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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희의 고백 (Kim Hyun-hee's confession), 눈물의 고백, 열 다섯 번째-183

눈물의 고백, 열 다섯 번째-1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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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의 고백, 열 다섯 번째

비행기는 캄캄한 밤에 ‘이르츠크' 라는 소련 땅에 착륙했다. 11월 중순인데도 이곳에는 벌써 눈이 하얗게 쌓여 있었다.

승객들은 급유하는 동안 공항 안으로 들어가 입국 사열을 마치고 대기실에서 휴식을 취했다. 밤늦은 시간이어서 공항 상점들은 문이 닫혀 있었다. 나는 어젯밤 잠을 설쳤고 다시 밤늦은 시간이 되었는데도 졸리거나 피곤한 줄 몰랐다. 아마 심하게 긴장되어 있어서인듯 했다. 김승일은 굉장히 피곤해 보였지만 드러내어 표시를 내지는 않았다. 몸이 많이 불편한 게 아닌가 하고 나는 자주 그의 안색을 살폈다. 의자에 머리를 기대고 한동안 움직임이 없으면 무슨 일이 있는가 해서 불안스러웠다. 우리는 새벽녘이 되어서야 출발했다. 대기실에서 잠이 든 사람들도 있었다.

그날 저녁 6시쯤에야 비행기는 모스크바에 도착했다. 짐을 찾은 후 세관을 통과했는데 모스크바공항은 다른 어느 나라보다 엄격하고 까다로운 짐 검색을 하는 곳이었다. 물건 하나하나를 뢴트겐으로 비춰보고 그래도 미심쩍은 것은 모두 꺼내도록 하여 일일이 확인하고서야 통과시켰다. 그러나 폭발물을 든 최과장은 외교관만 통과하는 검색소로 가서 외교 여권을 제시하고는 아무런 검색 없이 유유히 통과했다. 수속을 마치고 나가니 지도원 한 명이 마중 나와 있었다. 최 과장과 최 지도원은 그곳 지도원과는 초면인 듯 서로 서먹서먹해 하면서 우리의 일정을 토론하였다. 모스크바 주재 지도원은 여기저기 다녀오더니 모스크바를 떠나 부다페스트로 가는 11월 14일자 비행기 표는 국제회의가 열리는 때라 이미 매진되었다는 것이었다.

“예정된 날짜에 갈 수 없으면 큰일인데...”

최 과장이 난색을 표했다. “오늘밤 자정에 부다페스트로 가는 비행기가 있는데 그건 어떻습니까?” 지도원이 최 과장에게 의견을 제시했다.

“차라리 그편이 났겠구만.”

우리는 예정보다 일찍 떠나는 편이 늦게 떠나는 것보다는 더 나을 것 같아 그날 밤에 떠나는 비행기로 결정을 보았다. 우리의 결정을 알리자 모스크바 주재 지도원은 시계를 보았다.

“그러면 불과 네다섯 시간 정도 남았는데 대사관까지 왔다 갔다 할 것 없이 여기서 기다리다가 타고 가는 것이 더 편하지 않겠습니까?”

그는 자기도 뒤에 오는 손님을 또 모셔야 하기 때문에 여기서 기다리면 좋겠다고 의견을 밝혔다.

“지금 대사관에 가더라도 손님이 많아서 방을 잡을 수가 없는 형편입니다. 밖에 앉아 있다가 다시 나와야 할 겁니다.”

그는 우리가 그냥 공항에서 기다리다가 떠났으면 하는 눈치를 보였다. 최 과장과 지도원이, 이에 동의하는 태도를 보이려 하자 김승일이 반대를 하고 나섰다.

“나는 피곤해서 그렇게 못하오. 가서 좀 쉬어야겠소. 대사관에 방이 없으면 호텔방을 빌려서라도 잠시 누워야겠소. 그의 고집에 그곳 지도원은 언짢은 표정을 지으며 손수 운전을 하여 대사관으로 우리를 데려다주었다. 최 과장이 대사관 당비서와 면담하여 우리는 겨우 어느 행사과장 사무실을 빌렸다. 김승일만 어느 옆방에 가서 침대에 누웠다. 사사건건 여러 사람을 괴롭히는 김 선생으로 인해 염치가 없었지만 우리는 협동해야 할 한조이기 때문에 나는 애써 그의 의견에 동의하는 표정을 지었다. 잠시 후, 그 당시 소련에서도 구하기 힘든 맥주까지 곁들인 저녁식사를 내왔다. 최 과장과 담화한 당비서의 입김이 작용한 모양이었다. 저녁식사 후 최 과장과 최 지도원은 모스크바에서 앞당겨진 일정을 어디 가서 늦출 것인가 협의하고 있었다. 협의 결과 부다페스트가 좋겠다고 결정되었다.

나레이션 : 대남공작원 김현희의 고백, 랑독에 박수현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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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의 고백, 열 다섯 번째-183 Confession of Tears, Fifteenth - 1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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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의 고백, 열 다섯 번째

비행기는 캄캄한 밤에 ‘이르츠크' 라는 소련 땅에 착륙했다. 11월 중순인데도 이곳에는 벌써 눈이 하얗게 쌓여 있었다.

승객들은 급유하는 동안 공항 안으로 들어가 입국 사열을 마치고 대기실에서 휴식을 취했다. 밤늦은 시간이어서 공항 상점들은 문이 닫혀 있었다. 나는 어젯밤 잠을 설쳤고 다시 밤늦은 시간이 되었는데도 졸리거나 피곤한 줄 몰랐다. 아마 심하게 긴장되어 있어서인듯 했다. 김승일은 굉장히 피곤해 보였지만 드러내어 표시를 내지는 않았다. 몸이 많이 불편한 게 아닌가 하고 나는 자주 그의 안색을 살폈다. 의자에 머리를 기대고 한동안 움직임이 없으면 무슨 일이 있는가 해서 불안스러웠다. 우리는 새벽녘이 되어서야 출발했다. 대기실에서 잠이 든 사람들도 있었다.

그날 저녁 6시쯤에야 비행기는 모스크바에 도착했다. 짐을 찾은 후 세관을 통과했는데 모스크바공항은 다른 어느 나라보다 엄격하고 까다로운 짐 검색을 하는 곳이었다. 물건 하나하나를 뢴트겐으로 비춰보고 그래도 미심쩍은 것은 모두 꺼내도록 하여 일일이 확인하고서야 통과시켰다. 그러나 폭발물을 든 최과장은 외교관만 통과하는 검색소로 가서 외교 여권을 제시하고는 아무런 검색 없이 유유히 통과했다. 수속을 마치고 나가니 지도원 한 명이 마중 나와 있었다. 최 과장과 최 지도원은 그곳 지도원과는 초면인 듯 서로 서먹서먹해 하면서 우리의 일정을 토론하였다. 모스크바 주재 지도원은 여기저기 다녀오더니 모스크바를 떠나 부다페스트로 가는 11월 14일자 비행기 표는 국제회의가 열리는 때라 이미 매진되었다는 것이었다.

“예정된 날짜에 갈 수 없으면 큰일인데...”

최 과장이 난색을 표했다. “오늘밤 자정에 부다페스트로 가는 비행기가 있는데 그건 어떻습니까?”  지도원이 최 과장에게 의견을 제시했다.

“차라리 그편이 났겠구만.”

우리는 예정보다 일찍 떠나는 편이 늦게 떠나는 것보다는 더 나을 것 같아 그날 밤에 떠나는 비행기로 결정을 보았다. 우리의 결정을 알리자 모스크바 주재 지도원은 시계를 보았다.

“그러면 불과 네다섯 시간 정도 남았는데 대사관까지 왔다 갔다 할 것 없이 여기서 기다리다가 타고 가는 것이 더 편하지 않겠습니까?”

그는 자기도 뒤에 오는 손님을 또 모셔야 하기 때문에 여기서 기다리면 좋겠다고 의견을 밝혔다.

“지금 대사관에 가더라도 손님이 많아서 방을 잡을 수가 없는 형편입니다. 밖에 앉아 있다가 다시 나와야 할 겁니다.”

그는 우리가 그냥 공항에서 기다리다가 떠났으면 하는 눈치를 보였다. 최 과장과 지도원이, 이에 동의하는 태도를 보이려 하자 김승일이 반대를 하고 나섰다.

“나는 피곤해서 그렇게 못하오. 가서 좀 쉬어야겠소. 대사관에 방이 없으면 호텔방을 빌려서라도 잠시 누워야겠소. 그의 고집에 그곳 지도원은 언짢은 표정을 지으며 손수 운전을 하여 대사관으로 우리를 데려다주었다. 최 과장이 대사관 당비서와 면담하여 우리는 겨우 어느 행사과장 사무실을 빌렸다. 김승일만 어느 옆방에 가서 침대에 누웠다. 사사건건 여러 사람을 괴롭히는 김 선생으로 인해 염치가 없었지만 우리는 협동해야 할 한조이기 때문에 나는 애써 그의 의견에 동의하는 표정을 지었다. 잠시 후, 그 당시 소련에서도 구하기 힘든 맥주까지 곁들인 저녁식사를 내왔다. 최 과장과 담화한 당비서의 입김이 작용한 모양이었다. 저녁식사 후 최 과장과 최 지도원은 모스크바에서 앞당겨진 일정을 어디 가서 늦출 것인가 협의하고 있었다. 협의 결과 부다페스트가 좋겠다고 결정되었다.

나레이션 : 대남공작원 김현희의 고백, 랑독에 박수현이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