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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chinko ⎟ Min Jin Lee ⎟ 파친코 ⟨2018 번역, 이미정 옮김⟩, 「 와세다 생활 (1960년 도쿄) 」 Pachinko 파친코 [Book 2. 조국]

「 와세다 생활 (1960년 도쿄) 」 Pachinko 파친코 [Book 2. 조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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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친코. Book 2. 조국. 와세다 생활.

1960년 도쿄.

적응하는 데 시간이 좀 걸렸지만, 와세다에서 2년을 보내고 나자

노아는 마침내 그 곳에서 편안함을 느낄 수 있었다.

대학생활은 중등학교 생활과는 완전히 달랐다.

더 이상 가치가 없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배우고

암기 했던 중등학교와는 달랐고 공부는 대단히 즐거웠다.

일처럼 느껴지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와세다는 노아에게 순수하게 즐거움만 주었다.

노아는 눈이 피로하지 않는 한 최대한 많은 책을 읽었다.

읽고 쓰고 생각할 시간이 있었다.

와세다의 교수들은 자신들을 가르치는 주제를 깊이 있게 다루었다.

그런데도 다른 학생들이 불평하는 것을 노아는 정말 이해할 수 없었다.

한수가 시설이 잘 갖춰진 방을 구해주었고

용돈도 넉넉하게 줘서 노아는 걱정할 게 별로 없었다.

노아는 검소하게 생활했고 남는 돈을 매달 집으로 보내기도 했다.

"그냥 공부만 해. 모든 것을 다 배워.

네 머릿속에 지식을 채워. 그건 누구도 빼앗아갈 수 없는 힘이야."

한수는 이렇게 말했다. 한수는 공부하라기보다 배우라고 했다.

노아에게는 그 말이 완전히 다르게 와 닿았다.

배우는 것은 일이 아니라 노는 것과 같았다.

노아는 수업에 필요한 책을 모두 살 수 있었고,

서점에서 필요한 책을 찾지 못하면

또래 친구들이 잘 이용하지 않는 대학교 도서관에 가면 문제가 해결되었다.

노아는 배우는 것보다 학교 바깥 생활에

더 많은 관심을 갖는 일본인 학생들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과거의 학교생활을 통해서 일본인들이

조선인들과는 아무것도 같이하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노아는 어렸을 때와 별반 다르지 않게 혼자 지냈다.

와세다에도 조선인들이 몇몇 있었지만

정치적인 색깔이 너무 강해 보여서 그들과도 어울리지 않았다.

한수와는 매달 점심을 같이했는데 한번은 한수가 점심을 먹으면서

좌파들은 '징징거리는 인간들'이고 우파들은 '완전 바보들'이라고 말했다.

노아는 대체로 혼자 지냈지만 외롭지 않았다.

심지어는 2년이 흐른 후에도

와세다 생활에 빠져 있었고,

책을 읽을 수 있는 조용한 방이 있다는 사실에 여전히 매혹되어 있었다.

굶주린 사람처럼 좋은 책들을 탐욕스럽게 읽으며 머릿속을 채워나갔다.

디킨스와 새커리, 하디, 오스틴 트롤로프를 읽었고,

다음에는 대륙으로 넘어가

발자크와 졸라, 플로베르를 읽었으며,

이어서 톨스토이에게 빠졌다.

노아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는 과테였다.

그는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적어도 대여섯 번은 읽었다.

노아에게는 쑥스러운 소원이 하나 있었는데,

그것은 옛날로 돌아가 유럽인이 되는 것이었다.

왕이나 장군이 되고 싶지는 않았다.

그런 단순한 소원을 빌기에는 나이가 많았으니까.

노아는 그냥 자연과 책, 아이들 몇 명과 함께하는

매우 수수한 삶을 누리고 싶었다.

자신이 말년에도 혼자서 책을 읽으며 조용히 지내고 싶어 하리라는 걸 알았다.

도쿄에서 새로운 삶을 살면서 노아는 재즈 음악을 발견했고,

혼자 술집에 가서

레코드판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들었다.

생음악을 들으려면 돈이 너무 많이 들었다.

하지만 노아는 언젠가 다시 일자리를 얻어

재즈 클럽에 갈 수 있기를 희망했다.

술집에서 노아는 자리를 하나 차지하려고

거의 손대지도 않은 술 한잔을 주문했고, 집으로 돌아가서는

책을 좀 더 읽다가 가족들에게 편지를 쓴 후에 잠들었다.

몇 주마다 용돈을 조금씩 아낀 돈으로 완행열차를 타고 집에 다녀왔다.

매달 초에는 한수가 노아를 점심 식사에 초대했다.

그때마다 한수는 정확하게 설명할 수는 없지만

보다 더 드높은 목적을 이 세상에서 달성해야 하는 임무가 노아에게 있다고 상기시켜주었다.

노아는 이상적인 삶을 살고 있어서 감사했다.

그날 아침, 노아가 조지 엘리엇 세미나를 들으러 캠퍼스를 가로질러 갈 때

누군가가 노아의 이름을 불렀다.

"반도 씨, 반도 씨." 한 여자가 소리쳤다.

캠퍼스 최고의 미인으로 소문난 후매키 아키코였다.

노아는 멈춰 서서 기다렸다.

이전에는 아키코가 노아에게 말을 건 적이 없었다.

사실, 노아는 아키코가 살짝 두려웠다.

아키코는 영국에서 성장하고

교육을 받은 부드러운 말씨의 구로다 교수에게 항상 반대를 했다.

구로다 교수는 예의 바른 사람이었지만

노아는 구로다 교수가 아키코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다른 학생들, 특히 여학생들은 아키코를 간신히 참아주고 있었다.

노아는 교수들이 싫어하는 학생들과는 거리를 두는 게

훨씬 안전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강의실에서 노아는 구로다 교수한테서 한 좌석 떨어진 곳에 앉았고,

아키코는 높은 창문이 줄지어 있는 강의실 맨 끝에 앉았다.

"아, 반도 씨, 잘 지내?"

아키코가 숨을 헐떡이면서 발그레한 얼굴로 물었다.

아키코는 수차례 이야기를 나눠본 사이인 것처럼 자연스럽게 노아에게 말을 걸었다.

"어, 그래, 잘 지내지?"

"엘리엇의 마지막 작품은 어떻게 생각해?"

"아주 훌륭한 작품이지. 조지 엘리엇의 작품은 모두 완벽해."

"말도 안 돼. 《아담 비드》는 엄청 지루해.

그거 읽다가 죽는 줄 알았어. 《사일러스 마너》는 참고 읽기가 힘들었고."

"그래, 《아담 비드》는 《미들마치》만큼 흥미진진하거나

잘 전개된 작품은 아니지.

하지만 용감한 여성과 정직한 남자를 잘 그려낸 . . . "

"맙소사, 제발." 아키코는 눈을 데굴데굴 굴리면서 웃었다.

노아도 웃었다.

노아는 아키코의 전공이 사회학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첫 수업 시간에 모두가 자기소개를 했기 때문이다.

"조지 엘리엇의 작품을 모두 읽었어?

정말 인상적이네."

노아는 지금까지 엘리엇 작품을 다 읽은 사람을 만난 적이 없었다.

"내가 아니라 네가 그런 사람이지.

그 책들을 다 읽는다니 생각만 해도 끔찍해.

그런데 넌 그걸 다 읽었단 말이지?

널 보면 짜증이 날 것 같다니까.

그래도 그건 존경할 만한 일이긴 해.

물론 네가 읽은 책을 모두 다 좋아한다면

널 진지하게 생각하진 못할 것 같아.

그렇다는 건 책 내용을

오랫동안 충분히 생각해보지 않았다는 뜻일 테니까."

아키코는 노아의 기분이 상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을 조금도 하지 않은 채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래." 노아가 미소를 지었다.

노아는 교수님이 좋아서 고른 책이 그 작가의 다른 작품들과 비교했을 때

질이 떨어질 거라는 생각은 해보지 못했다.

구로다 교수님은 《아담 비드》와 《사일러스 마너》를 좋아했다.

"넌 교수님 가까이 앉잖아.

교수님이 날 사랑하는 것 같더라."

노아는 충격을 받은 듯 그 자리에 멈춰 섰다.

"구로다 교수님은 연세가 육십아야.

어쩌면 칠십일지도 몰라."

노아가 건물 출입문으로 걸어가서 아키코를 위해 문을 열어줬다.

"여자들이 육십이 됐다는 이유로 성관계를 갖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니?

그렇다면 참 어리석은 생각이지.

구로다 교수는 아마 와세다에서 가장 낭만적인 여자일걸 소설책을 엄청 많이 읽잖아.

넌 구로다 교수한테 완벽한 남자야.

구로다 교수는 내일이라도 너와 결혼할걸. 오, 스캔들이라!

네가 좋아하는 조지 엘리엇도 젊은 남자와 결혼했잖아.

새신랑이 신혼여행 중에 자살하려고 하긴 했지만 말이야!"

아키코가 큰 소리로 웃자

강의실을 향해 계단을 올라가던 학생들이 아키코를 쳐다봤다.

두 사람이 같이 있는 모습에 모두가 의아해했다.

노아는 캠퍼스 미인 아키코만큼이나 유명했지만

항상 혼자 다녔기 때문이다.

강의실에 들어가자마자 아키코는 언제나 그랬듯이 뒤쪽에 앉았고,

노아는 구로다 교수와 가까운 앞쪽에 앉았다.

노아는 공책을 펴고 만년필 꺼낸 다음 옅은 파란색 줄이 쳐진 하얀 종이를 보았다.

아키코 생각이 났다.

가까이에서 보니 아키코는 훨씬 더 예뻤다.

구로다 교수가 앉아서 강의를 시작했다.

구로다 교수는 갈색 트위드 스커트와

하얀색 피터 팬 블라우스 위에 황록색 스웨터를 걸쳐 입었다.

작은 발에는 어린이용 메리 제인 신발을 신고 있었다.

구로다 교수는 아주 작고 가냘픈 몸매라서

얇은 종이나 마른 나뭇잎처럼 날아가버릴 것만 같았다.

구로다 교수의 강의는 주로 《다니엘 데론다》의 자기중심적인 여주인공

그웬돌린 할레스가 시련을 거쳐 다니엘의 선함에 영향을 받아

변해가는 심리적인 자화상을 심도 있게 다뤘다.

구로다 교수는 여성의 경제적 지위와

결혼 상대에 따라 정해지는 여성의 운명을 크게 강조했다.

또한 그웬돌린을 《미들마치》의 허영심과

욕심이 많은 로사몬드 빈시와 비교하면서,

그와는 대조적으로 그웬돌린이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에 나오는 변화가 분명해지는 순간인 아나그노리시스와

운명의 급변을 맞이했다고 주장했다.

구로다 교수는 강의 내내 거의 그웬돌린을 다루다가 강의가 끝나기 직전에

유대인인 미라와 다니엘을 약간 언급했다.

반유대주의 배경과 빅토리아 시대 소설들에 등장하는

유대인들의 역할도 약간 설명했다.

"유대인들은 종종 남다르게 뛰어난 사람들로 비춰졌고,

여자들은 아름답지만 비극적인 삶을 살기가 일쑤였어요.

외부인인 한 남자가 자기 정체성을 모른다고 가정해보죠.

이 남자는 창세기에서 자신이 이집트인이 아니라

유대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는 모세와 비슷한데 . . . "

구로다 교수가 이렇게 말하면서 노아를 흘낏 쳐다봤지만

노아는 필기를 하느라 그 시선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하지만 다니엘은 자신이 유대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을 때

유대인 엄마처럼 재능 있고 도덕적인 가수 미라와 사랑에 빠졌고,

두 사람은 이스라엘을 향해 동쪽으로 길을 떠났죠."

구로다 교수는 엘리엇의 결말에 만족하는 것처럼 조용히 한숨을 쉬었다.

"그러니까 교수님은 같은 인종끼리 사랑하는 것이 훨씬 낫다는 말씀이시죠?

유대인 같은 사람들은 자기들 나라에서 살아야 한다는 건가요?"

아키코가 손을 들지도 않고 물었다.

아키코는 손을 들어야 한다는 격식을 따지지 않는 것 같았다.

"음, 조지 엘리엇은 유대인이 유대 국가에 속하고 싶어 하는 것은

아주 숭고한 정신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 같아요.

엘리엇은 그런 유대인들이 종종 부당하게 박해받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죠.

그들은 모두 유대 국가로 돌아갈 권리가 있어요.

전쟁을 겪으면서 유대인들이 나쁜 일을 당했고,

다시 그런 일을 당하게 둘 수 없다는 사실을 배웠어요.

유대인들은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았지만 유럽인들은 . . . "

구로다 교수는 이렇게 이야기를 하다가

누군가에게 들켜서 곤경을 당할까 봐 두려워하는 것처럼 평소보다 훨씬 조용하게 말했다.

"복잡하지만 엘리엇은 동시대인들의 생각을 훨씬 앞질러서

종교 차별 문제를 생각했죠."

강의실에는 학생이 9명 있었는데

노아를 포함한 모든 학생이 고개를 끄덕였지만

아키코는 짜증난 것처럼 보였다.

"일본은 독일의 동맹국이었어요."

아키코가 말했다.

"그건 지금 이 시간에 토론할 주제가 아니에요, 아키코."

구로다 교수는 주제를 바꾸고 싶어서 신경질적으로 책을 폈다.

"엘리엇은 틀렸어요."

아키코는 고집스럽게 자기주장을 펼쳤다.

"유대인들이 자기들 국가로 돌아갈 권리는 있을지 모르지만 미라와 다니엘이 영국을 떠나야 할 필요는 없었어요.

숭고한 정신이니 박해받는 사람들을 위한 더 위대한 나라가 있다느니

하는 소리는 전부 다 원치 않는 외국인들을

모두 쫓아내려는 구실에 불과해요."

노아는 고개를 들지 않은 채

아키코의 이야기를 모두 받아 적고 있었다.

아키코의 말이 옳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 당황스러웠기 때문이다.

노아는 다니엘의 용기와 선함을 존경해지만

앨리엇의 정치적 의도에 대해서는 많이 생각해보지 않았다.

엘리엇이 외국인들을 얼마나 존경했는지와는 상관없이

정말로 외국인들이 영국을 떠나야 한다고 생각했던 걸까?

지금 이 시점에서 강의실의 모든 학생들은 아키코를 경시했지만,

갑자기 노아는 다르게 생각할 줄 알고

다른 진실을 제시할 수 있는 그녀의 용기가 존경스러웠다.

노아는 자신이 책임자의 말이

항상 옳은 것으로 여겨지는 곳이 아닌 장소, 즉 대학에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수의 의견에 반대하는 아키코의 이야기를

진심으로 귀 기울여 듣기 전까지는 스스로 생각해서 판단할 줄 몰랐다.

더 나아가 공개적인 자리에서 반대 의사를 제기할 생각은 꿈도 꾸지 못했다.

수업이 끝난 후, 노아는 아키코를 생각하면서 홀로 집으로 걸어갔다.

쉽지 않으리라는 걸 알았지만 아키코와 함께 있고 싶었다.

다음 주 화요일, 세미나가 시작되기 전에 노아는 일찍 교실에 가서

아키코 옆자리를 차지했다.

구로다 교수는 노아의 변심에 상처받지 않은 척하려고 했지만

사실은 마음이 무척 아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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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와세다 생활 (1960년 도쿄) 」 Pachinko 파친코 [Book 2. 조국] "Waseda Life (Tokyo, 1960)" von Pachinko [Buch 2. Mutterland] "Waseda Life (Tokyo, 1960)" Pachinko [Book 2. Motherland] Pachinko [Book 2. "La vida en Waseda (Tokio, 1960)", de Pachinko [Libro 2. Patria]. "Vita a Waseda (Tokyo, 1960)" Pachinko [Libro 2. Madrepatr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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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친코. Book 2. 조국. 와세다 생활.

1960년 도쿄.

적응하는 데 시간이 좀 걸렸지만, 와세다에서 2년을 보내고 나자

노아는 마침내 그 곳에서 편안함을 느낄 수 있었다.

대학생활은 중등학교 생활과는 완전히 달랐다.

더 이상 가치가 없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배우고

암기 했던 중등학교와는 달랐고 공부는 대단히 즐거웠다.

일처럼 느껴지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와세다는 노아에게 순수하게 즐거움만 주었다.

노아는 눈이 피로하지 않는 한 최대한 많은 책을 읽었다.

읽고 쓰고 생각할 시간이 있었다.

와세다의 교수들은 자신들을 가르치는 주제를 깊이 있게 다루었다. Waseda's professors delved into the subjects they were teaching.

그런데도 다른 학생들이 불평하는 것을 노아는 정말 이해할 수 없었다.

한수가 시설이 잘 갖춰진 방을 구해주었고

용돈도 넉넉하게 줘서 노아는 걱정할 게 별로 없었다. |generously||||||

노아는 검소하게 생활했고 남는 돈을 매달 집으로 보내기도 했다.

"그냥 공부만 해. 모든 것을 다 배워.

네 머릿속에 지식을 채워. 그건 누구도 빼앗아갈 수 없는 힘이야."

한수는 이렇게 말했다. 한수는 공부하라기보다 배우라고 했다.

노아에게는 그 말이 완전히 다르게 와 닿았다. To Noah, those words sounded completely different.

배우는 것은 일이 아니라 노는 것과 같았다.

노아는 수업에 필요한 책을 모두 살 수 있었고,

서점에서 필요한 책을 찾지 못하면

또래 친구들이 잘 이용하지 않는 대학교 도서관에 가면 문제가 해결되었다. The problem was solved when I went to the university library, which my peers did not use.

노아는 배우는 것보다 학교 바깥 생활에

더 많은 관심을 갖는 일본인 학생들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과거의 학교생활을 통해서 일본인들이

조선인들과는 아무것도 같이하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노아는 어렸을 때와 별반 다르지 않게 혼자 지냈다.

와세다에도 조선인들이 몇몇 있었지만

정치적인 색깔이 너무 강해 보여서 그들과도 어울리지 않았다.

한수와는 매달 점심을 같이했는데 한번은 한수가 점심을 먹으면서

좌파들은 '징징거리는 인간들'이고 우파들은 '완전 바보들'이라고 말했다. leftists|whining||right-wingers|||

노아는 대체로 혼자 지냈지만 외롭지 않았다.

심지어는 2년이 흐른 후에도 even|||

와세다 생활에 빠져 있었고,

책을 읽을 수 있는 조용한 방이 있다는 사실에 여전히 매혹되어 있었다.

굶주린 사람처럼 좋은 책들을 탐욕스럽게 읽으며 머릿속을 채워나갔다. ||||greedily|||

디킨스와 새커리, 하디, 오스틴 트롤로프를 읽었고,

다음에는 대륙으로 넘어가

발자크와 졸라, 플로베르를 읽었으며,

이어서 톨스토이에게 빠졌다.

노아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는 과테였다. ||||Guatemeala

그는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적어도 대여섯 번은 읽었다.

노아에게는 쑥스러운 소원이 하나 있었는데,

그것은 옛날로 돌아가 유럽인이 되는 것이었다.

왕이나 장군이 되고 싶지는 않았다. |a general|||

그런 단순한 소원을 빌기에는 나이가 많았으니까. Because I was too old to make such a simple wish.

노아는 그냥 자연과 책, 아이들 몇 명과 함께하는

매우 수수한 삶을 누리고 싶었다. |simple|||

자신이 말년에도 혼자서 책을 읽으며 조용히 지내고 싶어 하리라는 걸 알았다.

도쿄에서 새로운 삶을 살면서 노아는 재즈 음악을 발견했고,

혼자 술집에 가서

레코드판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들었다.

생음악을 들으려면 돈이 너무 많이 들었다.

하지만 노아는 언젠가 다시 일자리를 얻어

재즈 클럽에 갈 수 있기를 희망했다.

술집에서 노아는 자리를 하나 차지하려고

거의 손대지도 않은 술 한잔을 주문했고, 집으로 돌아가서는

책을 좀 더 읽다가 가족들에게 편지를 쓴 후에 잠들었다.

몇 주마다 용돈을 조금씩 아낀 돈으로 완행열차를 타고 집에 다녀왔다.

매달 초에는 한수가 노아를 점심 식사에 초대했다.

그때마다 한수는 정확하게 설명할 수는 없지만

보다 더 드높은 목적을 이 세상에서 달성해야 하는 임무가 노아에게 있다고 상기시켜주었다. It reminded me that Noah had a mission to accomplish a higher purpose in this world.

노아는 이상적인 삶을 살고 있어서 감사했다. |ideal||||

그날 아침, 노아가 조지 엘리엇 세미나를 들으러 캠퍼스를 가로질러 갈 때

누군가가 노아의 이름을 불렀다.

"반도 씨, 반도 씨." 한 여자가 소리쳤다.

캠퍼스 최고의 미인으로 소문난 후매키 아키코였다.

노아는 멈춰 서서 기다렸다.

이전에는 아키코가 노아에게 말을 건 적이 없었다.

사실, 노아는 아키코가 살짝 두려웠다.

아키코는 영국에서 성장하고

교육을 받은 부드러운 말씨의 구로다 교수에게 항상 반대를 했다.

구로다 교수는 예의 바른 사람이었지만

노아는 구로다 교수가 아키코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다른 학생들, 특히 여학생들은 아키코를 간신히 참아주고 있었다. ||||||tolerating|

노아는 교수들이 싫어하는 학생들과는 거리를 두는 게

훨씬 안전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강의실에서 노아는 구로다 교수한테서 한 좌석 떨어진 곳에 앉았고,

아키코는 높은 창문이 줄지어 있는 강의실 맨 끝에 앉았다.

"아, 반도 씨, 잘 지내?"

아키코가 숨을 헐떡이면서 발그레한 얼굴로 물었다.

아키코는 수차례 이야기를 나눠본 사이인 것처럼 자연스럽게 노아에게 말을 걸었다.

"어, 그래, 잘 지내지?"

"엘리엇의 마지막 작품은 어떻게 생각해?"

"아주 훌륭한 작품이지. 조지 엘리엇의 작품은 모두 완벽해."

"말도 안 돼. 《아담 비드》는 엄청 지루해.

그거 읽다가 죽는 줄 알았어. 《사일러스 마너》는 참고 읽기가 힘들었고."

"그래, 《아담 비드》는 《미들마치》만큼 흥미진진하거나

잘 전개된 작품은 아니지.

하지만 용감한 여성과 정직한 남자를 잘 그려낸 . . . " |brave||honest|||

"맙소사, 제발." 아키코는 눈을 데굴데굴 굴리면서 웃었다. oh my god||||||

노아도 웃었다.

노아는 아키코의 전공이 사회학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첫 수업 시간에 모두가 자기소개를 했기 때문이다.

"조지 엘리엇의 작품을 모두 읽었어?

정말 인상적이네."

노아는 지금까지 엘리엇 작품을 다 읽은 사람을 만난 적이 없었다.

"내가 아니라 네가 그런 사람이지.

그 책들을 다 읽는다니 생각만 해도 끔찍해.

그런데 넌 그걸 다 읽었단 말이지?

널 보면 짜증이 날 것 같다니까.

그래도 그건 존경할 만한 일이긴 해.

물론 네가 읽은 책을 모두 다 좋아한다면

널 진지하게 생각하진 못할 것 같아.

그렇다는 건 책 내용을

오랫동안 충분히 생각해보지 않았다는 뜻일 테니까."

아키코는 노아의 기분이 상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을 조금도 하지 않은 채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래." 노아가 미소를 지었다.

노아는 교수님이 좋아서 고른 책이 그 작가의 다른 작품들과 비교했을 때

질이 떨어질 거라는 생각은 해보지 못했다.

구로다 교수님은 《아담 비드》와 《사일러스 마너》를 좋아했다.

"넌 교수님 가까이 앉잖아.

교수님이 날 사랑하는 것 같더라."

노아는 충격을 받은 듯 그 자리에 멈춰 섰다.

"구로다 교수님은 연세가 육십아야.

어쩌면 칠십일지도 몰라."

노아가 건물 출입문으로 걸어가서 아키코를 위해 문을 열어줬다.

"여자들이 육십이 됐다는 이유로 성관계를 갖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니? ||||sexual relations||||

그렇다면 참 어리석은 생각이지.

구로다 교수는 아마 와세다에서 가장 낭만적인 여자일걸 소설책을 엄청 많이 읽잖아. |||||romantic|||||

넌 구로다 교수한테 완벽한 남자야.

구로다 교수는 내일이라도 너와 결혼할걸. 오, 스캔들이라!

네가 좋아하는 조지 엘리엇도 젊은 남자와 결혼했잖아.

새신랑이 신혼여행 중에 자살하려고 하긴 했지만 말이야!"

아키코가 큰 소리로 웃자

강의실을 향해 계단을 올라가던 학생들이 아키코를 쳐다봤다.

두 사람이 같이 있는 모습에 모두가 의아해했다. ||||||was puzzled

노아는 캠퍼스 미인 아키코만큼이나 유명했지만

항상 혼자 다녔기 때문이다.

강의실에 들어가자마자 아키코는 언제나 그랬듯이 뒤쪽에 앉았고,

노아는 구로다 교수와 가까운 앞쪽에 앉았다.

노아는 공책을 펴고 만년필 꺼낸 다음 옅은 파란색 줄이 쳐진 하얀 종이를 보았다. |||fountain pen|||||||||

아키코 생각이 났다.

가까이에서 보니 아키코는 훨씬 더 예뻤다.

구로다 교수가 앉아서 강의를 시작했다.

구로다 교수는 갈색 트위드 스커트와

하얀색 피터 팬 블라우스 위에 황록색 스웨터를 걸쳐 입었다.

작은 발에는 어린이용 메리 제인 신발을 신고 있었다.

구로다 교수는 아주 작고 가냘픈 몸매라서

얇은 종이나 마른 나뭇잎처럼 날아가버릴 것만 같았다.

구로다 교수의 강의는 주로 《다니엘 데론다》의 자기중심적인 여주인공

그웬돌린 할레스가 시련을 거쳐 다니엘의 선함에 영향을 받아

변해가는 심리적인 자화상을 심도 있게 다뤘다. The changing psychological self-portrait was dealt with in depth.

구로다 교수는 여성의 경제적 지위와

결혼 상대에 따라 정해지는 여성의 운명을 크게 강조했다.

또한 그웬돌린을 《미들마치》의 허영심과

욕심이 많은 로사몬드 빈시와 비교하면서,

그와는 대조적으로 그웬돌린이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에 나오는 변화가 분명해지는 순간인 아나그노리시스와

운명의 급변을 맞이했다고 주장했다.

구로다 교수는 강의 내내 거의 그웬돌린을 다루다가 강의가 끝나기 직전에

유대인인 미라와 다니엘을 약간 언급했다.

반유대주의 배경과 빅토리아 시대 소설들에 등장하는

유대인들의 역할도 약간 설명했다.

"유대인들은 종종 남다르게 뛰어난 사람들로 비춰졌고, Jews|||||

여자들은 아름답지만 비극적인 삶을 살기가 일쑤였어요. ||tragic|||

외부인인 한 남자가 자기 정체성을 모른다고 가정해보죠.

이 남자는 창세기에서 자신이 이집트인이 아니라 In Genesis, this man finds out that he is a Jew and not an Egyptian.

유대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는 모세와 비슷한데 . . . "

구로다 교수가 이렇게 말하면서 노아를 흘낏 쳐다봤지만

노아는 필기를 하느라 그 시선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하지만 다니엘은 자신이 유대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을 때

유대인 엄마처럼 재능 있고 도덕적인 가수 미라와 사랑에 빠졌고, ||||moral||||

두 사람은 이스라엘을 향해 동쪽으로 길을 떠났죠."

구로다 교수는 엘리엇의 결말에 만족하는 것처럼 조용히 한숨을 쉬었다.

"그러니까 교수님은 같은 인종끼리 사랑하는 것이 훨씬 낫다는 말씀이시죠?

유대인 같은 사람들은 자기들 나라에서 살아야 한다는 건가요?"

아키코가 손을 들지도 않고 물었다.

아키코는 손을 들어야 한다는 격식을 따지지 않는 것 같았다.

"음, 조지 엘리엇은 유대인이 유대 국가에 속하고 싶어 하는 것은

아주 숭고한 정신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 같아요. |sublime|||||

엘리엇은 그런 유대인들이 종종 부당하게 박해받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죠.

그들은 모두 유대 국가로 돌아갈 권리가 있어요.

전쟁을 겪으면서 유대인들이 나쁜 일을 당했고,

다시 그런 일을 당하게 둘 수 없다는 사실을 배웠어요.

유대인들은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았지만 유럽인들은 . . . "

구로다 교수는 이렇게 이야기를 하다가

누군가에게 들켜서 곤경을 당할까 봐 두려워하는 것처럼 평소보다 훨씬 조용하게 말했다.

"복잡하지만 엘리엇은 동시대인들의 생각을 훨씬 앞질러서

종교 차별 문제를 생각했죠." religion|||

강의실에는 학생이 9명 있었는데

노아를 포함한 모든 학생이 고개를 끄덕였지만

아키코는 짜증난 것처럼 보였다.

"일본은 독일의 동맹국이었어요." ||ally

아키코가 말했다.

"그건 지금 이 시간에 토론할 주제가 아니에요, 아키코."

구로다 교수는 주제를 바꾸고 싶어서 신경질적으로 책을 폈다.

"엘리엇은 틀렸어요."

아키코는 고집스럽게 자기주장을 펼쳤다.

"유대인들이 자기들 국가로 돌아갈 권리는 있을지 모르지만 미라와 다니엘이 영국을 떠나야 할 필요는 없었어요.

숭고한 정신이니 박해받는 사람들을 위한 더 위대한 나라가 있다느니 ||persecuted||||||

하는 소리는 전부 다 원치 않는 외국인들을

모두 쫓아내려는 구실에 불과해요."

노아는 고개를 들지 않은 채

아키코의 이야기를 모두 받아 적고 있었다.

아키코의 말이 옳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 당황스러웠기 때문이다.

노아는 다니엘의 용기와 선함을 존경해지만 |||kindness|

앨리엇의 정치적 의도에 대해서는 많이 생각해보지 않았다.

엘리엇이 외국인들을 얼마나 존경했는지와는 상관없이

정말로 외국인들이 영국을 떠나야 한다고 생각했던 걸까?

지금 이 시점에서 강의실의 모든 학생들은 아키코를 경시했지만, |||||||disregarded

갑자기 노아는 다르게 생각할 줄 알고

다른 진실을 제시할 수 있는 그녀의 용기가 존경스러웠다.

노아는 자신이 책임자의 말이

항상 옳은 것으로 여겨지는 곳이 아닌 장소, 즉 대학에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수의 의견에 반대하는 아키코의 이야기를

진심으로 귀 기울여 듣기 전까지는 스스로 생각해서 판단할 줄 몰랐다.

더 나아가 공개적인 자리에서 반대 의사를 제기할 생각은 꿈도 꾸지 못했다.

수업이 끝난 후, 노아는 아키코를 생각하면서 홀로 집으로 걸어갔다.

쉽지 않으리라는 걸 알았지만 아키코와 함께 있고 싶었다.

다음 주 화요일, 세미나가 시작되기 전에 노아는 일찍 교실에 가서

아키코 옆자리를 차지했다.

구로다 교수는 노아의 변심에 상처받지 않은 척하려고 했지만 |||change of heart||||

사실은 마음이 무척 아팠다. ||ve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