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장 몽룡, 거지가 되어 나타나다
해가 질 무렵, 몽룡은 춘향의 집에 도착했어요. 몽룡이 춘향의 집에 들어가니 월매가 물을 떠 놓고 하늘에 빌고 있었어요.
“하느님, 하느님, 하나밖에 없는 제 딸, 춘향을 살려 주십시오. 저희를 불쌍히 여기시고, 한양 간 이몽룡이 과거에 급제하게 해 주세요.”
월매가 기도하는 모습을 본 몽룡은 코끝이 찡했어요.
‘내가 장원 급제한 것이 조상 덕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우리 장모 덕이로구나!'
“안에 누구 있느냐?”
몽룡은 큰 소리로 외치며 안으로 들어갔어요.
“누구요?”
“나요.”
“나라니, 누구신가?”
“이 서방이요.”
“이 서방이라니. 아, 저 건넛마을 이 씨 아들 이서방?”
“어허, 장모. 사위 목소리도 잊었나?”
“누구? 아이고! 이 사람, 어디 갔다 이제 왔소? 춘향이 소식 듣고 살리러 왔소? 어서어서 들어가오.”
월매는 놀란 목소리로 말했어요. 그런데 촛불을 앞에 두고 몽룡을 자세히 살펴보니 거지 중에 상거지 모습이었어요.
“아니, 왜 이 모양인가?”
“장모, 양반이 한번 잘못되니 말로 할 수가 없네. 한양에 갔더니 벼슬길은 막히고 재산도 다 없어졌더라고. 춘향에게 내려와 돈 좀 얻어 갈까 하고 왔더니 여기도 말이 아닐세.”
이 말을 들은 월매는 기가 막혀 말이 안나왔어요. 너무 화가 나 몽룡의 코를 잡아 비틀었어요.
“이 냉정한 사람아! 이별 후 소식 하나 없어도 꼭 데리러 오겠다는 약속만 믿고 과거 급제하기만 기다린 우리 춘향이를 어찌 살려 낼텐가!”
“장모, 나 배고파 죽겠네. 밥 좀 먼저 주시오.”
“뭐? 뭐라? 자네 줄 밥 없네.”
이때 감옥에서 춘향을 만나고 돌아온 향단이 몽룡의 목소리를 듣고 방 안으로 뛰어 들어와 인사했어요.
“도련님, 향단이 인사드립니다. 먼 길 평안히 다녀오셨습니까?”
향단은 춘향 아가씨가 그토록 그리워하던 몽룡을 보니 반가워 눈물을 줄줄 흘렸어요. 그러고는 부엌으로 들어가 남은 밥에 간장과 김치를 놓고, 냉수 가득 떠서 상을 차려 왔어요. 몽룡은 밥과 반찬을 한꺼번에 붓더니 정신없이 먹었어요. 이때 향단은 아가씨를 생각하여 크게 울지도 못하고 눈물을 삼켰어요.
“향단아, 울지 마라. 춘향이가 설마 죽기야 하겠느냐? 지은 죄가 없으면 반드시 나올 것이다.”
몽룡은 감옥에서 고생하고 있을 춘향을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어요.
“향단아, 이제 상 치워라. 장모, 춘향이나 보러 갑시다.”
마침 새벽을 알리는 종소리가 들려왔어요. 몽룡은 향단의 뒤를 따라 감옥 앞에 도착했어요.
“춘향아!”
몽룡의 목소리가 들리자 춘향이 깜짝 놀라 잠에서 깼어요.
“이게……. 꿈인가? 서방님 목소리가 들리네.”
몽룡이 좀 더 큰 소리로 춘향을 불렀어요.
“춘향아, 정신 차리고 나를 보거라. 내가 왔다.”
“오다니, 누가 와요?”
월매가 짜증스러운 말투로 춘향에게 말했어요.
“너의 서방인지는 잘 모르겠는데, 거지는 분명하다.”
춘향이 몽룡에게 다가와 창살 사이로 몽룡의 손을 잡고 숨이 막혀 한동안 말없이 울기만 했어요. 춘향이 정신을 차려 자세히 보니 몽룡의 모습이 불쌍하기 짝이 없었어요.
“서방님, 제 몸 하나 죽는 것은 서럽지 않으나 서방님은 어쩌다 이 모양이 되었습니까?”
“괜찮다, 춘향아. 걱정하지 마라. 사람 목숨은 하늘에 달렸는데 설마 죽기야 하겠느냐?”
이 말을 듣고 춘향이 어머니를 불렀어요.
“어머니, 공든 탑이 무너졌네요. 제 신세가 불쌍하게 되었지만 저 죽은 후에도 서방님을 미워하지 마세요. 제가 입던 비단옷을 팔아 서방님의 옷을 사 드리세요. 은비녀와 반지도 팔아 갓과 신발을 사 주세요. 제가 없어도 서방님을 잘 보살펴 주세요.”
이번에는 몽룡의 손을 잡고 부탁했어요.
“서방님, 내일은 변 사또의 생일입니다. 생일잔치에 저를 불러 또 매를 칠 것입니다. 여기서 더 맞으면 저는 살 수가 없습니다. 제가 죽으면 서방님이 직접 저를 묻어 주세요. 그리고 제가 죽으면 불쌍하신 우리 어머니에게는 피붙이가 아무도 없습니다. 제 어머니를 춘향이처럼 생각하고 보살펴 주시면 죽어서도 은혜를 갚겠습니다.”
춘향은 말을 마치고 서럽게 울었어요.
“울지 마라, 춘향아.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고 했다. 나만 믿고 기다려 보아라.”
몽룡은 자신이 어사가 되었다고 밝히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어요. 말도 못 하고 춘향을 보고만 있자니 답답해서 견딜 수가 없었어요. 몽룡은 우는 춘향을 달래고 월매와 향단을 집으로 돌려보낸 후 광한루에 올라갔어요. 몽룡의 뒤에는 어사를 수행하는 관리들이 조용히 뒤따르고 있었어요.
“내일은 사또의 생일잔치 날이다. 분위기가 최고에 달할 때 내가 신분을 밝힐 것이니 너희들도 사람들 눈에 띄지 않게 기다리고 있어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