내면화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보통 공연장에서 제일 좋은 자리는 1층 약간 앞쪽 가운데 어딘가다. 정확히 어디인지는 콕 집어서 말하기 어렵지만 아무튼 맨 앞자리는 아니라는 뜻이었다. 그런데 팬덤이 생각하는 좋은 자리는 무조건 무대에서 제일 가까운 자리다. But the best seat in the house is always the one closest to the stage. 여기서부터 비극이 시작된다. 전날 밤 작전장교 아가씨가 한 이야기도 바로 그 지점에서 시작되는 것이었다.

“열성적인 팬들은 티케팅이 어려워요. 그런데 팬 아닌 사람한테 부탁하면 의외로 어렵지 않게 표를 건져 오거든요. But when I ask a non-fan, it's surprisingly easy to get them to vote for me. 저도 사실 팬으로 시작한 게 아니고 부탁받아서 티케팅하다가 팬이 돼버린 경우인데, 자, 여기 이 그림을 보세요. 여기가 무대고 이 앞이 객석이에요. 사이트가 마비되는 경우에는 눈으로 직접 확인하는 게 쉽지 않지만, 마비가 안 되고 5분이든 10분이든 매진될 때까지 한 번에 쭉 진행되는 콘서트를 보면 티켓이 팔려 나가는 게 눈으로 보여요. 빈자리 클릭해서 결제 버튼 눌렀다가, ‘다른 고객님이 이미 선택하신 자리입니다' 하는 안내문이 떠서 다시 자리 선택 화면으로 돌아와 보면 조금 전보다 몇 줄 더 뒤로 밀려나 있거든요. 무대에서 가까운 맨 앞줄부터, 마치 들불 번지듯 뒤쪽을 향해 예매 가능한 좌석의 한계선이 쭉 밀려 나가는 모양이 보이는데, 우리 티케팅도 원리는 마찬가지예요. 이건 결국 남아 있는 자리 중에서 제일 좋은 자리를, 그러니까 무대에서 제일 가까운 자리를 골라서 결제 화면으로 빠르게 넘어가는 싸움인데, 서버가 다운돼서 눈으로 확인은 못 해도 서버 안 어딘가에서는 분명히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을 거라고요. 들불 번지듯 자리가 뒤로 밀려 나오는 현상이요. 이 선을 파악하는 게 중요해요. 현재 시점에서 예매 가능한 영역의 경계선이 어디까지 밀려와 있는지. 이건 별다른 요령이 있는 게 아니고, 사실 누구나 파악할 수 있는 거거든요. 그런데 열성팬들은 이걸 못 해요.” “왜요?” “꼭 실제 경계선보다 살짝 앞쪽을 클릭하거든요. 한 칸이라도 더 앞에서 보려고.” “나는 안 그런데. 안전하게 하려고 하는 건데요.” “본인은 안 그렇다고 생각하는데, 현재 그 불길이 어디까지 와 있는지 파악하는 순간에 이미 객관적인 판단이 안 되는 거예요. 마음이 앞쪽으로 쏠려 있으니까요. 이쯤이면 안전하겠지 생각하는 거기가 사실은, 1초 전에는 안전했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이미 확률이 낮아진 지점일 수 있거든요. 그 한 칸 차이가 승패를 가르니까. 빈자리가 보였는데 내가 클릭해 들어가는 순간, 다른 누군가가 딱 0.001초쯤 빨리 클릭해 버린 거죠. 그러면 거의 손에 들어왔다가 놓쳤다는 생각에 정신이 혼미해지는데, 게다가 그런 일을 한 번만 하는 게 아니라 두 번 세 번 자꾸 반복하는 거예요. 결과는 역시 실패일 거고, 그때부터 사기가 꺾이는 거예요. 실수가 나오고 비합리적인 선택이 많아지고, 그럼 그냥 그날은 루저가 되는 거죠.”

나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딱 내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아서였다. 비합리적인 선택, 팬이니까 하게 되는 빤한 실책, 좋은 자리에 욕심을 내지 않고 그냥 티켓을 구하는 것 자체를 목표로 삼는 사람은 좀처럼 범하지 않는다는 바보 같은 실수들.

어쩐지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이미 눈이 객관성을 잃어버려서 남들은 다 파악할 수 있는 단순한 패턴을 몇 번을 반복해도 또 파악하지 못하게 되어 있다는 그 말이. 어떻게 보면 참 어리석은 선택이지만 그 어리석음이 곧 팬심 그 자체라는 말이.

“그럼 어떻게 해야 되는 거죠? 어떻게 해야 티케팅에 성공할 수 있나요?”

9시 45분. 긴장감이 서서히 고조되어 갔다. 혹시라도 사이트가 조금 일찍 열릴지도 모르는 일이었으므로, 누군가 한 명은 컴퓨터 앞에 붙어서 최소한 10초 간격으로 계속해서 새로 고침을 하고 있어야 했다. 엘레나 언니가 그 역할을 하고 있는 사이, 스페인 아가씨가 그날의 전략목표를 다시 한 번 확인해 주었다. 팬이면 당연히 하게 된다는 그 비합리적인 선택을 우회할 수 있는 방법.

그것은 분업이었다. 제1목표, 제2목표, 제3목표. 전략 목표를 세 등급으로 확실히 구분해서 세 사람이 각자 자기가 맡은 구역만 확실하게 책임지는 전략이었다.

“…… 아시겠죠? 상황이 상황이고 하니, VIP석은 노리지 않습니다. 제1전략목표는 포기하고 셋이서 제2, 제3전략목표만 확실하게 노린다고 보시면 돼요. 두 분은 제3목표를 노리세요. 앞쪽 자리 넘보지 마시고 뒤쪽에서부터 확실하게. 생각보다 훨씬 뒤쪽을 노리셔야 돼요. 아예 맨 뒤에서부터 경쟁해 들어오는 사람들도 많으니까 너무 뒤쪽 말고 적당히, 안전을 우선으로. 딱 보시면 감으로 아실 거예요. 이 정도, 아시겠죠? 이 정도 위치를 노리시는데, 상황 봐서 최대한 안전하게 선택하세요. 그리고 제2목표는 제가 노릴게요. 자리 배분에 관해서는 나중에 다시 이야기하자고요. 저는 어차피 자리에는 큰 욕심 없으니까. 오케이?”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새삼스럽게, 자꾸 고개를 끄덕이고만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분업, 전략목표, 동료에 대한 신뢰. 나는 내가 비로소 그 핵잠수함의 일원이 된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같은 배를 탄 공동운명체의 일원이 된 느낌. 느슨하기만 했던 내 잠수함 생활에 난데없이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오랜만에 되살아난 야생의 감각, 진짜 승부가 펼쳐지는 일촉즉발의 상황. 그 한가운데에 내가 있었다. 비록 최상위 포식자는 아니었을지 몰라도.

긴장감이 어느새 온몸을 결박해 들어왔다. 다리가 됐든 손끝이 됐든, 어딘가 한 군데는 계속해서 일정한 리듬을 반복하고 있었다. 점점 빨라지기만 하는 심장박동과는 전혀 다른 리듬. 내 안에서 퍼져 나가는 고삐 풀린 박자를 가리기 위해, 내 안에서 비롯되지 않은 규칙적인 박자를 나도 모르는 새 어디선가 끌어온 듯한 느낌.

작전장교 아가씨의 목소리가 조금씩 떨리는 게 느껴졌다. 9시 52분. 서서히 말수를 줄여야 할 시간. 엘레나 언니가 콧노래를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혹등고래들의 노래였다. 나도 몇 소절을 따라 부르다가 다시 잠자코 모니터를 응시했다. 클릭, 클릭, 그리고 또 클릭.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9시 58분. 이제 곧 운명을 걸어야 할 시간. 마우스 클릭하는 소리만이 조용한 인터넷 카페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다시 9시 59분으로 숫자가 바뀌고, 10초, 20초, 마음속 초침이 잰걸음으로 시간을 재촉했다.

그리고 마침내 10시 정각.

“시작됐어.”

엘레나 언니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첫 번째 클릭을 했다. 사방이 온통 고요해지고, 인터넷 연결속도가 갑자기 느려졌다. 예상대로였다. 당황할 필요는 전혀 없었다. 하지만 화면 넘어가는 속도가 한없이 느려지자 초조한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느릿느릿 천천히. 공연날짜 선택 화면이 간신히 나타났다. 어차피 하루뿐인 공연, 날짜를 고르고 시간을 고르는 건 어차피 군더더기에 불과했지만, 미리 대비하고 있었던 우리에게는 나쁘지 않은 절차였다. 세상 어딘가, 대비하고 있지 않던 누군가는 그 순간 무슨 동작을 취해야 다음 화면으로 넘어가는지 몰라 한순간이라도 더 머뭇거리게 될 테니까.

날짜와 시간을 선택한 다음 좌석 선택 아이콘을 클릭했다. 중복클릭이 되지 않게 정확히 딱 한 번. 다시 화면이 느려졌다. 작업진행을 알리는 작은 막대기가 천천히 오른쪽으로 옮겨가고 있었다. 튕기지 말고 그대로 조금만 더! 간절한 마음으로 모니터를 노려보았다. 그리고 그 순간, 그 마음이 통했는지 화면이 넘어갔다. 그러자 눈앞에 공연장 좌석이 펼쳐졌다.

위쪽이 무대 쪽. 이미 불길이 번져오기 시작한 모양인지 무대 주변 좌석 수백 개가 이미 하얀색으로 표시되어 있었다. 누군가 이미 좌석을 선택한 다음 결제 화면으로 넘어가 버린 좌석이라는 의미였다. 아직 아무도 선택하지 않은 보라색, 녹색, 노란색 구역에도 이미 가운데부터 크게 구멍이 뚫려 있었다.

‘늦었어!' 한순간 그런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그러나 다음 순간, 한결 침착해진 내 눈에 다른 광경이 보였다.

‘아니야, 승부는 이제부터야. 이 정도면 생각보다 많이 남은 거야!' 머릿속에 공연장 풍경이 펼쳐졌다. 그 넓은 공연장 한가운데에 두 팔을 벌리고 서 있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어디든 달려가 앉기만 하면 될 것 같은, 손에 잡힐 듯 가까이 다가와 있는 좌석들.

모험을 걸 만한 광경이었다. 그래도 무리는 하지 않았다. 부채꼴 모양으로 번져 가는, 하얀색 좌석과 색깔 있는 좌석들 사이의 예리한 경계선. 그 선이 보였다. 그리고 나에게 주어진 임무대로 그 선 훨씬 뒤쪽에 있는 좌석 두 개를 클릭했다.

“하나씩 클릭하는 게 확률은 높겠지만, 우리한테 필요한 티켓은 세 장. 그래도 두 개씩은 클릭을 해야 돼요.”

작전장교 아가씨의 말이 떠올랐다. 순식간에 두 자리를 클릭한 다음, 재빨리 ‘선택완료' 아이콘으로 마우스를 옮겼다. 그리고 클릭! 대화창이 떴다.

─ 다른 고객님께서 이미 선택하신 좌석입니다!

실패였다. 숨이 턱 막혔다. 다시 좌석 선택 화면이 떴다. 몇 초밖에 지나지 않은 것 같았는데, 하얀색 영역이 좀 더 뒤쪽까지 밀려나 있었다.

다시 좌석 두 개를 클릭하고 화면이 바뀌기를 기다렸다. 1초, 2초, 3초……. 그러나 이번에는 화면이 바뀌지 않았다. 그리고 아무것도 없는 흰색 화면! 연결이 끊어졌다. 실패였다. 새로 고침 키를 눌렀으나 먹히지 않았다. 처음부터 다시 접속해 들어가야 했다.

클릭, 클릭, 클릭, 클릭, 클릭. 시간이 한참이나 흘렀다.

옆자리에서 의미를 알 수 없는 탄식이 터져 나왔다. 나는 즐겨찾기 주소를 클릭해 다시 예매 사이트에 접속했다. 적어도 3분은 소요된 것 같았다. 연결 상태는 아까보다 훨씬 더 나빠져 있었다. 이제 속도는 무의미해진 시간. 몇 번을 다시 시도한 끝에 겨우겨우 날짜 선택 화면으로 넘어갔다. 다시 몇 번을 시도한 끝에 좌석 선택 화면을 불러내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다시 또 새하얀 화면!

그곳은 온통 눈밭이었다. 색깔 있는 좌석은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이미 불길이 휩쓸고 지나간 듯 남아 있는 거라곤 온통 하얗게 불타버린 잿더미뿐. 맨 구석에 색깔 있는 자리들이 몇 개 보였다. 나는 재빨리 그곳으로 마우스를 옮겼다. 그리고 클릭.

“아, 좌석 표시는 왜 이렇게 작게 해놓은 거야!”

‘선택완료' 아이콘을 클릭했다. 생각할 수 있는 가장 빠른 속도로. 다시 대화창이 떴다. ‘다른 고객님께서 이미 선택하신 좌석입니다!' 내 입에서도 탄식이 터져 나왔다. 모니터에는 도로 좌석 선택 화면이 펼쳐져 있었다. 이제는 거의 아무것도 남지 않은 하얀색 화면. 마지막 남은 녹색 좌석 몇 개로 마우스를 갖다 댔다. 표적이 몇 개밖에 남지 않았다는 건 아직 좌석을 차지하지 못한 사람 모두가 그 몇 개를 향해 달려들 거라는 뜻이었다. 그러니 결과는 보나마나였다.

─ 다른 고객님께서 이미 선택하신 좌석입니다!

다시 숨이 콱 막혔다. 끝이었다. 이제 남은 좌석은 하나도 없어 보였다. 실패였다. 익숙한 패배감이 새삼스럽게 엄습해 왔다.

“아직 끝난 게 아니죠.”

그때 스페인 아가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긴장한 탓인지 잔뜩 가늘어진 목소리였다.

그 말대로였다. 이제부터가 시작이었다. 나는 마음을 가다듬고, 몇 분간 해오던 동작을 기계적으로 반복했다. 우리 작전장교가 제시한 두 번째 필승전략, 그것은 바로 리바운드였다.

나는 여전히 느려 터진 인터넷 화면을 바라보며 새로 고침 키를 계속 눌러대고 있었다. 느릿느릿, 그 갑갑한 화면을 열 번이 넘도록 반복하자 하얗기만 하던 화면 한가운데에 녹색 자리 하나가 갑자기 생겨났다. 얼음을 뚫고 자라난 작은 풀잎처럼. 나는 그곳을 클릭해 들어갔다. 좌석 크기가 너무나 작아서 한 번에 정확히 집어내는 건 무리였다. 두 번 만에 좌석을 클릭한 다음 재빨리 선택완료 버튼을 눌렀다.

실패였다. 어디선가 난생처음 들어 보는 이상한 감탄사가 들려왔다. 독일어인지 스페인어인지 구별조차 할 수 없는 이상한 말이었다. 나는 눈꺼풀을 닫듯 귀를 닫고 내 눈앞에 펼쳐진 화면에 집중했다. 그리고 다시 클릭. 몇 번이고 반복해서 새로 고침을 눌렀다. 싸움에 지친 삶, 그러면서 자연히 승부의 세계를 멀리하게 된 몸. 평화주의자가 되겠다는 결심, 순간의 승부에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들을 걸지 않겠다는 선언. 느긋해진 신경반응. 안식에 익숙해진 삶. 난데없이 떨어진 핵잠수함이라는 공간. 난데없이 떨어진 이상한 타겟. 그리고 전장.

새로 고침 속도가 조금 더 빨라졌다. 네트워크가 빨라진 것인지 신경반응 속도가 빨라진 것인지 둘 다인지조차 알 수 없었다. 그 모든 게 연결된 듯한 무아의 경지. 화면에 초록색 표적 하나가 나타났다. 공략할 수 있는 유일한 표적. 타겟이 시야에 들어오는 동시에 마우스가 그쪽을 향해 빠른 속도로 날아갔다. 크루즈미사일처럼 빠르고 정확한 동작이었다. 클릭해야겠다는 판단마저 생략된, 오로지 표적과 나 사이에서만 존재하는 완전한 합일의 순간.

타겟을 이해했다. 내가 곧 타겟이 되고 타겟은 곧 내가 되었다. 그것은 바로 나였다. 나는 이미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분명 그런 착각이 들었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기적이 일어났다. 결제 화면이 갑자기 눈앞에 펼쳐진 것이었다.

나는 호흡을 멈추고 결제 정보를 입력했다. 스페인 아가씨가 한 말이 떠올랐다.

“일단 좌석을 선택하고 나면 속도는 신경 쓰지 않아도 돼요. 결제과정이 진행되는 동안은 자리를 맡아 둔 걸로 생각해도 좋으니까. 하지만 안심하기는 일러요. 왜냐하면 여기서 오류가 나는 경우가 많거든요.” “오류가 나면 어떻게 되는데요?” “끝이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뜻이에요. 그래서 리바운드가 필요한 거예요. 다른 사람들도 분명히 오류가 나게 돼 있으니까. 좌석이 하얀색으로 변해 있다고 예매가 끝난 건 아니라는 뜻이에요. 누군가는 결제 중간에 문제가 생겨서 다시 좌석 밖으로 튕겨 나가게 돼 있거든요.” “끔찍하네요.” “끔찍하죠. 하지만 그건 어쩔 수 없는 현실이에요. 그러니까 실패했다고 좌절하지 말고 마지막까지 끈기 있게 기다리라는 거예요. 몇 번이고 반복해서. 아셨죠?”

조심조심, 카드 정보를 입력하고 틀린 숫자가 없는지 번호를 확인했다. 티켓수령 방법을 ‘현장수령'으로 선택하고, 예매 사이트에 저장된 개인정보를 확인한 다음 카드 비밀번호를 또박또박 입력한 후 중복클릭이 되지 않게 조심조심 전송 버튼을 클릭했다. 달칵.

시간이 완전히 멈춘 것만 같았다. 그야말로 운명적인 순간이었다. 다시는 없을 기회, 할 수 있는 건 전부 끝마치고 서버의 선택만을 남겨 둔 순간.

‘그래, 이만하면 충분히 했어. 이래도 안 되면 인연이 아닌 거지.' 땀이 났다. 최근 5년간 겪었던 것 중 가장 스릴 넘치는 순간이 틀림없었다. 이게 뭐하는 짓인가 하는 생각이 밀려왔다. 하지만 동시에, 더할 나위 없이 후련한 기분에 온몸이 가벼워졌다.

‘아무튼 진짜로 미친 짓이야. 내가 이 시간에 이런 데서 이런 거 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우리 연구소 소장님이 참 기특해하시겠구나, 에휴.' 바로 그때, 운명의 대화창이 나타났다. 처음 본 대화창이었다. 나는 그때까지도 내가 숨을 멈추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갑자기 한숨이 터져 나왔다. 동시에 나지막한 목소리로 이런 말이 함께 튀어나왔다.

“저, 성공한 것 같아요!”

나는 눈을 크게 뜨고 마지막 대화창을 확인했다.

─ 예매가 완료되었습니다.

오전 10시 16분 30초 언저리. 영원과도 같았던 어느 찬란한 아침에 전달된 승전보였다.

이상한 핵잠수함

“뭐? 회항해도 되냐고? 그쪽에서 하겠다면 해야지 뭐. 그렇다고 회항 못 하게 막고 있을 것도 아니잖아.”

보안 회선을 통해 연구소에 직접 연락을 취했다. 모두가 예상했던 것처럼, 그런 걸 왜 묻느냐는 질문이 되돌아왔다. 나도 그런 걸 왜 물어보라고 하는지 이해가 안 된다고 대답해 주었다. 콘서트도, 티케팅도, 제4의 팬도, 그리고 우리의 기막힌 거래도, 그 어떤 이야기도 꺼내지 않았다. 마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잠수함으로 돌아왔다. 등줄기가 온통 땀에 젖은 데다, 갑자기 긴장이 풀린 탓에 온몸이 기진맥진 녹초가 되었지만, 그런 내색은 전혀 하지 않았다.

그날 우리는 모두 네 장의 티켓을 구했다. 내가 한 장, 우리 에이스인 작전장교 아가씨가 두 장, 거의 10시 30분까지 매달린 끝에 엘레나 언니가 겨우겨우 한 장. 엘레나 언니는 그날 내내 물도 한 잔 제대로 못 마실 정도로 완전히 지쳐 있었다.

“두 번은 절대로 못 하겠다. 한 시간 만에 5년은 늙은 것 같아.”

다시 잠수함에 실려 기지에 도착할 때까지 엘레나 언니는 내내 몸살을 앓았다. 물론 표정은 내내 밝아 보였다. 우리의 스페인 작전장교 아가씨는 다시는 우리 방을 찾아오지 않았다. 직접 대화를 나눠 본 건 아니지만, 아마도 그날 우리가 저지른 일을 영원히 비밀로 해두고 싶어 하는 눈치였다.

그래도 티켓 배분은 어렵지 않았다. 엘레나 언니와 나는 어차피 각자 본인이 산 티켓을 챙기면 되는 거였고, 스페인 아가씨가 산 두 장의 티켓은 본인과 정체를 알 수 없는 결정적 조력자에게 각각 한 장씩 돌아가면 그만이었다. 그리고 그 일은 엘레나 언니나 나로서는 더 이상 궁금해할 필요가 없는 일이었다. 말하자면 그건, 군인들이 알아서 할 일이었으니까.

워낙 비밀스러운 작전이었기 때문에 엘레나 언니와 나는 기지로 돌아가는 내내 환호성을 최대한 아껴야 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끼리 있을 때만 축가를 불렀다. 그것도 사람 노래가 아니라 고래들의 노래로 대신해서 불러야 했다. 바다는 여전히 시끄러웠고, 고래들은 끈질기게 잠수함을 따라왔다. 나도 잘 아는 노래가 온 바다에 울려 퍼졌는데, 그 사이에는 우리 두 사람의 목소리도 끼어 있었다.

그 노래에 한껏 취해 있다가, 나는 문득 철이 들듯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 이건 또 뭐하는 짓일까. 내가 왜 이 시간에 여기에 앉아서 고래 노래 따위를 따라 부르고 있는 거지?

하지만 또 한편으로 이런 생각도 들었다. 타겟이 있는 삶. 그건 정말로 남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그렇게 쓸데없이 무모하기만 한 걸까. 누군가는 말한다. 그렇게 힘들게 티켓을 구해 봐야, 그래서 결국 콘서트에 가봐야, 그냥 그 자리를 가득 메운 수천 명 팬 중 하나밖에 더 되는 거냐고. 심지어 어느 팬은 이렇게도 말했다. 가수가 자기를 봤다고 주장하는 팬들은 언제나 등장하기 마련이지만, 사실 그 가수는 그런 거 안 본다고. 새우젓 먹을 때 새우랑 눈 마주치는 사람이 어디 있냐고. 하지만 그들도 이건 몰랐을 것이다. 그 아무렇지도 않은 새우젓 몇 마리가 고래보다 더 큰 핵잠수함 한 대를 완전히 바보로 만들기도 한다는 걸.

항해 마지막 날 저녁에는, 언제나 그렇듯 거의 모든 승무원이 식당에 모여 그동안 아껴 두었던 비장의 식재료들을 털어 마지막 만찬을 떠들썩하게 즐겼다. 항해 일정이 예상보다 훨씬 짧아져서 그 어느 때보다도 풍족한 만찬이었다. 그 식사 중간에 호기심을 참지 못한 엘레나 언니가 식당 대형 모니터에 JYJ 멤버 셋이 함께 출연한 광고를 띄웠는데,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그 광고를 바라보는 130여 명의 사람들 중에는 얼굴에 숨길 수 없는 미소를 떠올리며 서로를 향해 알 듯 말 듯한 신호를 흘리고 있는 네 명의 열성팬도 포함되어 있었다. 나, 엘레나 언니, 작전장교 아가씨, 그리고 그날에야 비로소 정체를 드러낸 우리의 든든한 고위층 조력자. 나는 남들이 못 알아볼 정도로 고개를 살짝 숙여 부함장의 결단에 경의를 표했다.

‘부함장이었다니! 아무튼 참 미친 잠수함이야.' 이상한 해피엔딩

임무가 끝나고, 우리는 모두 무사히 육지로 돌아갔다. 각자의 나라로, 혹은 저마다의 위치로. 세상은 한동안 평화로웠다. 핵잠수함이 미사일을 발사할 일은 당분간 일어날 것 같지 않았고, 그에 따라 내 수상한 연구도 차질 없이 착착 진행되어 갔다. 엘레나 언니는 정말로 고래에게 노래를 가르치기 시작했는데, 성공 여부를 말하기에는 아직 시간이 좀 더 필요할 것 같았다.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우리 스페인 작전장교 언니의 초고속 승진에 관한 이야기인데, 아쉽게도 이 이야기는 전부 비밀로 묶여버려서 더는 할 말이 남아 있지 않다.

그리고 물론 말할 필요도 없이, 그해 독일 콘서트는 대단히 훌륭했다.

《문장웹진 12월호》

배명훈(裵明勳, 1978년 6월 5일 ~ )은 대한민국의 과학소설 작가이다.

서울대학교 외교학과를 졸업 후, 서울대학교 대학원 외교학과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석사학위논문 《'슐리펜 플랜' 논쟁의 전략 사상적 기초》로 사회과학대학 우수논문상 수상) 2005년 〈Smart D〉로 과학기술 창작문예 단편부문을 수상했다. [1] 같은 해 11월 25일 환상문학 웹진 거울에 〈다이어트〉를 발표하면서 필진으로 합류한 이래 다양한 매체를 통해서 작품을 발표하고 있다. 《에스콰이어》 2007년 1월호에서 "The Newest: 2007년 우리가 주목해야 할 대중문화 예술의 첨병 14인"에 선정되었다. 2010년에는 '안녕, 인공존재! '로 2010 문학동네 젊은작가상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