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신병|왓섭! 공포라디오
서창배님 사연입니다.
<이상한 신병>
이 이야기는 저희 아버지께서
군 생활을 하실 때 겪은 일입니다.
저랑 아버지는 꽤나 사이가 좋아
가끔 저녁에 함께 술잔을 기울이곤 합니다.
아버지는 평소에 꽤나 무뚝뚝하시고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전형적인 한국 남자 스타일이십니다.
하지만 약주가 한잔 들어가고 나면
그때서야 말수가 많아지시는 분이시죠.
이날 군대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을 때였습니다.
으레 남자들이 그러하듯
자기 군 생활 얘기만 막 늘어놓고 있었죠.
하지만 그러던 중 짐짓
진지한 표정으로 해주신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으흠~ 창배야,
혹시 군 생활하면서 이상한 애들 있지 않았냐?"
"네? 갑자기 무슨 소리에요?
이상한 애들이야, 널리고 널렸지."
"이건 아빠가 군 생활할 때 겪었던 일인데.."
아버지는 잠시 이야기를 멈추시며
잔에 남아있던 소주를 단숨에 들이켜시더니
말씀을 이어가셨습니다.
아버지는 공교롭게도 저와 같은 부대를 나오셨습니다.
강원도 동해와 삼척 부근에 있는 해안부대였습니다.
"너도 알다시피 아빠가 귀가 많이 안 좋아서
방위병이었던 거 알지?
단기사병 말이다.
그때 우리 소초에는
아빠를 포함해서 방위병이 몇 명이 있었어.
서로 교대로 출퇴근을 하면서 업무를 맡았었지.
현역병 애들하고 같이 생활했었는데
그때 우리 소초에는 신병이 안 들어온 지 꽤 됐어서
대부분이 상 병장들이었지."
아버지 말씀에 따르면
그때 당시에 아버지가 짬도 제일 만만했고
또 제일 똘똘하기도 해서
현역병들이 아버지를 거의 맞후임 대하듯이
아주 친근하게 지냈다고 합니다.
"그렇게 평화로운 나날이 흘러가고 있던 중에
이상한 놈이 신병으로 들어왔어.
눈깔은 퀭한 게 비쩍 마르고
말할 때마다 발음도 새는 것이
정상적인 놈은 아닌 것 같았지.
그놈이 들어오고 나서
모처럼 신병이 들어왔다고 기뻐하던 다른 선임들도
이내 놈이 정상이 아니란 걸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단다.
무슨 일을 해도 제대로 못 하고
대답도 똑바로 못하는 데다가
걸어 다니는 것도 무슨 허수아비가 걸어 다니는 것마냥
흐느적 흐느적 걸어다니니
선임들이 좋아할 리가 없었지.
아빠는 그때
그 신병이 하다가 망쳐놓은 일들을 다시 수습하느라
그 신병을 별로 좋게 보진 않았단다.
그러던 어느 날 일이 터지고 말았지.
그때는 부대 인원에 여유가 없어서
방위병들도 초소 근무를 나갔었단다.
그런데 그 사건이 있던 날 밤,
아빠랑 그 신병이랑 같이 초소 근무를 나가게 된 거야."
아버지께서는 소주잔에 다시금 잔을 채워
한 모금 들이켜시고는 다시 말을 이어 나가셨습니다.
"그때 초소 나가는 경계병들은
모두 소총탄이니 수류탄이니
무장을 하고 초소에 들어가서 경계근무를 섰었어.
그리고 그것들 외에도 하나를 더 챙겨갔었는데
바로 클레이모어였지."
여기서 클레이모어가 생소하신 분들을 위해
짧게 설명하자면
기폭장치와 기폭선
그리고 구슬과 화약이 잔뜩 들어있는
몸체 부분을 통틀어 클레이모어라고 합니다.
전방위에 있는 적들을 일거에 소탕할 수 있는
치명적인 대량 살상 무기입니다.
"그 신병하고 같이 초소 근무를 서는 게 영 찜찜하긴 했지만
명령이니 일단 따르는 수밖에 없었지.
초소에 투입되고 나서
나는 그 신병에게 경계 똑바로 하라고
단단히 일러둔 뒤에
초소 전방 좀 떨어진 곳에
클레이모어를 설치하러 나갔지."
"격발선을 격발 장치에 물려두고
초소 밖으로 나와
선을 클레이모어를 설치해야 하는 곳까지
길게 늘어뜨리면서 걸어가고 있었어.
그런데 그 클레이모어를 설치하려고
한 걸음 한 걸음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기분이 너무 이상한 거야.
이상하게 귀가 먹먹해지고
속이 울렁거리는 느낌?
참 희한했지.
그 이상한 기분에 느낌이 싸했지만
나는 묵묵히 클레이모어를 설치하기 시작했단다.
클레이모어가 넘어지지 않게
다리를 땅에 잘 박아놓은 뒤에
몸통에 선을 물리려고 하던 그때,
뒤를 돌아봤는데
그 신병이 사라진 상태인 거야.
너무 놀라서 그 신병의 이름을 부르면서
초소 쪽으로 달려갔지.
잔뜩 화가 나서
짜증스럽게 그 신병의 이름을 부르면서
초소 문을 벌컥 연 순간,
보고 말았다.
그 신병이 미친 듯이 웃으면서
쭈그려 앉아 격발장치를 연신 누르고 있는 걸 말이야."
“키키킥.. 딸칵. 키키키킥.. 키킥 딸칵 딸칵 딸칵"
"나는 그 모습을 보고
온몸이 얼어붙은 채로 굳을 수밖에 없었어.
만약 내가 클레이모어에 격발선을 연결했다면.."
아빠는 그때가 떠오르시는지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아빠는 그때 그 신병을
사정없이 두들겨 패셨다고 하셨습니다.
그러고 나서 바로 소초에 보고를 했고
그다음 날, 신병은 사라지고 없었다고 말씀하셨죠.
아마도 다른 부대로 전출을 갔거나
헌병대에 가거나 했었던 것 같다고 했습니다.
저도 군필자라 아버지께서 들려주신 이야기는
정말로 충격적이었습니다.
그때 만약 아빠가
클레이모어를 제대로 설치했었더라면
저도 아빠도 이 자리에 없었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