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 지하 조사실, 열 여덟 번째-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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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 지하 조사실, 열 여덟 번째
나는 학교에 다닐 때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주체사상 없이 양키 문화에 병든 여자들이 서양 여자처럼 보이기 위해 성형수술을 많이 한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에 성형수술에 대한 인식이 그다지 좋지 않았다. 꺼림칙한 마음으로 수술대에 올랐는데 칼을 갖다 댄 곳은 점점 부어오르고 곪아 더 큰 흉터가 되고 말았다. 나로서는 어처구니없는 봉변을 당한 꼴이었지만 남조선 려객기 폭파 임무를 끝내고 돌아오면 유명한 의사를 불러다가 다시 수술해 그 흉터를 완전히 없애 주겠다는 병원 측의 약속을 받고 평양을 떠난 것이었다. 흉터는 그렇게 해서 생겼다.
의료시설과 기술이 락후된 북에서 그 성형수술이 실패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 것이다. 그 당시는 시설이나 기술이 뒤떨어진다는 사실도 몰랐기에 수술대에 오르게 될 줄 알았다면 수술을 끝내 거절했으리라. 북에서는 흉터 성형수술로 한바탕 봉변을 겪었는데 서울에 와서도 성형수술 때문에 법석을 떨었다. 내 눈과 코가 성형수술을 받은 것이 아닌가 하여 의사가 눈꺼풀을 까보고 코를 만져 보고 해가며 조사를 했었다. 나는 속으로 ‘나한테 무슨 성형수술 귀신이 붙었나? 가는 곳마다 성형수술 때문에 수난을 당하니...' 하며 쓴 웃음을 지었다. 중학교 4학년 때쯤부터 내 별명이 ‘맵시코' 였는데 짖궂은 남학생들은 우리집 앞까지 와서 “맵시코! 맵시코!”라고 소리치고는 도망가곤 했다. 코가 맵시있다고 해서 붙여진 별명이니 단점을 꼬집어 붙인 다른 아이들의 별명인 ‘왕눈깔', ‘털보', ‘명태', ‘빠꾸샤' 보다는 나았지만 나는 그 별명이 싫었다. 어머니는 여자가 행실을 어떻게 하고 다니길래 남학생들이 만만하게 보고 별명을 부르느냐고 꾸중을 하셨었다. 맵시코니 성형수술을 받았느니 하는 것을 보면 내 코가 좀 괜찮게 생긴 아이라고 자위도 해 보았다.
내 어깨의 흉터까지 꼬치꼬치 물을 정도로 수사관의 심문은 세세하게 진행되었다. 대답이 막히면 입술이 바싹바싹 탔다. 내 입술이 심하게 메마르면 여자수사관들은 그곳에 영양크림을 발라 주기도 했다. 나는 조선 말로 “고맙습니다”하고 인사한 뒤 엄지손가락을 위로 올려 세우며 ‘좋은 언니' 라고 넉살을 떨었다. 잠자리에 들기 전에는 수사관들을 향하여 “안녕히 주무세요”라고 조선 말 인사까지 하게 되었다. 여자수사관들이 어쩌다 한마디씩 가르쳐 준 조선 말을 한다는 식이었다.
12월 19일, 이날 아침도 6시 반에 기상시켰다. 얼마 전에는 잠이 들어 조선 말 잠꼬대를 할까봐 밤이 닥치는 것이 겁났었는데 이제는 하루가 시작되는 아침이 더욱 겁났다.
‘또 지긋지긋한 하루가 시작되는구나. 오늘은 또 어떤 엉뚱한 질문으로 나를 곤경에 빠뜨리려나.' 이건 누가 누가 이기나 놀이를 하는 것 같았다. 승부의 세계에는 한 치의 양보도 있을 수 없었다. 수사관들과 나의 관계도 마찬가지였다. 잔혹하리만큼 비정한 질문과 답변이 이어질 뿐이었다.
아침식사 후 의사가 검진을 하고 돌아가자 또 심문이 시작되었다. 이날 심문 방법은 좀 별달랐다. 백지를 내놓으며 살아온 길을 도표로 그려내라고 요구했다. 또 언제부터 어디에서 무엇을 했으며 누구와 함께 어디로 갔는지를 자세히 적어 넣으라는 것이었다.
나는 흑룡강에서 태어나 북경, 상해, 광주, 마카오, 홍콩, 일본, 서독, 비엔나, 베오그라드, 바그다드, 아부다비, 바레인을 거쳐 서울까지 온 경로를 도표로 그렸다. 왜 갑자기 도표로 그리라는 지에 대해 잠시 추측해 보았다. 도표로 만들면 한눈에 쉽게 알아볼 수도 있고 여태까지 해온 심문 내용을 정리할 수도 있어서 그러는 것이라고 짐작이 되었다.
오전 10시쯤 되자 50대 중반의 남자가 들어오면서 대뜸 중국어로 아침 인사를 했다. “짜오 샹 하오” 정확한 중국 발음이었다.
나레이션 : 대남공작원 김현희의 고백, 랑독에 박수현이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