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는 자기사랑의 첫걸음 | 미안해하지 않는 사람도 나를 위해 용서하기
용서하는 것을 통해서 우리는
과거를 바꿀 수는 없지만 미래를 바꿀 순 있습니다.
누군가가 나에게 상처를 줬어요.
상처를 돌려주고 싶은가요?
아니면, 내가 아니어도 어딘가에 가서 누군가에게 같은 상처를 받길 원하나요?
아니면, 용서해 주려고 큰마음 먹었는데 전혀 용서를 바라지 않는 사람 같아서 다시 화가 나나요?
우리가 용서에 대해 흔히 하는 오해 중 하나가 이게 상대를 위한 것이라는 거예요.
[용서는 사실 상대방과는 크게 관련이 없습니다.]
용서가 무엇인지 그리고 용서가 무엇이 아닌지를 정확하게 아는 것으로부터
내 마음의 평온은 시작됩니다.
용서가 무엇이고, 무엇이 아닌지에 대해서 같이 알아봐요.
[용서는 상대방의 행동을 정당화해주는 것이 아닙니다.]
[용서는 내가 겪은 것을 잊어버리는 게 아닙니다.]
[용서는 가해자에게 용서했다는 말을 전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용서는 가해자를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을 위해서 나를 아프게 한 이 세상을 용서합니다.
자존감 높이는 방법 영상에서도 예전에 말씀드렸지만요.
나 자신을 사랑하는 것은 타인을 이해하고, 배려하고, 용서하는 것으로 첫발을 내딛습니다.
나, 이외의 것들에 대한 적개심, 그 분리하는 마음으로 나를 사랑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해요.
'감히 나에게?' 혹은 '나한테 이런 대접을?'이라는 삐딱한 우월감,
이 세상, 현실의 희생양으로 남고 싶어 하는 잠재의식,
복수로 가득 차오른 상태 혹은
용서 자체에 대한 잘못된 관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등의 이유로
용서를 어려워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습니다.
[용서는 과거가 나의 발목을 잡지 않도록 나를 위해서 하는 겁니다.]
다른 사람들과는 아무 상관이 없어요.
내가 누군가를 용서한다고 해서 그 사람에게 득이 되지도 않구요.
반대로, 내가 누군가를 용서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에게 해가 되지도 않습니다.
그리고, 상대방은 나의 용서조차 바라고 있지 않은 경우도 많아요.
아니면 용서를 바라더라도 이게 도대체 나한테 얼마나 큰 상처인지 모르고,
그 모습에 나는 또 화가 나죠.
그러니까, 어쨌거나 저쨌거나 이것은 내 삶이라는 드라마,
그 안에 있는 나라는 주인공, 그것과 관련된 이야기라는 거죠.
여기서도 마찬가지로, 자꾸만 외부로 향하는 내 의식을 내 안으로 다시 돌려옵니다.
음... 내가 용서하기 힘들었던 사람 한 명 떠올려보세요.
지금요.
그리고 과거의 그와 일어났던 그 일, 그 일은 이미 일어났음을 인정합니다.
그저 인정하는 거예요. 일어난 일이니까.
일어났어요. 그렇죠? 이미 일어난 일이죠?
이건 어떻게 봐도 이미 일어난 일이고 그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차피 이미 일어난 그 일이 나의 발목을 잡지 않도록 합니다.
이 말은요, '그 일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고 바라는 내 마음을 내려놓는다는 것이죠.
[이 일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고 바라는 마음을 내려놓는다.]
누가 물리적으로 나에게 폭력을 행사했어요.
누가 앞에서는 나한테 엄청 잘해주더니 뒤에 가서는 날 인간쓰레기로 만들었어요.
여럿이서 날 따돌렸어요.
누명을 씌웠어요.
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나한테 일부러 수치심을 줬어요.
다양한 성범죄들을 겪었어요.
정말 이것들, 모두 다 겪어봤습니다.
안 좋은 에너지를 가지고 사니까, 안 좋은 일들을 계속해서 창조하면서 살았어요.
두려운 마음과 원망하는 마음으로 밤을 지새운 날들도 정말 많았구요.
세상에 그대로 앙갚음을 하겠다, 이를 갈던 세월도 상당히 길었습니다.
지금은 아무도 밉지가 않아요. 오히려 한 명 한 명에게 진심으로 고마운 마음입니다.
그 많은 경험들로 지금의 나는 전혀 다른 내가 되었고, 너무도 평온합니다.
저는 지금의 제가 훨씬 더 좋아요.
그래서, 누군가를 용서하지 못해서 원망하는 마음으로 괴로워하는 많은 사람들이
큰 변화를 얻었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더 이상 예전의 그 미움으로 가득 찼던 시절처럼 자기혐오에 절어서 몰래 혼자 숨어서 자해를 하지도 않고,
겉과 속이 다르게 도도한 척하면서 고개를 쳐들고 다니지도 않구요.
아무도 내 위에 있다고 생각하지도 아니면 내 밑에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아요.
모두가 나와 같은 존재로 보일 뿐이고,
내가 나를 소중히 생각하는 만큼 이 세상 한 명, 한 명
아니요, 모든 생명체가 나와 똑같이 소중하게 보입니다.
내 삶에서 나열할 수 있는 많고 많은 문제들, 상처가 될 수 있는 문제들,
이제부터는 한발 물러나 관찰자 입장에서 바라봅니다.
내가 잘못되어서 일어난 일이 아닙니다. 내 가치가 높고 낮고의 문제도 아닙니다.
우리가 겪는 모든 종류의 힘듦은 우리가 배울 수 있도록 일어납니다.
어떠한 것이 나의 내면에 존재하고 있고, 그 잠재의식이 나의 현실에 투영되어 창조됩니다.
내 마음을 맑고 깨끗하게 유지하면, 현실 또한 맑고 깨끗하게 변화해가겠죠?
무언가를 깊이 깨달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을 때, 아무런 변화도 만들지 않고
계속 그 일을 나와 함께 만들어낸 그 사람,
누군가를 원망하고 미워하는 마음만 계속 가지고 간다면
오롯이 내 손해죠.
이 일이 내게 일어난 이유가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해 봅니다.
미움과 원망은 내려놓구요. 흘려보내구요.
미움과 원망이 올라올 때마다 명상하고 호흡에 집중하면서 마음을 비워냅니다.
그리고 내가 이 사건으로부터 배울 것이 무엇인지, [내가] 배울 것이 무엇인지
모든 의식을 나의 안으로 돌려 나의 변화에 집중합니다.
에고가 자꾸만 튀어나와 저 사람을 미워해. '저 사람 잘못이야.'
'저 사람만 내 인생에 없었어도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거야.'
'다 저 사람 탓이야.' 이런 목소리들을 계속해서 내도요.
흘려보내세요. 에고의 목소리입니다. 우리 모두 알고 있죠?
에고는 흘려보내고, 나는 다시 나의 내면에 집중합니다.
[천국과 지옥은 모두 내 안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배우고, 변화시키고, 앞으로 나아가면 나는 점점 더 평화로운 삶에 가까이 다가갑니다.
내가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에 집중한다는 것은 나의 성장을 의미해요.
내 의식은 어마어마하게 확장하죠. 그리고 나는 점점 고요해집니다.
어떤 사건을 떠올리면 에고는 어김없이 튀어나와 이런 말들을 합니다.
'저 사람이 나한테 이렇게 했어.'
'저 인간이 나한테 상처 준 거잖아. 어떻게 저렇게 몹쓸 짓을 할 수가 있지?'
'저 사람만 나타나지 않았어도 내가 이 지경이 되진 않았을 텐데.'
이런 어지러움이 생기면 그 즉시 내 의식을 돌립니다.
자, 알았고.
이것으로부터 내가 배울 수 있는 건 무엇일까?
각각의 실연에서 배우지 못하고 얼렁뚱땅 지나가면요.
같은 일들이 반복적으로 재창조됩니다.
그러면 나는 그때 가서는 '거봐, 역시 나는 불운의 캐릭터야.
내 팔자가 이런가 봐. 내가 사주가 안 좋잖아.
나는 계속 이렇게 살 거야. 이렇게 사느니 그냥 죽어버리는 게 낫지 않을까?'
이런 생각까지 하게 되는 거죠.
나의 내면이 변하지 않았고, 나의 마음속에 미움과 원망이 자리하니
당연히 같은 일들이 계속 재창조됩니다.
[내 내면에 있는 것들은 내 현실에 드러나게 마련이죠.]
우리는 배울 점에 대해 생각하지 않고, 늘 에고에게 귀를 기울이는 습관을 만들어왔습니다.
배울 점에 대해 생각하지 못하고,
에고가 자꾸 내 자존심을 내 스스로 긁도록 나를 종용하고,
그래서 그것에 이끌려서 누군가를 미워하고 원망하고,
그 밉고 원망하는 마음 때문에 내 몸과 마음의 건강을 모두 해치는
그런 결말까지 이어집니다.
그래서, 이게 정말로 상대방 때문일까요?
[미움과 원망이 일어나는 것은 나의 내면입니다.]
그걸 인정하고 해결해야 돼요.
내가 받은 상처, 뭉개진 내 자존심,
'왜 나에게? 대체 왜 내가 이런 일을?'
이 모든 것들의 올가미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그 덫에 갇혀 허우적거리며 내 소중한 에너지를 갉아먹게 됩니다.
그리고 심지어는 내가 무엇을 바꾸어야 하는지 깨달았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부정하고,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현실을 그대로 내버려 둡니다.
[내가 나를 방치합니다.]
그리고, 또 힘들다고 불평을 합니다.
내가 나를 방치하고, 이것이 누구의 책임이겠습니까?
[이건 내 삶의 주도권을 내가 쥐고 싶지 않다고 포기하는 것과 마찬가지예요.]
이렇게 큰 아픔을 겪어도 이런저런 이유들로 인해서
계속해서 핑계를 만들어내고 현실에 안주한다면,
더 나은 삶으로의 변화는 내가 포기하는 거라는 것, 그것도 인정하셔야 합니다.
삶의 변화를 내 주변 환경 때문에 아이가 있어서, 지금 당장 돈 벌기 바빠서,
이런 이유들로 포기할 수 없어요.
[완벽한 환경이 주어지기 전에도 변화는 시작할 수 있습니다.]
에고의 손을 들어주고 내 내면의 목소리를 묵살하시겠습니까?
아니면, 내가 나를 아끼는 마음으로 타인을 이해하고, 배려하고, 용서하는
그 여정을 시작하시겠습니까?
이런 기회들을 통해서 내가 추구해야 하는 것은
[나 자신을 더 잘 알아가는 것.]
그 말은, 내가 좋고 싫은 것을 더 명확히 파악하는 것.
나의 약점과 내가 보호받고 싶은 부분들을 발견하는 것.
반복해서 계속 재창조되는 일이 있다면, 과거의 어떤 트라우마가 내 내면에 남아
똑같은 일들을 계속해서 끌어당기고 있지는 않은지 살펴보는 것.
꾹꾹 눌러온 울분이 이번에 터져 나왔다면,
그 울분을 만들어낸 사건은 무엇인지 옛날 일들을 되짚어보는 것.
이런 것들입니다.
용서하는 것은
그 사람과 내가 겪은 이 [상처의 여정]에 대한 종지부를 찍는 것과 같습니다.
[그와 내가 함께 해온 이 상처의 여정, 그 종지부를 찍는 것과 같습니다.]
미안하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내 마음, 풀리지 않습니다.
미움과 원망이 사라지지도 않습니다.
내가 아팠다는 것을 그에게 인정받기를 바라는 마음보다
내가 나를 아끼는 마음으로 그를 용서하고
내 앞날을 밝게 비추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합니다.
용서를 하면, 나는 이 일이 내게 일어났던 것을 잊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이 일에 덜미가 잡혀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방해받지는 않죠.
그리고 나 자신에 대해 한 번 더 잘 알게 되었으니 같은 일을 반복하는 일은 없겠죠?
타인을 용서하는 것은
내가 나를 사랑하는 것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저를 아프게 했던 많고 많은 사람들 한 명, 한 명을 모두 내 마음처럼 이해하고 나니
삶이 달라지기 시작했고, 마음이 고요해지고 평온해졌어요.
자기사랑에 큰 걸음, 오늘부터 내디디시길 기원할게요.
오늘 하루도 명상하는 것 잊지 마시구요. 이너 피스 찾으시기 바랍니다.
평온하세요. 그게 가장 중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