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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김영하의 ‘책 읽는 시간’ 팟캐스트 (Reading Time podcast), Episode 40 - 이기호 "원주통신" - Part 4

Episode 40 - 이기호 "원주통신" - Part 4

그래서 그 방에서 나는, 근 십년만에 처음으로 용구를 만나게 되었다.

"야, 반갑다. 하나도 안 변했네." "어, 그래. 너도 그대론데 뭘." 말은 그렇게 했지만 사실 나는 용구를 제대로 알아보지도 못했다. 그 추운 겨울에도 하얀 반팔 티셔츠 하나만 걸치고 있던 용구는 몸집이 많이 불어 있었다. 스포츠형 헤어스타일과 이전 보다 두배는 더 커진 듯한 얼굴, 오백원 짜리 동전만한 반지와 금목걸이, 어디를 봐도 그 옛날 학교 화장실 뒤에서 함께 담배을 피우던 용구의 모습은 남아있질 않았다. 그래서 나는 약간 긴장하기도 했다. 친구가 아니라 선배를, 아니, 잊고 있던 삼촌을 만난 심정이었다. 용구는 그때 막 일어났는지 두 눈이 벌겋게 충혈되어 있었다. 나와 악수를 하면서도, 담배를 피우면서도 연신 하품을 하고 눈꿈을 떼어냈다. 탁탁 소리나게 뒷목을 때리기도 했다.

"우리가게 어떠냐?" 몇 마디 의례적인 말들이 오간 뒤 용구가 불쑥 그렇게 물어왔다.

"어, 뭐, 특이하네. 그냥 일반 술집 같지 않고." "그렇지? 술집 같지 않지? 가정집 같지? 그게 다 우리 컨셉이거든." 그러니까, 퇴근하고 룸쌀롱을 찾은 직장인들에게 최대한 자기집에 돌아온 듯한 느낌을 주는 것, 집은 집인데 아내만 살짝 바뀐듯한 분위기를 연출해 주는 것, 직장인 들이 집에서 술을 마시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그것 때문이라는 것, 등등. 용구는 계속 하품을 하면서 말을 했고 나는 연신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아, 그렇게 깊은 뜻이! 추임새도 가끔 넣어 주면서.

"그냥 그렇다는 거지 뭐. 그건 그렇고, 오랜만에 만났으니 술이라도 한잔 빨아야지?" 용구는 그렇게 말하면서 상에 붙어있는 호출벨을 눌렀다. 그러면서 동시에 방문을 향해 소리쳤다.

"길상아!" 용구는 분명 '길상'이라고 했다. 그러자 좀 전 나를 안내했던 와이셔츠 청년이 쟁반 두개를 겹쳐들고 방으로 들어왔다.

"저 친구 이름이 길상이야?" 나는 능숙한 손놀림으로 상위에 양주와 생수와 얼음과 과일안주를 올려놓는 청년을 바라보며 작은 목소리로 용구에게 물었다.

"어. 우리집 삼번 웨이터 길상이. 왜? 이상해?" 용구는 큰 소리로 내게 되물었다.

"아니. 그냥 좀." 그냥 좀. 그래선 안 되지 않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길상이는 좀... 그러나 그게 끝이 아니었다.

"야, 너 우리집에 길상이만 있는 줄 아냐?" 용구는 그렇게 말하면서 다시 호출벨은 두번 연속 눌렀다. 그러자 채 일분도 지나지 않아 한 여자가 방으로 들어왔다.

"서희라고 합니다." 옥빛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쪽머리까지 한 여자가 방문 바로 앞에 서서 나에게 큰절을 올리며 그렇게 말했다. 쌍커풀 없는 작은 눈에 옥반지까지 낀, 이제 막 스무살이나 되었을까 싶은 앳된 얼굴의 여자였다. 어깨도 좁고, 손도 작고, 버선코도 작은, 그러나 은빛 비녀만은 지나치게 커다란. 갑자기 마루 쪽에서 가야금 소리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누군가 오디오를 튼 모양이었다. 그러니까 나름대로 갖출 건 다 갖추자는 뭐 그런 영업 마인드인 것 같았다.

"야, 어떠냐? 우리 서희 진짜 서희같지 않냐?" 용구는 어느새 내 옆자리에 다가와 술잔을 따르는 여자를 보며 그렇게 물었다.

"어, 어, 뭐..." 솔직히 나는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길상이라는 이름을 처음 들었을 땐 좀 놀라고 당황스러웠던게 사실이었지만, 서희마저 등장하고 나니 그 모든게 그저 장난처럼만, 박경리 선생하고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그런 이름들로 다가왔던 것이었다.

"얘네들 세팅시키느라고 내가 고생 꽤나 했다." "어, 어. 그랬겠네." "괴롭히는 놈들이 좀 많아야지. 에휴. 말하면 뭐 하냐, 서희야. 얼른 술이나 한잔 쳐라." 용구의 말이 떨어지자 마자 서희가 얼음이 들어간 잔을 내게 건냈다. 짤그락 짤그락.

"잘 부탁드립니다." 서희는 눈 웃음을 지으며 내게 그렇게 말했다. 나는 두 순으로 공손히 서희가 건내는 잔을 받들었다. 여자에게서 술잔을 받아 본 것은 대학교 엠티 이후, 그 때가 처음이었다. 그러니까 내겐 그것이 더 중요했던 것이었다. 그녀의 이름이 서희이든 세희이든, 그런 것들은 별로 신경쓰이지 않았고, 오직 나를 위해 한 여자가 술잔을 채워준다는 것, 그것만이 감개무량했을 뿐이었다. 약간, 아주 미미하게 마음 한구석에서 알수 없는 미안함 같은 것이 슬몃슬몃 솟아나기도 했지만 그러나 또 그때 마다 덩달아 내 외투속에 들어있던 백원짜리 동전 두개가 떠올랐고, 그래서 나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그저 감사한 마음으로 서희가 따라주는 술잔을 홀짝홀짝 받아마시기만 했다. 오랫만에 마시는 술은 따뜻하고 달달하기까지 했다. 그러니까 돌아보면 참 한숨밖에 나오지 않는 일이었다. 그땐 어쩌자고 앞뒤 가리지 않고 급하게 술잔을 비웠는지 지금 다시 생각해 봐도 이해가 되질 않는다. 술잔에 술이 가득 채워져 있으면 마치 그것이 나의 빚인 것만 같아 어서 빨리 없애야 한다는 조급함 같은 것에 시달렸다. 또 술잔을 비울 때 마다 서희가 해주는 '오빠 나이스!' 라는 말을, 그 목소리를 한번이라도 더 듣고 싶은 욕심에, 그러니 결과야 뻔하지 않겠는가. 나는 채 두시간도 지나지 않아 인사불성 만취하고 말았다.

네, 잘 들으셨습니까? 이게 그 소설로 직접보면 좀 더 웃깁니다. 왜냐하면 그 간판을 처음보는 장면에서 롬쌀롱 토지라고 써있는데 그 토지가 정말 우리가 흔히 보던 그 [토지]의 폰트 그대로, 글자체 그대로 써 있거든요. 그래서 약간의 불경의 충격 같은 것을 독자들도 느끼게 됩니다. 이 뒤.. 이 소설은 여기서 끝이 아니고요, 어떻게 되냐하면, 이 토지의 상표권 분쟁, 이런 것 때문에 옛날 중학교 동장이었던 용구가 주인공에게, 술이 떡이된 그래서 겨우 잠에서 깨어난, 친구에게 봉투 하나를 주고 약속한대로 이 주인공은 (뭘 약속했는지 잘 기억도 안 나지만) 사인을 받아오라고 합니다. 그래서 봉투에 들어있는 종이를 꺼내 보니까.

'상호명 사용 승인서' 나 박경리는 박용구가 소속된 사업장에 대해 '토지' 상호 사용권을 허락하며, 이에 대해 일체의 이의도 제기하지 않을 것을 확인합니다. 네, 이 주인공이 박경리 선생의 외손자일지도 모른다고 용구는 생각하고, 아니여도 상관없다고 생각하겠죠, 그러면서 이걸 받아오라고 거의 협박을 하게 되고 그 뒤에 시달리게 되는 작가. 그래서 다시 한번 어렸을 때 갔던 그 초인종 누르고 달아났던 박경리 선생 댁에 가게되는 주인공. 아마도 이기호 씨의 실화가 아닐까...저는 확신을 하고 있습니다만, 그런 모습이 나옵니다. 서희가 따라주는 술을 마실 때는 좋았죠. 하지만 댓가가 없을 수 없겠죠? 네.


Episode 40 - 이기호 "원주통신" - Part 4 Episode 40 - Lee Ki-ho "Wonju Communication" - Part 4 Episode 40 - Lee Ki-ho "Wonju Communication" - Partie 4

그래서 그 방에서 나는, 근 십년만에 처음으로 용구를 만나게 되었다.

"야, 반갑다. 하나도 안 변했네." "어, 그래. 너도 그대론데 뭘." 말은 그렇게 했지만 사실 나는 용구를 제대로 알아보지도 못했다. 그 추운 겨울에도 하얀 반팔 티셔츠 하나만 걸치고 있던 용구는 몸집이 많이 불어 있었다. 스포츠형 헤어스타일과 이전 보다 두배는 더 커진 듯한 얼굴, 오백원 짜리 동전만한 반지와 금목걸이, 어디를 봐도 그 옛날 학교 화장실 뒤에서 함께 담배을 피우던 용구의 모습은 남아있질 않았다. 그래서 나는 약간 긴장하기도 했다. 친구가 아니라 선배를, 아니, 잊고 있던 삼촌을 만난 심정이었다. 용구는 그때 막 일어났는지 두 눈이 벌겋게 충혈되어 있었다. 나와 악수를 하면서도, 담배를 피우면서도 연신 하품을 하고 눈꿈을 떼어냈다. 탁탁 소리나게 뒷목을 때리기도 했다.

"우리가게 어떠냐?" 몇 마디 의례적인 말들이 오간 뒤 용구가 불쑥 그렇게 물어왔다.

"어, 뭐, 특이하네. 그냥 일반 술집 같지 않고." "그렇지? 술집 같지 않지? 가정집 같지? 그게 다 우리 컨셉이거든." 그러니까, 퇴근하고 룸쌀롱을 찾은 직장인들에게 최대한 자기집에 돌아온 듯한 느낌을 주는 것, 집은 집인데 아내만 살짝 바뀐듯한 분위기를 연출해 주는 것, 직장인 들이 집에서 술을 마시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그것 때문이라는 것, 등등. 용구는 계속 하품을 하면서 말을 했고 나는 연신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아, 그렇게 깊은 뜻이! 추임새도 가끔 넣어 주면서.

"그냥 그렇다는 거지 뭐. 그건 그렇고, 오랜만에 만났으니 술이라도 한잔 빨아야지?" 용구는 그렇게 말하면서 상에 붙어있는 호출벨을 눌렀다. 그러면서 동시에 방문을 향해 소리쳤다.

"길상아!" 용구는 분명 '길상'이라고 했다. 그러자 좀 전 나를 안내했던 와이셔츠 청년이 쟁반 두개를 겹쳐들고 방으로 들어왔다.

"저 친구 이름이 길상이야?" 나는 능숙한 손놀림으로 상위에 양주와 생수와 얼음과 과일안주를 올려놓는 청년을 바라보며 작은 목소리로 용구에게 물었다.

"어. 우리집 삼번 웨이터 길상이. 왜? 이상해?" 용구는 큰 소리로 내게 되물었다.

"아니. 그냥 좀." 그냥 좀. 그래선 안 되지 않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길상이는 좀... 그러나 그게 끝이 아니었다.

"야, 너 우리집에 길상이만 있는 줄 아냐?" 용구는 그렇게 말하면서 다시 호출벨은 두번 연속 눌렀다. 그러자 채 일분도 지나지 않아 한 여자가 방으로 들어왔다.

"서희라고 합니다." 옥빛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쪽머리까지 한 여자가 방문 바로 앞에 서서 나에게 큰절을 올리며 그렇게 말했다. 쌍커풀 없는 작은 눈에 옥반지까지 낀, 이제 막 스무살이나 되었을까 싶은 앳된 얼굴의 여자였다. 어깨도 좁고, 손도 작고, 버선코도 작은, 그러나 은빛 비녀만은 지나치게 커다란. 갑자기 마루 쪽에서 가야금 소리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누군가 오디오를 튼 모양이었다. 그러니까 나름대로 갖출 건 다 갖추자는 뭐 그런 영업 마인드인 것 같았다.

"야, 어떠냐? 우리 서희 진짜 서희같지 않냐?" 용구는 어느새 내 옆자리에 다가와 술잔을 따르는 여자를 보며 그렇게 물었다.

"어, 어, 뭐..." 솔직히 나는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길상이라는 이름을 처음 들었을 땐 좀 놀라고 당황스러웠던게 사실이었지만, 서희마저 등장하고 나니 그 모든게 그저 장난처럼만, 박경리 선생하고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그런 이름들로 다가왔던 것이었다.

"얘네들 세팅시키느라고 내가 고생 꽤나 했다." "어, 어. 그랬겠네." "괴롭히는 놈들이 좀 많아야지. 에휴. 말하면 뭐 하냐, 서희야. 얼른 술이나 한잔 쳐라." 용구의 말이 떨어지자 마자 서희가 얼음이 들어간 잔을 내게 건냈다. 짤그락 짤그락.

"잘 부탁드립니다." 서희는 눈 웃음을 지으며 내게 그렇게 말했다. 나는 두 순으로 공손히 서희가 건내는 잔을 받들었다. 여자에게서 술잔을 받아 본 것은 대학교 엠티 이후, 그 때가 처음이었다. 그러니까 내겐 그것이 더 중요했던 것이었다. 그녀의 이름이 서희이든 세희이든, 그런 것들은 별로 신경쓰이지 않았고, 오직 나를 위해 한 여자가 술잔을 채워준다는 것, 그것만이 감개무량했을 뿐이었다. 약간, 아주 미미하게 마음 한구석에서 알수 없는 미안함 같은 것이 슬몃슬몃 솟아나기도 했지만 그러나 또 그때 마다 덩달아 내 외투속에 들어있던 백원짜리 동전 두개가 떠올랐고, 그래서 나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그저 감사한 마음으로 서희가 따라주는 술잔을 홀짝홀짝 받아마시기만 했다. 오랫만에 마시는 술은 따뜻하고 달달하기까지 했다. 그러니까 돌아보면 참 한숨밖에 나오지 않는 일이었다. 그땐 어쩌자고 앞뒤 가리지 않고 급하게 술잔을 비웠는지 지금 다시 생각해 봐도 이해가 되질 않는다. 술잔에 술이 가득 채워져 있으면 마치 그것이 나의 빚인 것만 같아 어서 빨리 없애야 한다는 조급함 같은 것에 시달렸다. 또 술잔을 비울 때 마다 서희가 해주는 '오빠 나이스!' 라는 말을, 그 목소리를 한번이라도 더 듣고 싶은 욕심에, 그러니 결과야 뻔하지 않겠는가. 나는 채 두시간도 지나지 않아 인사불성 만취하고 말았다.

네, 잘 들으셨습니까? 이게 그 소설로 직접보면 좀 더 웃깁니다. 왜냐하면 그 간판을 처음보는 장면에서 롬쌀롱 토지라고 써있는데 그 토지가 정말 우리가 흔히 보던 그 [토지]의 폰트 그대로, 글자체 그대로 써 있거든요. 그래서 약간의 불경의 충격 같은 것을 독자들도 느끼게 됩니다. 이 뒤.. 이 소설은 여기서 끝이 아니고요, 어떻게 되냐하면, 이 토지의 상표권 분쟁, 이런 것 때문에 옛날 중학교 동장이었던 용구가 주인공에게, 술이 떡이된 그래서 겨우 잠에서 깨어난, 친구에게 봉투 하나를 주고 약속한대로 이 주인공은 (뭘 약속했는지 잘 기억도 안 나지만) 사인을 받아오라고 합니다. 그래서 봉투에 들어있는 종이를 꺼내 보니까.

'상호명 사용 승인서' 나 박경리는 박용구가 소속된 사업장에 대해 '토지' 상호 사용권을 허락하며, 이에 대해 일체의 이의도 제기하지 않을 것을 확인합니다. 네, 이 주인공이 박경리 선생의 외손자일지도 모른다고 용구는 생각하고, 아니여도 상관없다고 생각하겠죠, 그러면서 이걸 받아오라고 거의 협박을 하게 되고 그 뒤에 시달리게 되는 작가. 그래서 다시 한번 어렸을 때 갔던 그 초인종 누르고 달아났던 박경리 선생 댁에 가게되는 주인공. 아마도 이기호 씨의 실화가 아닐까...저는 확신을 하고 있습니다만, 그런 모습이 나옵니다. 서희가 따라주는 술을 마실 때는 좋았죠. 하지만 댓가가 없을 수 없겠죠?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