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들아

"내 아들아" 아들아, 그 동안 잘 있었니? 오늘 엄마는 그곳에 있을 때 보지도 듣지도 못했던 갖가지 남방과일을 앞에 놓고 너희들 생각에 차마 목으로 넘어가지 않아 이글을 쓴다. 여기선 쌀이며 과일이며 먹을 것이 차고 넘치니 오히려 엄청 찐 살을 빼느라 더 힘들 지경이구나. 그때마다 힘들고 어려웠던 고난의 행군시기가 떠올라, 또 한편으론 너희들 생각에 이 엄마는 늘 마음이 아프다. 오늘 밥은 제대로 먹었는지, 손자, 손녀들은 배고프다고 떼를 쓰지 않는지 항상 먹는 것 때문에 신경이 쓰이는구나.

입에 풀칠조차 하기 힘들었던 1996년. 그 때 제대한 네가 한없이 반가우면서도 네 결혼식을 준비해야 했던 나로썬 정말 힘들었었다. 잔칫상에 올려놓을 것이 아무것도 없던 터라 그때 내가 기발한 생각을 하지 않았었니. 장마당에 가서 물고기며 떡이며 또 거기다 바나나 한 송이까지 떡 하니 빌려와 잔치상을 차렸다. 동네 사람들이 상을 잘 차렸다고 칭찬하는 소리에 소리 없는 눈물을 지었던 때가 엊그제만 같구나. 그런데 막내가 어느 새 그 바나나를 먹어치웠는지... 그 때문에 죽도록 매를 맞고 울었던 일, 몇 달 동안 그 바나나 값을 치르느라 죽을 고생을 다 했던 생각만 하면 지금도 내 가슴이 막 쓰려 온단다.

바나나 얘기가 났으니 말이다만, 거기선 먹어보지도 못한 바나나였기에 중국에 와 맨 처음으로 생긴 돈으로 산게 바나나였구나. 그런데 먹을 줄을 잘 몰랐던 난 껍질을 벗기다 그만에야 땅에 떨어뜨려 그마저 먹어 보질 못했단다. 얼마나 아쉬웠던지. 그렇게 바나나는 내 인생에서 잊을래야 잊을 수 없는 추억의 과일로 되었구나,물론 지금은 먹기 싫어서 안 먹지만 그 때를 생각하면 눈물이 나는 걸 어찌할 수가 없구나. 그리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귀염둥이 손자, 손녀의 손에 이 바나나를 주면 얼마나 좋아할까 매일 그 생각을 해본다. 그것만이 아니다. 손녀가 입을 옷을 손뜨개로 만들고는 매일같이 매만지며 너희들 생각에 잠 못 이루는 날도 많구나. 금실, 은실 섞어가며 예쁘게 떠 놓고 보고 싶을 때마다 꺼내보면서 너희들과 만날 그 날만 손꼽아 기다리고 있단다.

여기서야 모든 것이 너무 넘쳐나 오히려 그게 더 걱정이다. 여기 남조선에서 내 생활은 거기 군당 책임비서나 중앙당 사람들이 부럽지 않다. 하긴 말로 해서야 너희들이 어찌 다 알겠니? 나도 그러했듯이 이 남조선엔 거지들만 득실거리고 미국놈들이 행패나 부리는 그런 사람 못살 세상으로 알고 있었잖니. 늘 그렇게 교양을 받아 왔기에 그런 줄로만 알고 있었지.

얼마 전, 너희들 생각이 나서 북녘 땅을 가까이서 볼 수 있는 림진각 통일전망대라는 곳을 찾아갔었다. 가시철조망이 훤히 보이는 북녘 땅, 저기가 바로 내가 나서 자란 고향이라고 생각하니 눈물이 앞을 가리고 가슴이 찢어지듯 아팠구나.

보고 싶은 아들 성철아. 좀 쉬었다 쓰련다. 아픈 마음, 흐르는 눈물 때문에 더 쓸 수가 없구나. 다음에 만날 때까지 잘 있거라. 건강에 더 조심하고.

(이희옥씨와의 전화통화) CM1 박정현_이젠 그랬으면 좋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