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의 고백, 마흔 번째-208
눈물의 고백, 마흔 번째
앰플을 깨물면서 나는 캄캄한 암흑 속으로 빠져들었다. 훈련견처럼 잘 길들여진 김일성의 충성스러운 딸은 이때 죽었다. 모든 것은 다 끝났다. 독약 앰플을 깨무는 순간 나는 고통으로부터 해방되었던 것이다. 캄캄한 어둠이 나를 덮쳤고 그리고 모든 것이 끝장이었다.
허탈했다.
가슴 속에 꾹꾹 눌러 채워져 있던 사건 전모의 비밀과 응어리들을 다 털어 내놓고 나니 나는 빈껍데기만 남은 것처럼 허탈한 상태에 빠졌다. 마음 같아서는 몇 날 며칠이고 푹 깊은 잠에 빠져들어 쉬고 싶었다. 얼마나 많은 날들을 잠을 설쳤던가. 얼마나 오랫동안 가슴을 조이며 두려움에 떨었던가. 이제 훨훨 날아갈 듯 짐을 벗어 놓은 심정이었다.
“이 사람들은 내게서 빼낼 비밀만 다 빼내고는 무참하게 처형시킬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홀가분한 기분인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죽을 때 죽더라도 우선 피가 마르는 불안에서 해방된 것이 마음 가벼웠다. 그렇다고 마냥 마음이 편안한 것만은 결코 아니었다. 내가 살아나고 자백을 했으니 나의 가족이 북에서 당할 고통은 안 보아도 뻔한 사실이었다. 그것이 나에게는 제일 커다란 괴로움이었다. 자백이 늦어진 이유 역시 북에 사랑하는 가족이 있기 때문이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다정하게 나를 부르시던 아버지의 그 따뜻한 음성과, 우리 현희는 언제 돌려보내 주냐고 하던 엄마의 눈물을 어떻게 저버릴 수가 있는가. 남편을 잃은 현옥이와 앞날이 유망하던 현수에게 언니, 누나인 내가 도움은 못 줄망정 고통을 줄 수는 없다고 생각했었다. 결국 피치 못할 입장이 되어 사건 전모를 자백하게 되었지만 항상 마음에 걸리는 것은 가족뿐이었다. 비밀을 고수하기 위해 별의별 거짓말을 둘러대고 그 거짓말이 탄로날까봐 애를 태우고 그 거짓말을 위해서 또 거짓말을 하고....그 고통도 말할 수 없이 컸지만 자백을 하고 난 후의 심적 고통 역시 그 전 고통과 다를 바가 없을 정도로 컸다. 단지 고통의 종류가 다를 뿐이었다. 자백하기 전의 고통이 현실적이고 외형적인 것이었다면 자백 후의 고통은 내면적이고 농도가 짙은 것이었다. 또 자백 전의 괴로움은 여러 사람들이 함께 겪고 누구나 인정하는 것인데 반해 자백 후의 괴로움은 오로지 나만이 혼자 겪는 외로운 것이었다.
더구나 자백 전에는 당과 수령과 조선 인민을 저버릴 수 없다는 의무감과 책임감에 사로잡혀 있었지만 자백 후에는 가족을 고통 속에 빠뜨렸다는 죄책감에 몸부림쳐야만 했다. 그러면서도 한 가지 위안이 있다면 내 일신의 편안함이나 내 한목숨 살아남기 위한 자백이 아니었다는 점이었다. 궁지에 몰릴 대로 몰린 상황에서도 내가 저지른 범행이 얼마나 잔인무도하고 엄청난 죄악이었는가를 깨달았기 때문에 인간의 탈을 쓴 짐승이 아니고는 사실을 털어놓지 않을 수 없었다.
한편 생각하면 내가 올바른 가정교육을 받았고 많은 사랑 속에서 살아왔기 때문에 빨리 내 죄를 깨우친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사랑은 받은 사람만이 줄줄도 안다는 말이 있다. 뜨거운 남의 나라에 돈벌이 나갔다가 귀국하는 근로자들이 비행기 탑승객의 대부분이었다는 소리를 듣고부터 사실은 내 마음이 흔들렸었다. 그들이 부모형제, 처자식을 만나 얼싸안고 반기는 모습을 상상하면 죄책감으로 가슴이 미어질 것 같았다. 반가움의 환호성 대신에 땅바닥을 치는 통곡으로 변하게 한 장본인이 바로 나라는 생각은 결코 나 자신을 용서할 수 없게 만들었다.
모든 것을 자백하고 나서도 내 나름대로 갈등이 많았다. 친해진 수사관들과 자연스러운 대화도 나눌 수 있고, 그들끼리 나누는 이야기 속에 끼어들 수도 있게 되었지만 그것은 잠시잠깐일 뿐 내 괴로움을 혼자 가누기가 힘들 정도였다. 하지만 전에 비하면 말을 못 알아듣는 척하고 살다가 마음대로 알아듣고 말 할 수 있다는 사실 한 가지만 해도 숨통이 터지는 기분이었다. 나는 저녁식사를 하면서 이곳 음식과 북쪽 음식을 비교하기도 하고, 엄마의 음식 솜씨 자랑을 늘어놓기도 했다.
나레이션 :대남공작원 김현희의 고백, 랑독에 박수현이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