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대학시절, 스물네 번째-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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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대학시절, 스물네 번째
정 지도원은 어머니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김현희 동무의 어머니가 어떤 분인가 한 번 만나고 싶었습니다. 정말 딸을 잘 키우셨습니다. 김현희 동무가 영예롭게도 당에 소환되였습니다. 이제 집을 떠나면 당에서 일하게 되여 앞으로 떨어져 있어야 하니 오늘 저녁 이야기 많이 나누십시오.”
정 지도원은 내가 중앙당에 소환되였음을 알렸다. 어머니는 몹시 당황하는 눈치였다.
“저.....저녁식사는 하셨는지..... 뭐, 대접할게 없어서....”
어머니는 어쩔 줄 몰라 자꾸 다른 이야기만 했다. 정 지도원은 아버지가 밤 12시가 넘어야 귀가한다는 말을 듣고 래일 다시 오겠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정 지도원이 문을 닫고 나가기가 무섭게 현옥이, 현수, 범수가 달려 나와 이구동성으로 질문공세를 퍼부었다.
“손님 갔나? 누나, 이제 중앙당에 가면 아주 가는거야?” “어떻게 된거야 , 언니! ?” “무슨 일이가?”
그러나 나 역시 어떻게 되여 가는 건지 전혀 영문도 모르고 갑자기 닥친 일이라 정신이 나가 있었다.
“나도 뭐가 뭔지 모르 갔어.”
북조선에서는 중앙당이 김일성, 김정일을 가장 가까이 모시고 그들의 신임을 가장 많이 받는 당이기에 친척 중 한 사람만 중앙당에 있으면 그 일가의 빽과 권세는 대단해진다. 그래서 중앙당에 뽑혀 간다면 그 긍지는 하늘을 찌를 듯한 기세로 높아진다. 현옥이와 현수도 그런 내막을 알고 있어 더 흥분에 들떴을 것이다. 나 역시도 그런 우쭐한 기분이 없었던 것이 아니다. 그러나 어머니는 달랐다. 사랑하는 딸이 집을 떠나게 되였다는 것부터가 심란한 모양이였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돌아올 시간이 되지 않은 것을 뻔히 알면서도,
“아버지가 왜 이리 안오시냐?” 했다가,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묻기도 하고 안절부절이였다.
“래일 간다니 뭐 먹을거라도 준비해야지.” 어머니는 쌀을 퍼내면서, “계를 다음 달에 탈 수 있게 땡겨 달래야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북조선에서는 마음에 맞는 인민반 아주머니 20~30명이 쌀을 매달 한 공기씩 모아 자기 가정의 경조사 때 맞추어 쌀로 탈수 있게 ‘쌀계'를 모은다. 그렇지 않아도 쌀 배급량이 적은데 거기에서 또 떼여 모아 큰일이 있을 때 쓰도록 비축한 것이였다. 어느새 어머니도 쌀계를 들었던 모양이다. 어렵사리 부은 쌀계를 나를 위해서 탄다고 하니 가슴이 찌르르 저렸다.
어머니는 다른 집에 가서 그릇도 빌려오고 현수에게 심부름도 시키고 부산하게 움직였으며, 내가 입던 옷과 물건을 챙기는 동안 현옥이가 어머니를 거들어 주었다.
나에게는 내가 가장 애지 중지 아끼는 소중한 물건이 하나 있었다. 대학에 입학하자 어머니는 입학 기념으로 자신이 녀학교 다닐 때 색실로 수놓은 자수 작품 몇 장을 주신것이다.
“잘 보관했다가 시집 갈 때 가지고 가거라.”
그 수예 작품은 어찌나 정교하고 예쁜지 내가 소중하게 간직하면서 수시로 꺼내 보곤 하는 것이였다. 정 지도원이 집에서 쓰던 물건을 아무것도 가지고 갈 수 없다고 했으니 어쩌나 하고 고민하다가 현옥이에게 넘겨주기로 했다. 현옥이에게 자초 지종을 이야기 하고 소중히 보관하라고 당부하면서 가슴이 뭉클해 왔다. 집안의 큰 딸 위치를 현옥이에게 물려 주고 영영 떠나는 심정이였다.
나레이션 : 대남공작원 김현희의 고백, 랑독에 박수현이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