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sode 8 - 김소연 “마음사전” - Part 4
저같이 이렇게 언어에 붙들려 있는 사람은 사실은 그런 뉴에이지 음악에서가 아니라 책을 볼때 더 깊은 마음의 상태를 들여다 볼 수 있다고 할 까요. 그런 편이예요. 그럴 때 이런 김소연 시인의 “마음사전”같은 책이 좋은게 아닌가 이런 생각이 듭니다. 자 한 대목만 더 읽어 드릴까 하는데요. 네 이것은 한 대목이지만 여러 항목으로 이루어져있습니다. 호감에 대한 단어들을 시인이 구분해 놓은 것인데요. 자 그냥 들으시기 전에 여러분도 한 번 남에게 어떤 호감을 느낀다…라고 할 때 떠오르는 단어들 어떤 것이 있는지 ‘일시정지' 버튼을 누르시고 잠시 생각해보시는 것도 좋겠고, 앞에 하얀 종이가 있다면 써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좋아한다. 사랑한다. 매혹당한다. 또는 뭐 연모한다. 여러가지 말이 있겠죠? 한 번 써보시면서 나는 이 단어들은 어떻게 구분하고 있나.. 어떻게 사용하고 있나.. 이런걸 생각해 보셔도 좋을 것 같은데 네… 그럼 써 보셨습니까? 자 그러면 제가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존경: 존경은 표현하지 않아도 된다. 취하고 있는 자세만으로 충분히 표출되기 때문이다. 내가 동경하던 그것을 이미 갖고 있는 존재 앞에서 생기는 감정이란 점 때문에, 질투와 존경은 동기가 같지만, '자세' 하나로 전혀 다른 길을 간다. 존경은 이미 겸허히 흔들고 있는 백기이며, 적어도 한 수 아래임을 여실히 깨닫고 엎드리는 의식과도 같다. 빛에 비춰보면 그 백기에는 복사가 불가능하도록 장치된 지폐의 밑그림처럼 '영원한 노스탤지어'가 새겨져 있다. 감히 엄두조차 나지 않는 선망. 그래서 감정 바깥에 다소곳이 앉아 있다. 그만큼 깨끗하고 단정하다.
동경: 존경과 유사한 상태이지만, 존경에는 있는 것들이 부재한다. 존경은 이성적인 이유들을 각주처럼 거느린다면, 동경은 각주가 없다. 근거라는 것이 언제나 막연하고 미약하다. 그렇기 때문에, 존경이 다른 곳으로 쉽게 이동하지 않는 반면, 동경은 쉽게 이동한다. 단, 막막한 거리감이 늘 확보된다면 끝없이 붙박여 있을 수도 있다. 동경에는 또한, 존경보다는 좀 더 복합적인 욕망이, 그리고 흠모보다는 좀 더 나른한 욕망이 개입되어 있다.
흠모와 열광: '존경'에 '동경'과 '매혹'이 재빠르게 섞여들 때가 '흠모'다. 존경에 열정이 화학작용을 일으킬 때는 '열광'이다. 흠모는 열광보다 느리며 대상과의 거리도 멀다. 느리고 멀기 때문에 동경과 비슷하지만, 흠모가 앓고 있는 상태라면, 동경은 그렇지가 않다. 동경과 흠모는 언제나 도로교통법처럼, 대상과 안전거리를 확보하고 진행된다. 그에 비하면 열광은 위험하다. 질주를 해야 하므로, 여러 차선을 넘나들며 앞지르기를 한다. 향후, 호감보다 질주에의 환희를 더 즐기게 되는 것도 열광의 위험한 요소다.
옹호: '존경'이 저절로 생긴 마음가짐이라면, '옹호'는 일종의 다짐이다. 대상을 부분이 아니라 통째로 껴안는다. 대상의 미흡한 부분에 대한, 적극적인 이해나 무조건적인 덮음 같은 것을 전제하고 있다. 그러기 위해서 다짐이 불가피해지는 것이다. 미흡함을 몰라서가 아니라, 미흡함을 끌어안는 자세. 그렇기 때문에 거칠고 난폭하며 편협하지만, 그 편견의 자리에 기꺼이 서 있겠다는 각오인 셈이다. 신뢰가 간혹 배신이라는 종착점으로 나아간다면, 옹호는 그렇지가 않다. 신뢰를 상실하는 순간에조차 어떤 식으로든 논리를 뒤져내어 훼손된 마음을 정화시킨다. 어떤 경우, 갖은 훼손에도 불구하고 대외적으로 신뢰를 과시하는 과감함 같은 것도 진정한 옹호는 행하고야 만다.
좋아하다: 호감에 대한 일차적인 정서이면서도, 정확하게 분화하지 않은('분화되지 않은'이 아닌) 상태를 뭉뚱그릴 때 쓰기 좋은 말이다. '좋아한다'는 고백은 어쩌면, 내가 느끼고 있는 이 호감이 어떤 형태인지 알기 싫다는 뜻이 포함되어 있을지 모른다. 사랑이라는 말을 쓰기가 꺼려질 때에 흔히 쓰며, 존경에도 흠모에도, 신뢰에도 매혹에도 귀속시키기 미흡한 지점에서 우리가 쓰는 말이 바로 '좋아한다'는 표현이다. 어쩌면 더 지나봐야 알 수 있겠다는 마음 상태이거나, 이미 헤치고 지나온 것에 대해 온정을 표하는 예의 바른 말이거나, 적극적으로 판단 짓기에는 미온적인 상태이거나, 더 강하고 자세한 호감의 어휘를 비껴가기 위한 방법적 거절이거나...... '좋아한다'는 말은, 이런저런 것들의 사이사이에 존재하는 버려진 영역에서 싹을 틔우는 호감들을 아우르는 말임은 분명하다. 반하다: '반하다'는 말 앞에는 '홀딱'이란 수식어가 적격이다. '홀림'의 발단 단계. 그 어떤 호감들에 비해, 그만큼 순도 백 퍼센트 감정에만 의존된('의존한'이 아니라) 선택인 셈이다. 순식간에 이루어지지만, 그리 쉽게 끝나지는 않는다. 어차피 아무런 판단을 동원하지 않고 행한 호감의 의식이므로, 벼락처럼, 자연재해처럼 한순간에 완결되는 감정이지만, 수습은 쉬운 일이 아니다.
매혹되다: '홀림'의 근거를 찾아 나선 상태. '반하다'는 것이 근거를 아직 찾지 못해 불안정한 것이라면, '매혹'은 근거들의 수집이 충분히 진행된 상태다. 풍부하게 제시되는 근거 때문에 매혹된 자는 뿌듯하고 안정적이다. 그러므로 매혹은 즐길 만한 것, 떠벌리고 싶은 것이 된다. 게다가 중독된 상태와 비슷해서, 종료되는 순간은 쉽게 오지 않는다. 실망의 언저리를 맴돌다가도 어느새 다시 감정은 복원된다. 매혹되어 있어서 자신이 망가지는 느낌이 들거나 매혹으로 인해 포만감을 느껴본 이후라면, 홀연히 매혹의 올가미로부터 자유로워질 수도 있다. 그럴 땐 매혹에의 경험이, 가슴에서 반짝이는 자랑스런 금색 훈장과도 같다.
네, 잘 들으셨습니까. 이 뒤로도 ‘아끼다,' '매력,' ‘보은,' ‘신뢰'라는 호감의 여러가지 표현들이 있습니다만, 야 시인이랑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좀 감을 잡으셨을 것 같아요. 계속해서 어떤 한 단어 한 단어에 대해서 깊이 첨착하고 특히 그 차이에 계속해서 주목하는 사람이라는 걸 알 수가 있죠. 좋아한다는거 매혹된다는거 홀린다는거 이런 것들을 이렇게 쓰고 있을 시인을 생각하면 좋죠. 저는 이런 글을 읽을 때 글쎼 어떤 특권 의식이랄까요. 어떤 특권 의식이냐면 한국어를 모국어로 사용할 수 있는 사람들만 이해할 수 있는 글인거죠. 저는 예전에 외국인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친 그런 경험이 있는데요. 아무리 한국어를 잘 한다고 해도 조금 전에 제가 읽어드린 저런 글을 읽고 그어떤 차이를 발견하고 즐거워하는 그런 독서의 경험은 좀 불가능 할 거라고 생각해요. 쉽지 않은 것이죠. 이것은 모국를 사용하는 사람들만 느낄 수 있는 어떤..그리고 모국어를 아주 잘 사용하는 분들이어야 하겠죠? 느낄 수 있는 언어적 쾌감이라고 생각해서 저런걸 할 때면 저런걸 읽을 때면 내가 한국어를 모국어로 하는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어떤 특권을 지금 행사하고 있구나. 그런 쿠폰, 그런 바우처가 있다면 지금 쓰고 있구나. 이런것을 생각하게 되죠? 번역된 소설이나 그런 걸 읽을 때 또는 제가 외국어로 어떤 책을 읽을 때.. 절대 느낄 수 없는 편안하면서도 짜릭짜릭한 그런 감정들이 생깁니다. 오늘은 또 김소연 시인 덕분에 팟캐스트 또 지니행을 할 수 가 있겠고요. 김소연 시인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아직은 뭐 이거 써도 되냐고 허락은 받지 않았는데 아마 허락을 해주실 것 같아요. 그렇습니다. 자 오늘 여기까지 해서 팟캐스트, 김영하의 ‘책 읽는 시간' 여덟 번 째 에피소드를 진행을 했습니다. 이 팟캐스트에 대해서 궁금한 점이 있으시거나 아니면 의견이 있으시다거나 아니면 이 책은 꼭 읽어줬으면 좋겠다… 물론 그 책을 읽어드린다고 제가 말씀드릴수는 없습니다만 저랑 우연히 잘 맞으면 읽을 수도 있죠. 그런 의견이 있으시면 제 홈페이지에 오셔서 의견 남겨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그럼 지금까지 김영하였습니다. 여러분 안녕히 계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