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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김영하의 ‘책 읽는 시간’ 팟캐스트 (Reading Time podcast), Episode 6 - 장 그르니에 “섬” (Jean Grenier) - Part 3

Episode 6 - 장 그르니에 “섬” (Jean Grenier) - Part 3

저는 요즘에 그런 생각을 많이 하는데요. 이런 인터넷 시대에는 많은 리뷰들이 있습니다. 드라마, 뭐 영화, 책, 그런데 남을 칭찬하는 것, 특히 좋은 작품을 좋다고 말하는 것이 참 어렵다 이런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제가 등단한지 얼마 안 됐을 때, 저의 선배 시인이 그런 말을 했어요. 저한테 한 얘기는 아니고, 고수들끼리 얘기를 나누고 있는 것을 제가 옆에서 들었는데, 한사람이 다른 시인한테 그런 얘길 했어요. ‘아 지난번에 신문에 쓴 평 참 좋더라. 잘 읽었다. 아주 잘 썼더라.' 그랬더니 그 얘기를 들을 시인이, '예, 좋은 걸 좋다고 말하기가 참 어렵죠. '라고 말을 했는데, 그때는 그게 무슨 소린지 잘 몰랐어요. 까는 건 좀 쉽다. 그런 뜻이었을 수도 있겠고요. 즉, 흠을 잡아서 비판하는 것은 매우 간단하고 쉬운 일이죠. 이건 아니다라고 말하는 것은 매우 쉽습니다. 그런데 좋은 것이 왜 좋은지를 말하는 데는 여러가지 복잡한, 그리고 고도의 또 이런 어떤 사고력, 또 표현력이 필요하게 됩니다. 와 죽인다! 뭐 모든 것이 다 좋다는 말을 오로지 다 ‘야 죽이는데!'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또 그것으로는 부족하다고 느끼게되는 어떤 사람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남에게 좋다고 말하기 위해서 고심하게 됩니다. 조금더 애를 쓰게 되고요. 그게 쉽지 않는 일입니다. 이 팟캐스트를 듣는 여러분들도 그런 고통을 겪어보신적이 있을거예요. 어떤 영화든 소설이든 뭔가를 사랑하게 됬는데 그것을 친구나 어떤 가까운 사람에게 그것을 설명하고자 할 때, 참 그것은 또 다른 문제죠? 자기가 좋아했을 때는 다른 문제고, 그런 어떤 마음의 고통을 겪습니다. 나의 마음을 움직인 그 정도의 감상을 다른 사람에게 전해주고 싶은데 그것이 쉽지않죠. 그것은 아무리 커뮤니케이션 수단이 발달한다 하더라도 쉽지 않은 일입니다. 최근에 SNS (서비스)같은 것들이 많이 발전하고 있는데 그것에 비해서, 우리의 마음을 전달하는 기술은 지체돼있습니다. 이 지체, 두 기술간의 지체, 그러니까 한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자기의 마음과 진심을 전달하는 기술은 거의 발전하지 않았는데, 그 속도는 엄청나게 빨라졌단 것이죠. 뭐 트위터라던가 이메일이라던가 이런 것들 뭐 엄청나게 빠른속도로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게 만들어 주지만 정작 우리는 우리의 진심 우리의 마음, 내 마음을 움직였던 그 감상들을 남에게 전달하는데 매우 서툽니다. 그래서 이런식의 불균형, 지체들이 저는 현시대의 (저를 포함해서) 많은 인간들이 겪고있는 어떤 큰 문제가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옛날처럼 서울가신 오빠한테는 연락이 안 되니까 어쩔 수 없는 거지 뭐 이러면서 그냥 포기 했었는데, 이제는 연락 다 되는데, 뭐 금방 보니까 접속해 있는데 그러나 내가 느낀 감상을 제대로 전달할 수 없어요. 답답하죠. 그래서 저는 이런 갭들을 위해서 문학이 존재하는 것은 아닌가 그런 생각도 (이제) 하게 됩니다. 하여간 이 알베르 카뮈의 찬미, 그르니에에 대한 찬미, 상당히 놀랍습니다. 너무너무 찬미를 잘 하고 있어요. 그래서 아마 이 정도 되는 작가에게서 이 정도의 찬미를 받아본 다른 작가는 참 드물겁니다. 장 그레이니는 참 행복해 했을 것 같은데요. 특히 마지막 장면 아주 멋지죠.

“길거리에서 이 조그만 책을 열어본 후, 겨우 그 처음 몇 줄을 읽다 말고는 다시 접어 가슴에 꼭 껴안은 채 마침내 아무도 없는 곳에 가서 정신없이 읽기 위하여 나의 방에까지 한걸음에 달려가던 그날 저녁으로 나는 되돌아가고 싶다. 나는 아무런 회한도 없이 부러워한다. 오늘 처음으로 이 "섬"을열어 보게 되는 저 낯모르는 젊은 사람을 뜨거운 마음으로 부러워한다.” 멋지지 않습니까? 근데 뭐 또 이 부분을 읽으면 그런 생각도 들어요. 우리 보두에게 그런 책이 있었을 거예요. 여러분도 그런 책 있죠. 서점에 가서 들춰보다가 서점에서 이렇게 복잡복잡한데서 읽기 너무 아깝다 이런 생각이들어서 가슴에 안고, 혼자 읽기 위해서, 나만의 방에서 혼자 읽기 위해서 집으로 달려오는 것이죠. 누구의 방해도 받고 싶지 않을 거예요. 그런 순간, 그런 읽고 싶은 책들이 있었을 겁니다. 한 번쯤 한 번 생각해 보세요. 자신에게 그런 책은 무엇이었을까? 저는 몇 권 머릿속에 떠오릅니다. 하여간 알베르 카뮈에게는 이 책이 그런 책이었다는 것이죠. 섬에 대해서 썼는데, 이 “섬”이라는 책은 또 하나 주목할만한 것은, 번역자가 불문학자인 김화영 선생님입니다. 알베르 카뮈의 전집을 번역하셨죠. 대단한 분입니다. 그리고 좀 전에 제가 읽을 때 민감하신 분들은 알아차리셨겠지만 입에 착착붙죠. 번역문인데도. 읽어보면 어떤 번역이 좋은 번역인지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어떤 책이든 그래요. 읽어보면 입에 착착 붙고요, 그리고 정말 한국말의 리듬을 많이 고심하셨다는 것을 알 수 가 있습니다. 자 이 “섬”과 장 그르니에의 “일상적인 삶”이라는 책이 있는데 이것는 오늘 읽진 않겠고요. 오늘은 알베르 카뮈와 장 그르니에의 “섬”에 대한 소개정도에서 멈추기로 하겠고요. 다음주에 장 그르니에의 “섬”의 본문으로 들어가서 또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것과 “일상적인 삶”에서 한구절 정도 뽑아서 읽을 생각이고요. 그 전에라도 시간이 되는 분들은 한번 구해서 읽어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장 그르니에의 “섬”이고 우리나라에서는 민음사에서 출간이 됐습니다. 저도 이것 참 진짜 오랜만에 읽어보거든요. 제가 문학 청년이었을 때 그때는 정말 이 책이 필독서였어요. 지금은 모르는 분들이 아마 많을 거라 생각하는데 문학을 한다하는 사람들은 다 이 책을 읽고 있었어요. 이 책을 읽으면서 이 알베르 카뮈와 장 그르니에의 뭐 사제간이라기 보다는 저는 어떤 작가로서의 우정이라고 생각하는데요. 그 우정. 왜냐하면 나중에 장 그르니에가 또 알베르 카뮈에 대한 책을 썼습니다. 이런것은 글쓰는 사람들만이 갖고있는 어떤 우애같은거예요. 저도 문단에 나와서 깜짝 놀란 것 중에 하나인데, 문단에는 그런 엄격한 서열, 위계 이런 것이 사실은 그렇게 있지 않습니다. 글이 좋으면 아무리 대가라도 새까만 후배한테 밤에 전화를 합니다. 일면식도 없는 후배한테 전화해서 ‘당신 글을 참 재밌게 읽었다. 좋게 읽었다. 감명 받았다. '이렇게 얘기하는 그런 문화가 있습니다. 그런 전화 한번 받으면 기분이 참 좋죠. 한국문단의 멋진 모습이라고 생각하는데 아무리 신인 작가라도 대가 앞에서 맞담배를 필 수 있는 것이 한국문단의 어떤 모습입니다. 다른 예술 장르하고는 좀 다른 그런, 민주적이라기 보다는 저는 그것은 글을 존중하는 사람들의 도덕, 모랄이라고 생각해요. 나를 감동시킨 글이 있다면 그가 몇 살이든, 그가 누구든 간에 감사하게 생각한다 라는 것이죠. 그것을 또 말로 표현하는 아름다운 미덕이 있어서 상당히 감동했던 기억이 있어요. 하여간 오늘은 장 그르니에와 알베르 카뮈에 대한 얘기, (알베르 카뮈는 너무 유명한 작가니까 제가 더 설명할 필요는 없겠죠? )에 대한 얘기를 하면서 ‘책 읽는 시간'팟캐스트 여섯 번 째 시간을 마치도록 하겠고요. 이 김영하의 팟캐스트는 아이튠즈 스토어에서 제 이름으로 검색해도 찾으실 수가 있고요. 아니면 그냥 구글에서 ‘김영하 팟캐스트' 이렇게 치시면 이 팟캐스트를 담아놓은 사이트가 뜰겁니다. 그 쪽으로 가시면 되겠습니다. 의견이 있으신 분들은 ‘kimyoungha.com'으로 오시면 제 블로그가 있습니다. 거기에 의견 주셔도 좋고요. 뭐 의견이 아니라 다른 여려가지 제안 이런 것도 감사히 받겠습니다. 그럼 지금까지 김영하였고요. 여러분 안녕히 계십시오.

Episode 6 - 장 그르니에 “섬” (Jean Grenier) - Part 3 Episode 6 - Jean Grenier "The Island" - Part 3 Episodio 6 - Jean Grenier "La isla" (Jean Grenier) - Parte 3

저는 요즘에 그런 생각을 많이 하는데요. I think about that a lot these days. 이런 인터넷 시대에는 많은 리뷰들이 있습니다. このようなインターネット時代には多くのレビューがあります。 드라마, 뭐 영화, 책, 그런데 남을 칭찬하는 것, 특히 좋은 작품을 좋다고 말하는 것이 참 어렵다 이런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ドラマ、まあ映画、本、でも他人を褒めること、特に良い作品を良いと言うのは本当に難しいんだなあと思うようになります。 제가 등단한지 얼마 안 됐을 때, 저의 선배 시인이 그런 말을 했어요. 私が登壇して間もない頃、私の先輩詩人にそんなことを言われました。 저한테 한 얘기는 아니고, 고수들끼리 얘기를 나누고 있는 것을 제가 옆에서 들었는데, 한사람이 다른 시인한테 그런 얘길 했어요. 僕に言った話ではなくて、古参同士で話をしているのを傍で聞いたのですが、ある人が他の詩人にそんな話をしたんです。 ‘아 지난번에 신문에 쓴 평 참 좋더라. あぁ、この前の新聞の評は良かったな。 잘 읽었다. よく読みました。 아주 잘 썼더라.' とてもよく書けたな』と。 그랬더니 그 얘기를 들을 시인이, '예, 좋은 걸 좋다고 말하기가 참 어렵죠. すると、その話を聞いた詩人が、「ええ、いいものをいいと言うのは難しいですね。 '라고 말을 했는데, 그때는 그게 무슨 소린지 잘 몰랐어요. と言われたのですが、その時は何のことかよくわかりませんでした。 까는 건 좀 쉽다. 騙すのはちょっと簡単。 그런 뜻이었을 수도 있겠고요. そういう意味だったのかもしれませんね。 즉, 흠을 잡아서 비판하는 것은 매우 간단하고 쉬운 일이죠. つまり、欠点を見つけて批判するのはとてもシンプルで簡単なことです。 이건 아니다라고 말하는 것은 매우 쉽습니다. これはダメだと言うのはとても簡単です。 그런데 좋은 것이 왜 좋은지를 말하는 데는 여러가지 복잡한, 그리고 고도의 또 이런 어떤 사고력, 또 표현력이 필요하게 됩니다. しかし、良いものがなぜ良いのかを語るには、いろいろと複雑な、そして高度な、またこのようなある種の思考力、また表現力が必要になります。 와 죽인다! と殺す! 뭐 모든 것이 다 좋다는 말을 오로지 다 ‘야 죽이는데!' まあ、全てが良いというのは、ただただ「ヤバい!」としか言いようがありません。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또 그것으로는 부족하다고 느끼게되는 어떤 사람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남에게 좋다고 말하기 위해서 고심하게 됩니다. そう言う人がいる一方で、またそれでは物足りないと感じる人もいて、自分の好きなものを他人に良いと言うために苦労する人もいます。 조금더 애를 쓰게 되고요. もう少し頑張ることになります。 그게 쉽지 않는 일입니다. 이 팟캐스트를 듣는 여러분들도 그런 고통을 겪어보신적이 있을거예요. このポッドキャストを聞いている皆さんも、そんな苦しみを味わったことがあると思います。 어떤 영화든 소설이든 뭔가를 사랑하게 됬는데 그것을 친구나 어떤 가까운 사람에게 그것을 설명하고자 할 때, 참 그것은 또 다른 문제죠? どんな映画でも小説でも、何かを好きになり、それを友人や身近な人に説明しようとするとき、それはまた別の問題ですよね。 자기가 좋아했을 때는 다른 문제고, 그런 어떤 마음의 고통을 겪습니다. 自分が好きだったときは別問題で、そんなある種の心の苦しみを味わいます。 나의 마음을 움직인 그 정도의 감상을 다른 사람에게 전해주고 싶은데 그것이 쉽지않죠. 自分の心を動かしたその感動を他の人に伝えたいのですが、なかなか難しいですよね。 그것은 아무리 커뮤니케이션 수단이 발달한다 하더라도 쉽지 않은 일입니다. It is not easy, no matter how developed the communication means. それはどんなにコミュニケーション手段が発達しても簡単なことではありません。 최근에 SNS (서비스)같은 것들이 많이 발전하고 있는데 그것에 비해서, 우리의 마음을 전달하는 기술은 지체돼있습니다. 最近、SNS(サービス)のようなものがたくさん発展していますが、それに比べて、私たちの心を伝える技術は遅れています。 이 지체, 두 기술간의 지체, 그러니까 한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자기의 마음과 진심을 전달하는 기술은 거의 발전하지 않았는데, 그 속도는 엄청나게 빨라졌단 것이죠. この遅れ、2つの技術間の遅れ、つまり、ある人間が別の人間に自分の心や本音を伝える技術はほとんど進歩していないのに、その速度はものすごく速くなったということです。 뭐 트위터라던가 이메일이라던가 이런 것들 뭐 엄청나게 빠른속도로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게 만들어 주지만 정작 우리는 우리의 진심 우리의 마음, 내 마음을 움직였던 그 감상들을 남에게 전달하는데 매우 서툽니다. まあ、ツイッターとか、メールとか、こういうものは、ものすごい速いスピードでコミュニケーションができるようにしてくれますが、実は私たちは、私たちの本当の心、私の心を動かしたその感動を他人に伝えるのがとても苦手です。 그래서 이런식의 불균형, 지체들이 저는 현시대의 (저를 포함해서) 많은 인간들이 겪고있는 어떤 큰 문제가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だから、このような不均衡、遅れが、今の時代の(私を含め)多くの人間が抱えているある種の大きな問題ではないか、そんなことを考えさせられます。 옛날처럼 서울가신 오빠한테는 연락이 안 되니까 어쩔 수 없는 거지 뭐 이러면서 그냥 포기 했었는데, 이제는 연락 다 되는데, 뭐 금방 보니까 접속해 있는데 그러나 내가 느낀 감상을 제대로 전달할 수 없어요. 昔みたいにソウルの兄さんとは連絡が取れないから仕方ないんだろうなぁと諦めてたんですけど、今は連絡が取れるようになったし、まあ、すぐに見たら接続してるんですけど、でも私が感じた感動がうまく伝わらないんです。 답답하죠. もどかしいですよね。 그래서 저는 이런 갭들을 위해서 문학이 존재하는 것은 아닌가 그런 생각도 (이제) 하게 됩니다. だから私は、このようなギャップのために文学が存在するのではないか、そんなことも(今は)考えるようになりました。 하여간 이 알베르 카뮈의 찬미, 그르니에에 대한 찬미, 상당히 놀랍습니다. とにかくこのアルベール・カミュの賛美、グリュニエへの賛美、かなり驚きです。 너무너무 찬미를 잘 하고 있어요. とてもとても賛美が上手です。 그래서 아마 이 정도 되는 작가에게서 이 정도의 찬미를 받아본 다른 작가는 참 드물겁니다. 장 그레이니는 참 행복해 했을 것 같은데요. ジャン・グレイニーは本当に幸せだったでしょうね。 특히 마지막 장면 아주 멋지죠. 特に最後のシーンはとても素敵ですね。

“길거리에서 이 조그만 책을 열어본 후, 겨우 그 처음 몇 줄을 읽다 말고는 다시 접어 가슴에 꼭 껴안은 채 마침내 아무도 없는 곳에 가서 정신없이 읽기 위하여 나의 방에까지 한걸음에 달려가던 그날 저녁으로 나는 되돌아가고 싶다. “After opening this little book on the street, I want to go back to the evening when I barely read the first few lines, fold it back and hug my chest, finally go to a place where no one is there, and run one step to my room to read without hesitation. "路上でこの小さな本を開いて、やっと最初の数行を読んだ後、再び折りたたんで胸に抱きしめ、ついに誰もいないところに行き、夢中で読むために自分の部屋まで一歩で駆け込んだあの晩に私は戻りたい。 나는 아무런 회한도 없이 부러워한다. I envy without any remorse. 私は何の恨みもなく羨ましい。 오늘 처음으로 이 "섬"을열어 보게 되는 저 낯모르는 젊은 사람을 뜨거운 마음으로 부러워한다.” 今日初めてこの"島"を開くことになったあの見知らぬ若者を熱い気持ちで羨ましく思う。" 캬~~ 멋지지 않습니까? キャー素敵じゃないですか? 근데 뭐 또 이 부분을 읽으면 그런 생각도 들어요. でもまあ、またこの部分を読むとそんな気もしますね。 우리 보두에게 그런 책이 있었을 거예요. 私たちのボドゥーにもそんな本があったはずです。 여러분도 그런 책 있죠. 皆さんもそんな本ありますよね。 서점에 가서 들춰보다가 서점에서 이렇게 복잡복잡한데서 읽기 너무 아깝다 이런 생각이들어서 가슴에 안고, 혼자 읽기 위해서, 나만의 방에서 혼자 읽기 위해서 집으로 달려오는 것이죠. 本屋に行って立ち読みをしていて、こんな複雑なものを本屋で読むのはもったいないなぁと思い、胸に抱きしめ、一人で読むために、自分の部屋で一人で読むために家に帰ってくるのです。 누구의 방해도 받고 싶지 않을 거예요. 誰にも邪魔されたくないでしょう。 그런 순간, 그런 읽고 싶은 책들이 있었을 겁니다. そんな時、読みたい本があったはずです。 한 번쯤 한 번 생각해 보세요. 一度考えてみてください。 자신에게 그런 책은 무엇이었을까? 自分にとってそんな本は何だったのだろう? 저는 몇 권 머릿속에 떠오릅니다. 私は何冊か頭に浮かびます。 하여간 알베르 카뮈에게는 이 책이 그런 책이었다는 것이죠. とにかくアルベール・カミュにとって、この本はそんな本だったということです。 섬에 대해서 썼는데, 이 “섬”이라는 책은 또 하나 주목할만한 것은, 번역자가 불문학자인 김화영 선생님입니다. 島について書きましたが、この「島」という本はもう一つ注目すべきは、翻訳者が仏文学者であるキム・ファヨン先生です。 알베르 카뮈의 전집을 번역하셨죠. アルベール・カミュの全集を翻訳されましたね。 대단한 분입니다. 그리고 좀 전에 제가 읽을 때 민감하신 분들은 알아차리셨겠지만 입에 착착붙죠. そして、先ほど私が読んだときに敏感な方はお気づきかと思いますが、口にくっつきます。 번역문인데도. 翻訳文なのに。 읽어보면 어떤 번역이 좋은 번역인지 금방 알 수 있습니다. 読んでみると、どの翻訳が良い翻訳なのかすぐにわかります。 어떤 책이든 그래요. どんな本でもそうです。 읽어보면 입에 착착 붙고요, 그리고 정말 한국말의 리듬을 많이 고심하셨다는 것을 알 수 가 있습니다. 読んでみると、口ずさみやすく、そして本当に韓国語のリズムに苦労されたことがわかります。 자 이 “섬”과 장 그르니에의 “일상적인 삶”이라는 책이 있는데 이것는 오늘 읽진 않겠고요. さて、この「島」とジャン・グニエの「日常生活」という本がありますが、これは今日は読みません。 오늘은 알베르 카뮈와 장 그르니에의 “섬”에 대한 소개정도에서 멈추기로 하겠고요. 今日はアルベール・カミュとジャン・グルニエの「島」の紹介程度にとどめることにします。 다음주에 장 그르니에의 “섬”의 본문으로 들어가서 또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来週、ジャン・グルニエの「島」の本文に入り、また読んでみたいと思います。 이것과 “일상적인 삶”에서 한구절 정도 뽑아서 읽을 생각이고요. これと「日常生活」から一節くらい抜き出して読むつもりです。 그 전에라도 시간이 되는 분들은 한번 구해서 읽어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その前にでも、時間がある方は一度入手して読んでみるといいと思います。 장 그르니에의 “섬”이고 우리나라에서는 민음사에서 출간이 됐습니다. ジャン・グニエの「島」で、韓国では民音社から出版されました。 저도 이것 참 진짜 오랜만에 읽어보거든요. 私もこれ、本当に久しぶりに読むんですよ。 제가 문학 청년이었을 때 그때는 정말 이 책이 필독서였어요. 私が文学青年だった頃、この本は本当に必読書でした。 지금은 모르는 분들이 아마 많을 거라 생각하는데 문학을 한다하는 사람들은 다 이 책을 읽고 있었어요. 今は知らない方が多いと思いますが、文学をやるという人はみんなこの本を読んでいました。 이 책을 읽으면서 이 알베르 카뮈와 장 그르니에의 뭐 사제간이라기 보다는 저는 어떤 작가로서의 우정이라고 생각하는데요. この本を読みながら、このアルベール・カミュとジャン・グルニエの何か師弟関係というよりは、私はある種の作家としての友情だと思います。 그 우정. その友情。 왜냐하면 나중에 장 그르니에가 또 알베르 카뮈에 대한 책을 썼습니다. なぜなら、後にジャン・グルニエがまたアルベール・カミュの本を書いたからです。 이런것은 글쓰는 사람들만이 갖고있는 어떤 우애같은거예요. こういうのは文章を書く人だけが持っているある種の友情みたいなものです。 저도 문단에 나와서 깜짝 놀란 것 중에 하나인데, 문단에는 그런 엄격한 서열, 위계 이런 것이 사실은 그렇게 있지 않습니다. 私も段落に出てきて驚いたことの一つなのですが、段落にはそのような厳密な序列、ヒエラルキーみたいなものは実はそうではありません。 글이 좋으면 아무리 대가라도 새까만 후배한테 밤에 전화를 합니다. 文章が良ければ、どんなに代償を払っても、真っ黒な後輩に夜に電話します。 일면식도 없는 후배한테 전화해서 ‘당신 글을 참 재밌게 읽었다. 面識のない後輩に電話して、「あなたの文章、すごく面白かったよ。 좋게 읽었다. 良く読みました。 감명 받았다. 感動した。 '이렇게 얘기하는 그런 문화가 있습니다. というような文化があります。 그런 전화 한번 받으면 기분이 참 좋죠. そんな電話を一度でも受けると気分がいいですよね。 한국문단의 멋진 모습이라고 생각하는데 아무리 신인 작가라도 대가 앞에서 맞담배를 필 수 있는 것이 한국문단의 어떤 모습입니다. 韓国文壇の素敵な姿だと思うのですが、どんなに新人作家でも巨匠の前でタバコを吸えるのが韓国文壇の姿です。 다른 예술 장르하고는 좀 다른 그런, 민주적이라기 보다는 저는 그것은 글을 존중하는 사람들의 도덕, 모랄이라고 생각해요. 他の芸術のジャンルとはちょっと違うような、民主的というよりは、私はそれは文章を尊重する人の道徳、モラルだと思います。 나를 감동시킨 글이 있다면 그가 몇 살이든, 그가 누구든 간에 감사하게 생각한다 라는 것이죠. 私を感動させた文章があれば、彼が何歳であろうと、彼が誰であろうと、感謝する、ということです。 그것을 또 말로 표현하는 아름다운 미덕이 있어서 상당히 감동했던 기억이 있어요. それをまた言葉で表現する美しい美徳があり、かなり感動した記憶があります。 하여간 오늘은 장 그르니에와 알베르 카뮈에 대한 얘기, (알베르 카뮈는 너무 유명한 작가니까 제가 더 설명할 필요는 없겠죠? とにかく今日はジャン・グニエとアルベール・カミュの話、(アルベール・カミュはあまりにも有名な作家なので、これ以上説明する必要はないでしょう。 )에 대한 얘기를 하면서 ‘책 읽는 시간'팟캐스트 여섯 번 째 시간을 마치도록 하겠고요. )の話をしながら、「本を読む時間」ポッドキャストの第6回を終えたいと思います。 이 김영하의 팟캐스트는 아이튠즈 스토어에서 제 이름으로 검색해도 찾으실 수가 있고요. このキム・ヨンハのポッドキャストは、iTunesストアで私の名前で検索しても見つけることができます。 아니면 그냥 구글에서 ‘김영하 팟캐스트' 이렇게 치시면 이 팟캐스트를 담아놓은 사이트가 뜰겁니다. それともGoogleで「キム・ヨンハポッドキャスト」と入力すると、このポッドキャストを収録したサイトが表示されます。 그 쪽으로 가시면 되겠습니다. そちらに行けばいいのです。 의견이 있으신 분들은 ‘kimyoungha.com'으로 오시면 제 블로그가 있습니다. ご意見がある方は、「kimyoungha.com」に来ていただければ、私のブログがあります。 거기에 의견 주셔도 좋고요. そこにご意見をいただいてもいいですよ。 뭐 의견이 아니라 다른 여려가지 제안 이런 것도 감사히 받겠습니다. まあ意見ではなく、他のいろいろな提案、こういうのもありがたく頂戴します。 그럼 지금까지 김영하였고요. それでは、ここまでが金永吉でした。 여러분 안녕히 계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