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sode 33 - 무라카미 류 “달콤한 악마가....”
작가 김영하의 책 읽는 시간 팟캐스트.
안녕하세요, 책 읽는 시간 팟캐스트 진행하는 작가 김영합니다. 그동안 잘 지내셨습니까.
네, 때는 바야흐로 가을입니다. 가을에는 책 읽기가 좋은 계절이라고 예전부터 그러는데, 실제로는 뭐, 여름에 사람들이 책을 더 많이 산다고 하죠. 휴가지에서 읽고 또 방학이다 뭐 휴가다 해서 책을 많이 사는데 그래도 역시 어… 책에 집중해서 읽기 좋은 그런 시절은 가을이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듭니다. 이, 그, 우리가 소설을 생각할 때, 이것을 작가와 분리해서 생각하는 것은 쉽지가 않죠. 네, 그래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고 그럴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는 어, 사람도 있지만 어떻게 주장하든 간에 우리는 어떤 소설을 읽을 때 그 작가에 대한 이미지를 떨쳐버리기가 쉽지 않습니다. 작가가 어떻게 사느냐 어떤 삶을 살아가는가와 그 작품…을 또 분리하기도 쉽지 않구요. 어… 어떤 잔상처럼 작가에 대한 우리의 이미지가 작품에 에, 투영되기도 합니다. 일본 작가들 같은 경우는 더 그런데요. 일본작가들은 우리가 흔히 얘기하는 그 사소설의 전통이 있죠. 일본 사소설은 단순히 자기 그 개인사를 소설로 쓴다 라는 수준의 문제가 아니고 실은 소설대로 살아버린다 라는 것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 사소설을 쓰는 작가들은 철저하게 자기 삶에서 인생에서 이야기를 끌어오고요, 그러다 보면 인생을 평범하고 무난하게 살아서는 안 되기 때문에 조금 더 극단적으로 극단적으로 자기 자신을 몰아붙이게 되구요, 과장일진 모르겠지만 결국에는 어, 자살로 생을 마감하는 작가들이 유독 일본에 많은 것도 그런 사소설적 전통 때문이 아닌가 이렇게 추정하는 어, 분도 제가 본 적 있습니다. 이 무라카미 류 같은 작가는요. 어, 사소설을 쓰는 작가라고 말하기는 좀 어려운 부분이 있습니다. 네, 전통적인 의미의 서구 작가들처럼 어떤 이야기들을 구상해서 그것을 삼인칭으로 서술하는 그런 소설들도 많이 써내고 있는 작가고, 지금은 아마 뭐, 이분도 환갑이 넘지 않았을까 싶은데 여전히 왕성한 필력을 과시하고 있습니다.
오늘 제가 소개할 책은요, 우리나라에 나온 제목은 ‘달콤한 악마가 내 안으로 들어왔다' 이렇게 되어있습니다. 부제로는 무라카미 류의 요리와 여자이야기 이렇게 돼 있습니다. 일본에서 나왔을 때는, 제가 이번에 확인해보니까 ‘무라카미 류 요리소설집' 이렇게 훨씬 간단합니다. 이것을 한국의 편집자가 조금 더 감각적인 제목으로 바꿨습니다. 달콤한 악마가 내 안으로 들어왔다. 이렇게 돼 있구요. 그리고 부제를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무라카미 류의 요리와 여자이야기라고 달았기 때문에 이것은 소설이라기보다는 어떤 산문이 아닌가 그런 생각을 불러일으키구요, 또 읽어 나가다 보면, 무라카미 류 그 자신 같아요. 딱 보면. 어, 소설가이기도 하고 또 비디오를 찍는 사람이기도 하구요. 무라카미 류는 영화도 찍었었죠. 영화도 찍고 소설도 쓰고 또 한때는 광고 쪽에 종사를 했는데 그 그런 자기가 살아온 인생과 크게 다르지 않은 어, 인생을 살고있는 주인공들이 등장하기 때문에 마치 그 무라카미 류의 어떤 산문집을 보는 것 같은 그런 착각을 불러 일으킵니다. 그러나 한국어판 서문에서 밝히고 있듯이 이것은 소설집입니다. 어, 이 책을 읽어보시면 알겠지만 소설집이라고 생각하면 약간 마음의 위안이 되는 바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게 진짜 겪은 일을 다 쓴 거라고 하면 인생이 너무너무 네, 근사하거든요. 하지만 이걸 소설이라고 생각하면 우리에게 위안을 주는 바가 있습니다. 아마 읽어보신 분들은 무슨 말인지 아시리라고 생각합니다. 많은 미인들과 너무나 맛있는 요리들을 먹고, 또 너무나 좋은 곳에 가서 인생을 보내고 있기 때문에 이 사람은 뭔데 이렇게 어, 멋지게 사는 거야 이런 생각이 들 수도 있는데 뭐, 소설이라니까. 어, 뭐 아까 말씀 드린 것처럼 일본의 사소설적 전통을 생각하면 또 진짜 겪은 건가 하는 생각이 또 잠깐 들기도 하지만 어, 무라카미 류라는 작가가 또 그렇게 또 사소설을 쓰는 그런 작가도 아니니까 위안이 됐다가 아니기도 했다가 하여튼 뭐 헷갈립니다. 하여튼 일본 작가들은, 전 세계 어느 나라 작가들과도 조금 다른 문학적 지형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자, 일단 아, 이 무라카미 류의 한국어판 서문을 한번 읽고요. 그다음으로 또 이야기를 이어 가겠습니다.
(음악)
한국어판 서문
그래도 여행은 계속된다. 1980년대 후반부터 해외여행을 자주 했다. 테니스나, F1 그랑프리, 골프, 아메리칸 풋볼, 월드컵 축구 등의 스포츠 관전 취재가 많았다. 돌이켜보면, 당시 일본은 거품경제가 한창인 때였다. 1990년에 이탈리아 월드컵을 본 다음, 이런 정도의 스포츠 관전 취재는 그만두어야겠다는 생각도 했었다. 그냥 관객으로 스포츠를 즐기는 일이 지겨워졌던 모양이다. 우연의 일치인지는 모르겠지만 마침 그때 일본의 거품경제가 된서리를 맞기 시작했다. 부동산과 주가가 바닥을 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바로 그때, 나는 쿠바라는 나라를 알게 되었다. 지금 일본은 자신감을 상실하고, 저 1980년대 거품경제에 대해 국민적인 차원에서 참회하고 반성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 어리석은 짓을 하다니. 우리가 얼마나 바보였던가 하고 후회하는 것이다. 거품경제는 이윽고 파멸 상태에 빠져들었고 자산 가치도 현저하게 줄어들었지만 그 호경기 시절에 거두어들인 돈을 확실히 소비한 사람은 이익을 보았다고 할 수 있겠다. 나는 해외에서 많은 돈을 낭비했다. 유럽이 주된 무대였는데 각국에서 최고의 호텔에 머물렀고 최고의 스위트룸에서 사치스럽고 진귀한 음식을 맛보았다. 나는 그때까지 인생에서 최고의 낭비를 즐겼다. 이 요리소설집은 바로 그때 쓰여진 것이다. 거품이 가라앉고 불황에 빠져든 현재, 나는 그때의 낭비벽을 과연 그만두었을까? 아니다. 나는 아직도 전과 같은 여행을 계속하고 있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 때는 매일 호화로운 호텔에 머물렀고 리무진을 타고 스타디움으로 갔고 별 세 개짜리 레스토랑을 수도 없이 제패하고 이동할 때는 헬리콥터를 이용했다. 돈은, 써버리면 거품 따위가 일어날 수가 없다. 더 벌자, 더 저축하자 라는 서글픈 농경민적 가치관이 거품경제와 디플레이션을 일으키는 것이다. 수렵민은 낭비밖에 모른다. 어떤 측면에서 볼 때, 낭비는 미덕인 것이다. 1999년 4월, 무라카미 류.
(음악)
네, 작가의 캐릭터를 잘 보여주는 그런 작가의 말이죠? 네, 특히 여기서 인상적인 것은 어, 수렵민은 낭비밖에 모른다, 그죠? 낭비는 미덕이다 라고 선언하고 돈은 써버리면 거품 따위 일어날 수 없다… 이렇게, 네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런 그, 문체에서 우리가 엿볼 수 있듯이 이 소설집 전체에서 보통 사람의 상식과는 다른 일들이 벌어질 것이다 라는 것을 네, 대충 짐작할 수가 있죠? 네, 어떤 의미에서 현대의 작가들은 상당히 조심스러운 존재들입니다. 어, 쓰지 말아야 될 것들에 대해서 상당히 이렇게, 머뭇거리게 되죠. 예를 들면 어, 정치적인 올바름이라든지, 또는 어떤 인권문제라든지, 여러 가지 문제에서 어, 이걸 쓰면 좀 문제가 될 것 같은데 라고 생각이 들면 일단 머뭇거리게 되는데 그런 부분에서 이 무라카미 류는 별로 거침이 없는 어, 그런 작갑니다. 그냥 쓰고 싶은 대로 다 쓰고, 여기서는 돈을 마음대로 쓰고 있지만, 여성편력이라던가 또는 뭐 마약 문제라던가에 이런 문제에 대해서 언제나 거침없이 쓰고요. 하고 싶은 건 거의 다 해본 사람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영화감독이기도 했고요, 음악 프로듀서였고요, 특히 그, 쿠바 브라질음악을 많이 소개 했죠. 또 사진작가이기도 하고, 스킨스쿠버, 그 스포츠 해설도 했습니다. 주로 테니스에 대한 해설을 했구요, 티비 토크쇼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뭐, 한마디로 그냥 그야말로 남자다, 이렇게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수렵민이라고 자기 스스로를 얘기하고 있죠? 돌아다니면서 뭐든지 다 닥치는 대로 해보는 겁니다. 뭐, 이런 사람이라고 우리가 짐작하고 읽으면 아마 더 재밌을 것 같습니다. 또, 이 자기 자신에 대해서 이렇게 작가의 말에서 설명하고 있기 때문에 어, 더더군다나 이 소설은 산문이거나 또는 사소설일 것이라는 짐작을 독자들에게 강하게 줍니다. 네, 정말 그런지는 누구도 모르는 거죠. 자 그러면 이 짧은 소설들로 이루어져 있는데요. 그중에 하나를, 어, 먼저 읽도록 하겠습니다.
(음악)
렌털 비디오의 즐거움 중의 하나는 일본 미공개 역작을 오백엔 동전 하나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나 자신, 비디오 제작을 하고 있지만 그 일과는 상관없이 매일 밤 렌털 비디오 숍에 간다. 이것도 버릇이 되어버리는 모양으로, 일에 쫓겨 비디오를 볼 시간이 없을 때도 습관적으로 테이프 두세 개를 빌리고 마는 것이다. 내가 가는 렌털 숍은 상당히 규모가 크다. 방화, 신작, 호러, 흘러간 명작, 교양, 음악, 아동을 위한 애니메이션, 포르노 등이 잘 정리돼있고, 모든 것을 컴퓨터로 처리하며, 새벽 네 시까지 영업을 하고, 다섯 명의 점원이 상주하고 있다. 선반에 가득 꽂힌 비디오테이프를 그냥 쳐다보기만 해도 즐거운 것은 가슴을 저미게 하는 분위기 때문일 것이다. 옛날로 말하면 대본소 분위기다. 내가 그곳에 가는 것은 대체로 심야 시간인데, 꽤 재미있는 광경을 보게 된다. 예를 들면 야쿠자처럼 보이는 남자가 불법 테이프를 들고 담당자와 협상을 벌이기도 하고, 포르노나 SM 테이프를 고르고 있던 남자가 우연히 아는 여자를 만나 얼굴을 붉히기도 하고, 서너 명의 젊은이들이 제각기 다른 공포영화를 빌리겠다고 싸우기도 하는 그런 광경이다.
최근에 거기서 묘한 여자를 만났다. 나는 골프 레슨 비디오와 일본 미공개 음악영화, 그리고 옛날 친구가 이름을 바꿔 촬영한 포르노를 빌렸다. 포르노 비디오 선반 앞에, 한눈에 물장사라는 것을 알 수 있는 여자 둘이 있었다. 두 사람 모두 삼십 대 후반이라 볼일도 끝난 듯한데 커버에 젊은 여자가 노골적인 포즈를 취하고 있는 테이프를 가득 뽑아들고 뭐라고 서로 말을 주고받는 모습이 나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포르노를 빌리는 여자는 별로 없다. 딱 한 번, 중학생으로 보이는 여자애가 손을 바르르 떨면서 오나니를 위주로 한 포르노 테이프를 빌리는 것을 본 적이 있다. 당연히, 여자도 성적 호기심을 가지고 있지만 포르노란 본래 남자의 성적 흥분을 유도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것이라 여자가 보면 별로 재미가 없다. 게다가 매일 지겨울 정도로 남자를 상대해 온 중년의 호스티스가 젊은 여자의 벌거벗은 몸을 보고 싶어 할 리도 없는 것이다. 두 명의 호스티스중 한 사람은 열심히 테이프를 뽑아들고, 다른 한 사람은 그 곁에서 불안한 표정으로 가만히 서 있다. 적극적인 사람은 선반 한쪽에서부터 테이프를 마구 빼내 그때마다 다른 한사람에게 보여주며 뭐라고 말을 한다. 다른 한사람이 고개를 저으면, 테이프는 선반으로 되돌아간다. 그런 작업을 반복하고 있었다.
분명 무슨 사연이 있는 모양이라고 가만 지켜보다가 그만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뭘 봐요, 기분 나쁘게.” 적극적인 쪽이 새된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다른 한사람이, “이제 그만해.” 하고 목소리를 높이는 여자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내게, “미안해요.” 하고 머리를 숙였다. “바보같이 왜 사과하고 그래. 너를 위해 이렇게 열심히 찾고 있잖아. 가만있으란 말이야. 남이야 뭐라든 무슨 상관이야.” 분실을 방지하기 위해 가게 안을 밝게 해두었기 때문에 아무리 화장을 짙게 해도 얼굴 주름만은 감출 수 없었다. 새된 목소리의 여자는 루이비통, 다른 한 사람은 레노마 백을 들고 있지만 옷 취향은 그리 고상해 보이지 않는다. 두 사람 다, 조금 취한 것 같았다. “제가, 찾아드릴까요?” 하고 나는 말을 걸었다. “아니요, 괜찮아요.” 라고 레노마 백을 든 여자는 몇 번 이나 고개를 숙였고, 루이비통 든 여자는 “참견 말아요, 가만 내버려둬요.” 라고 망가진 라디오처럼 새된 목소리로 나를 나무렀다. “이 사람 좀 어떻게 해봐. 왜 치근대고 그래 귀찮게 시리.” 새된 목소리 여자는 점원을 향하여 그렇게 외치더니, “젠장, 없잖아.” 하고 혼잣말로 중얼거리며 담배 한 개비를 빼물었다. “죄송하지만 금연입니다,” 하고 점원이 주의를 주었다. 포르노 테이프를 찾고 있는 짙은 화장의 말 많은 중년 여자는 아마도 모든 사람에게 인기가 없을 것이다. 담배에 대한 주의를 받고 두 사람은 기가 팍 죽어버렸다. 새된 목소리 여자는 눈을 치켜떴고, 레노마 백을 든 여자는 금방이라도 울어버릴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저, 실례지만 저는 실제로 비디오테이프를 제작하는 사람입니다. 에, 무슨 사정이 있는 것 같은데 제가 찾아드리죠.” 레노마 백을 든 여자는 몇 번이나 고개를 숙이며 부탁한다는 뜻을 나타냈고, 새된 목소리 여자는 수상쩍은 눈길로 내 머리카락 끝에서 구두까지 몇 번이나 훑어보았다.
차로 5~6분 떨어진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나는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들었다. 두 사람은 자매로, 새된 목소리 쪽이 동생이었다. 비디오 숍을 나와 내 스웨덴제 차를 보자 동생의 태도가 바뀌었다. “의논해 보도록 해. 이 사람은 신사 같애.” 두 사람은 스낵을 경영하고 있었는데 나는 처음 들어보는 가게였다. 언니 쪽에 열일곱 살 난 딸이 가출을 했는데 가게에 온 손님 중 한 사람이 포르노비디오에서 닮은 여자를 보았다고 한 모양이었다. “전화 한 통 아, 편지 한 장 없어요.” 동생은 열심히 말을 했지만 언니는 눈을 아래로 내리깔고 가만히 있었다. “테이프에서 보았다는 손님도 술에 취해서 남몰래 혼자 봤는지 타이틀도 기억을 못 해요. 그래서 저, 이런 일이 흔한가요?” “가출한 여자애가 포르노에 나오는 것 말입니까? 흔한 일이죠.” “그렇지만 이제 겨우 열일곱 살이에요. 선생님은 실례지만 어떤, 비디오테이프를 만드시죠?” “그, 포르노는 하진 않지만 이 업계에 친구가 많습니다. 열일곱 살 난 여자애라도 절대로 실제 나이를 밝히진 않으니까요.” “경찰에 신고를 했지만 몇백몇천명이나 돼서 도저히 찾을 수 없다고 해요. 우리 자매의 공동 딸이나 다름없어요. 역시 아버지가 없으니까.” 동생은 그렇게 말하며 울음을 터트렸다. 나는 주위의 눈치를 살피면서 거품 빠진 맥주를 한 모금 마셨다. “남자가 있었던 것 같아요.” 처음으로 언니가 입을 열었다. “그런 테이프를 제작하는가요, 그 남자는?” 그렇게 묻자, “몰라요.” 하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혹시, 생선 초밥 좋아하세요?” 언니가 그렇게 묻고 동생은 손수건으로 코를 풀었다. “생선… 초밥?” “네, 초밥.” “가끔 먹어요.” “씽코라고 아세요?” “씽코? 오씽코 가 아니구요? 아, 그거 말이군요? 전어. 아주 작은 전어.” “맛있어요?” “좋아하죠. 등 푸른 생선을 즐기는 사람이라면 다들 좋아해요.” “딸애가 딱 한 번 그남자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어요. 그 남자는 남쪽 섬에서 일본을 떠나 죽기 전에 생선 초밥 세 개를 먹으라고 한다면 그 씽코와 조토로, 그리고 장어를 먹겠다고 했대요. 선생님이라면 뭘 드시겠어요?” “나는 다이토로와 새우와 연어 알을 먹겠어요.” “동생은 달걀과 다이토로와 성게 알을 먹겠대요. 씽코와 조토로와 장어를 먹겠다는 남자가 어떤 종류의 사람인지 아시겠어요?” “글쎄요… 나라면 역시 조토로와 장어와, 음… 씽코라니. 의외로 예민한 사람일지 모르겠군요. 그 남자 말입니다만 젊은이가 아닐 겁니다. 씽코가 나오는 가게는 의외로 비싸요. 질 좋은 조토로도 고급이죠. 생선 초밥을 자주 먹는 남자일 겁니다. 나이가 들었고 부자일 겁니다. 식도락도 상당한 수준이니까요.” “아, 역시 그랬군요. 본적도 없는 고급옷을 입고 있었으니까요. 그 나쁜 놈이 데리고 놀 작정으로….” 딸 이름과 사진을 받고 그날 밤은 헤어졌다.
옛 친구에게 사진을 보였지만 찾는 건 무리라고 했다. 여자애가 몇백이나 되고, 본명을 사용하는 여자는 거의 없고, 진짜 매력있는 애 몇 명 이외에는 형편없는 대우를 받기 때문에 금방 유흥업계 쪽으로 흘러들어 간다고 했다. “미안하지만,” 하고 친구는 말했다. “얼굴을 보니 그렇게 흘러가는 애들의 전형이야. 교양이 없으면 떨어질 대로 떨어져 버려. 잘 듣게. 남자라도 그렇지만, 타락에서 인간을 구원하는 것은 교양이야. 히틀러나 폴포트를 보면 알잖아.” 우리는 잠시 다른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내가 문득 예의 생선 초밥 이야기를 했을 때, 친구의 안색이 변했다. 똑같은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는 것이다. 그 남자는 막대한 제작비를 들인 합작 영화를 잘 만드는 유명한 프로듀서로, 벌써 일흔이 넘었다고 했다. 물론 나도 그 남자를 알고 있었다. 그 프로듀서는 항상 간단한 안주로 술을 마시는데, 마지막으로 꼭 조토로와 씽코와 장어를 먹는다는 것이다. “거의 매일 긴자의 규베에 간다고 해, 그렇지만 자네, 그 사람에게 절대로 여자 얘길 하면 안 돼. 그랬다가는 일거리도 없어지는 것은 물론이고, 까닥 잘못하면… 죽을지도 몰라.” 친구는 그렇게 말했지만 나는 그 남자를 만날 생각이 없었다. 생선 초밥이라는 단서만으로 그 남자라고 단정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씽코와 장어와 조토로를 좋아하는 남자는 세상에 많을 터이니 때문이다. 나는 문득 그 남자가 제작한 일불합작의 유명한 영화의 아름다운 라스트신을 떠올렸다. 여자가 벌거벗은 남자의 등에 담뱃불을 짓이겨 끈다. 남자는 소리 하나 내지 않고, 영화는 시꺼멓게 덴 자국을 클로즈업하면서 갑자기 끝나버린다. 헉 시리 무섭고 슬픈 영화였다.
(음악)
네, 뭐, 인상적인 이야기죠? 네. 이 그, 조토로라는 것은 참치 뱃살이고요, 이 그 씽코라는 것은 네 뭐 책에도 나오지만 전어죠? 전어… 아주 작은 전어를 말하는 거고요. 이 다이토로는 역시 참치 뱃살인데 조토로와 다른 부위라고 합니다. 어쨌든 간에 이 그 특이한 조합에 초밥을 어… 먹는 사람 뭐 하여튼 그 음식을 단서로 찾는다는 것도 흥미롭고 그리고 장면이 재밌죠? 이 그 심야에 그 비디오 빌려주는 대여점에 와있는 호스티스 자매와 또 그들의 사연, 게다가 이 남자의 이야기 이런 것도 좀 흥미롭죠. 결국 뭐 이렇게 끝나는 소설이지만 저는 이걸 읽고 나라면 죽기 전에 뭘 먹을까? 생각을 해봤어요. 여러분은 어떤 걸 드시겠습니까. 내일 죽는다고 한다면, 어떤 것을 먹을까. 아무래도 가장 좋아하는 것을 다시 한번 먹지 않을까요? 어, 생전 안 먹어본 것을 한번 먹어보고 싶다 그런 분들도 계시겠지만 인생이 얼마 안 남았는데 그런 모험을 하기는 좀 그렇죠? 네. 하여간 먹는 것이 바로 그 사람이다 라는 말도 있듯이 네, 이 무라카미 류의 이 요리소설집은 그 사람이 먹는 것, 또는 함께 먹었던 것, 그리고 그 기억, 성격 이런 것들을 잘 버무리고 있는 그런 책입니다. 네, 우리가 역시 일상생활에서 어떤 사람을 처음 만났을 때 그 사람이 뭘 먹고 있는가 또 그 음식을 어떻게 먹는가를 보고 그 사람의 성격 살아온 이력 또는 뭐 부유한지 가난한지 뭐 이런 것들을 판단하지 않습니까? 저는 대학교 1학년 때 소개팅을 했는데요. 네, 그, 만난, 저와 같은 대학교 1학년이었던 여학생과 네 이대앞에 있는 그 즉석 떡볶이 집을 갔어요. 여학생들은 떡볶이를 좋아하고 또 그 즉석 떡볶이 집은 유명하니까 거기를 가면 좋아할 거라고 생각했죠. 하지만, 저의 착각이었습니다. 입가에 이 붉은 이 소스를 묻히면서 음, 처음 만나는 남자와 이야기를 하고 싶어하는 여자가 없다는 것을 그때는 몰랐죠. 열아홉 살이었으니까요. 자, 한편 더 읽고 이야기를 나누겠습니다.
(음악)
거리에서 스쳐 지나가면 누구든 뒤를 돌아보고, 가까이에서 바라보면 누구든 숨을 딱 멈춰버리는 그런 여자였다. “남자는 모두 내게 친절해요.” 처음 만났을 때, 참을 수 없다는 듯한 말투로 그녀는 말했다. 만난 장소는 캐나다 대사관이었다. 나는 브리티시 컬럼비아 관광 프로모션 비디오를 만들기 위해 자료를 빌리러 갔고, 그녀는 여름방학 동안 계약제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다. 말을 걸어온 쪽은 그녀였다. “실례지만 어떤 일을 하세요?” “비디오를 만들고 있어.” 나도 놀랄 정도로 차갑게 대답하고 말았다. 그녀는 안내실 바로 옆에서 서류정리를 하고 있었고, 나는 관광국의 담당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뜨거운 홍차를 한 잔 마실 동안 그녀는 말없이 서류를 보면서 일을 했고 이윽고 얼굴을 들어 올리더니 “어떤 비디오인데요?” 하고 물어왔다. 마치 어린아이가 아무것도 아닌 것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이게 뭐야?” 하고 심심풀이로 묻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무시무시하게 아름다운 미인은 대하기가 어렵다. 남자는 모두 몸을 움츠리고 만다. 근시인지 눈동자가 턱없이 맑게 반짝이고 입술의 움직임은 어디인가 다른 행성에서 온 미지의 생물처럼 보는 사람들의 가슴을 설레게 했다. “그냥 보통 비디오야.” 내가 왜 이리 부자연스러워하고 내심 고소를 금치 못하면서 또다시 냉담하게 대답하고 말았다.
관광국 사람과 별 볼 일없는 이야기를 두 시간이나 나누고 사무실 문을 열고 나와 보니 그녀가 보이지 않았다. 몹시 낙담하고 있는 나 자신을 보고 나는 놀랐다. 그러나 정문에서 점심을 먹고 돌아오는 그녀를 만났다. 오늘 여러 가지로 고마웠다고 내가 인사를 하자 그녀는 멈춰 서더니 명함을 한 장 줄 수 없느냐고 했다. 입가에는 미소를 띄고 눈을 약간 위로 치켜뜨며 나를 보았다. 남자라면 누구나 명함 아니라 지갑이라도 통째로 건네줄 것이다. “전화, 해도 될까요?” “괜찮지만 왜?” “아, 미안해요. 처음 만난 사람에게 실례를 했군요.” “아, 그런 건 아니야.” “일자리를 찾고 있어요, 내년에 졸업이거든요.” “대학은 어디?” 그녀는 도심지에 위치한 전형적인 여자대학 이름을 말했다. “나는 프리랜서야.” “알고 있어요. 그렇지만 여러 업계를 잘 알고 계시잖아요.” “그런가? 재미있는 분야라고 생각되면 이렇게 사람들에게 부탁도 하고 그러는 모양이네?” “아니에요.” “아니라고?” “신용할 만한 사람이 별로 없어요.” “나는 믿어도 될만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나?” “네.” “초능력을 가진 모양이군.” “상냥한 사람은 신용이 안 가요. 남자는 모두 상냥해요. 친절하기만 한 그런 사람은 존경할 수 없어요.” “그렇다면 나는, 상냥하지 않았다는 말인가?” “네. 귀찮다는 듯한 반응을 보였잖아요.” “왜 가만있는 사람에게 괜히 말을 걸고 그래? 하는 태도였잖아요.” 나는 웃었다. 그냥 너무 미인이라 몸을 움츠렸을 뿐인데. 오해가 행운을 불러오기도 하는 모양이다.
두 달 후에 전화가 왔다. 호텔 바에서 만나 미나미 아오야마에 있는 프랑스 레스토랑으로 갔다. 보이와 소믈리에를 대할 때도 그녀는 전혀 주눅 들지 않았다. 그렇지만, 정중한 대접을 받아 당연하다는 자세는 아니다. 지극히 자연스럽게 무시해버린다. 그런 태도는 어릴 적부터 보이 같은 부류의 사람에게 정중한 대접을 받아보지 않고서는 몸에 배지 않는 것이다. “두 달 가까이 전화를 하지 않은 것은 유럽 여행을 했기 때문이에요.” 라고 그녀는 말했다. “프랑스와 이탈리아를 보고, 벨기에와 스페인에도 들렀어요.” “친구와?” “아니요, 약혼자 하구요.” 그녀가 그렇게 말했을 때, 갑자기 수프 맛이 없어졌다. “그 친구 처지가 정말 부럽군.” 그녀가 근시라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표정이 일그러지는 것을 스스로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헤어졌어요.” 그녀는 바다거북 수프를 깨끗이 비운 다음 그렇게 말했다. “헤어졌어?” “네 헤어졌어요.” “돌아오고 나서?” “네.” “이유를 물어도 될까?” “괜찮아요.” “이제 나 개운해요.” “설마 너무 상냥해서 차버렸다고 하지는 않겠지?” “아니요, 바로 그것 때문이에요. 어떻게 아셨죠?” 냅킨으로 입가를 닦으면서 밝게 웃었다. “그렇지만, 상냥하게 대해주면 보통은 좋아하잖아.” “난 싫어요.” “좋아하는 사람이니까 상냥하게 대해주면 기분이 좋을 텐데.” “그건 그래요. 아마 그 사람을 좋아하지 않은 모양이에요.” “그런데 어떻게 약혼까지 했지?” “결혼식 날짜까지 받아 놓았어요.” “좀 심한데.” “선을 봤어요.” “아무리 선이라도 그렇지 같이 여행까지 가고….” “여행을 하면 그 사람을 잘 알 수 있다고 하잖아요.”
그녀는 그리고 자신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호쿠리쿠 지방에 유명한 변호사의 막내딸이라는 것. 남자 형제가 없다는 것. 아버지는 사무실을 맡아 계속 해나갈 유능한 변호사를 양자로 맞아들이고 싶어한다는 것. 둘째 딸은 은행원과 결혼했다는 것. 맏딸은 대를 잇기 위해 그대로 집에 머물고 있지만 아직 상대를 못 찾고 있다는 것. “그러면 아가씨 상대는?” “도쿄대학 법학과를 졸업하고 25세의 나이로 사법시험 합격.” “대단한 젊은이군, 아버지가 무척 기뻐하셨을 텐데.” “네, 그래서 결혼 전인데도 여행을 보내주셨지만….” “그 엘리트 좋아한 거 아니었어?” “그쪽에서 말인가요?” “서로.” “아마 그랬을 거예요.” “이봐, 정신 좀 차려. 아가씨는 대단한 미인인데다, 부잣집 딸이고, 응석받이로 자라지 않았어? 그건 나쁜 게 아니야. 아가씨에게는 그만한 힘이 있어.” “고마워요.” “그렇지만… 모르겠군.” “뭐가요?” “아가씨 같은 사람은 보통 제멋대로라서 감당을 할 수 없는 법인데 말이야.” “지금은 다른 것 같지 않은가요?” 그렇게 말하고 그녀는 눈을 아래로 깔았다. “아버지 탓인 것 같아요. 아빠는 키가 크고 뭐랄까. 나의 모든 것이라고나 할까요. 옛날 수영선수였고 술도 세고 꾸밈이라곤 없고 큰 회사에서 많은 연봉을 받고 원자력 발전소 건설 반대파를 지지하고 있고. 나 아직도 잊지 않고 있어요. 어렸을 때 아빠 손을 잡고 자주 산책을 나섰어요. 아빠는 그레이트데인을 기르고 있었는데 우리 집 곁에 바다가 보이는 공원이 있었어요. 그레이트데인을 데리고 산책하는 아빠가 너무 멋있었어요. 나는 아빠 앞에만 서면 얌전해져요. 아빠는 하고 싶은 대로만 하면 된다고 하셨어요. 별 볼 일 없는 남자는 그냥 무시해버리면 된다구요.” 그리고 그녀는 나를 보았다. “선생님은 아빠와 닮았어요.” 와인 때문에 뺨은 핑크빛으로 물들고 멍한 눈길로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당황하면서 화제를 바꿨다.
“유럽에서 뭐 맛있는 거라도 먹었어?” “네, 역시 파리가 최고였어요.” “파리에서 어디를 갔었는데? “무슨 까르통이라는 식당이었는데, 그 식당에 오리 푸아그라를 캐비지에 싸서 먹었는데 정말 맛있었어요.” 그날 밤 나는 그녀로부터 우아하고 집요하게 유혹을 받았지만 정중하게 거절했다. 몇 번 전화가 있었지만 두 번 다시 만나지 않았다. 그러다 전화도 오지않게 되었다. 파리에서 류카 카르통에 가서 캐비지로만 오리 푸아그라를 먹었을 때 그녀 생각이 났다. 푸아그라와 캐비지는 혀 위에서 스르르 녹아 목구멍을 통과하면서 강렬한 이미지를 환기시켰다. 요리의 극치라는 유명한 그 맛은 입과 목구멍에 제각기 다른 생각을 결부시켜주었다. 그 정도 미인의 유혹을 거절한 것은 돌이킬 수 없는 실수였다는 생각과, 무서운 힘을 가진 아름다움에서 도망친 것은 잘한 일이라는 생각이 입에 푸아그라를 넣을때마다 번갈아 떠올랐다. 그리고, 푸아그라와 캐비지 잎이 사라지고 표면에 엷은 지방이 발린 리모주 접시만 남았을때 내가 그녀를 두려워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러나 푸아그라를 맞이한 나의 내장은 괜찮아, 잘했어 라고 나를 위로해 주었다. 뭐 어때, 잘했어. 그 정도 미인을 만난 것만도 어딘데. 아름다운 요리는 언제나 상냥하다.
(음악)
네 이 무라카미 류는 뭐, 미식협회 무슨 회원이라는데 네 세계 미식가협회 뭐 회원 정도가 아니라 임원이라고 하네요? 근데 네, 이런 협회가 있는지 저는 처음 알았고 또 임원은 어떤 일을 하는 건지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미식에 관심이 많다는 것은 알겠습니다. 어, 그리고 이 소설집 전체를 관류하고 있는 것은 네, 미식과 이 그 여성을 계속 연결하는 것이거든요? 그래서, 어떤 분들에겐 좀 불편할 수도 있겠지만, 네 개성이 없다면 소설가란 뭐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소설가라는 것은 우리 안에 감춰진 어떤 마성들을 갖고 살아가는 사람들이죠? 이런 사람들이 티비 토크쇼 진행자처럼 어… 살아간다는 것도 재미없는 인생이죠. 자, 그 마지막으로 한 대목을 더 읽고 마치겠습니다. 역시 요리와 여성의 이야깁니다.
(음악)
“이런 데서 만날 줄은 몰랐는데?” 그녀는 말했다. 우리는 니스공항에서 우연히 만난 것이다. 나는 로마에서 일을 끝내고 오 일간의 휴가를 꼬따쥬르에서 천천히 지내기로 했다. 그녀는 오 년 전에 두세 번 일을 같이한 적이 있는 CF 모델이었다. “벌써 오 년이나 지났어.” 하고 그녀는 웃었다. 나는 그녀의 웃는 얼굴을 아직도 선명히 기억하고 있다. 사심 없이,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웃음이란 이런 것이구나, 하고 오 년 전에도 감탄했던 기억이 났다. 단체여행 항공권으로 파리까지 와서, 혼자 떨어져 니스로 왔다고 했다. “호텔은 아직 정하지 않았어.” “그렇다면 내 호텔로 가지 않겠어? 거기서 점심이라도 하면서 천천히 정하면 되니깐.” 내가 그렇게 말하자 그녀는 일순 눈길을 돌렸지만 예의 그 활짝 핀 웃음과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리조트의 대명사라고 할 수 있는 꼬따쥬르는 남프랑스의 마르세이유에서 상트로페, 깐느, 니스, 모나코를 거쳐 이탈리아 국경에 만 톤에 이르는 아름다운 해안선을 총칭하는 것이다. 물론, 고속도로도 뻗어있지만 내가 좋아하는 것은 낮은 절벽 길이라 불리는 해안에 가까운 오래된 도로이다. 그 도로는 당연히 다른 도로에 비해 좁고 구불구불하지만 유서 깊은 마을과 요트, 항구 등을 보면서 달릴 수 있다. 렌터카 조수석에 앉아 그녀는 그 경관에 감탄을 연발했다. 모나코 거의 다 와서, 에즈빌라주라는 중세의 거리가 있다. 해안이 아니라 거의 수직으로 선, 나지막한 산의 정상에 있어서 그 마을은 전체가 돌로 지은 성과 같고 옛날에는 지중해를 항해하는 선단의 감시소 역할을 했다고 한다. 좁은 돌계단과 골목길이 미로처럼 뒤엉켜있고, 성벽의 내부에는 교회나 상점, 작은 정원 그리고 소박한 별 네 개짜리 호텔이 둘 있다. 호텔의 다이닝은 최고의 분위기를 자랑하고 특히 황금 염소라는 레스토랑은 유명한 누벨 퀴진으로 모든 가이드북에 실려 있을 정도다. 그 에즈의 성 바로 아래에 바다로 튀어나온 작은 곶이 있고, 수목의 그늘에 백악의 호텔이 서 있다.
르카프 에스테르라는 그 호텔은 규모는 작지만 유럽의 리조트에서만 볼 수 있는 조용한 특권의식으로 가득 차 있다. 쌍트로페, 칸느, 니스, 모나코와 같은 꼬따쥬르의 각 도시에는 제각기 그 도시를 대표하는 중후한 최고급 호텔이 몇 군데나 있지만 일부의 부자들은 시끄러운 그런 장소를 피해 사람 눈에 띄지 않는 은밀하고 작은 빌라 호텔을 선호한다. 르카프 에스테르를 보고 두 번째 해외여행이라고 말한 그녀는 몇 번이나 한숨을 내쉬었다. 낮은 절벽 길보다 더 낮은 곶 위에 바위를 깎아 세운 르카프 에스테르는 그 구석구석까지 귀족계급의 취향이 배어있다. 결코 호화롭지 않고, 오히려 화려함과 사치스러움을 부끄러워하는 듯한 느낌마저 준다. 때문에 불필요한 장식은 없지만 예를 들면 로비에서 바다에 면한 정원으로 내려가는 계단은 무척 질 좋은 대리석으로 되어있고, 화단을 가득 채운 장미, 라일락, 미모사, 부겐빌레아, 잔디와 분수의 멋들어진 조화는 보는 사람들에게 감동을 준다. “타이틀은 생각이 안나지만 옛날에 본 영화의 한 장면에 출연한 듯한 기분이 들어.” 그녀는 르카프 에스테르의 분위기에 푹 젖어서 다른 호텔을 찾을 의욕을 잃고 말았다. 레스토랑은 정원의 면에 있고, 아페리티프를 마실 즈음에는 밝디 밝은 지중해 햇살을 즐길 수 있었다. 생 햄과 모짜렐라, 토마토, 아스파라거스로 만든 냉채와 수프를 즐길 때쯤에부터는 바다는 오렌지색으로 물들기 시작했고, 조개와 생선에 뿌린 비스크 소스의 섹시한 향기에 마음을 빼앗길 즈음에, 이윽고 하늘은 엷은 핑크에서 짙은 보라색으로 바뀌어 갔고, 크리프가 듬뿍 든 부드러운 쇠고기를 먹고 보르도와인과 치즈로 마무리를 하는 단계에 이르러 짙은 어둠이 깔렸다. 밤이 찾아왔다기보다는 밤이라는 희미하고 거대한 생명체가 슬며시 다가와 모든 것을 덮어버리는 듯한 느낌이었다.
“아, 이제 더 이상은 먹을 수 없어.” 라고 말하며 그녀는 무스 쇼콜라를 한 스푼 입에 떠 넣고, “믿을 수 없는 맛이에요.” 라고 웃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입안에서 녹아서 다른 존재가 되어버리는 것 같아. 달콤하다거나 쓰다는 말도 맞지 않아. 그런 걸 넘어선 맛이야.” 호텔방 테라스에서 저편 보뤼의 곶에서, 깜빡이는 불빛을 보며 커피를 마셨다. “옛날 우리 두 번 섹스한 거 기억나?” 하고 그녀는 물었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녀는 그 후 오 년이라는 세월을 오랜 시간을 들여 이야기했다. 그것은 젊고 아름답고 마음이 가는 대로 솔직하게 살아가는 한 여성의 리얼하고 슬픈 사랑의 이야기였다. 그녀는 스스로의 의지로 어떤 남자를 선택했고, 또 스스로의 의지에 따라 남자를 버렸다. 몇 달의 진정기간을 거친 후에, 니스로 여행을 떠나온 것이라고 했다. “너에게는 리얼한 사랑일지 몰라도, 난 잘 모르겠어.” 하고 나는 말했다. “누구와도 다른 아주 특별한 사랑을 했다고 생각하는 건 좋지 않아. 마음을 가볍게 갖도록 해. 그렇지 않으면 다음 연애를 할 수 없게 돼.” “다들 그런 말을 하기는 해. 나 자신도 그걸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잘 모르고 있는 것 같애. 그렇지만 오늘에야 알았어. 오늘, 난 여러 가지 것들에 취해버렸어. 바다에, 건물에, 꽃에, 이 방에, 와인에, 음식에, 그리고 자기를 만난 것도 그래. 그중에서 가장 놀라운 것은 무스 쇼콜라야. 초콜릿은 좋아하는 편이라 지금까지 많이 먹어보았지만 오늘 같은 맛은 처음이야. 정반대의 맛이 하나로 녹아서 전혀 다른 것이 되어버린다니 정말 믿을 수 없어. 그걸 먹으면서, 나의 사랑이나 인생이 아주 흔한 것이라는 사실을 확실히 알게 됐어.” 우리는 오 년 전에 두 번 섹스를 나누었을 때처럼 가벼운 기분으로 함께 침대에 들어갔다. 그러나 함께 지내는 동안 뭔가가 내 속으로 침투해 들어왔다. 모나코에서 정장을 입고 룰렛게임을 즐기고, 갈리아 왕비의 자동인형 컬렉션을 보고, 오뗄 드 빠리의 카페 테라스에서 킬 루아야를 마시고, 요트파티에 참가하고, 몬테카를로 컨츄리클럽에서 테니스를 하고, 매일 밤 그녀는 무스 쇼콜라를 먹었다. 하루가 더하면서 우리의 섹스도 더욱 친밀해졌지만 내 속으로 침투해 들어온 것은 그것과는 다른 것이었다.
사흘째 밤, 에즈빌라쥬에 식사를 하러 갔다. 니스에서 모나코로 이어지는 해안선의 불빛을 바라볼 수 있는 다이닝룸에서, 우리는 프로방스의 와인과, 모짜르트의 음악과, 세련된 가르송의 서비스를 즐기고 노란 가로등이 이어진 돌길을 걸으면서 시간이 멈춰버린 듯한 중세 그 자체의 분위기에 흠뻑 젖어들었다. 두 사람의 발자국 소리만 들리는 그 성벽에서, 그녀는 몇 번이나 멈춰 서서 키스를 요구했다. “자기, 뭔가가 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아?” 하고 그녀는 말했다. “뭔가가 내 속으로 들어온 것 같아. 마치 그 뭔가가 나를 당기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자기가 점점 좋아지는 것 같애. 무드에 젖어서 그럴 거라고 나 자신을 달래보지만 그것도 아닌 것 같아.” 나도 같은 기분이었다. 너 좀 이상한거 아니야? 하고 나를 향해 말해보았지만 묘하게 들뜬 기분 때문에 그녀와 헤어진다는 것 자체가 두려워졌다. 꼬따쥬르에는 달콤한 악마가 숨어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늦었다. 르카프 에스테르를 감싸고 있는 하나의 생명체와도 같은 밤. 그것과 닮은 조용하면서도 강렬한 무엇이 우리를 얽어매는 것이다. 우연히 만나 가벼운 기분으로 같이 묵게 되었지만 이별은 상상 이상으로 괴로웠다. “도쿄에서는 만나지 않기로 해.” 하고 우리는 굳게 약속했다. 우리가 그 약속을 지킬 수 있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지금까지 맛보지 못했던 외로움이 우리를 엄습했다. 내일이 오면 그녀는 파리로, 나는 로마로 떠나야 하는 밤. 모나코의 오뗄 드 빠리에서 우리는 저녁을 먹었다. 둘 다 아무 말이 없었다. 내게는 일과 가정이 있었고 그녀에게는 이제 막 시작한 새로운 생활이 있었다. 그것을 깨뜨려서는 안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우리는 꼬따쥬르의 마성에 당하고 만 것이다. 마지막으로 무스 쇼콜라를 먹으면서. “맛있다는 걸 잘 알면서도 이렇게 맛없다고 생각하며 초콜렛을 먹기는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 일꺼야.” 하고 그녀는 말했고 그 말을 들으면서 이것이 바로 꼬따쥬르의 복수로군, 하고 나는 생각했다.
(음악)
네, 두 남녀가 무스 쇼콜라, 초콜렛 무스죠? 네. 이 거품처럼 부드럽게 내서 초콜렛으로 만든, 주로 디저트죠. 네 이것을 음식은 바뀌지만 이것만은 매일 먹는 거죠. 그, 니스에 가까운 그 모나코의 해안에서 계속 먹습니다. 그, 먹다 보니 이 둘 사이에는 생각지도 않았던 감정이 다시 살아나기도 하구요. 네, 생각해보면 음식이라는 것은 대단히 좀 흥미로운 것이죠. 네, 저도 어… 오래전에 이 책을 읽었습니다만 이 책을 읽으면서 음식을 먹는 것, 다른 사람하고 타인과 옷깃만 스쳐도 인연인데 함께 앉아서 같은 음식을 먹었다는 것은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 어떤 뭐 그런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이 책을 처음 읽은 것은 1996년 쯤이었던것 같은데요. 지금부터 한 10년도 더 됐죠. 그때는 어… 모르는 음식이 많았어요. 이 책에 나오는, 이 도대체 뭘 얘기하는 거야. 그랬는데 그 사이에 우리나라의 음식 문화도 매우 다양해졌구요. 국제화됐죠. 그리고 저도 해외를 많이 나가게 되면서 이 팟캐스트를 준비하면서 다시 읽어본 이 책에는 이제는 아는 음식들이 상당히 많아졌습니다. 그래서 더 실감을 하면서 읽은 부분도 있었구요. 네, 하여튼 읽으면서, 어, 작가로서 드는 생각은 역시 무라카미 류 참 인물이다. 왜냐하면 어, 처음에도 말씀 드렸지만, 이렇게 용감하게 요새 그, 먹는 것과 여성을 연결해서 쓸 작가가 이 전 세계에 그렇게 흔치 않습니다. 근데 그런 점에서, 정말, 인물이다, 이런 생각 다시 한 번 해봤습니다.
자 오늘 읽은 어, 책은요, 무라카미 류의 요리소설집입니다. 달콤한 악마가 내 안으로 들어왔다. 이고요. 번역은 양억관 씨가 했습니다. 다이어트를 하시는 분들에게는 권하지 않습니다. 자, 그럼 김영하의 책 읽는 시간 팟캐스트 서른 세 번째 에피소드는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지금까지 김영하였습니다. 여러분 안녕히 계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