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 지하 조사실, 스물 일곱 번째-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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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 지하 조사실, 스물 일곱 번째
수사관이 나타나 다시 이야기를 시작하자고 했다. 전혀 못 믿는 이야기라면 더 들으려고 하지도 않을 텐데 이야기를 하라는 걸 보니까 내 말을 믿긴 믿는 모양이었다.
“어머니는 평양 방직공장에서 만나고 나는 다시 초대소로 돌아왔습니다. 그 초대소에 약 3년 2개월간 수용되어 일본말을 하는 여자와 생활했습니다. 남자와 여자 지도원이 찾아와서 여러 가지 교육을 시켰습니다. 교육 내용은 일본어가 가장 기본이고 김일성 주체사상, 혁명이론, 남한의 정세, 북한의 사회주의의 우월성에 대한 교육이 주 내용이었습니다. 가끔 묘향산과 시내 견학도 나갔습니다. 지도원은 남조선을 해방시키기 위해 당신 같은 사람이 필요하고 그래서 교육을 시키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다가 1987년 11월쯤 초대소로 간부와 지도원2명, 그리고 노인 한 분이 찾아왔습니다. 간부는 신이찌를 나에게 소개했습니다. 그 날부터 저는 신이찌와 같이 초대소 생활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1층 방을 쓰고 신이찌는 2층 방을 썼습니다.”
초대소 생활에 대한 이야기가 시작되자 나는 불안감에서 벗어났다. 초대소에 대해서는 그들이 아무리 꼬치꼬치 캐묻는다 해도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오히려 그들이 의심을 품고 물어봐 주기를 은근히 바라기도 했다.
“어느 날 간부가 찾아와 임무를 준다면서 신이찌와 같이 구라파로 여행을 떠나라는 것이었습니다. 둘 사이는 일본인 아버지와 딸의 관계로 가장해야 하며 특히 저에게는 신이찌의 건강을 잘 돌보라고 했습니다. 해외에서의 연락은 그곳에 있는 북조선 대사관에 전화하면 된다며 전화번호를 알려주었습니다.”
“신이찌와 저는 11월 14일 북조선 비행기를 타고 평양을 출발하여 모스크바로 갔습니다. 모스크바에서는 북조선 대사관에서 이틀을 묵었습니다. 그동안 레닌광장도 구경하고 여기저기 관광도 했습니다. 다시 모스크바에서 소련 비행기를 타고 베를린에 가서 북조선 대사관에 4.5일 묵었다가 비엔나로 갔습니다. 비엔나에서는 5~6일간 호텔에 묵으면서 시내 관광만 했을 뿐 만난 사람은 없습니다.”
나는 될 수 있는 대로 경유지 한곳 한곳마다 세밀하게 설명하려고 노력했다. 어차피 수사관들의 기분을 돌리자고 시작한 새 각본인데 성의는 다하는 듯이 보이고 싶었다.
“비엔나에서 베오그라드로 가서 역시 호텔에 5,6일 묶었는데 그 기간 중애 두 남자가 호텔로 찾아왔습니다. 일본 말도 할 줄 알고 영어도 할 줄 아는 40세가량의 동양 남자 두 명이 가방을 들고 신이찌를 찾아와 15분가량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때 저는 자리를 피해 화장실에 들어가 있었기 때문에 그들이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는지 모릅니다.”
마침 점심식사가 들어와 여기에서 이야기를 중단했다. 나는 이야기를 하면서 수사관들의 표정을 유심히 살폈다. 내 말을 믿는지 그렇지 않은지 변화를 보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표정은 노친네 잔소리를 듣는 젊은이들처럼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것 같은 표정이었다. 한마디로 내 이야기에 큰 관심이 없다는 얼굴이었다. 믿지 않기 때문인지 이미 그 정도는 다 알고 있었다는 표정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점심 식사가 끝나고 나는 바로 이야기를 계속하려 했으나 그들은 아이스크림을 사와서 먹어가며 잡담을 벌였다. 나에게는 여성 잡지를 갖다 주며 보라고 한다. 나는 이들의 선전에 빠지면 안 될 것 같아 옆으로 밀어 놓았다. 여유작작한 모습들에 은근히 화가 치밀었다. 나는 혼자 애를 태워가며 이야기에 열을 올리고 있는데 이들은 아이스크림을 먹으면서 잡담이나 하고 있으니 그 속셈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잡담이래야 크리스마스 파티, 송년 파티 등 사사로운 이야기들 이었다. 서울이 얼마나 잘 살기에 먹고 사는 이야기가 아닌 즐기는 이야기뿐인가 하여 나에게 선전하려는 수작이겠지 하는 의심마저 품었다.
나레이션 : 대남공작원 김현희의 고백, 랑독에 박수현이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