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sode 38 - 김영하 "너의 목소리가 들려" - Part 1
작가 김영하의 책 읽는 시간 팟캐스트
하늘에서 밧줄이 내려온다. 그것부터가 이상하다. 그러나 시작이니까 아직은 다들 입을 다물고 있다. 근엄한 얼굴의 마술사는 어린 조수에게 밧줄을 타고 올라가라고 명령한다. 겁을 먹고 주저하던 어린 조수는 마술사의 엄명에 따라 밧줄을 타고 올라가기 시작한다. 올라간다, 올라간다, 계속 올라간다. 본래 작던 그의 몸은 더욱 작아져 이윽고 구경꾼들의 시야에서 사라진다. 마술사는 허공을 향해 소리친다.
"자, 이제 다시 내려와!" 그러나 아무 응답도 돌아오지 않는다. 마술사의 목소리가 점점 커진다.
"그만 내려오라니까! 내 말 안 들려?" 역시 대꾸가 없다. 구경꾼들의 궁금증도 커진다. 밧줄은 도대체 어디까지 이어진 것일까? 그리고 조금 전에 올라간 그 아이는 어떻게 된 것일까? 어딘가 다른 세상, 우리가 하늘나라라고 부르는 이상한 세계에 도달해버린 것은 아닐까?
마술사는 화를 내며 밧줄에 매달린다. 그리고 사라진 어린 조수를 찾기 위해 몸소 밧줄을 타고 저 높은 곳으로 올라가기 시작한다. 잠시 후, 마술사 역시 사람들의 시야에서 사라진다. 아득한 하늘이 문득 무겁게 느껴진다. 허공을 우러르는 사람들의 목이 아파오기 시작한다. 그때 갑자기 저 높은 곳에서 어린 조수의 팔, 다리, 머리, 몸통이 차례로 떨어져내린다. 둔탁한 소리가 나고 신선한 피가 튄다. 흰 대리석 바닥은 마치 막 와인을 엎지른 흰 테이블보처럼 보인다. 불고 격렬하고 어지럽다. 사람들이 놀라 뒤로 물러선다. 잠시 후, 양손에 선혈이 낭자한 마술사가 밧줄을 타고 다시 내려와 여기저기 널브러진 조수의 몸뚱이들을 화가 덜 풀린 얼굴로 양동이에 주워담는다. 그리고 그것을 거칠게 뒤쪽으로 내려놓은 뒤, 겁을 집어먹은 구경꾼들을 힐난하듯 휘 둘러본다. 뭘 더 바라는 거요?
그런데 그때 마술사의 뒤에서 뭔가 소리가 들린다. 양동이를 덮은 거적을 들추고 아이가, 마치 긴 낮잠에서 깨어나기라도 하듯, 눈을 비비며 걸어나오는 것이다. 마술사는 놀라지 않는다. 생과 사의 경계를 넘나드는 일쯤은 자신에게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태연하다. 아이가 사라지고, 사라졌던 아이가 죽고, 죽었던 아이가 되살아났다. 아이는 자신의 부활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유연한 몸으로 텀블링을 해 보인다. 이제는 안심이다. 아이는 분명 살아 있는 것이다. 팔과 다리에 피가 통하고 근육과 관절도 제대로 기능하고 있는 것이다. 그제야 사람들은 요란하게 박수를 친다.
이 마술을 최초로 기록한 사람은 이슬람세계의 마르코 폴로라 불리는 이븐 바투타로 알려져 있다. 그는 원 말기의 항저우에서 이 놀라운 마술을 목격하고 그것을 그의 방대한 여행기에 적어넣었다. 지금껏 수많은 마술의 비밀이 밝혀졌지만 이 밧줄 마술의 비밀만은 여전히 베일에 싸여 있다고 한다.
중국 쪽에서 전해오는 이야기도 있다. 이 마술은 중국의 한 황제 앞에서도 공연되었다고 한다. 어린 황제는 속았고, 제대로 속았기 때문에 즐거워했다. 그러나 이 신기한 마술에 흠뻑 매료된 황제는 거기에서 멈추지 않았다. 그는 자기 옆에서 부채질을 하고 있던 내시에게 눈길을 돌렸다. 내시는 부들부들 떨며 끌려나왔다.
"걱정할 것은 없노라. 저 마술사가 금세 다시 살려낼 테니까." 늙은 신하가 앞으로 나와 황제를 만류했다. 저것은 눈속임에 지나지 않는다고. 그러나 황제는 들으려 하지 않았다. 눈속임인지 아닌지는 해보면 알게 되겠지. 황제는 호기심이 가득한 얼굴로 거구의 병사가 내시를 향해 칼을 휘두르는 것을 바라보았다. 피분수에 무지개가 어렸다. 마술사는 참혹한 장면에서 고개를 돌리고는 서둘러 밧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갔다. 마술사가 구름 뒤로 모습을 감춘 후, 밧줄이 땅으로 떨어져내리며 꿈틀거렸다. 마치 하늘로 승천하려다 뜻을 이루지 못한 이무기처럼 보였다.
처음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그저 구름 위로 올라간 마술사가 어디로 갔을지 궁금했었다. 그러나 지금의 나는 그의 조수를, 마술사가 사라진 뒤 내시의 피로 흥건했을 현장에 홀로 남겨졌을 소년은 어떻게 됐을까를 생각한다.
안녕하세요. 책 읽는 시간 팟캐스트를 진행하는 작가 김영하입니다. 그동안 잘 계셨습니까? 자, 지난번에 제가 잠깐 말씀드린 것 처럼 제가 얼마전에 새 장편소설을 출간을 했습니다. 이 장편소설은 저로서는 여섯번 째 장편소설이 되고요. 지난 장편소설을 낸 뒤로는 오년 만에 내게 되는 소설입니다. 저로서는 뭐.. 네 좀 여러가지 복잡한 심정이 교차하는 그런 시절입니다. 이런 때는 언제나 그렇죠. 어쨌든 오년 동안 붙들고 있었던 이야기기 때문에 이것을 내보낼 때는 서운한 마음도 들고 어떤 기대도 있고, 어떤 두려움도 있고, 뭐 그렇습니다. 소설은 뭐 품안의 자식, 자기가 가지고 있을 때 쓰고 있을 때만 제꺼지 세상으로 나가면 더이상 제것이라고 주장하기 어려운 그런 물건이 되는 것 같습니다. 사람들의 것이죠. 이제는 여러사람들이 그 소설에 대해서 뭐 자기 나름으로 소화를 하고 또 느끼고 그렇게 되면서 더이상은 제 것이라고 말할 수가 없을 겁니다. 책을 내고 그 뒤에 작가들이 이런저런 행사들을 하는 경우가 많이 있죠. 제가 한국에 있었다면 아마 지금쯤 몇 번 정도는 여기저기서 낭독회도 하고 독자들과 만나고 그러겠습니다만 제가 멀리 있기 때문에 이번에는 이 팟캐스트로 낭독회를 대신할까 그런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이 소설은 분량은 그렇게 길지 않습니다. 제 이전의 소설들 [빛의 제국]이라던가 [퀴즈쇼] 등에 비하면 짧은 편이고요. [검은 꽃]보다도 짧습니다. 네, 분량은 그렇게 얼마 되지 않지만 이상하게 시간이 많이 걸렸습니다. 이 조금전에 읽어드린 부분은 이 소설의 가장 앞부분입니다. 일종의 프롤로그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는 장인데, 물론 프롤로그라고 쓰여있진 않습니다. 마술사 이야기가 나오는데요. 이 이야기는 제가 지금으로 부터 한 삼년 전 쯤에 밴쿠버에 있었거든요. 거기에서 도서관에 갔다가 우연히 발견한 부분입니다. 이 밧줄 마술 '인디안 로프 마술'이라고 부르는데, 마술의 역사에 관한 책을 좀 뒤적이다가 이 부분을 발견하게 됐는데 '정말로 아직까지 이 마술의 비밀이 밝혀진 적이 없다' 이런 구절을 보고 분명히 흥미롭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이 마술은 '인디안 로프 마술'로 알려져 있다 시피 원래 인도 쪽에서 발원했다고 알려져 있는데요. 중국에서 많이 공연이 됐던 것 같고 18 세기, 19 세기 쯤에는 유럽에서도 몇 차례 공연이 됐던 것 같아요. 그러다가 사라져 버렸기 때문에 이 마술을 원래 어떻게 시행을 했는지 그것은 알려져 있지가 않습니다. 네 물론 제가 쓴 이 소설이 마술사에 관한 소설은 아닙니다. 그러나 이 프롤로그는 소설 전체를 좀 함축한달까요.. 그런 역할을 하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혹시 이 소설을 다 읽으신 분들이 있다면, 앞에 프롤로그를 다시 한번 보시면 처음에 이 소설 읽기 시작할 때 받았던 감상과는 좀 다른 감상을 느끼시리라고 생각을 합니다. 일단 오늘 서른 여덟번 째 김영하의 책 읽는 시간 팟캐스트는요 저의 신작 [너의 목소리가 들려]의 프롤로그로 시작을 해봤습니다. 이어서 이 소설의 주인공들, 두 소년입니다. 네, 물론 여자 주인공도 있습니다만, 기본적으로 이 두 소년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 소년들은 성장을 하면서 쉽게 어떤 친구들 끼리도 우상을 만들기가 쉽습니다. 친구에게 푹 빠져드는 것이죠. 그리고 그 친구를 숭배하기도 했다가, 어떤 때는 연민하기도 했다가, 어떤 때는 분노하기도 했다가, 여러가지 복잡한 감정을 겪게 되는데, 나중에는 결국 그 모든 것이 자기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즉, 자기 마음 속의 환상일 뿐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면서 소년은 성인이 된다..뭐 그런 생각을 합니다. 네 이 두소년은 아주 이 소설에서 밀접한 관계를 맺고있는 중요한 주인공인데요. 이들이 처음 만나게 되는 대목을 읽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