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대학시절, 스무 번째-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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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대학시절, 스무 번째
시간에 맞추어 중구역 김일성광장 부근에 있는 시당위원회 정문에 갔더니 우리 학교 1년 후배인 에스빠냐어과 녀학생과 김형직 사범대학 영어과 2학년이라는 녀학생이 이미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정문 접수에 말하고 들어가려는데 지도원 1명이 나와서 안내했다.
2층으로 올라가는 길이 매우 복잡했다. 올라갔다가는 다시 내려가고 도는 길이 많아 마치 미로를 찾아가는 느낌이였다. 지도원의 안내로 어느 사무실에 들어 가니 기윽자로 배열된 책상에 3명의 중앙당 지도원이 앉아 있었다. 책상 앞에는 의자가 하나 있었고 입구 벽 쪽으로는 우리가 앉을 의자 3개가 나란히 놓였다.
우리가 의자에 앉자 가운데 앉아 있던 지도원이 내 이름을 불렀다. 나는 앞으로 나가 지도원에게 목례하고 책상 앞에 앉았다.
“당의 유일사상체계의 10대원칙 제4조가 무엇이오?”
그의 질문은 너무나 당당하고 단도직입적이였다.
“신격화, 신조화, 절대성, 무조건성입니다.”
나는 유일사상체계 확립의 10대원칙 제4조를 걸림없이 뱉아냈다. 지도원이 머리를 끄떡였다.
“일어는 왜 배우오?” “일어를 배우는 목적은 일제와 맞서 싸우고 있는 현재의 환경에서 조금이라도 조국통일에 기여하려는 것입니다.”
나의 대답은 미리 준비나 한 듯이 막힘이 없었다. 이미 학교에서 외국어를 배우는 진정한 목적에 대하여 귀에 못이 박힐 정도로 들어온 이야기였다.
“장래 희망은?” “당이 요구하는 일이면 어느 곳에서나 어떤 일이나 하겠다는 것이 희망사항입니다.” “꾸바에서 살았다고?” “네. 제가 아주 어릴 때였습니다.” “좋아. 시당 정문에서 이 사무실까지 들어오는 경로를 말해 보시오.”
그것은 나의 관찰력이나 예민성을 시험하려는 질문이였다. 다음에 김일성 교시 중 ‘김정숙을 회상하며' 라는 대목을 주고 3분 안에 암송하라고 했는데 예전에 한 번 읽어 본 문장이므로 한번 읽은 뒤 눈을 감고 속으로 정리를 하였다. “벌써 다 외웠나?”
그는 어떻게 그렇게 빨리 외울 수가 있느냐는 표정을 지었다. 나는 한군데도 틀리지 않고 그의 앞에서 암송을 해보였다.
다음 날 학교에 등교하니 학교 동무들 사이에는 이미 내가 중앙당에서 담화했다는 말이 다 퍼져 있었다. 동무들은 나를 에워싸고,
“중앙당에 담화하러 갔다 완? 뭐가? 뭘 뽑는데?”하며 궁금해 하기도 하고,
“어제 우리 학교 에스빠냐어과에 다니는 그 얼굴 깨끗한 애도 담화했다던데.....그 아이는 김정숙 동지의 친척이래.”
“앤 국제관계대학으로 옮기려고 빽을 넣었다던데 그것 때문 아닐까? 너도 다른 학교로 가려고?” 하며 넘겨짚는 아이도 있었고,
“요즘 콩쥐팥쥐 찍는다고 콩쥐 구하러 다닌다던데 그것 때문 아니가?” 그렇게 자기 추측대로 말하는 아이도 있었다.
동무들뿐 아니라 나의 궁금증은 더 한층 깊었다. 그런데 그 이후 한동안 련락이 없다가 보름 정도 지난 3월 중순에 중앙당에서 또 통지가 왔다.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오전 10시에 평양시당위원회로 갔더니 이번에는 우리 학교 에스빠냐어과에 다니던 녀학생은 빠지고 김형직사범대학 영어과에 다니는 녀학생만 나왔다.
나레이션 : 대남공작원 김현희의 고백, 랑독에 박수현이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