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의 고백, 스물 네 번째-1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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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의 고백, 스물 네 번째
비엔나에서 유고슬라비아 베오그라드까지 불과 1시간 반밖에 날아오지 않았는데 비엔나와 베오그라드는 너무나도 천지차이였다. 택시를 타고 메트로폴리탄 호텔 예약서를 보여 주자 기사는 우리를 메트로폴리탄호텔까지 데려다 주었다.
11월 24일.
여기 역시 아침부터 가랑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날씨였다. 로마에서 비엔나로 돌아가는 항공권을 사기 위해 우산을 받쳐들고 거리로 나섰다.
지도로는 도저히 오지리 항공사의 위치를 찾지 못하고 무작정 택시를 탔다. 운전사에게 오지리 항공사로 가자고 했더니 그도 모른다며 항공사가 집결해 있는 거리에 내려 주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묻고 또 묻고 건물마다 오르내리며 겨우 찾아낸 오지리 항공사는 어느 건물 3층에 다른 항공사와 나란히 있었다. 이처럼 힘들이면서 오지리 항공사를 찾은 이유는 김선생 경험에 의하면 이 항공사가 그중 책임성 있고 봉사성도 좋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11월 29일 오후에 비엔나로 떠나는 항공편을 예약할 수 있습니까?”
우리는 로마에 도착하기로 되어 있는 11월 29일 당일 비행기편을 결정했다. 로마에서 2,3일간 휴식하면서 관광하기로 계획되어 있었으나 일을 끝내고는 단 하루라도 더 빨리 돌아가고 싶었다.
“예. 가능합니다. 항공권을 사시겠습니까?”
항공료를 물었더니 비싸다는 느낌이 들어 잠깐 보류한 채 그 옆 이태리 항공사로 가서 가격을 알아보았다. 가격은 같았다. 그동안 항공료로 너무 돈이 많이 나가서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도 몰랐다. 우리는 ‘같은 값이면 오지리' 라며 오지리 항공사 것을 샀다. 그 다음 날도 비가 오다가 해가 나다가 흐리다가 하면서 일기가 고르지 못했다. 날씨도 좋지 않고 김 선생도 나다니기 힘들어 해서 그냥 쉬고 싶었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관광객이 관광은 안하고 객실에 틀어 박혀 있다는 눈총을 받을까봐서 였다. 괜히 카메라를 메고 외출하는 모습을 보여야만 했다. 우리는 호텔 옆에 있는 공원에 가서 사진 몇 장을 찍었다. 늦가을 철이라 경치도 볼품없고 흐린 날씨에 바람까지 불면서 쌀쌀한 탓인지 공원에는 사람들이 별로 없었다. 나는 그 을씨년스럽고 서글픈 공원 풍경에 마음이 쓸쓸해지고 처량 맞아 우울해 했다. 막중한 임무를 앞둔 내 마음은 무겁고 심란할 뿐 아무것에도 흥미가 없었다. 공원을 나와서 시간을 보내기 위해 백화점으로 갔다.
김 선생이 모자에 시선이 팔려 있는 사이에 허술한 옷을 입은 정신이상자 중년 남자가 내게 손을 내밀며 구걸했다. 저쪽으로 피하면 따라와 손을 내밀고 이쪽으로 비키면 또 따라붙어 끈질기게 손을 내밀었다. 내가 불쾌한 표정을 지으며 쫓겨 다니자 보다 못한 판매원 한 명이 그의 등을 밀어 상점 밖으로 내쫓았다. 귀찮은 사람에게 시달리며 이리저리 돌다가 마침 여자 내의 매대가 보여서 속내의 하나를 사려고 그곳으로 들어갔다.
들어가면서 모자 가게를 쳐다보니 김 선생이 아직 그 부근에서 상품을 구경하고 있어서 안심하고 속내의 하나를 샀다. 돈을 지불하고 김 선생이 있던 자리에 와보니 그의 모습은 오간 데 없었다. 처음에는 ‘어디서 나를 보고 있겠지' 하며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으나 그 층을 다 헤매고 다녀도 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혹시나 하고 1층에서 4층까지 몇 번을 오르내려도 찾지 못했다.
나중에는 눈이 홀려서인지 머리가 흰 남자만 보면 김 선생으로 착각하고 백화점 밖에까지 쫓아가 보았다. 서양 사람들은 흰머리를 가진 사람이 많아 더욱 정신없이 뛰어다녔다. 2시간 이상 백화점 안과 밖을 누비고 다니면서 별 생각이 다 들었다.
나레이션 :대남공작원 김현희의 고백, 랑독에 박수현이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