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대학시절, 열 일곱 번째-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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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대학시절, 열 일곱 번째
1980년 1월 말 쯤 이였다. 그날도 방과 후에 다른 때와 마찬가지로 김일성 혁명력사 연구실에서 청소를 끝내고 책상에 앉아 일어판 <로빈손 크루소>를 읽느라 정신이 빠져 있었다. 저녁 7시쯤 연구실 소조 선생이 들어와 요즘 무슨 책을 읽기에 정신이 빠져 있는거냐며 물으시고는 로어과 강좌장 선생으로부터 나를 찾는 전화가 왔으니 가보라고 전해준다. 로어과 강좌장 선생은 지난해 가을에 과수농장으로 농촌 지원을 나갔을 때 인솔자였기 때문에 안면이 있던 터였다.
바깥 날씨는 매우 추웠지만 로어과 강좌 선생이 있는 2호 청사까지는 3,4분이면 되는 거리이기 때문에 외투도 걸치지 않고 간단히 마후라만 두르고 뛰여 갔다. 강좌장을 찾아 가니 다른 선생들은 아무도 없고 강좌장 옆에 웬 낯선 아주머니 한 분이 앉아 있었다. 북조선에서는 흔치 않은 밤색 양복 기지로 만든 한복을 차려 입었고 머리를 틀어 올렸는데 풍채가 좋고 점잖아 보이는 아주머니였다. 얼핏 보며, 높은 간부집 학부형인가 보다 하고 생각하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부르셨습니까?” “어. 현희동무, 빨간색 마후라를 두르니 더 고와 보이는구만. 앉기요”
그는 여느 때보다 더욱 반갑게 맞으며 의자를 권했다.
“그런데 현희동무, 전에 과수농장에 간적 있었디요?” “네, 갔었습니다.” “어....저... 그런데 그때 로어과에 어느 동무가 식당일을 했디요? 기억나오?”
묻는 내용이 어딘가 좀 어색하고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러면서도 기억나는 대로 대충 답변해 주었다.
“어...저...현희동무, 요즘 당의 유일지도체제 학습을 열심히 하갔디요? 유일적지도체제란 어떤 것이디요? 유일적 지도체제를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디? 온 사회 김일성주의화란 무엇이디요? 사회주의 완전승리란 어떤 것이디요? 후계자는 어떤 분이 되여야 하는가 생각해 보았갔디요?”
당시에는 김정일을 후계자로 떠받들기 위해 전국적으로 유일적 지도체제 확립에 관한 학습이 진행되던 때여서 학교에서도 이에 대한 집중 강습이 강화 되고 있었다. 그래서 이런 질문은 있을 수 있는 내용들이였다. 그러나 나는 강좌장의 그런 질문보다는 곁에 있는 아주머니의 태도가 몹시 신경이 쓰였다. 그 아주머니는 답변하고 있는 나를 옆에서 이모저모 뚫어져라 관찰하고 있었다. 나의 아래위를 훑듯이 뜯어 보는가 하면 어떤 때는 몸을 반쯤 일으켜 내 머리 뒤통수와 등뒤까지 세밀히 보고 있다가 내가 그녀를 돌아다 보면 얼른 시선을 다른 데로 돌리고 딴전을 피웠다.
“아버지가 어디 다니니?” “무역부와 무역부 사무실이 어디 있던가?” “아, 광장 옆에 레닌 사진이 붙어 있는 청사! 그렇지, 아버지가 성 기관에 있으니 유일지도체제 학습 자료를 구할 수 있겠구만” “어머니는 뭘 하시나? 동생들은 몇이나 되지? 집이 어디지? 그럼 뭘 타고 통학하는가?”
아무런 내용도 없는 강좌장과의 담화는 20여분만에 끝났다. 나는 연구실로 돌아 오면서 아무리 곰곰이 생각해 보아도 강좌장의 별스런 태도에 대한 해답이 나오지 않았다.
‘별일도 다 많지. 도대체 무슨 일인가? 또 그 아주머니는 누구지?' 그 옆에 앉아 있던 아주머니의 수상쩍은 행동 역시 수수께끼로 남은 채 나는 곧 그 일을 잊어 버렸다. 이 일이 있고 나서 열흘도 안 되여 중앙당 담화가 시작되였고 나는 그해 3월에 중앙당에 소환되여 갔다. 그런데 이 수수께끼는 1년이 지난 뒤에 풀렸다.
나레이션 : 대남공작원 김현희의 고백, 랑독에 박수현이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