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 지하 조사실, 열 일곱 번째-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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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 지하 조사실, 열 일곱 번째
마카오의 생활에 대해 수사관들에게 각본대로 이야기 했다. 내가 생각해도 한심한 떠돌이 신세의 처녀로 여겨졌다. 남자들 앞에서 잘 웃지도 못하게 하는 어머니의 철저한 참교육과는 거리가 먼 행동이었다. 그러나 중국인 처녀 ‘빠이추이후이'는 막 굴러다니며 사는 뜨내기의 천박한 인생이었기 때문에 그렇게 꾸며대는 수밖에 없었다. 나는 내가 꾸며댄 가공의 인물과 나 자신을 자꾸 비교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을 하며 그 뒷이야기를 계속했다.
“신이찌를 따라 일본으로 갔고 일본 어느 집에서 내 생활은 시작되었지만 그 집 주소 따위에는 신경도 쓰지 않고 지냈습니다. 11월경 신이찌는 유럽 여행을 같이 하자며 여권을 가져와 여행할 때 필요하니 주소를 외워두라고 해서 외웠습니다. 그렇지만 내가 외운 주소가 그 집 주소인지 다른 곳 주소인지는 모릅니다. 유럽 여행 때는 신이찌가 옷과 화장품도 사다 주었습니다. 나는 그와 함께 유럽여행만 했을 뿐 이번 일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내 이야기를 듣고 들은 설명이 부족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에 대해 보충질문을 해왔다. 답변하기 곤란한 세부적인 사항에 대해 따지고 들어올 때는 딴전을 피우며 그 질문을 무시해 버렸다. 또 그들에게 천진난만하게 보이기 위해 철없는 행동을 일부러 해보였다. 화장실에 들어가 거울을 보며 이번 여행 직전에 일본 여자로 위장하려고 밀어냈던 눈썹이 자라 듬성듬성 잔털이 많은 걸 가리키며 여자 수사관 앞에서 손가락으로 뽑는 시늉을 했다. 과연 내가 예상했던 대로 여자 수사관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저렇게 천진난만하고 철없는 애가 그런 끔찍한 짓을 했을 리는 없어.' 그들이 그렇게 생각해 주기를 바라는 의도적인 행동이었다.
저녁식사로는 수제비국이 나왔다. 수제비국을 보니 이상히 여기든 말든 먹지 않고는 참을 수가 없었다. 수제비 그릇을 깨끗이 비웠다. 오랜만에 많은 양의 음식을 먹었다. 북에서도 수제비는 종종 먹었다. 뜨덕국이라고도 하며 간장을 넣은 끓는 물에 밀가루 반죽을 뚝뚝 뜯어 넣고, 형편이 되는 집은 맛내기를 쳐서 먹기도 했다. 가장 손쉬운 음식이라 북조선 가정에서는 많이 해 먹는다. 자주 먹던 음식이어서인지 입에 맞았고 또 반가웠다.
저녁을 들고 난 뒤 여자수사관이 내 왼쪽 어깨에 있는 흉터에 대해 물었다. 내 어깨에는 보기 흉한 흉터가 두 군데 있다. 하나는 3cm 정도이고 다른 하나는 6cm 정도 된다.
“중국 광주에 있을 때 불량배들한테 걸린 적이 있었어요. 강간당할 위기에 처해서 나는 필사적으로 반항을 했어요. 그랬더니 불량배들이 칼로 어깨를 두 번 찔렀어요. 그때 생긴 흉터예요.”
물론 그것은 거짓말이었다. 이 흉터는 그렇게 생긴 것이 아니었다. 어릴 때 나는 튜베큐린 반응 주사를 맞으면 음성으로 나타났다. 남들은 주사 맞은 곳이 빨갛게 부어오르는데 나는 전혀 아무런 흔적이 없었다. 어떤 아이들은 음성이 되면 또다시 결핵예방왁찐 주사를 맞게 되는 것이 겁나서 주사 맞은 부위를 입으로 열심히 빨아 새빨갛게 만들기도 했다. 그렇게 결핵예방왁찐 주사를 두 번씩이나 맞게 되어 어깨에 팥알 크기의 혹 같은 흉이 생겼다.
그런데 1987년 여름, 짧은 소매 옷 때문에 흉터를 보게 된 담당 지도원이 “자본주의 국가에 나가 활동하려면 그런 흉터가 있어서는 안돼. 성형수술을 해서 없애야겠어.” 하고 수술을 결정해 버렸다. 그래서 공작원만 전용으로 이용하는 병원인 ‘9.15' 병원에 입원해 성형수술을 받았다. 나는 학교에 다닐 때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주체사상 없이 양키 문화에 병든 여자들이 서양 여자처럼 보이기 위해 성형수술을 많이 한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에 성형수술에 대한 인식이 그다지 좋지 않았다. 꺼림칙한 마음으로 수술대에 올랐는데 칼을 갖다댄 곳은 점점 부어오르고 곪아 더 큰 흉터가 되고 말았다.
나레이션 : 대남공작원 김현희의 고백, 랑독에 박수현이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