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는 LingQ를 개선하기 위해서 쿠키를 사용합니다. 사이트를 방문함으로써 당신은 동의합니다 쿠키 정책.

image

RFC, 눈물의 고백, 서른 여섯 번째

눈물의 고백, 서른 여섯 번째

[...]

"눈물의 고백, 서른 여섯 번째"

우리는 아침식사도 못하고 누구에게 뒤쫓기듯 황급히 리젠시 인터콘티넨탈 호텔을 빠져 나왔다.

복도에서도 로비에서도 우리를 붙드는 사람은 없었다. [...]

누군가가 조금만 관심 깊게 관찰했다면 낌새를 느꼈을 것이다.

아무리 침착하려고 애를 써도 우리는 자꾸 허둥댔고 누가 봐도 도망치는 꼴이 틀림없었으리라. 택시에 오르면서도 혹시 이 차가 경찰의 감시용 택시가 아닌가 의심이 들어 택시 운전수의 표정을 살폈다. 공항으로 달리는 택시 안에서 나는 두려움도 두려움이지만 도망자의 외로움 때문에 몸이 떨려왔다. 김 선생도 나도 아무 말이 없었다. 어떤 말도 소용이 없었고 서로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입 밖으로 말하지 않아도 우리는 서로의 마음속까지 다 알고 있었다. 두 사람의 심정이 똑같았기 때문에 말을 하기조차 두려웠던 것이다. [...]

내 손은 줄곧 말보로 담배갑에 가있었다.

그 담배갑이 손에 닿아 있으면 조금은 마음이 안정되었다. 최악의 사태가 발생하면 이것만이 나를 지켜주고 비밀을 보장해 줄 수 있는 유일한 방패막이였기 때문이다. 어젯밤에 벌어진 일로 미루어보아 우리가 이곳을 무사히 빠져 나갈 것 같지가 않았다. 베오그라드에서 헤어졌던 최과장일행과 재접선 하기로 약정된 비엔나까지 간다는 일이 현 상황으로서는 거의 불가능하다는 느낌이 와 닿았다. 입안에 침이 마르고 입술이 바싹 타들어 갔다. 이성과 침착을 되찾기 위해 다른 생각을 해보려고 애썼지만 허사였다.

별 탈 없이 공항에 도착하자 김 선생이 수속을 서둘렀다. 로마로 떠나는 알리아 항공기에 탑승하기만 하면 일단은 성공하는 것이었다. 김선생이 수속 절차를 밟는 동안 나는 공항 안의 상황에 신경을 쓰며 미행자나 남조선 특무가 따라붙지 않았나를 살펴야 했다. 출국 사열대 쪽으로 왁자지껄하는 조선 말 소리가 들려와 바짝 긴장한 채 그 쪽을 보았다.

남자 7~8명이 웃어가며 떠들어 대고 있었다. 한눈에 그들이 남조선 사람임을 알아보았다. 공화국 사람이라면 우리 같은 공작원이나 특수 신분이 아니고는 반드시 왼쪽 가슴에 김일성 초상을 모셔야 하는데 그들의 가슴에는 그것이 없었다. 또 공화국 사람들이라면 외국에 나왔다고는 하지만 그토록 자연스럽고 활달하게 행동할 리가 없고 머리에 찌꾸를 발라 올백으로 넘긴 차림이 아닌 것으로 보아도 남조선 사람임에 틀림없었다. 그들의 방만한 대화 모습을 보고 우리를 미행하는 특무들이 아니라는 것은 쉽게 확인할 수 있었다.

그래도 출국 사열대로 가려면 그 옆을 통과해야만 하는데 나로서는 여간 고통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그 옆을 지나면서 나는 그들과 눈이 마주치지 않기 위해 김 선생 등 뒤를 바짝 따라붙어 그의 바짓자락만 내려다보며 뒤를 따랐다. 마치 그 남조선 남자들이 KAL 858기에 탔던 사람들로 되살아와 우리를 알아볼 것 같은 두려움이 일었다. ‘저 사람들이 자기들 짐을 놓고 내렸던 사람들이다' 하고 곧 우리를 붙들 것처럼 긴장이 되었다.

긴장된 모습을 숨기고 태연자약하려고 애썼지만 발을 떼기조차 힘들 정도로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다. 자칫 잘못하면 그 자리에 그냥 주저앉게 될 것 같았다. 다행히 그들은 우리 따위에게는 관심도 없이 자기네들 이야기에만 열중하고 있었다. 무엇이 그리 재미있는지 깔깔거리는 중이었다. 마침내 우리는 출국 사열대 앞에 서서 떨리는 손으로 여권과 출국 카드를 내밀었다. “제발...무사히 이곳을 빠져 나갈 수 있다면....”

간절한 마음만큼이나 온몸이 빳빳이 굳어지는 느낌이었다.

초조한 순간이었다. “죠또마떼 구다사이.

시라베루 아리마쓰 까라네..” 유창한 그 일본 말 소리에 마치 하늘이 무너져 내려앉는 것 같았다.

나레이션 :대남공작원 김현희의 고백, 랑독에 박수현이였습니다.

Learn languages from TV shows, movies, news, articles and more! Try LingQ for FREE

눈물의 고백, 서른 여섯 번째 |confession||thirty-sixth| Bekenntnisse der Tränen, Sechsunddreißig Confession of Tears, the thirty-sixth 流泪的告白,第三十六

[...]

"눈물의 고백, 서른 여섯 번째" tearful|confession|thirty|thirty-sixth|

우리는 아침식사도 못하고 누구에게 뒤쫓기듯 황급히 리젠시 인터콘티넨탈 호텔을 빠져 나왔다. |||anyone|as if being chased|hastily|Regency|Intercontinental|Regency Intercontinental hotel||I left

복도에서도 로비에서도 우리를 붙드는 사람은 없었다. ||us|holding||there was not There was no one holding us either in the hallway or in the lobby. [...]

누군가가 조금만 관심 깊게 관찰했다면 낌새를 느꼈을 것이다. someone|a little|interest|closely|had observed|signs|would have felt|would

아무리 침착하려고 애를 써도 우리는 자꾸 허둥댔고 누가 봐도 도망치는 꼴이 틀림없었으리라. no matter how|to remain calm||I try|||flustered|||running away|sight|was bound to be No matter how hard we tried to stay calm, we kept panicking, and it must have looked like we were clearly fleeing. 택시에 오르면서도 혹시 이 차가 경찰의 감시용 택시가 아닌가 의심이 들어 택시 운전수의 표정을 살폈다. a taxi|getting into|||||surveillance|||doubt|||driver's||I observed Even as I got into the taxi, I doubted whether this car was a police surveillance taxi, so I observed the taxi driver's expression. 공항으로 달리는 택시 안에서 나는 두려움도 두려움이지만 도망자의 외로움 때문에 몸이 떨려왔다. |running||||fear|fear|fugitive||||was trembling In the taxi racing to the airport, I felt my body trembling not only from fear but also from the loneliness of being a fugitive. 김 선생도 나도 아무 말이 없었다. Mr. Kim and I didn't say anything. 어떤 말도 소용이 없었고 서로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use|||||| Any words were useless and didn't help each other at all. 입 밖으로 말하지 않아도 우리는 서로의 마음속까지 다 알고 있었다. |outside||||||everything|knew| Even without speaking out loud, we both knew each other's feelings completely. 두 사람의 심정이 똑같았기 때문에 말을 하기조차 두려웠던 것이다. ||feelings||||even to speak|was afraid| The two people's feelings were exactly the same, so they were even afraid to speak. [...] [...]

내 손은 줄곧 말보로 담배갑에 가있었다. ||constantly|Marlboro|cigarette pack|was My hand was constantly on the Marlboro cigarette pack.

그 담배갑이 손에 닿아 있으면 조금은 마음이 안정되었다. |cigarette pack||||||calmed When the pack of cigarettes touched my hand, I felt a little more at ease. 최악의 사태가 발생하면 이것만이 나를 지켜주고 비밀을 보장해 줄 수 있는 유일한 방패막이였기 때문이다. worst|situation||this alone||||guarantee||||only|shield| Because this was the only shield that could protect me and guarantee my secret if the worst-case scenario occurred. 어젯밤에 벌어진 일로 미루어보아 우리가 이곳을 무사히 빠져 나갈 것 같지가 않았다. |that occurred||considering|||safely||||| Given what happened last night, it didn't seem like we would be able to get out of here safely. 베오그라드에서 헤어졌던 최과장일행과 재접선 하기로 약정된 비엔나까지 간다는 일이 현 상황으로서는 거의 불가능하다는 느낌이 와 닿았다. in Belgrade||Manager Choi's party|reconnection||agreed|||||current situation|||||came The thought of going to Vienna, where we had agreed to reconnect with Manager Choi and his party, felt almost impossible under the current circumstances. 입안에 침이 마르고 입술이 바싹 타들어 갔다. ||drying||dry|burning| My mouth got dry and my lips were scorched. 이성과 침착을 되찾기 위해 다른 생각을 해보려고 애썼지만 허사였다. |||||||I tried|was futile I tried hard to think of something else to regain my reason and composure, but it was in vain.

별 탈 없이 공항에 도착하자 김 선생이 수속을 서둘렀다. |incident||||||check-in| When we arrived at the airport without any trouble, Mr. Kim hurried with the check-in. 로마로 떠나는 알리아 항공기에 탑승하기만 하면 일단은 성공하는 것이었다. |||airplane|boarding|||| As long as they boarded the Alia flight to Rome, it was a success. 김선생이 수속 절차를 밟는 동안 나는 공항 안의 상황에 신경을 쓰며 미행자나 남조선 특무가 따라붙지 않았나를 살펴야 했다. |processing|processing|following||||||||a follower||agent|was following|whether|I had to watch| While Mr. Kim was going through the procedures, I had to pay attention to the situation inside the airport and check if any followers or South Korean agents were trailing behind. 출국 사열대 쪽으로 왁자지껄하는 조선 말 소리가 들려와 바짝 긴장한 채 그 쪽을 보았다. |inspection area||chattering|||||tense||tense||| I heard a loud noise in Korean coming from the departure inspection area and looked over there, tense.

남자 7~8명이 웃어가며 떠들어 대고 있었다. |||talking|talking| There were about 7 to 8 men laughing and chatting. 한눈에 그들이 남조선 사람임을 알아보았다. at a glance|||people| 공화국 사람이라면 우리 같은 공작원이나 특수 신분이 아니고는 반드시 왼쪽 가슴에 김일성 초상을 모셔야 하는데 그들의 가슴에는 그것이 없었다. |||||||||||Kim Il-sung|portrait|must display||||| If they are citizens of the Republic, unlike us agents or those with special status, they must display the portrait of Kim Il-sung on the left side of their chests, but that was absent from their chests. 또 공화국 사람들이라면 외국에 나왔다고는 하지만 그토록 자연스럽고 활달하게 행동할 리가 없고 머리에 찌꾸를 발라 올백으로 넘긴 차림이 아닌 것으로 보아도 남조선 사람임에 틀림없었다. ||||||so||lively|||||pomade|putting on|slicked back|slicked back|appearance|||||| Also, although they are said to be from the Republic, they could not be acting so naturally and exuberantly, and it was clear that they were definitely South Koreans, given that they were not dressed with hair slicked back and with sticky hair wax. 그들의 방만한 대화 모습을 보고 우리를 미행하는 특무들이 아니라는 것은 쉽게 확인할 수 있었다. |slack|||||following|agents|||||| By observing their casual conversation, it was easy to confirm that they were not special agents following us.

그래도 출국 사열대로 가려면 그 옆을 통과해야만 하는데 나로서는 여간 고통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inspection line||||I had to pass||for me|particularly|painful||was not Still, to go to the departure inspection line, I had to pass right next to it, which was quite painful for me. 그 옆을 지나면서 나는 그들과 눈이 마주치지 않기 위해 김 선생 등 뒤를 바짝 따라붙어 그의 바짓자락만 내려다보며 뒤를 따랐다. ||||||making eye contact||||||||I followed closely||pant leg||| As I passed by, I followed closely behind Mr. Kim to avoid making eye contact with them, only looking down at the hem of his pants. 마치 그 남조선 남자들이 KAL 858기에 탔던 사람들로 되살아와 우리를 알아볼 것 같은 두려움이 일었다. ||||||||coming back|||||| It felt as if the South Korean men who had boarded KAL 858 had come back to life and would recognize us, instilling a sense of fear. ‘저 사람들이 자기들 짐을 놓고 내렸던 사람들이다' 하고 곧 우리를 붙들 것처럼 긴장이 되었다. ||||||||||to grab||| 'Those people are the ones who got off with their luggage,' and I felt tense as if they would soon grab us.

긴장된 모습을 숨기고 태연자약하려고 애썼지만 발을 떼기조차 힘들 정도로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다. |||to appear calm|||to take a step||||trembling|trembled I tried to hide my tense appearance and remain calm, but my legs were shaking so much that it was hard to even take a step. 자칫 잘못하면 그 자리에 그냥 주저앉게 될 것 같았다. if I'm not careful|||||I would just sit down||| I felt as if I might just collapse right there. 다행히 그들은 우리 따위에게는 관심도 없이 자기네들 이야기에만 열중하고 있었다. |||people like us|||themselves||immersed| Fortunately, they didn't care about anything like us, they were just talking about themselves. 무엇이 그리 재미있는지 깔깔거리는 중이었다. |so||giggling| I was chatting about what was so fun. 마침내 우리는 출국 사열대 앞에 서서 떨리는 손으로 여권과 출국 카드를 내밀었다. ||||||trembling|||||presented “제발...무사히 이곳을 빠져 나갈 수 있다면....” Please... if I can safely get out of here....

간절한 마음만큼이나 온몸이 빳빳이 굳어지는 느낌이었다. earnest|heart|my body|stiffly|becoming stiff| As desperate as my heart was, my whole body felt like it was stiffening.

초조한 순간이었다. anxious| It was a tense moment. “죠또마떼 구다사이.

시라베루 아리마쓰 까라네..” 유창한 그 일본 말 소리에 마치 하늘이 무너져 내려앉는 것 같았다. |||||as if||collapsing|falling|| The fluent sound of the Japanese language felt as if the sky was collapsing.

나레이션 :대남공작원 김현희의 고백, 랑독에 박수현이였습니다. ||||Langdok| Narration: This was the confession of Kim Hyun-hee, a South Korean agent, as Park Soo-hyu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