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1화 다윤언니
"제81화 다윤언니" 마지막 코스로 언니랑 커피숍에 들어갔다. 언니는 카라멜 마끼아또, 난 아메리카노 커피를 주문했다. 아침내껏 함께 쇼핑도 하고 맛있는 일본료리도 먹고 오후엔 영화구경도 하고... 일요일 오늘 하루 오래만에 언니랑 정말 즐겁게 놀았다.
커피숍에는 처녀총각들이 마주 앉아 오순도순 얘길 나누고 있었다. 또 저쪽 구석 식탁에는 아줌마들이 삼삼오오 모여앉아 이야기판을 펼치고 있었다.
아줌마 : 쏘파우에 딱 앉아서 물떠오라, 과일 깍아오라, 온갖걸 다 시켜~ 물론 하루종일 일하고 들어와서 힘들고 피곤할 수 있어, 그럼 난 집에서 그냥 노나? 애봐야지, 빨래해야지, 시어머니 밥상 차려줘야지, 아 자긴 손이 없어? 발이 없어?...
얼굴에 주름을 잔뜩 만들고 해대는 한 녀인의 볼 부은 소리가 온 장내를 시끄럽게 했다. 역시 아줌마되면 목소리가 용감해지는 것 같다. 시집살이에 찌들어 터뜨리는 그들의 대화에 언니랑 난 서로 마주보며 웃어버렸다.
어느새 김이 몰몰 나는 따뜻한 커피가 나왔다. 가느다란 빨대로 한 모급 살짝 들이마시니 뜨거운 커피 한줄기가 식도를 통해 몸 안으로 쪼옥 들어갔다. 초겨울이라 제법 쌀쌀한 날씨에 얼었던 몸을 순식간에 녹여주는 것 같았다.
따뜻한 커피 한 모금에 심취하며 문득 마주 앉은 언니 얼굴을 보니 언니가 참 궁금했다. 나이 40이 다 되어서도 왜 아직 시집을 안 갔을까? 시집살이에 찌든 저 녀인들처럼 살기 싫어서일까? 실례가 되는 것 같았지만 용기를 내어 한번 물어보았다.
그러자 다윤언니가 하는 말, “시집을 꼭 가야만 하는 거야? 저것 좀 봐, 아줌마들이 애 키울라, 남편 뒤바라지에, 거기에 시어머니까지 얼마나 할일이 많은데, 자기 생활이 없잖아, 그렇다고 결코 결혼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건 아니야, 그냥 난 내 나름의 목표가 있고, 그 목표가 실현되는 것이 나한텐 결혼보다 더 중요하고 의미있는 삶이지,”
그동안 남조선에서 시집을 안간 로처녀들을 많이 봐오면서 항상 부정적으로만 생각해왔다. 시집을 안 갔다는 생각보다는 못 갔다는 생각이 더 지배적이였기 때문이였다. 고향에선 20대 후반만 되도 시집을 안갔으면 꼭 뭔가 부족한 녀자 취급을 당하니 왜 안그렇겠는가,
언젠가 인터네트에서 미혼남녀가 결혼하지 않는 리유에 대한 조사결과를 본 적이 있다. 나이 30살이 넘었는데도 ‘아직 이른 나이'라고 하거나, ‘교육을 더 받고 싶어서', 또는 ‘자아성취와 자기 개발을 위해'라는 등 가치관과 관련된 리유가 60%로 가장 많다고 했다. 결혼이 삶의 전부라고 생각하는 북조선에선 상상도 못하는 일이다. 결혼이란 울타리안에 얽매워 살기보다는 자신만의 의미있는 삶의 목표를 가지고 산다는 사실에 새삼 놀라기도 했다. 물론 다는 알 수 없겠지만 더없이 검소하고 똑똑한 다윤언니도 또렷한 삶의 어떤 목표를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는 걸 알게 되니 더욱 존경스러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