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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조선에 대한 궁금증, 리광명이 풀어드립니다, 6.25 전쟁의 진실

6.25 전쟁의 진실

"6.25 전쟁의 진실" 물음; 고향에 있을 때 저는 6.25전쟁은 남조선이 먼저 일으킨 걸로 알고 있었습니다. 남조선이 미국을 등에 업고 일으킨 북침전쟁이다. 이렇게 배웠는데요. 그런데 여기 남조선에 와서 보니까 그게 아니더라구요. 북조선이 먼저 일으킨, 그러니까 북침전쟁이 아니라 남침전쟁이라는데요. [...]대체 진실은 무엇입니까?

대답; 쏘련이 무너지고 난 이후 공개된 비밀 외교문서를 통해, 6.25전쟁은 김일성이 쓰딸린의 승인 아래 저지른 남침 전쟁이라는 것이 이미 밝혀졌습니다. 당시 쏘련을 등에 업고 권력을 잡았던 김일성으로서는 쓰딸린의 승인 없이는 전쟁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김일성이 처음 쓰딸린을 찾아간 것은 1949년 3월인데, 그때 쓰딸린은 전쟁을 단기간에 끝낼 수 있고, 미국이 개입을 안 한다는 보장이 있어야만 남침을 허용할 수 있다면서 반대했습니다. 그로부터 얼마 뒤 미군이 남조선에서 철수하자 김일성은 그해 8월에 다시 쓰딸린에게 전쟁 승인을 요청했습니다. 이때도 쓰딸린은 거절했습니다.

그런데 국제정세가 돌변했습니다. 1949년 10월 중국 공산당이 대륙을 장악해 조선반도에 문제가 생길 경우 개입할 수 있는 조건이 만들어졌습니다. 또 쓰딸린은 미국에 심어놓은 고위급 스파이를 통해 미국의 아시아에 대한 정책이 소극적으로 전환된 것을 간파했습니다. 실제로 1950년 1월 미국 국무장관 애치슨이 새로운 방위선에서 ‘조선반도'를 제외하자 쓰딸린은 미국이 조선반도에 개입하지 않을 것으로 판단했습니다. 그리고 1950년 4월 모스크바를 찾은 김일성, 반헌영과 회담을 갖고, 모택동이 지지하는 조건으로 남침 전쟁을 승인하기에 이릅니다.

쓰딸린은 전쟁영웅인 바실리예프 장군을 북조선에 보내 전쟁계획을 함께 점검했습니다. 그리고 김일성은 1950년 6월25일 새벽 38도선 전역에서 남침도발을 감행했습니다. 이렇듯 6.25전쟁은 김일성이 쓰딸린을 등에 업고 북과 남의 동포들을 무수히 희생시킨 남침전쟁이였습니다.

엔딩 : 북과 남 인민들이 서로를 알고 리해할 때 통일의 날도 빨리 올 수 있습니다. ‘남조선에 대한 궁금증, 리광명이 풀어드립니다', 다음 시간을 기대해 주세요.

6.25 전쟁의 진실 6.25 La verdad sobre la guerra 6.25戦争の真実

"6.25 전쟁의 진실" "The Truth of the 6.25 War" 물음; 고향에 있을 때 저는 6.25전쟁은 남조선이 먼저 일으킨 걸로 알고 있었습니다. 남조선이 미국을 등에 업고 일으킨 북침전쟁이다. This is the War of Northern Aggression fought by South Korea against the United States. 이렇게 배웠는데요. 그런데 여기 남조선에 와서 보니까 그게 아니더라구요. 북조선이 먼저 일으킨, 그러니까 북침전쟁이 아니라 남침전쟁이라는데요. [...]대체 진실은 무엇입니까?

대답; 쏘련이 무너지고 난 이후 공개된 비밀 외교문서를 통해, 6.25전쟁은 김일성이 쓰딸린의 승인 아래 저지른 남침 전쟁이라는 것이 이미 밝혀졌습니다. answer; Through secret diplomatic documents released after the collapse of the Soviet Union, it has already been revealed that the Korean War was a South Korean War committed under the approval of Kim Il-sung and Stalin. 당시 쏘련을 등에 업고 권력을 잡았던 김일성으로서는 쓰딸린의 승인 없이는 전쟁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김일성이 처음 쓰딸린을 찾아간 것은 1949년 3월인데, 그때 쓰딸린은 전쟁을 단기간에 끝낼 수 있고, 미국이 개입을 안 한다는 보장이 있어야만 남침을 허용할 수 있다면서 반대했습니다. 그로부터 얼마 뒤 미군이 남조선에서 철수하자 김일성은 그해 8월에 다시 쓰딸린에게 전쟁 승인을 요청했습니다. 이때도 쓰딸린은 거절했습니다.

그런데 국제정세가 돌변했습니다. 1949년 10월 중국 공산당이 대륙을 장악해 조선반도에 문제가 생길 경우 개입할 수 있는 조건이 만들어졌습니다. In October 1949, the Chinese Communist Party seized the continent and created conditions for intervention in the event of a problem on the Korean Peninsula. 또 쓰딸린은 미국에 심어놓은 고위급 스파이를 통해 미국의 아시아에 대한 정책이 소극적으로 전환된 것을 간파했습니다. Through high-level spies planted in the U.S., Tsvetalin also saw a shift in U.S. policy toward Asia to one of passivity. 실제로 1950년 1월 미국 국무장관 애치슨이 새로운 방위선에서 ‘조선반도'를 제외하자 쓰딸린은 미국이 조선반도에 개입하지 않을 것으로 판단했습니다. 그리고 1950년 4월 모스크바를 찾은 김일성, 반헌영과 회담을 갖고, 모택동이 지지하는 조건으로 남침 전쟁을 승인하기에 이릅니다. In April 1950, they met with Kim Il-sung and Ban Heon-young, who visited Moscow, and approved the South Korean War on conditions supported by Mao Zedong.

쓰딸린은 전쟁영웅인 바실리예프 장군을 북조선에 보내 전쟁계획을 함께 점검했습니다. 그리고 김일성은 1950년 6월25일 새벽 38도선 전역에서 남침도발을 감행했습니다. 이렇듯 6.25전쟁은 김일성이 쓰딸린을 등에 업고 북과 남의 동포들을 무수히 희생시킨 남침전쟁이였습니다.

엔딩 : 북과 남 인민들이 서로를 알고 리해할 때 통일의 날도 빨리 올 수 있습니다. ‘남조선에 대한 궁금증, 리광명이 풀어드립니다', 다음 시간을 기대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