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의 고백, 아홉 번째-1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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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의 고백, 아홉 번째
우리의 계획은 여러 번의 수정 끝에 떠나기 얼마 전에야 완성되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공작 목표 : 1987년 11월 29일 바그다드발 아부다비 경유 서울행 대한한공 858기 폭파. -공작조 편성 : 공작조장 김승일, 공작조원 김옥화 -안내조 편성 : 안내조장 최 과장, 안내조원 최 지도원. 평양을 출발하여 복귀시까지 일부 국가를 제외하고 공작조를 인솔, 동행 -전투 노정 및 경유지별 행동 요령 : 1987년 11월 12일 08시 30분에 평양 순안비행장에 공화국 공무 여권으로 모스크바행 조선 항공기 탑승. 안내조와 공작조는 평양을 출발하여 모스크바에 도착 -모스크바 도착 후 소련 주재 공화국 대사관 초대소에 투숙, 2박 3일간 체류하면서 현지 지도원과 협의하여 11월 14일 09시 모스크바발 부다페스트행 소련항공기 탑승권 구입. -11월 14일 : 09시 소련 항공기편으로 모스크바를 출발하여 같은 날 11시경 부다페스트에 도착. 4박 5일간 체류하면서 현지 지도원과 함께 사증 없이 비엔나로 들어가되 이때부터 공작조와 본부 성원안 안내조는 별도 분리 행동한다. 이때 안내조와 공작조는 헤어지면서 서로의 연락 조직으로 비엔나, 베오그라드, 부다페스트 주재 공화국 대사관 전화번호를 알려 준다. 전화로 안내조를 찾을 때는 영어나 일본 말로 ‘나까무라상'을 찾는다. 공작조는 비엔나에서 6박 7일간 체류하는 동안 일본 여권을 사용하여 일본인 부녀 관광객의 신분에 맞게 관광을 하면서 전투지 침투로 항공권과 복귀로 항공권을 구입한다. -침투로 항공권 : 비엔나 - 바그다드 - 아부다비 - 바레인 간을 구입하되 바그다드에서 대한항공 858기에 탑승하여 아부다비에서 내리도록 조직하고 아부다비 - 바레인간 항공권은 위장 항로임을 명심. -복귀로 항공권 : 아부다비 - 암만 - 로마행 항공권을 별도로 구입. -11월 24일 : 11시 오스트리아 항공편으로 비엔나를 출발, 같은 날 14시경 베오그라드에 도착하여 메트로폴리탄호텔에 4박 5일간 체류. 베오그라드에서 체류하는 동안 타인으로 하여금 위장 신분인 일본인 부녀 관광객으로 인식하게끔 자연스럽게 관광하면서 로마에서 비엔나로 복귀하는 항공권을 구입한다. -11월 27일 : 19시에 메트로폴리탄 호텔에서 안내조와 공작조는 접선하여 대한항공 858기 폭파에 필요한 기재를 전달받는다. -11월 28일 : 14시 30분경 DG 항공기편으로 베오그라드를 출발하여 같은 날 20시 30분경 바그다드공항에 가서 그곳에서 대한항공 858기로 갈아타기 위해 2시간가량 대기한다. 그동안 폭파용 트랜지스터 라디오를 작동시킨다. 폭파용 트랜지스터 작동 조작은 작동 9시간 후에 폭발하도록 되어 있는 고정 위치에 스위치 놓는 것을 원칙으로 하되 상황이 변동되면 임의시간을 조정하여 작동시킨다. 트랜지스터 작동은 김승일이 하되 김승일이 작동시킬 수 없는 상황이 생기면 김옥화가 대신한다. -11월 28일 : 23시 45분, 바그다드에서 대한항공 858기 탑승 후 폭파기재를 좌석 선반 위에 올려놓고 아부다비에서 내릴 때 그냥 내린다. -11월 29일 : 02시 50분, 아부다비공항 도착 후 대한항공 858기에서 내려 현지를 이탈한다. 이때 폭파가 성공되면 아부다비, 바레인 등지에서 수사가 이루어질 것이므로 발인으로 가지 말고 보세구역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아부다비에서 출발하는 이태리항공편을 이용해 로마로 떠난다. 같은 날 오후 로마에 도착하면 적당한 호텔에 투숙하여 2박 3일간 부녀 관광객으로 위장, 관광하면서 휴식한다. -12월 1일 : 11시 이태리 항공편으로 로마를 출발, 같은 날 21시에 비엔나에 도착하여 비엔나 주재 공화국 대사관에 대기 중인 안내조와 통화하여 재 합류한 뒤 안내조장의 지시에 따라 평양으로 복귀한다.
그렇게 잘 짜여진 공작 계획표대로라면 나는 지금쯤 평양에 있을 것이다.
나레이션 : 대남공작원 김현희의 고백, 랑독에 박수현이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