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sode 6 - 장 그르니에 “섬” (Jean Grenier) - Part 3
저는 요즘에 그런 생각을 많이 하는데요. 이런 인터넷 시대에는 많은 리뷰들이 있습니다. 드라마, 뭐 영화, 책, 그런데 남을 칭찬하는 것, 특히 좋은 작품을 좋다고 말하는 것이 참 어렵다 이런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제가 등단한지 얼마 안 됐을 때, 저의 선배 시인이 그런 말을 했어요. 저한테 한 얘기는 아니고, 고수들끼리 얘기를 나누고 있는 것을 제가 옆에서 들었는데, 한사람이 다른 시인한테 그런 얘길 했어요. ‘아 지난번에 신문에 쓴 평 참 좋더라. 잘 읽었다. 아주 잘 썼더라.' 그랬더니 그 얘기를 들을 시인이, '예, 좋은 걸 좋다고 말하기가 참 어렵죠. '라고 말을 했는데, 그때는 그게 무슨 소린지 잘 몰랐어요. 까는 건 좀 쉽다. 그런 뜻이었을 수도 있겠고요. 즉, 흠을 잡아서 비판하는 것은 매우 간단하고 쉬운 일이죠. 이건 아니다라고 말하는 것은 매우 쉽습니다. 그런데 좋은 것이 왜 좋은지를 말하는 데는 여러가지 복잡한, 그리고 고도의 또 이런 어떤 사고력, 또 표현력이 필요하게 됩니다. 와 죽인다! 뭐 모든 것이 다 좋다는 말을 오로지 다 ‘야 죽이는데!'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또 그것으로는 부족하다고 느끼게되는 어떤 사람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남에게 좋다고 말하기 위해서 고심하게 됩니다. 조금더 애를 쓰게 되고요. 그게 쉽지 않는 일입니다. 이 팟캐스트를 듣는 여러분들도 그런 고통을 겪어보신적이 있을거예요. 어떤 영화든 소설이든 뭔가를 사랑하게 됬는데 그것을 친구나 어떤 가까운 사람에게 그것을 설명하고자 할 때, 참 그것은 또 다른 문제죠? 자기가 좋아했을 때는 다른 문제고, 그런 어떤 마음의 고통을 겪습니다. 나의 마음을 움직인 그 정도의 감상을 다른 사람에게 전해주고 싶은데 그것이 쉽지않죠. 그것은 아무리 커뮤니케이션 수단이 발달한다 하더라도 쉽지 않은 일입니다. 최근에 SNS (서비스)같은 것들이 많이 발전하고 있는데 그것에 비해서, 우리의 마음을 전달하는 기술은 지체돼있습니다. 이 지체, 두 기술간의 지체, 그러니까 한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자기의 마음과 진심을 전달하는 기술은 거의 발전하지 않았는데, 그 속도는 엄청나게 빨라졌단 것이죠. 뭐 트위터라던가 이메일이라던가 이런 것들 뭐 엄청나게 빠른속도로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게 만들어 주지만 정작 우리는 우리의 진심 우리의 마음, 내 마음을 움직였던 그 감상들을 남에게 전달하는데 매우 서툽니다. 그래서 이런식의 불균형, 지체들이 저는 현시대의 (저를 포함해서) 많은 인간들이 겪고있는 어떤 큰 문제가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옛날처럼 서울가신 오빠한테는 연락이 안 되니까 어쩔 수 없는 거지 뭐 이러면서 그냥 포기 했었는데, 이제는 연락 다 되는데, 뭐 금방 보니까 접속해 있는데 그러나 내가 느낀 감상을 제대로 전달할 수 없어요. 답답하죠. 그래서 저는 이런 갭들을 위해서 문학이 존재하는 것은 아닌가 그런 생각도 (이제) 하게 됩니다. 하여간 이 알베르 카뮈의 찬미, 그르니에에 대한 찬미, 상당히 놀랍습니다. 너무너무 찬미를 잘 하고 있어요. 그래서 아마 이 정도 되는 작가에게서 이 정도의 찬미를 받아본 다른 작가는 참 드물겁니다. 장 그레이니는 참 행복해 했을 것 같은데요. 특히 마지막 장면 아주 멋지죠.
“길거리에서 이 조그만 책을 열어본 후, 겨우 그 처음 몇 줄을 읽다 말고는 다시 접어 가슴에 꼭 껴안은 채 마침내 아무도 없는 곳에 가서 정신없이 읽기 위하여 나의 방에까지 한걸음에 달려가던 그날 저녁으로 나는 되돌아가고 싶다.
나는 아무런 회한도 없이 부러워한다.
오늘 처음으로 이 "섬"을열어 보게 되는 저 낯모르는 젊은 사람을 뜨거운 마음으로 부러워한다.”
캬 멋지지 않습니까?
근데 뭐 또 이 부분을 읽으면 그런 생각도 들어요.
우리 보두에게 그런 책이 있었을 거예요.
여러분도 그런 책 있죠.
서점에 가서 들춰보다가 서점에서 이렇게 복잡복잡한데서 읽기 너무 아깝다 이런 생각이들어서 가슴에 안고, 혼자 읽기 위해서, 나만의 방에서 혼자 읽기 위해서 집으로 달려오는 것이죠.
누구의 방해도 받고 싶지 않을 거예요.
그런 순간, 그런 읽고 싶은 책들이 있었을 겁니다.
한 번쯤 한 번 생각해 보세요.
자신에게 그런 책은 무엇이었을까?
저는 몇 권 머릿속에 떠오릅니다.
하여간 알베르 카뮈에게는 이 책이 그런 책이었다는 것이죠.
섬에 대해서 썼는데, 이 “섬”이라는 책은 또 하나 주목할만한 것은, 번역자가 불문학자인 김화영 선생님입니다.
알베르 카뮈의 전집을 번역하셨죠.
대단한 분입니다.
그리고 좀 전에 제가 읽을 때 민감하신 분들은 알아차리셨겠지만 입에 착착붙죠.
번역문인데도.
읽어보면 어떤 번역이 좋은 번역인지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어떤 책이든 그래요.
읽어보면 입에 착착 붙고요, 그리고 정말 한국말의 리듬을 많이 고심하셨다는 것을 알 수 가 있습니다.
자 이 “섬”과 장 그르니에의 “일상적인 삶”이라는 책이 있는데 이것는 오늘 읽진 않겠고요.
오늘은 알베르 카뮈와 장 그르니에의 “섬”에 대한 소개정도에서 멈추기로 하겠고요.
다음주에 장 그르니에의 “섬”의 본문으로 들어가서 또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것과 “일상적인 삶”에서 한구절 정도 뽑아서 읽을 생각이고요.
그 전에라도 시간이 되는 분들은 한번 구해서 읽어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장 그르니에의 “섬”이고 우리나라에서는 민음사에서 출간이 됐습니다.
저도 이것 참 진짜 오랜만에 읽어보거든요.
제가 문학 청년이었을 때 그때는 정말 이 책이 필독서였어요.
지금은 모르는 분들이 아마 많을 거라 생각하는데 문학을 한다하는 사람들은 다 이 책을 읽고 있었어요.
이 책을 읽으면서 이 알베르 카뮈와 장 그르니에의 뭐 사제간이라기 보다는 저는 어떤 작가로서의 우정이라고 생각하는데요.
그 우정.
왜냐하면 나중에 장 그르니에가 또 알베르 카뮈에 대한 책을 썼습니다.
이런것은 글쓰는 사람들만이 갖고있는 어떤 우애같은거예요.
저도 문단에 나와서 깜짝 놀란 것 중에 하나인데, 문단에는 그런 엄격한 서열, 위계 이런 것이 사실은 그렇게 있지 않습니다.
글이 좋으면 아무리 대가라도 새까만 후배한테 밤에 전화를 합니다.
일면식도 없는 후배한테 전화해서 ‘당신 글을 참 재밌게 읽었다.
좋게 읽었다.
감명 받았다.
'이렇게 얘기하는 그런 문화가 있습니다.
그런 전화 한번 받으면 기분이 참 좋죠.
한국문단의 멋진 모습이라고 생각하는데 아무리 신인 작가라도 대가 앞에서 맞담배를 필 수 있는 것이 한국문단의 어떤 모습입니다.
다른 예술 장르하고는 좀 다른 그런, 민주적이라기 보다는 저는 그것은 글을 존중하는 사람들의 도덕, 모랄이라고 생각해요.
나를 감동시킨 글이 있다면 그가 몇 살이든, 그가 누구든 간에 감사하게 생각한다 라는 것이죠.
그것을 또 말로 표현하는 아름다운 미덕이 있어서 상당히 감동했던 기억이 있어요.
하여간 오늘은 장 그르니에와 알베르 카뮈에 대한 얘기, (알베르 카뮈는 너무 유명한 작가니까 제가 더 설명할 필요는 없겠죠?
)에 대한 얘기를 하면서 ‘책 읽는 시간'팟캐스트 여섯 번 째 시간을 마치도록 하겠고요.
이 김영하의 팟캐스트는 아이튠즈 스토어에서 제 이름으로 검색해도 찾으실 수가 있고요.
아니면 그냥 구글에서 ‘김영하 팟캐스트' 이렇게 치시면 이 팟캐스트를 담아놓은 사이트가 뜰겁니다.
그 쪽으로 가시면 되겠습니다.
의견이 있으신 분들은 ‘kimyoungha.com'으로 오시면 제 블로그가 있습니다.
거기에 의견 주셔도 좋고요.
뭐 의견이 아니라 다른 여려가지 제안 이런 것도 감사히 받겠습니다.
그럼 지금까지 김영하였고요.
여러분 안녕히 계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