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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김영하의 ‘책 읽는 시간’ 팟캐스트 (Reading Time podcast), Episode 28 - 박완서, “그리움을 위하여” - Part 1

Episode 28 - 박완서, “그리움을 위하여” - Part 1

박완서 [그리음을 위하여]

올 겨울 추위는 유별나다. 눈도 많이 왔다. 스키캠프 간 손자들한테서 걸려온 전화 목소리가 낭랑하다. 눈다운 눈이 안 올 때는 제설기로 만든 눈으로 스키를 탄다는 걸 알고 부터는 아이들을 스키장에 보내는 걸 마뜩찮아 했는데 오늘은 하늘이 내리는 눈으로 스키도 타고 썰매도 탈 생각을 하니 나도 기분이 좋다. 집 앞에 숲이 있어 바라보는 눈 경치도 기막히다. 그래도 나는 눈이 무섭다. 친정 어머니가 금년 처럼 폭설이 내린 해에 눈에서 미끄러져 엉치뼈가 망가진 후 노인으로는 견디기 어려운 수술을 여러 번 저텼지만 결국 보행의 자유는 회복하지 못하고 10년 동안이나 집안에 갖혀 지내다가 돌아가셨다. 지금 내 나이가 그 지경을 당하실 때의 어머니의 나이와 같다. 노후에 보행의 자유를 잃는 다는 게 어떤 것이라는 걸 알기 때문에 나는 눈만 오면 미리 집안에 갖혀 지내기로 작정을 하고 있다. 죽는 날 까지 잃고 싶지 않은 가장 소중한 걸 대라면 서슴치 않고 보행의 자유를 대겠다. 어머니 돌아가실 때에도 눈이 많이 왔다. 어머니는 한겨울에 돌아가셨다. 영구차가 공원묘지 언덕길을 오르기가 여간 아슬아슬하지 않았다. 노인들이 춥도 덥도 않을 때 죽기를 소망하는 것도 봄, 가을이라고 죽기가 덜 서럽거나 덜 힘들어서 그렇겠는가. 다 자식들을 생각해서지. 그러나 노인들의 소망과는 달리 혹한이나 혹서가 계속될 때 노인들의 돌연사가 가장 많다고 한다. 지난 여름은 해마다 기온이 상승한다는 지구온난화 현상을 감안하더라도 예년에 없는 찜통더위가 입추, 처서 지나고서 까지 꿇어들 줄 몰랐다. 작년에 그 유난스러운 더위가 이 엄동설한에도 문득문득 생각나며 가슴이 아려오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나에게는 옥탑방에 사는 사촌동생이 하나있다. 둘다 환갑, 진갑 다 지나 같이 늙어가는 처지지만 동생은 나보다 여덟살이나 아래다. 볼이 늘 발그레하고 주름살이라곤 없는데 살피듬 까지 좋아서 오십대 초반으로 밖에 안 보인다. 그러나 겨울나기는 많이 힘들어 한다. 기온이 영하로 내려가면 무거운 것도 못 들고 걷는 것도 느릿느릿 절룩거린다. 동생말에 의하면 날씨만 추워지면 온몸의 마디가 안 쑤시는 데가 없다고 한다. 동생은 자기의 이런 병을 '웬수 관절이 또 도졌다' 또는 '이놈의 관절만 없다면! '이라며 마치 관절을 몹쓸병 이름처럼 표현한다. 하긴, 집에온 손님들이 시국 얘기를 하면서 IMF를 졸업했나 말았나 설왕설래하는 소리를 듣더니 부엌에서 나한테 '아함프가 어느 대학이름이냐'고 물었으니까. 우리집에 손님으로 와본 사람은 다들 동생을 얹혀사는 군식구인줄 안다. 그러나 동생이 붙박이 식모취급하는 건 싫어서 사촌동생이라는 것을 분명히 해두었기 때문에 어느틈에 이모님이라고 분명히 해두었다. 동생이 매일 오는 건 아니다. 보통 파출부 처럼 일주일에 두번 요일을 정해놓고 청소와 빨래, 밑반찬 등을 해주고 가지만 손님을 청할 일이 있을 때나 명절 제사같은 때는 수시로 부를수가 있다. 요새 젊은이들을 제자식 백일이나 돌잔치 까지 호텔이나 이름난 요리집에서 하지만, 나는 그 꼴 못 봐준다. 밖에서 점심이라도 한 끼 사야할 일이 있을 때 뿐 아니라, 누가 나의 점심을 사고 싶다고 할 때 까지도 나가기도 귀찮으니 집으로 오라고 부르곤 하는 것도 아마 '그 꼴 못 봐준다'는 강한 의사표시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집에서 밥 한끼 먹이는게 어디 보통일인가. 믿는 구석이 없다면 감히 엄두도 못 낼일이다.

동생은 음식솜씨가 좋다. 구매구매 해놓는 밑반찬은 누가 맛있다고 칭찬만 해주면 아낌없이 덜어줄 수 있을 만큼 넉넉하기도 하다. 그러나 손님들은 그게 다 내 솜씨인 줄 안다. 자식들이 잔손 갈 나이를 벗어날 무렵부터 시작해서 근 삼십년 가까이 이어져 오는 동창계 친구들 조차도 내가 탈 차례가 되면 '니 손맛 좀 보게 너희집에서 하자'고 은근히 압력들을 넣는다. 저희들은 집들이 잔치까지도 집 밖에서 하는 주제에... 우리 동창 또래들은 사는 형편들은 제각각이지만 시대를 잘 탔는지, 나이를 먹을 만큼 먹어서 그런지, 호텔 뷔페라면 최고의 식사인줄 알고 웬 떡이냐며 마구 식탐을 부리던 때가 언제적이냐 싶게 다들 입맛이 여간 까다로운게 아니다. 죽을 날이 가까울 수록 고향쪽으로 머리라도 두고 싶어 하듯이 맛의 시간여행을 하고 싶은 거였다. 그른 골동품 혀들이 우리집 음식 맛을 최고로 쳐준다. 하다 못해 씀씀하고 물렁한 무나물 같은 하찮은 것까지 저희들은 죽었다 깨어나도 그 맛을 못 낸다는 거였다. 내가 개성 출신이라는 것 때문에 내 손맛을 그렇게 신비화 시키는 지도 몰랐다. 나는 그런 칭찬이 싫지 않았다. 싫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전통의 맥, 가문의 품격까지 얹어서 평가 받고 있다고 여기고 싶었다. 순전히 칭찬을 듣는 맛에 툭하면 집에서 밥을 먹이고 싶어하는 지도 몰랐다. 촌격스러운 것이란 획일적인 것에 다름아니었다. 그러나 우리 집만의 음식 맛은 김치를 비롯해서 고추장, 된장까지 하나같이 동생의 손맛이지 내 손맛은 아니었다. 나는 뜨끔도 하지 않고 천연덕스럽게 동생의 손맛을 표절하고 있었다.

동생과 나는 사촌간이지만 한집에서 태어났고 한집에서 유년기를 보냈다. 그러나 나는 공부 잘하는 아이로 낙인찍힘으로써 집안 일은 조금도 안 거들고 공부만 하다가 시집을 가게되었다. 시집가서는 살림살이에 집착이 많은 시어머님과의 평화공존을 위해 살림살이에서 겉돌다가 남편의 수입이 늘면서 나 대신 시골서 상경한 소녀를 시어머니 조수로 붙여줌으로써 살림이란 걸 배울 기회를 영영 놓치고 말았다. 내가 시집살이 한 오십 년대는 다들 살기가 지금과는 댈 것 아니게 빈궁했고, 도농간의 격차도 더 심해 집에서 한입이라도 덜려고 도시로 식모살이 오는 소녀들이 넘쳐날 때였다. 공부에 별 취미가 없던 동생은 중학교도 낙방을 해 초등학교 졸업에 그쳤다. 숙부에겐 맞딸인 동생은 몸 약한 숙모를 거들어 집안일을 도맡아하고 (not clear) 유부남하고 열렬한 연애를 해서 숙부 내외를 기절초풍하게 놀래키다가 결국은 그 남자를 이혼시키고 정식 부부가 되었다. 각각 딴 집안으로 출가외인이 돼버린 우리는 일년에 한, 두 번 만날까 말까한 사이가 되어 제 각기 자식과 살림을 늘리며 살다가 그 자식들이 혼기가 지나게 되면서 다시 친하게 지내게 되었다.

시집살이의 부담이 없어진 대신 부모나 자식의 경조사에 동원할 인력이 필요할 나이가 되면 평소 격조하게 지내던 친척이나 동창이 아쉬워지게 마련이다. 고등학교 때 단짝 전화번호를 알아내어 긴 통화를 하거나, 더 발전하여 친목계를 만들기도 하고 무리지어 관광길에 나서보기도 하는게 바로 이런 중년의 끝트머리 나이이다. 나하고 동생하고도 그런 나이가 되어 서로 찾을 것도 없이 저절로 가까워진건 동생의 남편이 빚 보증을 잘못 서서 살던 집에서 나앉고 나서 부터였다. 넉넉치 못하다는 건 전서부터 알고 있었지만 노후의 집까지 없어질 줄은 몰랐다. 동생은 남매를 낳을 때 까지 시부모와 큰 동서 및에서 고된 시집살이를 하다가 큰 형이 혼자서 물려받은 시골 땅이 오르는 바람에 겨우 작은 집을 하나 얻어가지고 세간을 날 수가 있었다. 동생의 남편은 착하기만 하고 경제적으로는 무능했기 때문에 동생은 그 집을 유일한 남편 덕으로 알고 여간 대견해 한게 아니였다. 집에 생기고 부터 친정 나들이도 잦아졌고, 별로 큰 집도 아닌데도 방방히 세만 줘도 먹고 사는 건 문제 없다고 친정 부모를 안심시켰다고 한다. 집을 날린 건 다행히 남매를 다 결혼시킨 후 였다. 제대로 가르치치도, 잘해 보내지도 못한 사회 초년생들이라 모셔 갈 만한 여력은 없었지만 그래도 효성들은 지극해서 힘을 모아 마련한 모곗돈으로 만들어준 전셋방이 우리 아파트 단지에서 전철로 두 정거장 밖에 떨어지지 않은 단독주택단지 옥탑방이었다. 나는 이사갈 때 딱 한번 가봤는데 지은지 얼마 안 되는 집이라 옥상으로 통하는 야외 계단만 좀 위태로워 보일 뿐, 널찍하고 깨끗한 방에 주방과 수세식 화장실이 딸려있을 뿐 아니라, 옥상을 온통 마당처럼 쓸 수 있어서 셋방이라는 구차스러운 느낌이 안 들었다. 동생이 그 동네를 택한 건 바로 이웃에 큰 아들 내외가 살고 있어서 였다. 그들은 구멍가게보다 조금 나은 미니슈퍼를 경영하면서 가게에 딸린 어둡고 작은 방에서 살림을 하는데 며느리는 임신중이었다. 장차 아이도 봐주고 아들이 배달나가면 가게도 봐주고 싶어 아들 곁으로 온 거였다. 그러나 친구한테 속아 집까지 들어먹은 충격으로 제부가 몸져 눕게 되고 그 약값이 만만치 않자 동생은 나한테 파출부라도 나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구차한 소리를 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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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 28 - 박완서, “그리움을 위하여” - Part 1 |パク・ワンソ||| Episode 28 - Wanseo Park, "For Longing" - Part 1 第 28 集 - 樸完緒《渴望》 - 第 1 部分

박완서 [그리음을 위하여] Wanseo Park [For drawing] パク・ワンソ『グリウムのために』

올 겨울 추위는 유별나다. The cold this winter is unusual. 今年の冬の寒さは特別だ。 눈도 많이 왔다. It snowed a lot. 雪もたくさん降った。 스키캠프 간 손자들한테서 걸려온 전화 목소리가 낭랑하다. ||||||明るい The voice of the phone call from the grandchildren who went to the ski camp is loud. スキーキャンプに行った孫たちからの電話の声が響いている。 눈다운 눈이 안 올 때는 제설기로 만든 눈으로 스키를 탄다는 걸 알고 부터는 아이들을 스키장에 보내는 걸 마뜩찮아 했는데 오늘은 하늘이 내리는 눈으로 스키도 타고 썰매도 탈 생각을 하니 나도 기분이 좋다. |||||||||||||||||||||||||そり|する|考え|すると||| Since I knew that I was skiing with snow made from a snowplow when there wasn't snowy snow, I was afraid to send my kids to the ski resort. 雪らしい雪が降らない時は除雪機で作った雪でスキーをするということを知ってからは子供たちをスキー場に送るのが気が進まなかったが、今日は空から降る雪でスキーもスノーボードも楽しめると思うと私も気分が良い。 집 앞에 숲이 있어 바라보는 눈 경치도 기막히다. |||||||素晴らしい There is a forest in front of the house, so the view of the snow is amazing. 家の前に森があり、見える雪の景色も素晴らしい。 그래도 나는 눈이 무섭다. それでも私は雪が怖い。 친정 어머니가 금년 처럼 폭설이 내린 해에 눈에서 미끄러져 엉치뼈가 망가진 후 노인으로는 견디기 어려운 수술을 여러 번 저텼지만 결국 보행의 자유는 회복하지 못하고 10년 동안이나 집안에 갖혀 지내다가 돌아가셨다. ||||||||滑って|尾骨|壊れた||老人としては||||||した||歩行の|自由は|回復し|||||閉じ込められて|過ごして|亡くなった After his mother slipped in the snow and damaged the sacrum in a year of heavy snow like this year, she performed several surgeries that were difficult for the elderly to endure, but in the end, she was stuck in the house for 10 years and died. 親の母が今年のように大雪が降った年に雪で滑って尾骨を損傷した後、老人には耐え難い手術を何度も受けたが、結局歩行の自由は回復せず、10年間も家の中に閉じ込められて過ごし、亡くなった。 지금 내 나이가 그 지경을 당하실 때의 어머니의 나이와 같다. |||||当たる|||| My age right now is the same as my mother's when she was hit by it. 今の私の年齢は、その時の母の年齢と同じだ。 노후에 보행의 자유를 잃는 다는 게 어떤 것이라는 걸 알기 때문에 나는 눈만 오면 미리 집안에 갖혀 지내기로 작정을 하고 있다. ||||||||||||||||||決心|| 老後に歩行の自由を失うということがどんなことか分かっているので、私は雪が降るたびに前もって家の中に閉じ込めておくことに決めています。 죽는 날 까지 잃고 싶지 않은 가장 소중한 걸 대라면 서슴치 않고 보행의 자유를 대겠다. If you put the most precious thing you don't want to lose until the day you die, I will give you the freedom of walking without hesitation. 死ぬ日まで失いたくない最も大切なものを挙げるなら、ためらうことなく歩行の自由を挙げます。 어머니 돌아가실 때에도 눈이 많이 왔다. |亡くなる|時にも||| 母が亡くなるときも雪がたくさん降っていました。 어머니는 한겨울에 돌아가셨다. |真冬に| 母は真冬に亡くなった。 영구차가 공원묘지 언덕길을 오르기가 여간 아슬아슬하지 않았다. It wasn't even breathtaking for the hearse to climb the hillside of the park cemetery. 霊柩車が公園の墓地の丘の道を登るのは非常に危ういことだった。 노인들이 춥도 덥도 않을 때 죽기를 소망하는 것도 봄, 가을이라고 죽기가 덜 서럽거나 덜 힘들어서 그렇겠는가. ||暑い||||||||||||| Perhaps the old people wishing to die when it is neither cold nor hot is because spring and autumn are less sad or hard to die. 老人が寒くもなく暑くもない時に死を望むのは、春や秋だから、死ぬのがあまり悲しくなかったり、あまり辛くなかったりするからだろうか。 다 자식들을 생각해서지. ||考えて It's all because of their children. 子どもたちのことを考えてのことです。 그러나 노인들의 소망과는 달리 혹한이나 혹서가 계속될 때 노인들의 돌연사가 가장 많다고 한다. ||||厳寒や|||||||| しかし、高齢者の願望とは裏腹に、厳冬や猛暑が続くと高齢者の突然死が最も多いと言われています。 지난 여름은 해마다 기온이 상승한다는 지구온난화 현상을 감안하더라도 예년에 없는 찜통더위가 입추, 처서 지나고서 까지 꿇어들 줄 몰랐다. ||||||現象を||||蒸し暑さ|立秋|処暑||||| 去年の夏は、毎年気温が上昇する地球温暖化現象を考慮しても、例年にはない蒸し暑さが立秋や処暑を過ぎても収まる気配がありませんでした。 작년에 그 유난스러운 더위가 이 엄동설한에도 문득문득 생각나며 가슴이 아려오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痛む||| What is the reason that the unusual heat last year suddenly reminds me of this harsh snowstorm, and my heart hurts? 昨年の異常な暑さがこの厳冬にもふとふと思い出されて胸が痛むのは、何故だろうか?

나에게는 옥탑방에 사는 사촌동생이 하나있다. I have a cousin brother who lives in the rooftop room. 私には屋上部屋に住んでいるいとこが一人いる。 둘다 환갑, 진갑 다 지나 같이 늙어가는 처지지만 동생은 나보다 여덟살이나 아래다. ||||||||||八歳も| Both of them are aging with their sixtieth birthday and Jingap, but their younger brother is eight years younger than me. 二人とも還暦や真還暦を過ぎて一緒に年を取っている立場だが、いとこは私より八歳も下だ。 볼이 늘 발그레하고 주름살이라곤 없는데 살피듬 까지 좋아서 오십대 초반으로 밖에 안 보인다. |||しわなんて||||||||| My cheeks are always bright and there is no wrinkles, but I can only see them in my early fifties because I have good skin care. 頬はいつも赤く、しわも全くなく、肌の艶も良いので50代前半にしか見えない。 그러나 겨울나기는 많이 힘들어 한다. |冬越しは||| However, it is very difficult to get through winter. しかし、冬を越すのはとても大変だ。 기온이 영하로 내려가면 무거운 것도 못 들고 걷는 것도 느릿느릿 절룩거린다. ||||||||||足を引きずる 気温が氷点下になると、重いものも持てず、歩くのもゆっくりと足を引きずる。 동생말에 의하면 날씨만 추워지면 온몸의 마디가 안 쑤시는 데가 없다고 한다. |によれば|天気だけ||全身の|関節||||| According to his brother's words, when the weather gets cold, there is no place where the joints of the body do not ache. 동생은 자기의 이런 병을 '웬수 관절이 또 도졌다' 또는 '이놈의 관절만 없다면! |||||||動いた|||| 妹は自分のこの病気を「また関節が悪化した」とか「このやつの関節さえなければ!」と言っています。 '이라며 마치 관절을 몹쓸병 이름처럼 표현한다. 'And expresses the joint as if it were the name of a bad disease. 'と言いながら、まるで関節をひどい病名のように表現する。 하긴, 집에온 손님들이 시국 얘기를 하면서 IMF를 졸업했나 말았나 설왕설래하는 소리를 듣더니 부엌에서 나한테 '아함프가 어느 대학이름이냐'고 물었으니까. ||||||||したのか|議論する|||||||| Well, I heard the customers who came to the house talking about the state of the day and wondering if they had graduated from the IMF or not, and they asked me in the kitchen,'Which university is Ahamp?' そういえば、家に来た客が時局の話をしながらIMFを卒業したのかどうか議論しているのを聞いて、台所で私に『アハンプってどこの大学名なの?』と聞いてきた。 우리집에 손님으로 와본 사람은 다들 동생을 얹혀사는 군식구인줄 안다. ||来たことがある|||||| 我が家に客として来た人は皆、弟を養っている家族の一員だと思っている。 그러나 동생이 붙박이 식모취급하는 건 싫어서 사촌동생이라는 것을 분명히 해두었기 때문에 어느틈에 이모님이라고 분명히 해두었다. ||||||いとこである|||しておいた||いつの間にか|おばさんと|| しかし、妹が私を家政婦のように扱うのは嫌なので、いとこであることをはっきりさせておいたので、いつの間にか「おばさん」と呼んでもらうようにしていた。 동생이 매일 오는 건 아니다. 弟(おとうと)|||| 妹が毎日来るわけではない。 보통 파출부 처럼 일주일에 두번 요일을 정해놓고 청소와 빨래, 밑반찬 등을 해주고 가지만 손님을 청할 일이 있을 때나 명절 제사같은 때는 수시로 부를수가 있다. ||||||決めておいて|||||||||||||お祭りのような||随時|| 普通はパートタイマーのように週に2回曜日を決めて掃除や洗濯、切り干し大根などをして帰るが、客を呼ぶ必要がある時や祝祭の祭事などの時はいつでも呼ぶことができる。 요새 젊은이들을 제자식 백일이나 돌잔치 까지 호텔이나 이름난 요리집에서 하지만, 나는 그 꼴 못 봐준다. |若者たちを|||||||||||||見ていられない These days, young people go to a hotel or a famous cookery for a hundred days or a first birthday party, but I can't look at it. 밖에서 점심이라도 한 끼 사야할 일이 있을 때 뿐 아니라, 누가 나의 점심을 사고 싶다고 할 때 까지도 나가기도 귀찮으니 집으로 오라고 부르곤 하는 것도 아마 '그 꼴 못 봐준다'는 강한 의사표시인지도 모르겠다. ||||買わなければ|||||||||||||||面倒くさい||||||||||||| 그러나 집에서 밥 한끼 먹이는게 어디 보통일인가. |||一食||| However, where is it common to feed a meal at home? 믿는 구석이 없다면 감히 엄두도 못 낼일이다. ||||||するべきこと 信じるところがなければ、恐れ多くて考えもできないことだ。

동생은 음식솜씨가 좋다. |料理の腕| My younger brother is good at food. 妹は料理が得意だ。 구매구매 해놓는 밑반찬은 누가 맛있다고 칭찬만 해주면 아낌없이 덜어줄 수 있을 만큼 넉넉하기도 하다. |しておく|おかずは||||||||||| The side dishes that you buy and buy are generous enough to be generously relieved if someone praises you for being delicious. 購入しておいたおかずは、誰かが美味しいと褒めてくれれば、惜しみなく分けてあげるほどたくさんある。 그러나 손님들은 그게 다 내 솜씨인 줄 안다. |||||腕前|| But the guests know that's all my skill. しかし、客たちはそれがすべて私の腕前だと思っている。 자식들이 잔손 갈 나이를 벗어날 무렵부터 시작해서 근 삼십년 가까이 이어져 오는 동창계 친구들 조차도 내가 탈 차례가 되면 '니 손맛 좀 보게 너희집에서 하자'고 은근히 압력들을 넣는다. ||行く|年齢を|||||||||||||||||||||||プレッシャーを| 子供たちが気を使う年齢を過ぎる頃から始まり、約三十年近く続いている同級生の友人たちさえも、私の番になると「お前の味を見せてくれ、君の家でやろう」とやんわり圧力をかけてくる。 저희들은 집들이 잔치까지도 집 밖에서 하는 주제에... 우리 동창 또래들은 사는 형편들은 제각각이지만 시대를 잘 탔는지, 나이를 먹을 만큼 먹어서 그런지, 호텔 뷔페라면 최고의 식사인줄 알고 웬 떡이냐며 마구 식탐을 부리던 때가 언제적이냐 싶게 다들 입맛이 여간 까다로운게 아니다. ||宴会まで|||||||同級生たちは||状況|それぞれ|時代を||乗ったのか|||||||バイキングなら||||どうして|떡がどうしたのかと||||||||||| Our classmates, even the feasts, are on themes outside the house... Our classmates live in different situations, but whether they're well past the times, whether they're old enough, and they thought it was the best meal at a hotel buffet, and they hung out for some rice cake. Everyone's appetite isn't so tricky to wonder when the time is right. 私たちは家の外でさえ家の新築祝いや宴会をするのに、私たちの同級生の同年代はそれぞれの生活状況が異なるものの、時代をうまく乗り越えたのか、年齢を重ねたからなのか、ホテルのビュッフェが最高の食事だと思っていて、いつの時点からか、皆が食に対してとてもあくの強い舌を持っている。 죽을 날이 가까울 수록 고향쪽으로 머리라도 두고 싶어 하듯이 맛의 시간여행을 하고 싶은 거였다. ||||故郷の方へ|頭でも|||ように|味の|||| As the day of my death was near, I wanted to travel in taste as if I wanted to leave my head toward my hometown. 死ぬ日が近くなるほど、故郷の方に頭を向けたくなるように、味の時間旅行をしたいと思っていた。 그른 골동품 혀들이 우리집 음식 맛을 최고로 쳐준다. |アンティーク|||||| Bad antique tongues taste our food to the best. 彼らの古いアンティークの舌が、私たちの家の料理の味を最高にしてくれる。 하다 못해 씀씀하고 물렁한 무나물 같은 하찮은 것까지 저희들은 죽었다 깨어나도 그 맛을 못 낸다는 거였다. する||||蕪菜||||||||||| せめて、かすみ草や柔らかい大根の葉のようなつまらないものさえ、私たちは死んでも生き返ってもその味を出すことができないということだった。 내가 개성 출신이라는 것 때문에 내 손맛을 그렇게 신비화 시키는 지도 몰랐다. ||||||手の味||||| 私が開城出身だということで、私の手料理がそんなに神秘的に思われるとは知らなかった。 나는 그런 칭찬이 싫지 않았다. ||称賛|| I didn't like that compliment. 私はそんな褒め言葉が嫌ではなかった。 싫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전통의 맥, 가문의 품격까지 얹어서 평가 받고 있다고 여기고 싶었다. ||||伝統の|脈||||評価|||| 嫌ではない程度ではなく、伝統の流れや家の品格まで加味して評価されていると思いたかった。 순전히 칭찬을 듣는 맛에 툭하면 집에서 밥을 먹이고 싶어하는 지도 몰랐다. 純粋に褒められることの味が忘れられず、ふと家でご飯を食べさせたくなっていたのかもしれない。 촌격스러운 것이란 획일적인 것에 다름아니었다. ||||違いではなかった 田舎臭いとは、画一的なものに他ならなかった。 그러나 우리 집만의 음식 맛은 김치를 비롯해서 고추장, 된장까지 하나같이 동생의 손맛이지 내 손맛은 아니었다. ||家だけの|||||コチュジャン||||||| しかし、我が家だけの料理の味はキムチをはじめ、コチュジャン、味噌まで全て弟の手の味であり、私の手の味ではなかった。 나는 뜨끔도 하지 않고 천연덕스럽게 동생의 손맛을 표절하고 있었다. |||||弟の||パクって| 私は全く気にせずに、自然に妹の手の味を盗んでいた。

동생과 나는 사촌간이지만 한집에서 태어났고 한집에서 유년기를 보냈다. My younger brother and I are cousins, but they were born in one house and spent childhood in one house. 妹と私はいとこですが、同じ家で生まれ、同じ家で幼少期を過ごしました。 그러나 나는 공부 잘하는 아이로 낙인찍힘으로써 집안 일은 조금도 안 거들고 공부만 하다가 시집을 가게되었다. |||||烙印を押されることによって||||||||| However, as I was stigmatized as a child who studied well, I didn't help with the housework at all, but only studied and married. しかし、私は勉強ができる子としてレッテルを貼られ、家の手伝いは全くせずに勉強だけをして結婚することになった。 시집가서는 살림살이에 집착이 많은 시어머님과의 평화공존을 위해 살림살이에서 겉돌다가 남편의 수입이 늘면서 나 대신 시골서 상경한 소녀를 시어머니 조수로 붙여줌으로써 살림이란 걸 배울 기회를 영영 놓치고 말았다. |||||||||||増えながら|||||少女を|義母|助手として|付けてくれることによって|||||永遠に|| As my husband's income increased, I forever missed the opportunity to learn about living by giving a girl who went to Tokyo instead of me as her mother-in-law assistant as her husband's income increased. 嫁に行ってからは、家事にこだわりの強い義母との平和共存のために家事から逃れていたが、夫の収入が増えたことで、私の代わりに田舎から上京した少女を義母の助手に付けることによって、家事を学ぶ機会を永遠に失ってしまった。 내가 시집살이 한 오십 년대는 다들 살기가 지금과는 댈 것 아니게 빈궁했고, 도농간의 격차도 더 심해 집에서 한입이라도 덜려고 도시로 식모살이 오는 소녀들이 넘쳐날 때였다. ||||||||||||都市と農村の間の|格差も||ひどく||一口でも|減らそうとして||家政婦生活|||溢れていた|時だった 私が嫁に行った1950年代は、みんなが今とは比べ物にならないくらい貧しかったし、農村と都市の格差もさらにひどく、家で一口でも少なくするために都会で女中として働く少女たちが溢れていた。 공부에 별 취미가 없던 동생은 중학교도 낙방을 해 초등학교 졸업에 그쳤다. ||||||不合格|||| 勉強にあまり興味がなかった妹は中学校も不合格となり、小学校卒業で終わってしまった。 숙부에겐 맞딸인 동생은 몸 약한 숙모를 거들어 집안일을 도맡아하고 (not clear) 유부남하고 열렬한 연애를 해서 숙부 내외를 기절초풍하게 놀래키다가 결국은 그 남자를 이혼시키고 정식 부부가 되었다. おじさんには||弟は|||||家事を|引き受けて|||既婚者と|熱烈な|恋愛|||夫婦を|仰天させる|驚かせて|結局|||離婚させて||| 叔父には、弱い体の叔母を助けて家事を全うしている義理の妹がいて(不明)、既婚男性と熱烈な恋愛をして叔父夫婦を驚かせたが、最終的にはその男性を離婚させて正式な夫婦になった。 각각 딴 집안으로 출가외인이 돼버린 우리는 일년에 한, 두 번 만날까 말까한 사이가 되어 제 각기 자식과 살림을 늘리며 살다가 그 자식들이 혼기가 지나게 되면서 다시 친하게 지내게 되었다. |||出家外人|なってしまった|||||||||なった|||子どもと||増やしながら|生きて||||||||| それぞれ別の家に嫁いだ私たちは、年に一、二回会うかどうかという関係になり、各自の子供と生活を広げながら過ごしていたが、その子供たちが結婚適齢期を過ぎると再び親しくなることができた。

시집살이의 부담이 없어진 대신 부모나 자식의 경조사에 동원할 인력이 필요할 나이가 되면 평소 격조하게 지내던 친척이나 동창이 아쉬워지게 마련이다. |||||||動員する|||||普段|格式ばった||||寂しくなる| 嫁いで家事の負担がなくなった代わりに、親や子供の祝い事に動員する人手が必要な年齢になると、普段は疎遠にしていた親戚や同級生が恋しくなるものだ。 고등학교 때 단짝 전화번호를 알아내어 긴 통화를 하거나, 더 발전하여 친목계를 만들기도 하고 무리지어 관광길에 나서보기도 하는게 바로 이런 중년의 끝트머리 나이이다. |||||||||||||||||||中年の|| 高校時代、親友の電話番号を知って長電話したり、さらに発展して親交を深める会を作ったり、グループで観光に出かけたりするのがまさにこの中年の終わりの年齢だ。 나하고 동생하고도 그런 나이가 되어 서로 찾을 것도 없이 저절로 가까워진건 동생의 남편이 빚 보증을 잘못 서서 살던 집에서 나앉고 나서 부터였다. 私と||||||||||||||||||||| 私と弟もそんな年齢になり、互いに探さなくても自然に近づいたのは弟の夫が借金の保証を間違えて、住んでいた家を追い出されてからだった。 넉넉치 못하다는 건 전서부터 알고 있었지만 노후의 집까지 없어질 줄은 몰랐다. |できないという||||||||| 余裕がないことは前から知っていたが、老後の家までなくなるとは思わなかった。 동생은 남매를 낳을 때 까지 시부모와 큰 동서 및에서 고된 시집살이를 하다가 큰 형이 혼자서 물려받은 시골 땅이 오르는 바람에 겨우 작은 집을 하나 얻어가지고 세간을 날 수가 있었다. ||生む|||||||||||||受け継いだ||土地|||||||得て|||| 妹は兄嫁や義理の両親と共に辛い嫁姑生活をしながら、兄が独りで相続した田舎の土地が上昇したおかげで、やっと小さな家を手に入れることができ、生活ができるようになった。 동생의 남편은 착하기만 하고 경제적으로는 무능했기 때문에 동생은 그 집을 유일한 남편 덕으로 알고 여간 대견해 한게 아니였다. |||||||||||||||||ではなかった 妹の夫は優しいだけで経済的には無能だったため、妹はその家を唯一夫のおかげだと思い、かなり誇りに思っていた。 집에 생기고 부터 친정 나들이도 잦아졌고, 별로 큰 집도 아닌데도 방방히 세만 줘도 먹고 사는 건 문제 없다고 친정 부모를 안심시켰다고 한다. ||||||||||||||||||||安心させたと| 家が新しくなってから実家への訪問も頻繁になり、特に大きな家ではないにもかかわらず、家賃を払っても生活には困らないと実家の両親を安心させたそうだ。 집을 날린 건 다행히 남매를 다 결혼시킨 후 였다. ||||||結婚させた|| 家を失ったのは、幸いにも兄妹を全員結婚させた後だった。 제대로 가르치치도, 잘해 보내지도 못한 사회 초년생들이라 모셔 갈 만한 여력은 없었지만 그래도 효성들은 지극해서 힘을 모아 마련한 모곗돈으로 만들어준 전셋방이 우리 아파트 단지에서 전철로 두 정거장 밖에 떨어지지 않은 단독주택단지 옥탑방이었다. ||よく||||||||余力は|||孝成たち|非常に|||||||||||||||||屋上部屋だった しっかりと教えられることも、上手く送り出すこともできなかった社会人初心者たちで、受け入れる余力はなかったが、それでも孝行心は非常に強く、力を合わせて用意してくれた敷金で作ってくれたのは、私たちのアパート団地から電車で2駅離れた一戸建ての屋上部屋だった。 나는 이사갈 때 딱 한번 가봤는데 지은지 얼마 안 되는 집이라 옥상으로 통하는 야외 계단만 좀 위태로워 보일 뿐, 널찍하고 깨끗한 방에 주방과 수세식 화장실이 딸려있을 뿐 아니라, 옥상을 온통 마당처럼 쓸 수 있어서 셋방이라는 구차스러운 느낌이 안 들었다. |引っ越す|||||ジウンジ|どのくらい||||||屋外|階段だけ||危なそう||||きれいな||キッチンと|水洗トイレ||付いている|||||||||アパートという|みすぼらしい||| 私は引っ越しの時に一度だけ行ったが、建てられて間もない家だったので屋上に通じる屋外階段だけが少し危なそうに見えるだけで、広々として清潔な部屋にはキッチンと洋式トイレが付いているだけでなく、屋上を庭のように使えるので、借り部屋という惨めな感じはしなかった。 동생이 그 동네를 택한 건 바로 이웃에 큰 아들 내외가 살고 있어서 였다. |||||||||夫婦||| 弟がその地域を選んだのは、すぐ隣に大きな息子夫婦が住んでいたからだった。 그들은 구멍가게보다 조금 나은 미니슈퍼를 경영하면서 가게에 딸린 어둡고 작은 방에서 살림을 하는데 며느리는 임신중이었다. ||||ミニスーパーを|||||||||嫁は|妊娠中だった 彼らは穴場のお店より少し良いミニスーパーを経営しながら、店に付随する暗くて小さな部屋で暮らしており、嫁は妊娠中だった。 장차 아이도 봐주고 아들이 배달나가면 가게도 봐주고 싶어 아들 곁으로 온 거였다. ||||配達に出たら||||||| 将来的に子供の面倒を見たり、息子が配達に出かけるときには店も見てあげたいと思って息子のそばに来たのだった。 그러나 친구한테 속아 집까지 들어먹은 충격으로 제부가 몸져 눕게 되고 그 약값이 만만치 않자 동생은 나한테 파출부라도 나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구차한 소리를 해왔다. ||騙される|||ショックで|||寝る||||||弟は||パートタイムの家政婦でも|||||情けない|| しかし、友達に騙されて家まで食べられたショックで義兄が病気になり、その薬代が馬鹿にならないので、妹は私にパートでも出られたらいいのにと情けないことを言ってき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