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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심청전 (The Story of Sim Cheong), 5 장 심청, 인당수에 몸을 던지다

5 장 심청, 인당수에 몸을 던지다

‘다음 달 보름이면 아버지 곁을 떠나야 하는구나.' 심청은 이별을 생각하면 슬프다가도 아버지가 눈 뜰 생각을 하면 힘이 났다.

“아버지, 공양미 삼백 석을 몽은사에 보냈어요. 그러니 이제 근심하지 마세요.”

심 봉사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뭐? 네가 그 많은 쌀을 어떻게 마련했느냐?”

심청은 거짓말로 심 봉사를 안심시켰다.

“지난번 장 승상 댁 부인께서 저를 수양딸로 삼고 싶다 하시기에 거절하고 돌아왔습니다.”

“그래? 그런 일이 있었느냐? 그런데 그 일이 공양미 삼백 석과 무슨 상관이냐?”

“아버지 눈을 뜨게 해 드리고 싶은데 공양미 삼백 석을 마련할 길은 없어 승상 부인께 말씀드렸더니 선뜻 공양미 삼백 석을 내주셨습니다.”

“아니, 이렇게 감사한 일이!”

“네, 그래서 그 은혜를 갚기 위해 승상 부인께 수양딸이 되겠다고 했어요.”

심 봉사는 자신 때문에 심청이 남의 집 딸이 된다고 생각하니 미안하기도 하고 서운하기도 했다.

“내가 눈을 얻고 딸을 잃는구나.”

하지만 곧 생각이 달라졌다.

“아니야, 오히려 잘되었다. 여태 어미 없이 고생만 한 우리 청이, 부잣집에 들어가 편하게 살 수 있다면 이보다 좋은 일이 어디 있겠느냐? 청아, 승상 댁에서 너를 언제 데리고 간다고 하시더냐?”

“다음 달 보름에요.”

“아, 얼마 남지 않았구나. 그래도 괜찮다. 너만 잘 산다면 난 혼자 살아도 괜찮아. 괜찮고말고. 딸 덕에 내가 환한 세상 보겠네. 이제 봉사 소리 안 듣고 살겠구나.”

심 봉사는 심청의 속도 모르고 신이 났다. 그런 심 봉사의 모습을 보는 심청의 마음은 기쁨과 슬픔이 한데 뒤섞였다.

심청은 그날부터 죽을 준비를 차근차근했다. 아버지가 철따라 입을 옷을 꿰매 옷장에 넣어 두고, 버선도 만들어 쌓아 두었다. 갓과 망건도 새 것으로 장만해 걸어 두어 심 봉사가 불편함이 없도록 하였다.

시간은 쏜살같이 지나가 약속한 날이 벌써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심청은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앞 못 보는 아버지가 눈을 뜨는 것만큼 좋은 일도 없었지만 심청이 죽고 나면 아버지 혼자 어찌 사실까 걱정도 되었다. 그리고 아버지를 위해 스스로 제물이 되겠다고 했지만 죽음이 두렵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심청은 밤새 한숨도 못 자고 닭 우는 소리를 들으며 해가 뜨는 모습을 지켜봤다.

약속한 보름날 아침이 되었다. 심청은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고 어머니가 남긴 옥가락지를 꼈다. 그리고 아버지께 마지막 밥상을 차려 드리려고 문을 열고 부엌으로 갔다. 집 밖에는 벌써 뱃사람들이 찾아와 기다리고 있었다. 심청이 뱃사람들에게 말했다.

“오늘 배가 떠나는 날이지요. 아버님께 마지막 진지를 지어 올릴 시간을 주세요.”

“네, 그러지요. 하지만 너무 늦으면 안 됩니다.”

심청은 정성껏 밥을 지어 아버지 앞으로 가져갔다. 아버지와 밥상을 마주한 심청은 아버지 수저 위에 반찬을 올려 드리며 소리 죽여 흐르는 눈물을 닦았다.

심 봉사가 말했다.

“청아, 오늘 반찬이 왜 이리 좋으냐? 마치 생일날 같구나. 어느 집 결혼식이 있었느냐? 어느 집 제사가 있었느냐?”

그러다 무릎을 탁 치며 말했다.

“참, 오늘이 바로 보름날이로구나. 승상 댁에서 너를 데리러 오는 날을 그만 깜박 잊고 있었구나. 간밤에 네가 큰 수레를 타고 가는 꿈을 꾸었는데 아마도 승상 댁에서 너에게 가마를 보내실 모양이다.”

그 꿈은 분명 심청이 죽을 꿈이었다. 이 말을 들은 심청이 더는 아비를 속일 수 없어 심 봉사의 목을 끌어안고 통곡하며 말했다.

“아이고, 아버지! 제가 아버지를 속였어요. 누가 공양미 삼백 석을 그냥 주겠어요. 인당수에 바칠 제물로 뱃사람들에게 제 몸을 팔았으니 바로 오늘이 제가 떠나는 날입니다. 밖에 뱃사람들이 저를 기다리고 있어요. 아버지 절 받으세요. 저는 이제 가야 합니다.”

심 봉사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그게 무슨 소리냐? 딸을 죽여 자기 눈을 뜨는 몹쓸 아비가 세상에 어디 있단 말이냐? 너 없이 눈을 뜨는 일이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 청아, 가지 마라. 제발 가지 마라.”

그리고 문을 열어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 뱃사람들에게 고함을 쳤다.

“이놈들아! 산 사람을 제물로 바치는 일이 세상 어디에 있단 말이냐? 너희가 그러고도 사람이냐? 어미 없이 눈먼 아비 보살피느라 고생만 한 우리 청이를 누가 데려간단 말이냐? 쌀도 필요 없고, 눈 뜨는 것도 싫다. 지금 당장 이곳을 떠나라!”

심청이 아버지를 말리며 말했다.

“아버지, 공양미 삼백 석에 몸을 팔기로 약속한 사람은 저예요. 저 사람들 탓이 아니에요. 제가 바라는 것은 아버지가 눈 뜨시고 건강하게 사시는 것뿐이에요. 부디 빨리 눈을 뜨시고 평안히 사세요.”

말을 마친 심청은 심 봉사에게 절을 올렸다. 그리고 뱃사람들을 향해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으로 집을 나섰다. 심 봉사가 마당으로 뛰어나오며 울부짖었다.

“안 된다. 안 된다. 나만 두고 어딜 가느냐? 청아! 제발 부탁이니 그냥 돌아오너라. 제발 아비한테 오너라. 이 아비가 어리석어 공양미 삼백 석을 약속했으니 그 벌은 내가 받으마. 청아!”

심청은 뒤를 돌아보며 심 봉사에게 인사했다.

“아버지, 부디 건강하세요.”

뱃사람들이 그 모습을 보고 안타까운 마음에 말했다.

“심 낭자의 효심을 봐서 심 봉사가 앞으로도 굶지 않고 잘 살 수 있도록 우리가 좀 도와주면 어떻겠소?”

“그게 좋겠소.”

뱃사람들은 심 봉사의 집에 돈과 곡식, 옷감을 부족함 없이 가져왔다. 심 봉사와 심청에 대한 소문은 금방 마을 전체에 알려졌다.

뱃사람들이 이제 심청을 데려가려고 했을 때 승상 부인이 뒤늦게 이 소식을 듣고 하녀를 시켜 심청을 불렀다. 하녀를 따라가니 문밖에서 승상 부인이 심청을 발견하고 말했다.

“심청아, 네 효심이야 알겠다만, 아버지가 눈을 뜨는 것이 네가 살아 있는 것만 하겠느냐? 나는 너를 딸처럼 생각했는데 왜 진작 나와 의논해 주지 않았느냐? 내가 대신 쌀 삼백 석을 내줄 테니 뱃사람들에게 돌려주거라.”

승상 부인의 말을 듣고 심청이 답했다.

“부모를 위해 정성을 다하는 것인데 어찌 이유 없는 재물을 바라겠습니까? 또한 쌀 삼백 석을 도로 돌려주면 뱃사람들의 일도 그르치게 됩니다. 부인의 하늘 같은 은혜는 제가 저승에 가서도 꼭 갚겠습니다.”

말을 끝내고 눈물을 짓는 심청의 얼굴이 엄숙해서 승상 부인은 차마 더 이상 권하지 못했다. 심청은 눈물을 닦으며 승상 부인에게 말했다.

“부인을 제 전생의 부모로 알겠습니다.”

부인과 그렇게 이별하고 돌아와 심청이 이별을 전하자 심 봉사는 팔을 뻗어 허우적거리며 심청을 따라가려다 그만 돌부리에 발이 걸려 넘어졌다.

“뱃사람들! 나를 데려가오. 제발 내 딸 대신 나를 데려가오!”

심청의 발소리가 멀어져 가는 소리가 들리자 심 봉사는 땅에 주저앉아 울며 소리쳤다. 하지만 아무런 대답도 돌아오지 않았다.

심 봉사는 엎드려 얼굴을 땅에 묻고 흐느꼈다.

“그럼 나도 데려가시오. 딸 없이 나 혼자 살아 뭐 하겠소. 제발 나도 함께 데려가 주오.”

이 모습을 지켜보던 마을 사람들도 눈물을 흘렸다. 그러다 몇몇은심 봉사를 달래 집으로 데려갔다. 몇몇이 심청을 배웅하기 위해 배를 타는 곳까지 따라갔다.

“혼자 된 우리 아버지 잘 부탁드려요. 그동안 도와주신 은혜를 다 갚지 못하고 떠나 죄송합니다.”

심청은 자신을 따라온 마을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배에 올랐다. 아무 말 못 하고 눈물만 흘리는 마을 사람들을 뒤로 한 채 심청을 태운 배는 마을을 떠났다. 심청은 배 안에서 멍하니 앉아 바다를 바라보며 두 볼에 흐르는 눈물을 닦아 냈다.

어느덧 출항한 지 닷새째가 되었다. 심청이 탄 배가 드디어 인당수를 지날 무렵, 맑던 하늘이 갑자기 어두워지더니 굵은 빗줄기가 쏟아졌다. 광풍이 불고 세차게 파도가 이는 모습이 마치 용이 일어나 꿈틀대는 듯하였다. 그러자 거친 파도에 이리저리 흔들리는 배 위에서 북소리가 울려 퍼졌다.

“둥 둥 둥” 뱃사람들이 고사를 지내기 위해 북을 치는 소리였다. 그들은 고사상 앞에 모여 빌기 시작했다.

“용왕님! 인당수에서 용왕님께 제물을 바치니 부디 기쁘게 받아 주시고 험한 뱃길을 안전하게 지나갈 수 있게 해 주시옵소서.”

장사꾼 무리의 우두머리가 심청을 불러 말했다.

“심 낭자, 여기가 인당수요. 이제 때가 되었으니 준비하시오.”

심청은 비틀거리며 배 앞쪽으로 향했다. 뱃머리에 올라서서 두 손을 모으고 이렇게 빌었다.

“하느님, 이 몸이 죽는 건 서럽지 않으니 앞 못 보는 아버지가 눈을 떠 광명을 보게 해 주시옵소서.”

그리고 아버지를 떠올리며 말했다.

“아버지, 부디 만수무강하세요.”

말을 마친 심청은 바로 물속으로 뛰어들 생각이었으나 거친 파도를 바라보니 용기가 나지 않았다. 기절할 것 같아 한참을 망설였지만 어쩔 수 없었다. 결국 심청은 무서운 마음에 두 손으로 눈을 꼭 가리고 검푸른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아버지, 저는 이렇게 죽습니다.'

심청을 제물로 바치자 파도가 순식간에 잠잠해졌다. 고요한 인당수 위로 맑은 하늘이 펼쳐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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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장 심청, 인당수에 몸을 던지다 Kapitel 5 Shen Cheng, Sich ins Wasser stürzen Chapter 5 Simcheng, Throwing Yourself into the Water Capítulo 5 Simcheng, tirarse al agua Chapitre 5 Shen Cheng, se jeter à l'eau Capitolo 5 Shen Cheng, Gettarsi in acqua Rozdział 5 Simcheng, rzucanie się do wody Capítulo 5 Shen Cheng, atirando-te à água Bölüm 5 Simcheng, Kendini Suya Atmak Розділ 5 Симченг, кидаючись у воду

‘다음 달 보름이면 아버지 곁을 떠나야 하는구나.' 심청은 이별을 생각하면 슬프다가도 아버지가 눈 뜰 생각을 하면 힘이 났다.

“아버지, 공양미 삼백 석을 몽은사에 보냈어요. 그러니 이제 근심하지 마세요.”

심 봉사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뭐? 네가 그 많은 쌀을 어떻게 마련했느냐?”

심청은 거짓말로 심 봉사를 안심시켰다.

“지난번 장 승상 댁 부인께서 저를 수양딸로 삼고 싶다 하시기에 거절하고 돌아왔습니다.”

“그래? 그런 일이 있었느냐? 그런데 그 일이 공양미 삼백 석과 무슨 상관이냐?”

“아버지 눈을 뜨게 해 드리고 싶은데 공양미 삼백 석을 마련할 길은 없어 승상 부인께 말씀드렸더니 선뜻 공양미 삼백 석을 내주셨습니다.”

“아니, 이렇게 감사한 일이!”

“네, 그래서 그 은혜를 갚기 위해 승상 부인께 수양딸이 되겠다고 했어요.”

심 봉사는 자신 때문에 심청이 남의 집 딸이 된다고 생각하니 미안하기도 하고 서운하기도 했다.

“내가 눈을 얻고 딸을 잃는구나.”

하지만 곧 생각이 달라졌다.

“아니야, 오히려 잘되었다. 여태 어미 없이 고생만 한 우리 청이, 부잣집에 들어가 편하게 살 수 있다면 이보다 좋은 일이 어디 있겠느냐? 청아, 승상 댁에서 너를 언제 데리고 간다고 하시더냐?”

“다음 달 보름에요.”

“아, 얼마 남지 않았구나. 그래도 괜찮다. 너만 잘 산다면 난 혼자 살아도 괜찮아. 괜찮고말고. 딸 덕에 내가 환한 세상 보겠네. 이제 봉사 소리 안 듣고 살겠구나.”

심 봉사는 심청의 속도 모르고 신이 났다. 그런 심 봉사의 모습을 보는 심청의 마음은 기쁨과 슬픔이 한데 뒤섞였다.

심청은 그날부터 죽을 준비를 차근차근했다. 아버지가 철따라 입을 옷을 꿰매 옷장에 넣어 두고, 버선도 만들어 쌓아 두었다. 갓과 망건도 새 것으로 장만해 걸어 두어 심 봉사가 불편함이 없도록 하였다.

시간은 쏜살같이 지나가 약속한 날이 벌써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심청은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앞 못 보는 아버지가 눈을 뜨는 것만큼 좋은 일도 없었지만 심청이 죽고 나면 아버지 혼자 어찌 사실까 걱정도 되었다. 그리고 아버지를 위해 스스로 제물이 되겠다고 했지만 죽음이 두렵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심청은 밤새 한숨도 못 자고 닭 우는 소리를 들으며 해가 뜨는 모습을 지켜봤다.

약속한 보름날 아침이 되었다. 심청은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고 어머니가 남긴 옥가락지를 꼈다. 그리고 아버지께 마지막 밥상을 차려 드리려고 문을 열고 부엌으로 갔다. 집 밖에는 벌써 뱃사람들이 찾아와 기다리고 있었다. 심청이 뱃사람들에게 말했다.

“오늘 배가 떠나는 날이지요. 아버님께 마지막 진지를 지어 올릴 시간을 주세요.”

“네, 그러지요. 하지만 너무 늦으면 안 됩니다.”

심청은 정성껏 밥을 지어 아버지 앞으로 가져갔다. 아버지와 밥상을 마주한 심청은 아버지 수저 위에 반찬을 올려 드리며 소리 죽여 흐르는 눈물을 닦았다.

심 봉사가 말했다.

“청아, 오늘 반찬이 왜 이리 좋으냐? 마치 생일날 같구나. 어느 집 결혼식이 있었느냐? 어느 집 제사가 있었느냐?”

그러다 무릎을 탁 치며 말했다.

“참, 오늘이 바로 보름날이로구나. 승상 댁에서 너를 데리러 오는 날을 그만 깜박 잊고 있었구나. 간밤에 네가 큰 수레를 타고 가는 꿈을 꾸었는데 아마도 승상 댁에서 너에게 가마를 보내실 모양이다.”

그 꿈은 분명 심청이 죽을 꿈이었다. 이 말을 들은 심청이 더는 아비를 속일 수 없어 심 봉사의 목을 끌어안고 통곡하며 말했다.

“아이고, 아버지! 제가 아버지를 속였어요. 누가 공양미 삼백 석을 그냥 주겠어요. 인당수에 바칠 제물로 뱃사람들에게 제 몸을 팔았으니 바로 오늘이 제가 떠나는 날입니다. 밖에 뱃사람들이 저를 기다리고 있어요. 아버지 절 받으세요. 저는 이제 가야 합니다.”

심 봉사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그게 무슨 소리냐? 딸을 죽여 자기 눈을 뜨는 몹쓸 아비가 세상에 어디 있단 말이냐? 너 없이 눈을 뜨는 일이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 청아, 가지 마라. 제발 가지 마라.”

그리고 문을 열어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 뱃사람들에게 고함을 쳤다.

“이놈들아! 산 사람을 제물로 바치는 일이 세상 어디에 있단 말이냐? 너희가 그러고도 사람이냐? 어미 없이 눈먼 아비 보살피느라 고생만 한 우리 청이를 누가 데려간단 말이냐? 쌀도 필요 없고, 눈 뜨는 것도 싫다. 지금 당장 이곳을 떠나라!”

심청이 아버지를 말리며 말했다.

“아버지, 공양미 삼백 석에 몸을 팔기로 약속한 사람은 저예요. 저 사람들 탓이 아니에요. 제가 바라는 것은 아버지가 눈 뜨시고 건강하게 사시는 것뿐이에요. 부디 빨리 눈을 뜨시고 평안히 사세요.”

말을 마친 심청은 심 봉사에게 절을 올렸다. 그리고 뱃사람들을 향해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으로 집을 나섰다. 심 봉사가 마당으로 뛰어나오며 울부짖었다.

“안 된다. 안 된다. 나만 두고 어딜 가느냐? 청아! 제발 부탁이니 그냥 돌아오너라. 제발 아비한테 오너라. 이 아비가 어리석어 공양미 삼백 석을 약속했으니 그 벌은 내가 받으마. 청아!”

심청은 뒤를 돌아보며 심 봉사에게 인사했다.

“아버지, 부디 건강하세요.”

뱃사람들이 그 모습을 보고 안타까운 마음에 말했다.

“심 낭자의 효심을 봐서 심 봉사가 앞으로도 굶지 않고 잘 살 수 있도록 우리가 좀 도와주면 어떻겠소?”

“그게 좋겠소.”

뱃사람들은 심 봉사의 집에 돈과 곡식, 옷감을 부족함 없이 가져왔다. 심 봉사와 심청에 대한 소문은 금방 마을 전체에 알려졌다.

뱃사람들이 이제 심청을 데려가려고 했을 때 승상 부인이 뒤늦게 이 소식을 듣고 하녀를 시켜 심청을 불렀다. 하녀를 따라가니 문밖에서 승상 부인이 심청을 발견하고 말했다.

“심청아, 네 효심이야 알겠다만, 아버지가 눈을 뜨는 것이 네가 살아 있는 것만 하겠느냐? 나는 너를 딸처럼 생각했는데 왜 진작 나와 의논해 주지 않았느냐? 내가 대신 쌀 삼백 석을 내줄 테니 뱃사람들에게 돌려주거라.”

승상 부인의 말을 듣고 심청이 답했다.

“부모를 위해 정성을 다하는 것인데 어찌 이유 없는 재물을 바라겠습니까? 또한 쌀 삼백 석을 도로 돌려주면 뱃사람들의 일도 그르치게 됩니다. 부인의 하늘 같은 은혜는 제가 저승에 가서도 꼭 갚겠습니다.”

말을 끝내고 눈물을 짓는 심청의 얼굴이 엄숙해서 승상 부인은 차마 더 이상 권하지 못했다. 심청은 눈물을 닦으며 승상 부인에게 말했다.

“부인을 제 전생의 부모로 알겠습니다.”

부인과 그렇게 이별하고 돌아와 심청이 이별을 전하자 심 봉사는 팔을 뻗어 허우적거리며 심청을 따라가려다 그만 돌부리에 발이 걸려 넘어졌다.

“뱃사람들! 나를 데려가오. 제발 내 딸 대신 나를 데려가오!”

심청의 발소리가 멀어져 가는 소리가 들리자 심 봉사는 땅에 주저앉아 울며 소리쳤다. 하지만 아무런 대답도 돌아오지 않았다.

심 봉사는 엎드려 얼굴을 땅에 묻고 흐느꼈다.

“그럼 나도 데려가시오. 딸 없이 나 혼자 살아 뭐 하겠소. 제발 나도 함께 데려가 주오.”

이 모습을 지켜보던 마을 사람들도 눈물을 흘렸다. 그러다 몇몇은심 봉사를 달래 집으로 데려갔다. 몇몇이 심청을 배웅하기 위해 배를 타는 곳까지 따라갔다.

“혼자 된 우리 아버지 잘 부탁드려요. 그동안 도와주신 은혜를 다 갚지 못하고 떠나 죄송합니다.”

심청은 자신을 따라온 마을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배에 올랐다. 아무 말 못 하고 눈물만 흘리는 마을 사람들을 뒤로 한 채 심청을 태운 배는 마을을 떠났다. 심청은 배 안에서 멍하니 앉아 바다를 바라보며 두 볼에 흐르는 눈물을 닦아 냈다.

어느덧 출항한 지 닷새째가 되었다. 심청이 탄 배가 드디어 인당수를 지날 무렵, 맑던 하늘이 갑자기 어두워지더니 굵은 빗줄기가 쏟아졌다. 광풍이 불고 세차게 파도가 이는 모습이 마치 용이 일어나 꿈틀대는 듯하였다. 그러자 거친 파도에 이리저리 흔들리는 배 위에서 북소리가 울려 퍼졌다.

“둥 둥 둥” 뱃사람들이 고사를 지내기 위해 북을 치는 소리였다. 그들은 고사상 앞에 모여 빌기 시작했다.

“용왕님! 인당수에서 용왕님께 제물을 바치니 부디 기쁘게 받아 주시고 험한 뱃길을 안전하게 지나갈 수 있게 해 주시옵소서.”

장사꾼 무리의 우두머리가 심청을 불러 말했다.

“심 낭자, 여기가 인당수요. 이제 때가 되었으니 준비하시오.”

심청은 비틀거리며 배 앞쪽으로 향했다. 뱃머리에 올라서서 두 손을 모으고 이렇게 빌었다.

“하느님, 이 몸이 죽는 건 서럽지 않으니 앞 못 보는 아버지가 눈을 떠 광명을 보게 해 주시옵소서.”

그리고 아버지를 떠올리며 말했다.

“아버지, 부디 만수무강하세요.”

말을 마친 심청은 바로 물속으로 뛰어들 생각이었으나 거친 파도를 바라보니 용기가 나지 않았다. 기절할 것 같아 한참을 망설였지만 어쩔 수 없었다. 결국 심청은 무서운 마음에 두 손으로 눈을 꼭 가리고 검푸른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아버지, 저는 이렇게 죽습니다.'

심청을 제물로 바치자 파도가 순식간에 잠잠해졌다. 고요한 인당수 위로 맑은 하늘이 펼쳐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