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 지하 조사실, 서른 한 번째-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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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 지하 조사실, 서른 한 번째
나는 자백한 뒤 서울에 처음 외출했을 때의 소감문을 적어냈다. 그것은 서툴지만 소감을 쓸 그때의 내 느낌 그대로였다. 그러나 첫 외출을 마치고 돌아오면서는 착잡하기 이를 데 없었다. 남산 조사실로 돌아오는 자동차 속에서 나는 괜히 외출 나왔다는 후회감 만이 가득 차 있었다.
‘내가 지금 무엇 때문에 이곳 서울에 와 있는가? 조국통일의 전투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이 한목숨 기꺼이 바치겠노라고 맹세하고 평양을 떠나 온 혁명전사가 아니더냐. 이들의 발전상을 살피러 왔는가? 이들과 나와의 동질성을 확인하려고 왔는가? 경제적으로 조금 더 발전되었다고 해서 내가 이렇게 흔들려서야 되겠는가? 이들은 두 개의 조선 음모 책동에 의하여 우리민족의 분열을 영구화하려는 미 일 침략자들의 앞잡이들일 뿐이다. 이들의 어떤 음모에도 굴해서는 안된다.' 이것은 나의 마지막 고집이었고 최후의 보루였다. 그것이 언제 무너져 내리는가는 시간문제였다. 내 정신력이 이미 뿌리 채 흔들리고 있었다. 서울 거리를 나간 것은 커다란 나의 실수였다. 돌이킬 수 없는 함정이었다. 조사실로 돌아와 그 어떤 흥분과 초조감에 서성대고 있는데 수사관이 나를 불러 앉혔다.
“지금부터 네가 말한 내용이 거짓임을 하나하나 지적해 나가겠다. 잘 듣고 깊이 생각하여 앞으로는 거짓말을 하지 말도록. 진실은 하나뿐이며 거짓은 결코 다른 사람을 납득시킬 수 없음을 알아둬. 우리는 네가 무엇 때문에 고민하는지 그 고민을 다 알고 있어. 너의 거짓말을 하나하나 밝힌 뒤 충분히 생각할 시간을 줄 테니까.”
이어서 그는 내 가슴을 까발리듯 그동안 내가 해 온 거짓말을 꼬집어 지적하기 시작했다.
“너는 절대로 중국인이 아니야. 왜냐하면 너는 15년간 살아왔다는 흑룡강성 오상현을 오상시라고 말했지? 오상시라는 것은 없어. 또 오상현 주변에 있는 현을 단 하나도 대지 못했어. 너는 ‘퉁스' 라는 말을 자주 사용했는데 이 말은 남방에서만 사용하는 말이며 북방인 흑룡강성에서는 거의 사용하지 않는 말이야. 그것뿐이 아니야. 너는 고아로 떠돌면서 자랐다고 했는데 음식은 부유층들이나 먹는 호빵을 주식으로 먹었다고 했어. 게다가 옥수수로 만든 죽을 남방에서는 ‘위미', 북방에서는 ‘파오미' 라고 하는데 너는 북방출신이라면서 ‘위미'라고 말했어. 또 흑룡강성 오상에서는 신문을 가두판매하는 예가 없는데 너는 오상에 사는 이모가 신문과 만두를 가두판매한다고 둘러댔어. 기억하겠지? 이외에도 수많은 모순과 불합리한 말이 많았어. 이것만 보더라도 네가 중국인이 아니라는 것은 명백하기 때문에 더 설명 않겠어.”
그는 기억력이 좋은지 잊어버리지도 않고 줄줄 틀린 점을 뽑아냈다. 나는 정신이 아찔해지는 현기증을 느꼈다. 그는 계속해서 일본에 거주한 사실이 없다고 단정하면서 그 점을 지적해 나갔다.
“일본에서 1년간 생활했다고 주장하면서도 일본인이 가장 즐겨 먹는 김을 보고 종이 태운거냐고 능청을 떨었어. 그리고 신이찌의 집이라고 그린 그림이 일본 가옥 구조도 아니며 일본 거리 그림도 일본 거리가 아니었어. 또 서울아시안게임 당시 매일 경기가 TV로 생중계되다시피 했는데 그 당시 일본에 있었다는 너는 아시안게임 성적 순위도 몰라서 중국, 일본, 한국이라고 틀리게 말했지? 매일 취사를 담당했다면서 기름을 땠는지, 개스를 땠는지, 연탄을 땠는지에 대해 답변하지 못했고 네가 11월 14일에 일본을 출발했다면 일본 수상이 바뀌었다는 사실을 알았어야 하는데 그것도 알지 못하고 있었어. 다께시다 수상을 나까소네 수상이로 잘못 대답했던 거야. 결정적으로 일본에서 보던 TV의 상표를 북한제인 쯔쯔지라고 대답해 놓고 당황하는 것도 우린 보았어. 일본 택시 운전자의 좌석도 승차해서 보면 왼쪽이라고 했지? 그건 오른쪽이야. 어처구니없는 모순투성이의 말로 계속 실수를 하면서 어떻게 일본에 살았다고 더 이상 주장을 하겠나?”
나는 그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는 심정으로 그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나레이션 : 대남공작원 김현희의 고백, 랑독에 박수현이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