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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희의 고백 (Kim Hyun-hee's confession), 남산 지하 조사실, 열 여섯 번째-147

남산 지하 조사실, 열 여섯 번째-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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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 지하 조사실, 열 여섯 번째

나는 고추장을 조금 찍어 먹는 시늉을 하고 얼굴을 찡그렸다. 여자수사관은 그런 내 꼴이 우스운지 연방 젓가락에 고추장을 찍어 나에게 권했다. 오랜만에 먹어 보는 고추장의 감칠맛 때문에 번쩍 정신이 나는 것처럼 개운했지만 얼굴을 찡그리고 매운 표정을 지어야 했다. 그러면서도 여자수사관이 찍어 주는 대로 다 받아먹었다. 고추장을 젓가락으로 찍어 먹이며 우스워하는 여수사관의 표정이 너무 순수해서 내 능청이 죄스러웠다. 내가 자백을 하고 조선 말을 시작했을 때 이 순간을 회상하며 여자수사관 언니에게 얼마나 미안했는지 모른다.

점심식사가 끝나고 한결 기분도 좋아진 데다 죄책감도 들어 나는 여자수사관에게 감사의 말을 전했다.

“바레인에서처럼 손목에 수갑을 채우지도 않고 좋은 방을 주셔서 고맙습니다. 또 친절하게 대해 주시는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그 말은 진심이었다. 바레인에서 나를 보살피던 간호사들과 여자 경찰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드리지 못한 것이 항상 마음에 걸려 있어서 나는 미리미리 인사를 해두고 싶었다. 또 그곳에서처럼 언제 어떤 일로 갑자기 그녀들과 헤어질지 모르는 일이 아닌가.

오후 조사가 시작됐다. 수사관들은 검은 먹탄을 가지고 와 내 열손가락의 지문을 모두 찍어갔다. 오후에는 일본 신이찌 집에서의 생활과 마카오에 있을 때의 생활에 대해 집중적으로 물었다. 마카오에서의 생활을 이야기 할 때는 별 문제 없이 답변했으나 일본 생활에 대해서는 애를 먹었다. 일본에서 살아 보기는 커녕 가 본 적도 없으니 말로만 들은 일본을 자세히 설명하기란 쉽지 않았다. 한술 더 떠서 생활하던 일본 집의 약도와 집 구조 등에 대해 그림을 그리라고 요구했다. 자그마치 석 장씩이나 그려야 하는 형편이었다. 그 요구에 어찌할 바를 몰라 잠시 눈앞이 캄캄했다. 궁하면 통한다는 말대로 초대소 주변을 염두해 두고 내 나름대로의 상상도를 그렸다.

마카오의 생활에 대해서는 일어로 다음과 같이 적어 주었다.

‘처음에는 오영의 친구 집에 있으면서 신세를 졌습니다. 그 집 주인 아주머니에게서 마카오의 실정을 설명 들었고 그 아주머니의 안내로 마카오 거리와 여러 곳을 구경했습니다. 오영과 함께 일자리를 찾아 돌아다녔지만 증명서가 없었기 때문에 직업을 구하기가 힘들었습니다. 돌아다니다가 오영이와 나는 처음으로 도박장에 가 보았습니다. 며칠 그곳을 드나드는 사이에 마카오에 거주하는 권씨라는 남자와 사귀게 되어 그의 집에 잠깐 머물렀습니다. 내 사정 이야기를 듣고 자기 집에 머물면서 살림이나 좀 도와 달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의 집에 오래 머물 수는 없는 입장이었습니다. 미안하고 염치가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도박장에 가서 홍콩 사람과 함께.......' 여기까지 쓰고 난 더 이상 쓸 자신이 없었다. 거짓말을 꾸며 가면서 글을 쓰다나니 글자까지 마구 틀리는 것이었다. 나는 글 쓰는 일을 그만하고 말로 하겠다고 요구했다. 어느 수사관이 심문할 때는 중국어로 하였고 어느 날은 딴 수사관에게서 일본말로 심문받기도 했다. 평소에는 일본 말을 사용할 때가 많았다. 마카오의 생활은 마저 이야기하자 수사관 들은 별 질문 없이 들어 주었다.

“도박장에 출입하면서 신이찌라는 일본 남자를 만났습니다. 똑바른 거처가 없는 처지여서 그 사람의 도움을 받아 애도 호텔과 로얄호텔에도 투숙한 일이 있습니다. 투숙할 때마다 신이찌가 숙박부를 기재했으며 홍콩 남자 등과 만나 호텔에 투숙한 적도 있습니다. 1989년 9월 초에는 무역회사 사원인 홍콩인 채동일을 알게 되어 그로부터 홍콩 딸라 천 불을 받았고 청혼도 받았으나 거절했습니다.”

내가 생각해도 한심한 떠돌이 신세의 처녀로 여겨졌다.

나레이션 : 대남공작원 김현희의 고백, 랑독에 박수현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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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 지하 조사실, 열 여섯 번째-147 Nanshan Underground Investigation Room, Sixteenth-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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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 지하 조사실, 열 여섯 번째

나는 고추장을 조금 찍어 먹는 시늉을 하고 얼굴을 찡그렸다. 여자수사관은 그런 내 꼴이 우스운지 연방 젓가락에 고추장을 찍어 나에게 권했다. 女捜査官はそんな私の姿がおかしいのか、連邦箸にコチュジャンをつけて私に勧めてくれた。 오랜만에 먹어 보는 고추장의 감칠맛 때문에 번쩍 정신이 나는 것처럼 개운했지만 얼굴을 찡그리고 매운 표정을 지어야 했다. 久しぶりに食べるコチュジャンの旨味に、目が覚めるように爽快だったが、顔をしかめ、辛そうな表情をしなければならなかった。 그러면서도 여자수사관이 찍어 주는 대로 다 받아먹었다. それでいて、女性捜査官が写真を撮ってくれるというので、全部食べた。 고추장을 젓가락으로 찍어 먹이며 우스워하는 여수사관의 표정이 너무 순수해서 내 능청이 죄스러웠다. 내가 자백을 하고 조선 말을 시작했을 때 이 순간을 회상하며 여자수사관 언니에게 얼마나 미안했는지 모른다.

점심식사가 끝나고 한결 기분도 좋아진 데다 죄책감도 들어 나는 여자수사관에게 감사의 말을 전했다.

“바레인에서처럼 손목에 수갑을 채우지도 않고 좋은 방을 주셔서 고맙습니다. 또 친절하게 대해 주시는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그 말은 진심이었다. 바레인에서 나를 보살피던 간호사들과 여자 경찰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드리지 못한 것이 항상 마음에 걸려 있어서 나는 미리미리 인사를 해두고 싶었다. 또 그곳에서처럼 언제 어떤 일로 갑자기 그녀들과 헤어질지 모르는 일이 아닌가.

오후 조사가 시작됐다. 수사관들은 검은 먹탄을 가지고 와 내 열손가락의 지문을 모두 찍어갔다. 오후에는 일본 신이찌 집에서의 생활과 마카오에 있을 때의 생활에 대해 집중적으로 물었다. 마카오에서의 생활을 이야기 할 때는 별 문제 없이 답변했으나 일본 생활에 대해서는 애를 먹었다. 일본에서 살아 보기는 커녕 가 본 적도 없으니 말로만 들은 일본을 자세히 설명하기란 쉽지 않았다. 한술 더 떠서 생활하던 일본 집의 약도와 집 구조 등에 대해 그림을 그리라고 요구했다. 자그마치 석 장씩이나 그려야 하는 형편이었다. 그 요구에 어찌할 바를 몰라 잠시 눈앞이 캄캄했다. 궁하면 통한다는 말대로 초대소 주변을 염두해 두고 내 나름대로의 상상도를 그렸다.

마카오의 생활에 대해서는 일어로 다음과 같이 적어 주었다.

‘처음에는 오영의 친구 집에 있으면서 신세를 졌습니다. 그 집 주인 아주머니에게서 마카오의 실정을 설명 들었고 그 아주머니의 안내로 마카오 거리와 여러 곳을 구경했습니다. 오영과 함께 일자리를 찾아 돌아다녔지만 증명서가 없었기 때문에 직업을 구하기가 힘들었습니다. 돌아다니다가 오영이와 나는 처음으로 도박장에 가 보았습니다. 며칠 그곳을 드나드는 사이에 마카오에 거주하는 권씨라는 남자와 사귀게 되어 그의 집에 잠깐 머물렀습니다. 내 사정 이야기를 듣고 자기 집에 머물면서 살림이나 좀 도와 달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의 집에 오래 머물 수는 없는 입장이었습니다. 미안하고 염치가 없었습니다. |shame| 그러던 어느날 도박장에 가서 홍콩 사람과 함께.......' 여기까지 쓰고 난 더 이상 쓸 자신이 없었다. 거짓말을 꾸며 가면서 글을 쓰다나니 글자까지 마구 틀리는 것이었다. 나는 글 쓰는 일을 그만하고 말로 하겠다고 요구했다. 어느 수사관이 심문할 때는 중국어로 하였고 어느 날은 딴 수사관에게서 일본말로 심문받기도 했다. 평소에는 일본 말을 사용할 때가 많았다. 마카오의 생활은 마저 이야기하자 수사관 들은 별 질문 없이 들어 주었다.

“도박장에 출입하면서 신이찌라는 일본 남자를 만났습니다. 똑바른 거처가 없는 처지여서 그 사람의 도움을 받아 애도 호텔과 로얄호텔에도 투숙한 일이 있습니다. 투숙할 때마다 신이찌가 숙박부를 기재했으며 홍콩 남자 등과 만나 호텔에 투숙한 적도 있습니다. 1989년 9월 초에는 무역회사 사원인 홍콩인 채동일을 알게 되어 그로부터 홍콩 딸라 천 불을 받았고 청혼도 받았으나 거절했습니다.”

내가 생각해도 한심한 떠돌이 신세의 처녀로 여겨졌다.

나레이션 : 대남공작원 김현희의 고백, 랑독에 박수현이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