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행 「푸른 여로」(2)
몇 가지 새로운 소식으로 헝클어진 머리를 정리하기 위해 중국집 아낙이 내온 물 한 잔을 마시고, 다시 ‘교차로'에 골몰하기 시작했다. 따지고 보면 내 머리를 헝클어트린 주막집 아들과 술도가의 딸도 이 ‘교차로'와 전혀 무관하달 수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터무니없었다. 어떤 이유로 이 문제가 그 문제와 관련되었다고 여겼는지 설명할 길은 없다. 하지만 이 모든 문제의 핵심에 교차로가 있다는 믿음이 시간이 흐를수록 또렷해지고 있었다. 자동차를 끌고 이 길로 들어온 그에게는 교차로가 있어야 했고, 학교에서 막 나온 내게는 교차로가 없었던 것이다. 길은 교차로를 지나지 않고도 이미 만나 있었다. ‘이미'에서 내 팔에 소름이 끼쳤다. 그것이 살아 있어서 일을 꾸몄거나 만약 그게 아니라면 우리는 이 단순한 법칙에서마저도 소외된 자들일 것이기 때문이었다. 앞의 ‘그것'은 자미화가 화려하게 장식한 길이다. ‘버려진'이라는 말 또한 앞에 덧붙이는 것이 좋겠다. 이 신작로는 일제 강점기에 만들어진 J시로 통하는 국도였는데, 4차선으로 시원하게 큰길을 만들고 난 뒤 버린 길이었다. 이 길도 철로와 마찬가지로 결국 수도 서울에 닿게 되어 있었다. 모든 길은 서울로 통하게 되어 있는 것이다. 버려지기 전에는 이 길에서 자미화를 본 적이 없었다. 그 길에 자미화가 피기 시작한 것은 버려진 후일 것이다. 누가 나무들을 가져다 그리 꾸몄을까, 궁금했다. 역시 쓸모없는 궁금증이었다.
5.
앞에서도 말했지만, 나는 그 길을 거슬러 와 고향의 문턱 근처에 머물고 있다. 정확히 30년 전에 떠난 고향이었다. 주로 승용차로 오가기 때문에 열차 역이나 버스 터미널에서 고향 사람들 눈에 띌 가능성은 없었다. 대중교통을 이용해야 할 불가피한 사정이 있을 때는 모자를 깊이 눌러썼다. 내가 여기에 와 있다는 사실을 들키고 싶지 않았다는 얘기는 위에서 이미 했다. 그건 진심이다. 나는 지금 고향을 숨어서 보고 듣는다.
다시 울음 얘기를 해보자. 나는 아파트 방바닥에서 들려오는 그 울음소리가 수반하는 것들에 관해 관심을 가졌었다고 말했다. 울음의 종류도 여러 가지다. 억울해서 우는 울음, 슬퍼서 우는 울음, 누군가가 짠해서 우는 울음, 하지만 그 울음소리는 그런 울음소리가 아니었다. 그저 흑흑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일반적인 울음을 말하라면 나는 이 여인의 울음을 꼽을 것이다. 세상의 모든 울음들을 끌어 모아 그것들이 가지고 있을 개성적인 것들, 울음이 수반한 것들을 모두 다 제하고 나면 바로 그 여인네의 울음이 될 것이다. 말하자면 기호화된 울음이었다.
그렇다면 한숨소리는? 한숨소리도 마찬가지였다. ‘아이고' 하지 않았다. ‘이걸 어쩌면 좋나!' 하지 않았다. ‘하 참, 이거 큰일이구먼!' 하지 않았다. 그저 ‘하!' 했을 뿐이다. 도무지 그 한탄이 어디에서 나온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역시 이 세상의 모든 한숨소리를 모아 그것들이 가지고 있을 차이들을 다 없애고 나면 바로 그 남자의 한탄이 될 것이다. 그저 나오는 한탄이었다. 그의 삶이 곧 한탄이고, 그의 몸뚱이가 곧 한탄이고, 그가 기억하고 있는 모든 것 또한 뭉뚱그려져 터진 한탄이었다. 하지만 두 사람의 입에서 나온 것이 그랬다는 것일 뿐, 한탄과 울음의 이유에 차이가 없다는 뜻은 아니다. 그저 그것은 내 느낌일 뿐이다. 어쩌면 나는 그 두 사람의 한탄과 울음소리에서 내 한탄과 울음소리를 듣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6.
“찾았다. 여기 있네. 당신이 말했던 근처인 것 같은데? 맞아, 꽃이 푸르네. 근데 파란여로는 뭐지? …… 아, 그렇구나. 맞아, 자색 원형 무늬는 없어. 그럼 이건 푸른여로네.” 참 염치없는 일이었으나 일어설 수가 없었다. 난 그 남자가 구부러진 그 길 저쪽에 앉아 있는 것을 몰랐다. 자미화 아래 앉아 중국집 아낙에게 얻어온 물을 마시기 위해 마개를 막 열었던 참이었다. “응, 괜찮아. 조금 쉬고 있는 중이야. 오늘은 좀 많이 걸었어. …… 시내 나갔었구나. 그럼 돌아오는 길에 만날 수도 있고. …… 저녁에는 올 거 없어. 낮에 남은 밥도 있고.” 물 마시는 소리마저도 죽여야 했다. “조금 있다가 들어갈 거야. 그 사이에 오면…… 알았어.” 나는 조용히 일어섰다. 그리고 소리 나지 않게 자전거를 끌고 중국집 방향으로 다시 올라갔다. 이삼백 미터쯤 올라왔을까, 그곳에도 한 무더기의 자미화가 피어 있었다. 자미화는 배롱나무의 꽃이다. 자색이 아닌데 왜 자미화라는 이름이 붙었는지는 궁금했었다. 부처꽃과에 속하는 낙엽교목이다. 수피樹皮가 홍자색을 띠고 있어서 자미紫薇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걸 나중에 알았다. 어느 여인의 피부처럼 매끄러운 홍자색 표면의 감촉은 내 손에 익숙하다. 간질이면 홍자색의 몸이 반응을 한다. 간지럼나무라고도 불렀다. 며칠 전 아파트 정원에서도 이 나무를 보았었다. 부지런한 경비원이 그 아래의 풀을 뽑고 있었다.
“배롱나무는 햇볕을 좋아해서 양지에 심어야 하는데, 여긴 해가 잘 안 들어요. 그래서 나무가 시원치가 않아요.” “그래도 꽃빛깔은 제대로 났네요.”
“옛날에 한 청년과 처녀가 사랑을 했어요. 청년의 직업이 상인이어서 멀리 물건 팔러 떠나며 돌아오면 결혼을 하기로 약속을 해요. 하지만 풍랑이 심해 살아오기 힘든 곳이었는지, 돌아오는 배에 흰 깃발이 걸리면 내가 살아 있는 것이고, 죽었다면 붉은 깃발이 걸릴 것이라는 희한한 예언을 남겨요. 도대체 이 무슨 수작인지, 쯧쯧. 하루가 십 년 같았을 처자가 언덕 위에서 기다리지요. 저 멀리 배가 돌아옵니다. 그런데 붉은 깃발이 걸렸어요, 이런! 그걸 본 처자가 절망해 언덕 아래로 몸을 던져요. 사실은 돌아오는 길에 해룡과 싸우다가 해룡의 목을 베었는데, 그 피가 깃발을 적신 거지요. 청년은 살아 있었답니다. 돌아온 청년은 슬피 울며 처자의 장례를 치렀는데, 후에 묘 옆에 나무 한 그루가 자랐어요. 많이 듣던 얘기지요? 어쨌든 그 나무의 꽃이 바로 이 자미화랍니다. 이 꽃은 가을이 되기까지 세 번을 피고 진대요. 한 맺힌 울음이지요. 한이 맺혔으니 꽃 색깔이 한결같이 이렇지요.”
그러니까 지금 두 번쯤 피었을 시기였다. 30분쯤 지났을까. 아래쪽 길에서 다시 말소리가 들렸다. 아니, 웃음소리였다. 말소리를 들을 수 있는 거리는 아니었다. 나는 이제 돌아가야 할 시각이었다. 저녁 일거리를 준비해야 했다. 저녁 먹기 전에 그날 밤에 일할 목록을 만드는 것이 중요한 일과였다. 아래 학교로부터 뒷밤재 주막까지 야트막한 산 하나를 올라온 셈이었다. 돌아가는 길은 계속해서 내리막이다. 얼굴을 향해 시원한 바람이 불어 왔다. 나는 그 느낌을 즐긴다. 아까 내가 조용히 자리를 떴던 그곳에 연두색 차가 서 있었다. 차를 보는 순간 괜히 가슴이 뛰었다. 두 사람이 자미화 그늘에 놓인 벤치에 앉아 있었다. 나는 애써 그들을 외면했다. 그들과 시선을 마주치지 않기 위해 애썼다. 내가 지나는 동안 그들도 말을 멈추었다. 두 사람은 말을 멈추었고, 나는 그들을 외면한 채 그곳을 지나쳤다. 그들의 모습을 주변시(周邊視)로 확인할 수 있었다. 외면했지만 내 온 신경은 그쪽을 향해 열렸다.
나는 그를 보지 않았지만, 본 것 같았다. 얼굴색이 창백했던, 수줍음이 많다고 생각했던 바로 그 사내였다. 내게 옆모습을 보이며 구멍을 빠져나갔던 그 사내였다. 그런데 그뿐만이 아니었다. 어쩌자고 내 상상력은 이리도 질긴 것일까. 나는 끝내 묻고 말았다. 네가 바로 그냐? 나는 허공 속 사내에게 물었다. 네가 바로 술도가 앞에 진을 치고 몇 날 며칠을 울었던 바로 그냐? 갑자기 가슴이 뜨거워졌다. 그 십 리 길을 어찌 내려왔는지 알 수가 없었다. 아파트 주차장에 도착했을 때 경비원이 관리실 계단에 앉아 있었다. 며칠 전에도 그 연두색 차가 공중전화박스 뒤편에 서 있는 것을 보았었다. 그가 그 차를 보지 못했을 리 없었다. 경비원에게 물었다. “저기 아저씨, 혹시 공중전화박스 뒤편에 가끔 서 있는 연두색 모닝 말이죠.” 경비원이 고개를 들어 나를 올려다보았다. 내친 김에 나는 일을 저지르고 있었다. “연두색 차?” “예, 혹시 그 차를 아세요?” “왜? 그 차에 볼일 있소?” 안다는 뜻이다. 속에서 쾌재가 일었다. 슬그머니 그 앞에 쪼그려 앉았다. “아니, 그게 아니고.” 그러자 경비원의 표정이 망연해졌다. “그 차가 몇 호에 온 차인지 궁금해서…….” 경비원이 되물었다. “궁금하다니?” “글세, 그냥.” 그 순간 그의 표정이 싸늘해졌다. 저 위 ‘연두색 모닝'에서 달라진 그의 표정을 읽었어야 했다. “신경 끄세요.” 그는 내 호기심에 아주 대못을 박았다. “세상에 궁금한 걸 못 참는 것만큼 천박한 게 없답디다. 당신 일 아니면 쫑終! 아시었소?” 하지만 내 궁금증은 천박하기가 이를 데 없었다. 나는 다시 질문을 디밀었다. “그 사람 많이 아픕니까?” 그러자 경비원의 눈이 화등잔만 해졌다. 나를 곧 집어삼킬 것 같은 표정이었다. “아픈 걸 알면 그걸로 쫑!” 몸이 아프다고? “그러면 서울에서는 언제 내려왔는지……?” “서울? 아니, 이 사람이 알면서 탐문하는 거야, 뭐야? 당신 도대체 누구야?” 누구냐고? 그가 내게 묻고 있었다. 나는 오직 그 부분에서 화들짝 놀랐다. 벌떡 일어나 도망치듯 로비로 들어섰다. 그리고 막 열린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가 재빨리 닫힘 버튼을 눌렀다. 머릿속 가득 방금 내가 저지른 일들이 헝클어져 있었다.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지? 경비원이 두 사람의 관계를 지키고 있었다는 사실 외에는 도대체 알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내 실수는 일방적이었다. 그가 서울에서 내려왔고, 몸이 아프다는 사실은 모두 내 입에서 나온 것들이었다. 혹시 그의 이름이 김 아무개 아닙니까, 하지 않았던 것만 위로 삼아야 할 지경이었다.
7.
나는 이 날 밤 자동차를 몰아 서울로 올라와 버렸다. 누구에게라기보다 내 스스로에게 들킨 셈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덜렁 빈손으로 서울로 올라와 버린 것도 대책이 없는 처신이었다. 고향 문턱에 숨어 들어가 마음 편하게 지낼 계획이 다소 어긋나 버리긴 했지만, 그만한 일로 도망까지 친 것은 분명 과민한 반응이었다.
서울에서 며칠을 보낸 뒤 나는 다시 한밤중에 자동차를 몰고 있었다. 아내는 한밤중에 일어나 문득 P시에 가겠다고 나서는 내 행동을 이해하지 못했다. 아내에게는 ‘문득'이었겠지만, 나로서는 그 시각이 사람들 눈을 피할 가장 좋은, 이를테면 계산된 시각이었다. 새벽녘 도착할 생각으로 두 시쯤 집을 나섰다. 텅 빈 고속도로를 달리면서 그 옛날 술도가 앞에서 ‘꽃부리 영' 자 ‘기쁠 희' 자를 외치던 친구를 떠올렸다. 그가 주막집 며느리와 만나고 있는 그인지 확신할 수 없다. 그가 몇 년 전 문득 내게 전화를 했었다. 다짜고짜 몇 편의 시를 썼는데 읽어봐 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고등학교 시절 그가 시를 썼던 것이 떠올랐었다. 그 시절 그는 시인이었다. 하지만 그는 시인이 되지 않았다. 내게 전화를 건 그 시점도 그를 만난 지 아주 오래된 때였다. 그가 시를 썼다는 사실보다도 그가 어찌 살고 있는지가 더 궁금했었다.
시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가 내게 실제로 시를 보냈는지 마저도 기억나지 않는다. 그로부터 얼마 후 그의 사업체가 어려워졌다는 소문을 들었다. 그 때문에 건강이 잘못되었을 것이라는 짐작이 설득력을 얻는다. 그가 나보다 먼저 이곳에 숨어들어 고치를 짓고 있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회귀성 어종의 본능 같은 것인가? 하지만 이것도 한숨소리와 울음소리를 묶어냈던 오지랖 넓은 내 상상력이 빚어낸 것이다. 주막집 아들과 동강 술도가의 딸, 술도가 문 앞에 울려 퍼지던 “‘꽃부리 영' 자 ‘기쁠 희' 자”, 뒷밤재 주막집으로부터 학교에 이르는 길에 흐드러진 자미화, 그 으슥한 길에서 들었던 ‘푸른여로', 그리고 공중전화 박스 옆에 서 있던, 자미화 꽃길에도 서 있던, 뒷밤재 그 주막 앞에도 서 있던 연두색 모닝이 내 상상력의 소품이었다. 나는 아직 그가 그인지 확인하고 싶지 않았다.
어라! 생각에 쫓겨 길을 놓쳤다. 고속도로에서 빠져나와 J시로 가는 4차선 국도에서 대학교 정문으로 들어가는 길이었다. 그 순간 무슨 생각을 했던 것일까? 맞다. 푸른 여로를 생각하고 있었다. 길을 놓쳤으니, 길을 찾아야 했다. 터널을 지나 가장 가까운 샛길로 우회전했다. 샛길 들머리에서 낯선 휴게소와 여관을 보았다. 하지만 샛길로 접어들면서부터는 눈에 익은 풍경이 펼쳐졌다. 어, 이게 어디야! 하는 동안 내 차는 이미 뒷밤재 주막 앞에 이르러 있었다. 얼마 전 내게 학교로 가는 길을 물었던 운전자가 떠올랐다. 그처럼 나 역시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교차로가 없다면 길은 만날 수 없다. 그제야 나는 그가 왜 자신의 상황을 그토록 과장했는지 알 것 같았다. 세상에 이유 없는 일이란 없다. 그의 말이 장황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나는 곧 되새긴 그의 말에서 단서를 찾았다. 그는 큰길에서 좌회전을 해 도로 반대편의 학교 정문으로 들어가려 했다고 말했었다. 그런데 옆에 앉은 사람과 얘기를 하느라 그곳을 놓쳤다. 길을 놓쳤음을 바로 깨닫고 첫 번째 만난 샛길로 우회전해서 들어왔다고 했다. 그 길에서 나를 만난 것이다. 거기까지 되새긴 나는 갑자기 팔에 소름이 돋는 걸 느꼈다. 가당키나 한 얘기인가? 그 길은 바로 조금 전 내가 길을 놓쳤던, J시를 향해 뚫린 4차선 자동차 전용도로였다. 그 도로 J시 방향 왼쪽에 대학교 정문이 있다. 그 도로에서는 좌회전을 해야 학교로 들어갈 수 있다. 그런데 그 지점을 놓치고 첫 번째 샛길로 우회전을 했다면 그는 여전히 큰길을 사이에 두고 학교와, 그러니까 나와는 반대편 쪽에 있어야 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는 이쪽에 있었다. 내가 지금 처한 상황이 그랬다. 도대체 이 길들은 어떻게 만난 것이지? 나는 길 저쪽이 푸르게 열려 있는 것을 보았다. 아니, 파르스름했던가?
길 끝에 자미화가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나무 아래로는 융단처럼 진홍색 낙화가 깔려 있었다. 하지만 내 눈에는 그 진홍색마저 푸르렀다. 머리에 들어와 박혀 요지부동인 푸른 여로를 다시 되뇌고 있었다. 고향에 와서도 여전히 나그네일 수밖에 없다. 도무지 이 길부터가 익숙하지가 않으니. 도로가 새로 나고 옛길이 숲 속에 버려지면서 나 역시 이곳에서 버려진 느낌이었다. 도대체 어디쯤에서 길을 잃었으며 지금 나는 어디에 있는가? 그것이 주막집 아들과 그 친구 사이 어디쯤인가? 그런 생각이 들었을 무렵 문득 내가 그나마 주막집 아들을 기억하고 있는 것은 바로 그 친구 때문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주막집 아들과 그 친구는 매우 가까운 관계였다. 그런데 어떻게 그 여자와 결혼했지? 의미 없는 질문이었다. 그러고 보니 집도 비교적 가까이에 있었다. 비로소 나는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 고향의 지도를 다시 그리기 시작했다. 새로 생긴 것들을 지우고 없어진 것들을 제자리에 놓는 과정은 지난한 전투였다. 쉽지 않았다. 거창하게 들어선 대학교를 없애고 J시를 향해 새로 뚫린 4차선 도로를 지우면서 나는 비로소 혼란 속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그제야 내가 서 있는 길이 호젓해졌다. 결국 영희를 사랑했던 그 친구 집이 산에서 구불구불 내려온 이 길의 끝에 있었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대학교와 4차선 자동차 전용도로가 압도한 나머지 그곳에 본래 있었던 것들이 지워졌거나 초라하게 존재감을 잃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어느새 차를 몰아 아파트 근처까지 내려와 있었다. 그곳에 차를 세운 뒤 나는 대학교가 생기면서 한꺼번에 들어섰을 원룸촌을 지우고 있었다. 그리고 그 자리에 마을을 그려 넣으니 비로소 그 친구 아버지가 하시던 과수원이 떠올랐다. 그 친구의 집은 과수원 서쪽에 있었다. 지금은 사라진 과수원 서쪽, 그쪽을 바라보니 아파트가 거대하게 솟아 있었다. 내가 지난 한 달 반 동안 숨어 지냈던, 밤새 귀를 기울여 사내의 한숨소리와 여자의 울음소리를 듣던 바로 그 아파트였다. 어쩌면 이 모든 것이 이토록 감쪽같을 수가 있을까. 그 느낌이 정말이지 견딜 수 없이 낯설었다. 거대한 음모 속에 들어앉아 있는 느낌이었다. 떠난다고 떠나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헐레벌떡 방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짐을 싸는 대신 옷을 갈아입고 현관에 세워 두었던 자전거를 끌고 나섰다.
나는 다시 뒷밤재 주막이 내려다보이는 고갯마루에 자전거를 세웠다. 내려다보이는 길이 푸르렀다. 우리가 떠났던 길이었다. 나는 아직 길 위에 있는 셈이었다. 우리는 이런 길을 얼마나 더 가야 할까. 사위가 고즈넉했다. 비로소 산 아래로 질주하는 자동차 소리가 들렸다. J시로 향하는 4차선 도로 위의 자동차들이 산 속으로 질주해 들어오는 소리였다. 자동차들은 무서운 속도로 쳐들어왔다. 교차로가 없다면 길은 만날 길이 없다. 터널, 교차로는 땅 속에 숨어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 뫼비우스 띠 위에 서 있었다. 길은 여전히 푸르렀다. 나의 푸른 여로였다.
《문장웹진 12월호》
* 작가의 덧말 : 여로는 멜란티움과의 여러해살이풀이다. 여름에 자색 꽃이 피는데, 꽃 색깔에 따라 푸른여로 파란여로 노란여로 등으로 불리는 것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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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이명행 씨가 7년 만에 소설을 발표했다. 2004년 《문학과지성사》에서 간행되었던 장편소설 『사이보그 나이트클럽』 이후 처음.
지난 2년 동안 7편의 단편소설을 썼고, 1편의 장편소설을 집필 중이라 한다. 쓰기만 하고, 발표는 미뤘는데, 이번에 그 첫 번째 소설을 종이책이 아닌 웹진에 내놓았다. <문장웹진> http://webzine.munjang.or.kr/ [소설을 펼치는 시간]이라는 항목에 있다. 나주 다시면이 고향인 이명행 작가를 1983년엔가, 기자 초년시절 ‘황색새의 발톱'를 통해 처음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