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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 내 단짝친구 현희에게

내 단짝친구 현희에게

"내 단짝친구 현희에게" 현희야! 왜 이렇게 소식이 없는지... 어린 시절부터 함께 자라고 고등학교까지도 같이 졸업한 우리가 아니니. 장마당 장사도 같이하고 탈북도 같이한 우린 잠시도 떨어져서는 안 될 둘도 없는 친구였었지.

하물며 우린 중국에서도 앞뒤 집에서 매일 눈뜨면 얼굴보고 슬픔도 같이 하면서 그렇게 일 년 반을 지냈다.하지만 어느 날, 잠깐 시내에 나갔다 온다는 인사가 영영 헤어지는 길이 될 줄 몰랐었기에 지금도 네가 너무 그립고 보고 싶다.

7월 중순 어느 여름날, 흰 티에 반바지를 입고 나간 네가 한 달 후 도문감옥에 있다는 소식을 듣고 너의 오빠랑 이러저리 뛰어봤지만 일이 풀리진 않았다. 그 후 소식을 몰라 너무도 안타까워서 오늘 편지를 쓰게 되었구나. 그해 가을, 꿈에 네가 나와 너무 춥다하더라. 한참 후에 5년형으로 감옥살이를 한다는 말을 들었었는데...,이젠 나올 때가 된 것 같은데 연락할 방법이 없어 미칠 지경이다.

현희야, 생각나니? 우리가 탈북 하던 날, 네 아들 이광이가 눈치라도 챈 듯이 그날따라 계속 따라오면서 어디 가냐고 하기에 돈 10원을 쥐어 주면서 잠깐 이모랑 갔다 온다고 하고 떠났던 일... 난 지금도 중국에서 그 흔한 쌀밥을 보면서, 상점가서 아이들 옷을 들추며 아들 생각에 눈물을 흘리고, 가족을 찾는 텔레비죤 프로그람을 보면서도 울면서 시간을 보내던 너를 기억한다.

난 지금 남쪽에 와서 예쁜 딸도 낳고 행복한 가정을 이루고 잘 살고 있단다. 울 신랑은 북에서 고생 하던 일을 얘기해주면 잘 믿기지가 않나봐. ‘그게 정말이야? ' 그런단다. 달라도 너무 다른 이런 현실은 언제면 끝날는지. 하지만 나서 자란 고향이이라 그런가, 눈을 감으면 그 모습이 너무도 선하다. 위생월간인 3월, 4월엔 가로수가 흰바지를 갈아입게 되지. 지금도 우리 고향사람들은 그 정책 하에 열심히 살고 있을 테지.

현희야, 우리 서로 살아만 있다면 언젠가는 꼭 만날 날이 올 거야. 말은 안 해도 동갑인 너에게 항상 배울 점이 너무 많았었지. 예의 바르고, 배려심이 많고, 요리솜씨며, 못하는 게 없었던 너였지. 그러니까 지금 살아 온 것만큼 조금만 더 버텨주렴. 그러면 언젠가 꼭 만나 얼싸안고 그동안 못 했던 얘기를 나눌 날이 올 거야.

그날을 위해 매일 매일 기도할게. 너와 나는 친구이자 자매이며 떼려야 뗄 수 없는 자석과도 같다는 걸 너도 잘 알지? 만나는 그날까지 용기 내어 열심히 살자.

(최민아씨와의 전화연결) CM1 더 자두_친구야


내 단짝친구 현희에게

"내 단짝친구 현희에게" 현희야! 왜 이렇게 소식이 없는지... 어린 시절부터 함께 자라고 고등학교까지도 같이 졸업한 우리가 아니니. 장마당 장사도 같이하고 탈북도 같이한 우린 잠시도 떨어져서는 안 될 둘도 없는 친구였었지.

하물며 우린 중국에서도 앞뒤 집에서 매일 눈뜨면 얼굴보고 슬픔도 같이 하면서 그렇게 일 년 반을 지냈다.하지만 어느 날, 잠깐 시내에 나갔다 온다는 인사가 영영 헤어지는 길이 될 줄 몰랐었기에 지금도 네가 너무 그립고 보고 싶다.

7월 중순 어느 여름날, 흰 티에 반바지를 입고 나간 네가 한 달 후 도문감옥에 있다는 소식을 듣고 너의 오빠랑 이러저리 뛰어봤지만 일이 풀리진 않았다. 그 후 소식을 몰라 너무도 안타까워서 오늘 편지를 쓰게 되었구나. 그해 가을, 꿈에 네가 나와 너무 춥다하더라. 한참 후에 5년형으로 감옥살이를 한다는 말을 들었었는데...,이젠 나올 때가 된 것 같은데 연락할 방법이 없어 미칠 지경이다.

현희야, 생각나니? 우리가 탈북 하던 날, 네 아들 이광이가 눈치라도 챈 듯이 그날따라 계속 따라오면서 어디 가냐고 하기에 돈 10원을 쥐어 주면서 잠깐 이모랑 갔다 온다고 하고 떠났던 일... 난 지금도 중국에서 그 흔한 쌀밥을 보면서, 상점가서 아이들 옷을 들추며 아들 생각에 눈물을 흘리고, 가족을 찾는 텔레비죤 프로그람을 보면서도 울면서 시간을 보내던 너를 기억한다.

난 지금 남쪽에 와서 예쁜 딸도 낳고 행복한 가정을 이루고 잘 살고 있단다. 울 신랑은 북에서 고생 하던 일을 얘기해주면 잘 믿기지가 않나봐. ‘그게 정말이야? ' 그런단다. 달라도 너무 다른 이런 현실은 언제면 끝날는지. 하지만 나서 자란 고향이이라 그런가, 눈을 감으면 그 모습이 너무도 선하다. 위생월간인 3월, 4월엔 가로수가 흰바지를 갈아입게 되지. 지금도 우리 고향사람들은 그 정책 하에 열심히 살고 있을 테지.

현희야, 우리 서로 살아만 있다면 언젠가는 꼭 만날 날이 올 거야. 말은 안 해도 동갑인 너에게 항상 배울 점이 너무 많았었지. 예의 바르고, 배려심이 많고, 요리솜씨며, 못하는 게 없었던 너였지. 그러니까 지금 살아 온 것만큼 조금만 더 버텨주렴. 그러면 언젠가 꼭 만나 얼싸안고 그동안 못 했던 얘기를 나눌 날이 올 거야.

그날을 위해 매일 매일 기도할게. 너와 나는 친구이자 자매이며 떼려야 뗄 수 없는 자석과도 같다는 걸 너도 잘 알지? 만나는 그날까지 용기 내어 열심히 살자.

(최민아씨와의 전화연결) CM1 더 자두_친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