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 지하 조사실, 서른 번째-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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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 지하 조사실, 서른 번째
서울 구경을 나갔을 때 도로에 가득 찬 자동차들에 놀라고 운전자 중에는 멋진 여자들도 꽤 많이 있어 또 한번 놀랐다. 북에서는 승용차는 모두 당이나 성 기관의 높은 간부가 탔기 때문에 학생 때는 지나가는 승용차를 향하여 무조건 인사를 했다. 운전도 젊은 사람이 선망하고 있는 직업 중의 하나였다. 여자들은 무궤도 전차 운전이나 할 수 있지 승용차 운전은 꿈도 꾸지 못하는 현실이다. 외출 시작부터 주눅이 들어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나의 첫 외출은 남대문, 시청, 광화문, 중앙청, 서대문, 마포, 여의도, 강변도로, 올림픽 주경기장, 잠실 무역회관, 압구정동을 돌아 남산에서 서울 시내 야경을 보는 것으로 끝났다. 특히 나를 가장 괴롭히는 것은 수많은 간판들이었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간판의 행렬을 대하면서 눈이 어지러워 차멀미까지 났다.
행인들의 활기찬 표정과 자유로운 행동, 잘 차려 입은 각양각색의 옷차림도 인상적이었지만 내 마음을 뒤흔들어 놓은 것은 자동차도 옷차림도 간판도 아니었다. 자동차가 신호 대기 중에 있을 때 내다본 거리의 노점상들을 보고 나는 충격을 받았다. 북에서 듣기로는 남조선에서 가장 하류층에 속하는 계층 중에 하나가 노점상이라고 하였다. 그 하류층의 노점상들이 팔고 있는 물건들이 내 눈길을 잡아끌었던 것이다. 고급 시계를 벌여 놓고 팔고 있는가 하면 고급스런 연장, 옷, 신발 등을 파는 노점상도 있었다. 북에서는 꿈에서조차 해볼 수 없는 공상 같은 일이었다. 북에서 같으면 농민 시장에 시계 하나만 들고 나가서 팔면 다섯 식구 가족이 여러 달을 먹고 살 수 있는 돈이 생긴다. 내 상식으로는 고급 시계 노점상은 도저히 이해되지 않았다. 얼마나 많은 돈을 주고 저 시계를 사다가 장사를 할 수 있는가? 저것을 팔면 엄청난 돈이 남을 텐데 왜 하류층이라고 하는가. 내가 아는 사회구조의 사고방식으로는 감을 잡을 수도 없었고 계산이 서지도 않았다. 그저 혼란스러울 뿐이었다.
남산 위에서 내려다본 서울의 야경도 너무나 환상적이었다. 한마디로 서울은 남에게 잘 보이려고 억지로 꾸미지 않는데도 자연스럽게 자율적으로 꾸려 나가는 사회임을 직감할 수 있었다. 내가 자백한 뒤 서울 첫 외출에 대한 소감을 감상문으로 적어낸 것이 있는데 여기에 소개할까 한다. 그때는 너무 흥분한 상태에 있어서 두서없이 써내려갔으나 솔직한 심정 그대로였기 때문에 여기에 옮긴다.
“저는 인민들의 가장 평범하고 보편적인 생활을 보여주는 곳들을 돌아보고 많은 것을 느꼈습니다. 거리에 이르는 곳마다 차고 넘치는 정갈하고 아름다운 국내산 제품들과 충족한 식료품들, 그리고 이를 팔기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의 친절성과 밝은 얼굴들. 이러한 현상은 북조선과는 너무도 차이나는 현상들입니다. 다른 발전된 자본주의 사회에 비해 보아도 나으면 났지 손색이 없었습니다. 인민들의 복리 증진을 위해 나라의 모든 정치 경제가 협력해 나가는 데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거리의 시설도 최신, 현대적으로 꾸려졌으며 인민들의 생활에 편리하도록 복무 이용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런 면을 크게 선전하는 평양과 비해 볼 때 서로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차이가 나는 것을 알았습니다. 남조선의 우월성을 똑똑히 알 수 있었습니다. 저가 북조선에서 듣고 배우고 생각하던 것과는 너무나 상반되는 현상이어서 의심감과 배반당한 마음, 그리고 이곳에 대한 새로운 긍정감으로 내 자신을 억제 할 수가 없었습니다. 서울의 일부분만 보아서 전체에 대해 다 알지는 못하겠지만 일부분일지라도 이곳이야말로 인민들이 마음껏 능력을 발휘하여 잘 살 수 있는 지상낙원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반면에 북조선이 얼마나 엄격하고 부자유스러운 사회인가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서방 자본주의 국가에 나다닐 때마다 낙후한 생활 현상이 항상 부끄러웠는데 우리 민족 중에서도 이렇듯 훌륭히 살아가는 곳이 있다는 걸 알고 가슴 뿌듯한 민족적 자부심과 긍지를 느끼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발전된 사회를 이룩하기 위해 그동안 얼마나 많은 고생들을 하셨습니까? 참으로 수고들 하셨습니다.”
나는 자백한 뒤 서울에 처음 외출했을 때의 소감문을 이렇게 적어냈다.
나레이션 : 대남공작원 김현희의 고백, 랑독에 박수현이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