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sode 28 - 박완서, “그리움을 위하여” - Part 4
솔직히 반대할 사람도 없지만 반길 사람도 없잖아. 내 자식들은 대면대면하고 친정붙이들은 다들 언니처럼 쌀쌀맞고, 시집은 대가 갈려 조카들만 남았는데 뿔뿔히 흩어져 제 살기 바쁜 그 애들을 불러모아 숙모 시집간다고 광고를 치면 아마 날 미쳐도 더럽게 미친년 취급할테고 내 살던데 보여주기도 싫고. 사람 마음이 어째 그렇게 간사스러운지 아무리 집 같지 않은 집이라도 온종일 뼈빠지게 일하고 밤에 들어가 다리 뻗고 누우면 세상편하게 내 집구석이다 싶더니만 이젠 다시는 거기서 못 살 것 같아. 그럼 어젯밤 대식이네서 잤지. 아들, 며느리 보는 앞에서 경환이, 경숙이 한테도 전화걸어서 자초지정을 다 말해 버렸어. 승낙은 제까짓 것들이 무슨 권리로 승낙을 하고 말고 해. 통보한거지. 그래도 이런 일에는 여자 형제가 났더라고. 경환이는 누나가 오죽해서 그런 결정을 하게 됐겠느냐면서 잘살기를 바란다고는 하는데 정이 조금도 안 느껴졌어. 그래도 경숙이는 놀라서 울먹이면서, 자기 집에 와서 자세한 얘기를 하자고 하더군. 오늘, 내일은 경숙이네서 잘거야. 아냐. 그 다음 날에도 언니네는 못 오지. 모레 내려가야 하니까. 모레 새벽에 떠나야 해안에 섬에 닿을 수 있거든. 추석? 추석이야 물론 섬에서 쇄야지. 대식 애비가 제 애비 차례 어련히 지낼려구. 거기 영감님이 당신 마누라 차례를 내 손으로 차려주길 원해. 마나님 차례는 올해가 처음이지만 영감님이 모셔야할 조상이 네 분이나 더 있는데 자식들이 미리 오지 않고 연연치 시간을 맞추어 오기 때문에 죽은 마나님이 명정이나 제삿날은 육지 바라보느라 고개가 한 뼘은 늘어났데. 태풍이라도 와서 뱃길이 끊기면 못 오기 일쑤고 자기는 죽은 마나님처럼 자식 바라기만 하고 살지 않을 거래. 둘이서 오순도순 차리재. 나도 그 노인이 나를 안 놓히려고 급하게 군다는 거 알아. 모레 꼭 삼천포에서 만나자고 몇 번이나 다짐을 받고 나를 육지로 보내준거야. 삼천포까지 영감님이 자기 배를 가지고 마중나오기로 했어. 명색이 혼행길인데 어떻게 어중이 떠중이 다 따는 여객선을 타게하냐고. 만일 그날 내가 삼천포에 안 나타나면 내가 가족들의 승낙을 못 받을 걸로 알겠다고 했어. 그럼 영감님이 얼마나 풀이 죽겠어. 생각만 해도 불쌍해서 가슴이 저려." 더 들을 것도 없었다. 삼십여년을 해로한 제 영감 차례를 내팽겨치고 어느 개뼉다구인지도 모를 늙은 뱃놈의 죽은 마누라 차례를 지내러 가겠다는 게 어디 제정신인가?
"너 환장을 했구나." 나는 차갑게 내뱉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동생이 열두살이나 더 먹은 기혼자와 결혼해서 온 집안을 발칵 뒤집어 놓을 때 생각이 났다. 식구들이 그러건 말건 동생은 그 연애를 완성시켰고, 그 남편이 죽으면서 남긴 사랑한다는 말 한 마디를 지금도 남들에게 풍기면서 자랑하기를 잘 한다. 옥탑방의 지옥불을 견디게 한 힘의 반 이상이 아마도 그 말의 힘이었을 것이다. 그런 동생이 새로운 연애를 시작한 것이다. 그 남자는 칠십이지만 건장하고 점잖아서 앞에서 보면 교장 선생님 같고 뒤에서 보면 청년같다나? 자기 소유의 어선을 가지고 있고 바다하나만 믿고 자식을 다섯다 고등교육시킬 정도로 근면할 뿐 아니라 지금도 그가 넣은 통발에서만 유난히 많은 고기가 잡힐 정도로 바다에 관해서는 모르는게 없는 능숙한 어부란다. 동생은 일어서 나가면서 까지 영감님 자랑을 하고 갔다. 다음날 차편이 생긴김에 추석장을 보러나갔다. 나는 일손생각은 깜빡 잊고 예년에 하던데로 고색맞춰 제수거리를 넉넉히 장만했다. 다용도 실에 그걸 쏟아 놓으니 엄청난 부피였다. 냉장실, 냉동실로 나누어 넣는 것 조차 생전 안 해보던 일 처럼 난감하게 느껴졌다. 저걸 다 어쩌란 말인가. 사다만 내던지면 다듬고 지지고 맛있는 냄새를 풍기면서 제상과 손님상이 저절로 차려지던 때는 가버린 것이다. 친구들은 생전 진위를 모르는 나를 인복이 좋다고 부러워 했었다. 인복은 놓친 나는 지금 얼마나 불쌍한가. 엉엉 소리를 내서 울어도 시원치 않을 것 같았다. 쟤가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가 있는가. 나는 그동한 내가 저한테 베푼 온갖 혜택을 떠올리면서 쟤가 나한테 미리 아쉬운 소리만 했더라면 뭐를 못해줬을까. 집도 사줬을 것 처럼 내 후한 마음을 마냥 부풀렸다. 그러나 사다가 내던지기만 하면 진수성찬이 저절로 차려지던 지상낙원은 잃어버린 뒤였다. 그 좋은 솜씨로 예전 같으면 궁중숙주로래도 손색이 없을 솜씨로 섬에 거칠고 단순한 뱃놈의 밥상을 차려주러 간 것이다. 이건 돼지에게 진주정도가 아니였다. 어찌 보고만 있을 것인가. 나는 질투로 분기탱천하여 동생의 친동기들에게 전화통을 돌렸다. 먼저 경환이 한테 이게 얼마나 우세스러운 일이라는 걸 강조했다. 우리집안이 어떤 집안이냐. 나는 구태여 가문에 전해내려오는 열녀나 정경부인까지 거슬러 올라갈 것 없이 육이오 때 우리집안 내에서 떼로 생겨난 과부들을 생각해 냈다. 어쩌면 그 많은 떼과부들이 하나도 개가를 안 하고 수절을 했을까. 말을 하면서도 끔찍한 생각이 들었다.
"안 한게 아니라 못 한거겠죠. 떼과부는 떼죽음 때문에 생겨난건에 어디로 개가를 가겠수? " 경환이가 느믈댔다. 그리고 자기도 충격을 받았지만 우선적으로 고려해야할 것은 누님의 행복이 아니겠느냐고 했다. 어쩌겠다는 소린지 감이 잘 안 잡혔지만 회사로 건 전화를 더 붙들고 늘어질 수가 없었다. 다음은 경숙이네 였다. 전화를 받은 경숙이는, 지금 언니는 섬에서 이것저것 부족한 걸 사러 갔다고 했다.
"마침 잘 됐다. 너하고 의논하려고 걸었단다. 너희 언니 말이다.' 이렇게 서두를 꺼내자 경숙이는 즉각,
"나도 심난해 죽겠어. 그동안 나 사는데 골몰해서 언니한테 신경을 제대로 못 써준게 이렇게 마음에 걸릴 수가 없네." 하고 울먹이기 까지 하는게 말이 될 것 같았다. 여자끼리 통하려면 감흥보다는 정서적인 호소가 나을 것 같았다. 그래서 이일을 우리가 다같이 막아하하는 첫 째가는 이유로 정에 무르고 타산적이지 못한 그녀의 다정다감한 성격을 꼽았다.
"너도 알지? 너희 언니하고 너희 형부하고 우리 집안을 발칵 뒤집어 놓고 결혼한거. 그건 안 되는 결혼이라고 그렇게 말렸건만, 기어코 그리고 시집을 가더니만 뭐 좋은 거 있더냐. 너희 형부, 생전 마누라 지리 고생만 시키더니 말년에는 병 수발까지 얼마나 고생시켰냐. 그래도 싫은 내색 한번 안 하고 헤헤거리고 살았지만 아마 속으로 그때 어른들 말을 들을껄, 후회 막심이었을 거다." 여기까지 말 했을 때 경숙이가 발끈하는 목소리로 내 말을 잘랐다.
"언니 무슨 말을 그렇게 하오. 마치 우리 언니가 평생 불행하게 산 것 처럼 말하는데, 우리 언니가 언니보다 좀 어렵게 살았다고 그렇게 깔보나 본데, 우리 언니 남 부럽지 않게 행복하게 살았어요." 이렇게 나오는데 내가 무슨말을 더 하겠는가. 아, 내 꼴이 이게 뭐란 말인가. 처량하다 못해 처량했다. 동생하고 전화로만 작별인사를 하고 외출중 택시 손에서 방송을 늘으니 남해에 파랑주의보가 내려졌다 한다. 태풍이 북상중인 모양이다. 순간 하늘이 이 늙은 철부지들의 만남을 훼방놓았으면 하는 불티같은 희망이 가슴을 짜릿하게 했다. 그러나 그 다음날 동생은 무사히 도착했다는 전화를 걸어 왔고 그후에도 동생한테서는 적어도 일주일에 한번씩은 전화가 걸려왔다. 워낙 수다 떨기 좋아하는 동생이었다. 주로 제 자랑 그리고 내 걱정이었다.
"사람 구했어? 아직도 못 구했다고? 이 세상에 웬 떡이 어딧수. 몇 번 갈아들이다 보면 웬만한 사람 만날거야. 언니도 그 성질 좀 죽여야 해. 나도 언니한테 얼마나 스트레스 받은 줄 알아?" 그래 지금은 스트레스 안 받아서 좋겠구나. 나도 동생이 하라는데로 성질 좀 죽이고 유하게 대답할 줄도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