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에 다시, 그리스로마 신화를 읽어야 하는 이유
마흔(40). 인생의 절반쯤 지나온 지금, 공허하다.
이제 청춘도 지나갔다.
아무도 다시 내 젊음을 돌려주지 않는다.
인생을 드라마틱 하게 바꾸고 싶지만
현실의 한계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예전에 가졌던 꿈과 열정과 사랑은 모두 어디로 가고
텅 빈 마음뿐 일까? 이 텅 빈 마음을 무엇으로 채워야 할까?
그때 그리스 로마 신화가 눈에 띄었다. 어렸을 땐 단순히 재미로,
또는 학교에서 반강제적으로 읽었던 그것.
마흔이 되어 다시 읽은 그리스
로마 신화에는 인생의 지혜가 숨어 있었다.
제우스는 헤파이스토스에게
진흙으로 여성을 만들라고 명령했다.
그리하여 인간 최초의 여성이 탄생 했다
그녀의 이름은 판도라. ‘모든 신으로부터 선물을 다 받은 여자'
라는 뜻이다.
판도라는 에피메테우스와 결혼해 살게 되는데
그 집에는 절대로 열면 안 되는 ‘항아리'가 하나 있었다.
판도라는 날이 갈수록 항아리(상자)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궁금했다
결국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판도라는 항아리 뚜껑을 열고 말했다
그 순간 항아리 안에 들어있던 슬픔과 고통,
시기와 질투,
가난과 질병 등 온갖 취향이 밖으로 쏟아져 나왔다
단 하나. ‘희망'을 제외하고.
여기서 판도라의 상자 속 희망은 이중적 의미를 갖는다
인간은 어떤 불행이 닥쳐도
상자속 희망을 잃지 않으면
행복한 삶을 이어갈 수 있다고 믿는다
동시에 희망이 세상 밖으로 나오기 전에
상자를 닫아 버렸기 때문에 이 세상에 심하면 사라지고
절망만 존재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즉, 실현 가능성이 있는 희망은 우리를 계속 성장시키지만
실현 가능성 없는 막연한 희망은 그저
우리의 삶을 고단하게만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금껏 우리는 희망이 있어
절대 포기하지 않을 수 있는 원동력으로 살아 왔지만
가끔은 포기가 희망 보다 아름다울 때도 있다
적절한 시기에 포기할 줄 아는 지혜가 있었더라면
좀 더 후회 없는 삶 수 있지 않았을까.
태양신 헬리오스에게는 파에톤이라는 아들이 있었는데
정작 파에톤은 그 사실을 모른 채 어머니와 살았다.
어느 날 어머니는 파에톤에게
태양신 헬리오스가 아버지 라는 사실을 말해 줬고
파에톤은 아버지를 찾아간다.
오랜 여정 끝에 드디어 아버지를 만난 파에톤은 행복했다.
하루는 헬리오스가 아들
파에톤에게 소원을 말해 보라고 하는데,
파에톤은 아버지의 태양 마차를 딱
하루만 직접 물어 보고 싶다고 말한다
태양 마차는 오직 태양신만 몰 수 있었지만
어쩔 수 없이 헬리오스는 아들에게 마차를 내어주었다.
파에톤은 거침없이 날아오르며
또 다른 행복의 순간을 만끽했다.
그러나 순식간에 마 처리 속도가 점점 빨라져
마차가 심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파에톤의 힘으로는 거친
천마들을 제대로 조종할 수 없었다.
태양 마차는 궤도를 벗어나
하늘의 별자리를 불태우고,
땅을 불바다로 만들어 버렸다.
결국 이를 보다 못한 제우스가 마차에 번개를 던졌고,
다이소는 땅에 떨어져 축구 말했다
우리는 누구나 행복을 원하지만
영원히 온전한 행복을 누리는 사람은 드물다. 아빠를 만난 행복,
연이어 태양 마차를 타는 행복까지
이룬 파에톤이 태양 마차의 궤도를 벗어나는 순간
불행해진 것처럼 말이다.
마찬가지로 우리 삶에도 궤도가 있다.
현재 주어진 행복에 만족하지 못하고
삶의 궤도를 이탈하는 순간
파에톤처럼 불행 해진다.
특히나 돈이나 명예 등 외형적인 요인에서 만족과 재미를 찾는다면,
행복은 잠깐이고 공허함만 남게 될 것이다.
또 허망 해질 수 있다.
지금 나의 행복을 유지하는 방법부터 찾아야 한다.
마음 깊은 곳, 내면의 행복을 위해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인다면
앞으로 보다 오랜 시간 행복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익숙해져버린 인생 매너리즘에 빠져 버린 삶에
세상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는 자극제가
필요한 당신. 마흔이 되어 다시 읽는 그리스 로마 신화,
신화 속 배움은 당신이 인생을 지혜롭게 바라볼 수 있도록,
인생을 새롭게 시작할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