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의 고백, 여섯 번째-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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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의 고백, 여섯 번째
“10월 6일 오후 3시쯤 광주공항에서 중국 항공기를 타고 출발하여 세 시간 뒤에 북경에 도착했습니다. 그날은 대사관 초대소에서 하룻밤을 묵었습니다. 다음 날 오후 2시 나는 민항 대표 박모의 주선으로 평양행 북조선 특별 화물기 편으로 평양을 향해 떠났고 오후 5시쯤 평양 순안비행장에 도착했습니다. 나는 비행기를 타고 오는 동안 줄곧 나에게 어떤 임무가 주어질까 하는 생각에 가득 차 있었습니다. 어떤 공작원은 교육을 마치고도 마땅한 임무가 주어지지 않아 10년, 20년씩 초대소 생활을 하는 사람도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런 사람에 비하면 나는 운이 좋은 편이었습니다. 8년이 채 안되어 임무를 받게 되는 셈이었으니까요.“
“어떤 임무가 주어질 거라고 생각했지?”
수사관은 내 예상 임무가 어떤 것이었는지 궁금한가 보았다.
“저는 일본 지역에 침투하여 활동하는 임무가 떨어질 것이라고 예상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동안 일본어를 공부해 왔고 일본의 지리, 풍습, 문화에 대해 집중적으로 학습해 왔기 때문입니다. 저 같은 어리 여자에게 그렇게 엄청난 임무가 맡겨지리라고는 꿈에서조차 상상해 본 일이 없습니다.”
“당연히 그랬을 테지.....”
수사관은 고개를 끄덕거렸고 나는 계속 했다. “순안비행장에 도착하여 마중 나온 사람을 찾았으나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하는 수 없이 일반 승객에 섞여서 공항 밖으로 나와 두리번거리며 서성대고 있자니까 남자 안내원이 ‘어디계십니까?' 하고 물어왔습니다. ‘중앙당 조사부에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자 그는 머리를 조아리며 나를 귀빈실로 안내했습니다. 순안비행장에서는 개별적으로 평양에 들어갈 방도가 없었습니다. 순안비행장과 평양을 연결하는 차편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리저리 물어 겨우 담당인 리 지도원과 전화가 연결이 되었습니다. 30분쯤 지나자 리지도원이 차를 가지고 나타났습니다. 북경에서 연락이 오지 않아 늦었다며 미안해했습니다.
나는 리 지도원을 만나자마자 이렇듯 급히 복귀하라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물었으나 리 지도원도 그 이유를 모르는 눈치였습니다. 그저 임무를 주기 위해서인 것 같다고 말할 뿐이었습니다. 그러면 집에 잠깐 다녀올 수 있겠느냐고 물으니..‘글쎄.....임무 맡고 떠나기 전에는 한번 보내 주겠지' 하며 자신 없는 대답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리 지도원과 룡성 43호 초대소로 갔더니 한 과장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한 과장은 내가 짐을 풀기도 전에 지시사항을 내렸습니다. ‘다른 과에서 재개된 사업에 동원되어 오늘 밤 다른 초대소로 이동해야 하니 당분간 생활할 수 있는 옷과 생활 용품만 챙기도록 하오' 간단한 소지품을 위주로 꼭 필요한 물건만 챙기라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별로 사용치 않는 내 개인 사품과 어머니에게 줄 선물인 조끼, 스웨터와 녹태고 등은 중형 트렁크 2개에 집어넣어 채워 놓고 옷 몇 가지와 세면도구를 대형 트렁크에 넣었습니다. 한 과장은 학습실에 앉아 계속 헛기침을 하면서 나를 독촉하는 기색이었습니다. 초대소 식모는 내가 갑자기 혼자 귀국해서 짐을 챙기자 ‘옥화 선생이 시집 가는가봐요' 하며 놀라기도 했습니다. 8시쯤 짐 정리가 끝나자 한 과장과 리 지도원은 나를 데리고 동북리 2층 2호 초대소로 갔습니다. 한 과장과 리 지도원은 차가 초대소 앞에 닿자 나에게 걸어 들어가라고 하고 그들은 그냥 차를 돌려 가버렸습니다. 전에 없던 일이어서 뭔가 이상한 분위기를 느꼈습니다. 초대소에 들어서니 김승일이 초대소 마당까지 나와 나를 반기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쉬지 않고 쏟아내듯 이야기를 계속해 나갔다.
나레이션 : 대남공작원 김현희의 고백, 랑독에 박수현이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