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 지하 조사실, 서른 네 번째-1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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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 지하 조사실, 서른 네 번째
실제로 본 서울에 놀라 마음이 흔들리고, 더불어 내가 수행한 전투 임무에 대한 의구심이 또한 나를 괴롭혔다.
‘비행기를 폭파하여 많은 노동자를 희생시킨 그 행위가 과연 조국통일을 앞당기는 데 한몫을 하는 일인가? ' ‘올림픽이 서울에서 개최되면 두 개의 조선이 고착화되는가? ' ‘남조선 비행기를 폭파하면 올림픽이 서울에서 열리지 못하는가?' 이러한 의문은 파고들면 파고들수록 더 큰 의문이 꼬리를 물었고 멍청이가 아닌 다음에야 북쪽과 남쪽의 말 중 어느 말이 타당한 말인지 판단이 섰다. 나는 이미 뿌리 뽑힌 나무처럼 힘없이 흔들리고 있는 나 자신을 알고 있었다.
이 시점에서 뭐니뭐니해도 최대의 고민은 북에 두고 온 가족 문제였다. ‘나 하나 죽어 없어지면 우리 가족은 최고의 대우를 받을 수 있을텐데. '난 정말 가족을 위해서라도 죽어지고 싶었다. 수령과 조국을 위해 이 한 몸 바친다는 명분아래 내 가족을 위해 희생하고 싶은 것이 가장 솔직한 내 심정이었다. 죽어지는 내 목숨 하나가 우리 네 식구의 목숨을 살리는 일인데 어찌 그 일을 마다하겠는가? ‘ 다 말할테니 당신들만 알고 날 죽여 주시오. 내가 끝끝내 입을 다물고 죽었다는 소문만 내 준다면 난 당장이라도 모든 것을 말하겠소!' 하고 사정하며 매달려 보면 어떨까도 생각해 보았지만 그건 불가능한 일이다. ‘나를 공들여 살려 놓은 것은 내 입으로 그 비밀을 낱낱이 불어 사람들 앞에 까발리려고 한 짓인데 나를 편히 죽게 내버려둘 리가 없지.'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땅이 꺼질 듯 한 한숨만 새어 나왔다.
12월 23일. 뜬눈으로 밤을 세웠어도 아무런 결론에 도달하지 못했다. 아침식사를 뜨는 둥 마는 둥 물린 다음 그냥 침대에 누워 버렸다. 수사관들도 나에게 생각할 시간을 주기 위해서인지 말을 걸지 않고 내가 하는 대로 내버려 두었다. 괴로운 시간이 흘러가고 또 다가오고 그래도 끝장이 나지 않았다. 점심식사가 끝나고 나는 더 이상 견디기 어려워 수사관을 붙들고 담화를 요구했다.
“남조선이 살기 좋은 곳이면 왜 데모가 자꾸 일어납니까?”
수사관은 내 마음의 갈등을 간파했는지,
“북조선에서는 그나마 데모할 자유라도 있는가?”
라고 반문했다. 그리고는 다시 어제 했던 말을 차근차근 되풀이해 가며 나를 설득시키려 들었다.
“북에서 온 사람들의 가장 큰 고민이 가족문제라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어. 너도 이 문제가 가장 궁금하고 걱정이 될 테지. 우리도 가족이 있는 사람들인데 그 심정을 모를 리가 있나. 그러나 그 문제는 네가 저지른 행위의 정당성부터 따진 뒤에 생각할 일이야. 비행기에 타고 있던 사람들은 모두 115명으로 그들은 정치, 사상, 이념과 아무런 관계가 없는 성실한 노동자들이었다는 것을 어떻게 생각해? 이 끔찍한 죄악을 숨기기 위해 너는 죽으려 했어. 네가 이 일을 행하는 순간까지는 네 조직을 위해 정의로운 일을 한다고 생각했겠지. 그러나 이제는 깨달을 때가 됐어, 아니 이미 깨달았을거야. 깨달았다면 너는 과감히 정의의 편에 서야 돼. 이건 결코 배신자가 되는 것이 아니야. 네가 만일 정의의 길을 택한다면 너의 가족들도 희생을 감수할 것이 틀림없어. 너는 속았기 때문에 너를 속인 편을 위해서라도 더 이상 고민할 필요가 없는거야. 우리도 네가 고민하는 모습을 보기가 괴롭다는 것을 알아둬. 빨리 결단을 내리는게 좋아.”
수사관의 설교는 끝이 없을 것처럼 이어졌다. 그들은 나를 이해시키려고 온갖 단어를 다 동원했다. 내가 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고개를 숙인 채 손장난만 하고 있으니까 나중에는 간절하게 사정하다시피 나를 달래었다.
나레이션 : 대남공작원 김현희의 고백, 랑독에 박수현이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