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의 고백, 스물 여덟 번째-1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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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의 고백, 스물 여덟 번째
바그다드 공항에 도착하자 이곳 역시 전쟁 지역답게 검색이 철저했다.
여자 안내원이 통과여객과 내리는 승객을 구분하여 안내해 주었다. 우리는 서양 남녀 2명과 같이 안내원을 따라가 대기실로 가서 기다렸다. 베오그라드와의 시차 때문에 시계를 1시간 빠르게 고쳤다. 30분쯤 지나자 뚱뚱한 여자 안내원이 와서 우리를 다시 보안 검색대로 데리고 갔다. 이곳 역시 남자와 여자를 분리하여 짐은 물론 몸도 샅샅이 검색했다.
여기에서도 비닐백에 들어있던 밧데리 4개가 또 문제가 되었다. 30대 중반으로 보이는 여자 검색원은 “우리 공항에서는 밧데리를 가지고는 절대로 비행기에 탑승할 수 없다”라고 고집하면서 밧데리를 빼앗고는 돌려주지 않았다. 내가 울상을 하며 돌려달라고 사정을 해도 그 여자는 막무가내였다. 나중에는 이따위 밧데리를 가지고 왜 이렇게 간청을 하는가 하며 의아해 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나에게는 이 밧데리를 빼앗기면 만사가 다 헛일이 되는 순간이었다. 나에게 부여된 최대 과업이 실패로 돌아가고 결국은 당과 수령님의 신임과 배려를 저버리는 결과가 되는 절박한 상황이기 때문에 결사적으로 매달렸다. 그러는 중에 마침 먼저 검색을 마친 김 선생이 여자 검색실 쪽으로 오고 있었다. 그를 보는 순간 마치 구세주를 만난 듯했다.
김 선생에게 달려가 전후 사정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그 검색원이 밧데리를 검색실 앞 쓰레기통에 던져 버렸다. 나는 쓰레기통으로 달려가 그 안을 들여다보았다. 다행히도 다른 쓰레기는 없고 밧데리 4개만 있었다. 재빨리 그 밧데리를 꺼내 김선생에게 건네주었다. 그는 라디오에 밧데리를 끼우고 라디오를 틀어 소리가 나는 것을 확인한 뒤 검색원에게 항의했다.
“이 소리를 들어봐라. 이것은 순수한 라디오용 밧데리다. 왜 여기서만 특별히 개인 소지품을 검열하고 단속하느냐? 휴대품 검색이 지나치게 까다로워 불쾌하다.”
김 선생이 일본 말로 강한 항의를 해대자 나에게는 그렇게도 단호하게 거절하던 여검색원이 밧데리를 가져가도록 묵인해 주었다. 옆에서 이 광경을 지켜보던 남자 검색원이 다가와 “미안하다. 여기 규칙이니 이해해 달라”고 사과하며 쓰레기통을 뒤져 더러워진 손을 씻으라며 내게 화장실까지 알려 주었다. 손을 씻은 뒤 다시 여자 안내원을 따라가는데 또 검색대가 있었다.
여기서도 철저한 검색을 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이때는 김선생이 밧데리를 간수했는데 무사히 통과했다. 나는 그 검색에서 어찌나 놀랬는지 김 선생이 검색을 무사히 통과한게 궁금했다. 어떻게 통화했느냐고 물었더니 김 선생은 밧데리를 복대에 넣어 별 문제가 없었다고 대답한다.
“이 지역은 전쟁 지역이라 어려움이 많다고 그렇게 설명을 했는데.....”
김 선생도 얼마나 진땀을 흘렸는지 노골적으로 불만을 털어 놓았다.
안내원을 따라 KAL기 탑승 대기실 쪽으로 갈수록 마치 남조선 어느 공항에 와 있는 착각을 느낄 정도로 사방팔방에 남조선 사람이었다. 그들은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남조선 사람이 없는 곳을 찾아서 의자에 앉으려고 자리를 찾았지만 이곳저곳 남조선 사람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마땅한 자리가 없었다. 겨우 남조선 사람이 앉은 자리 몇 칸 건너에 있는 자리를 발견했다. 자리에 앉아 있어도 누군가 우리를 감시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좌불안석이었다.
임무를 수행할 목표물인 KAL 858기, 이제 우리는 무사히 과업을 끝내고 조국으로 돌아갈 것이다. 생각만 해도 눈꺼풀이 떨렸다. 나는 남조선 사람들과 눈이 마주치는게 두려워 눈을 감았다.
나레이션 :대남공작원 김현희의 고백, 랑독에 박수현이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