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 지하 조사실, 서른 여섯 번째-1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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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 지하 조사실, 서른 여섯 번째
더 이상 버티는 일도 한계점에 달했지만 더 못 견딜 일은 새롭게 시작된 양심의 소리였다. 이제 어찌되었든 죽을 수밖에 없는 몸이 되었지만 죽기 전에 내가 지은 죄를 고백하고 나의 조선 이름이나마 밝히고 죽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너무 시간을 끌면서 머뭇거리자 여수사관과 다른 수사관들은 모두 방에서 내보내고 나이 든 수사관 2명만이 남았다. 딸을 대하는 아버지처럼 조용히 그들은 말을 꺼냈다. 놀랍게도 조선말이었다.
"네가 알아듣든 못 알아듣든 한국말로 하겠다. 네가 갑자기 말을 꺼내려니 쑥스럽고 서먹서먹할 줄 안다. 그럼 저녁식사 전에 우선 이름만이라도 알고 넘어가는 것이 어때? 사람과 사람이 만나면 맨 먼저 서로 이름을 대고 인사를 나누는 게 예의 아니야?“
나는 그의 말이 물에 빠진 사람에게 던져 주는 구명대 같은 기분으로 받아들여졌다. 어떻게 그렇게 사람 심정을 잘 알아주는지 탄복할 정도였다. 이 기회를 놓치면 더 힘들어질 것 같아 나는 조심스럽게 입술을 떼었다.
남이 아무렇게나 지어 준 일본 이름 '마유미‘에서 가공의 중국인 처녀 '빠이추이후이‘ 로 떠돌다가 이제야 조선족 '김현희‘ 로 돌아온 다는 생각을 하니 코끝이 시큰해졌다. 더욱이 김현희라는 내 이름은 공작원으로 소환되면서 잃어버렸던 이름이었다. 8년 동안, 아무도 불러주지 않았고 내 입으로도 불러 보지 못한 이름을 이제야 되찾게 되어 새로운 감회가 일었다. 그러나 막상 말을 시작하려니 몸둘바를 몰라 온몸이 비비 꼬였다. 손등으로 입을 가리고 “김...”을 하며 겨우 소리를 끌어내었다. 갑자기 소선 말을 시작하니까 그들은 놀랐는지 아니면 내 목소리가 너무 작아서 알아듣지 못했는지 “뭐? 뭐?”하고 되물었다. 정말 극적인 순간이었다. 내가 남조선에서 조선말을 처음으로 시작하는 것이었다. 내가 한 달 반이나 일본 말과 중국말만 사용해 온 탓인지 조선말을 하려니까 혀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았다.
“긴..........” ‘김'이라 한다는 것이‘긴' 으로 발음되었다. 약간 당황한 나는 용기를 내어 다시 발음해 보았다.
“김” 그제서야 그들은 내 말을 알아듣고 반색을 한다.
“오! 김. 쇠금자 말이지?”
“네.”
나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그러나 분명한 조선 말로 대답했다. ‘하이'도 아니고 ‘쓰'도 아닌 ‘네' 라는 대답에 그들은 그럴 수 없이 기뻐했다. “그래. 조선 사람이 조선말을 하니까 얼마나 예쁘냐? 대답도 잘 하면서....그다음은?”
수사관들은 농말까지 섞어가면서 내 긴장을 풀어주었다.
“켄희.” 나는 분명 ‘현희'라고 대답했으나 여전히 생각대로 발음이 되어 주지 않았다. 마음과는 전혀 다른 소리가 튀어 나오고 있었다. 수사관도 조급증이 나는지 백지를 주면서 써보라고 했다. 내가 한글과 한문으로 이름을 써주자 내친 김에 수사관은 주소와 생년월일, 아버지의 이름까지 물어왔다.
이름 : 김현희 주소 : 평양 문수구역 문수동 65반 무역부 아파트 7층 1호 생년월일 : 1962년 1월 27일생 아버지 : 김원석
말을 마치고 나니 눈물이 쏟아졌다. 이 신세가 되려고 8년간이나 그 산골 초대소에 숨어 살면서 온갖 간난신고를 다 참아왔던가. 이 꼴로 끝날 일을 위해 그렇게 발랄하고 철없는 시절을 다 보냈는가. 이렇든 아무런 의미도 없는 일을 위해 살인까지 저질렀는가. 나는 허탈감에 빠져 눈물을 펑펑 쏟았다.
나레이션 : 대남공작원 김현희의 고백, 랑독에 박수현이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