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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라의 오디오북 (Novella Audio Books), 등신불 김동리, 한국단편소설오디오북, 한국문학, 소설읽기, 오디오명작, Korean Novel, Korean Audio Book, (CC) ㅣ책읽어주는 여자 (2)

등신불 김동리, 한국단편소설오디오북, 한국문학, 소설읽기, 오디오명작, Korean Novel, Korean Audio Book, (CC) ㅣ책읽어주는 여자 (2)

슬픔이랄까 아픔 같은 것이

보는 사람의 가슴을 콱 움켜잡는 듯한

일찌기 본적도 상상 한 적도 없는

그러한 어떤 가부좌상이었다

내가 그것을 바라보는 순간부터

나는 미묘한 충격에 사로 잡히게 되었다고 말했지만 그러나 그 미묘한 충격을 나는 어떠한 말로써도 설명할 길이 없다 다만 나는 그것을 바라보고 있는 동안

처음 보았을 때 받은 그 경악과 충격이 점점 더 전율과 공포로 화하여

나를 후려갈기는 듯한 어지러움에 휩싸일 뿐이었다고나 할까 곁에 있던 청운이 나의 얼굴을 돌아다 보았을 때도 나는 손끝 하나 까딱하지 못하며

정강마루와 아래턱을 그냥 덜덜덜 떨고 있을 뿐이었다 저건 부처님도 아니다 불상도 아니야

나는 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이렇게 목이 터지도록 소리를 지르고 싶었으나

나의 목구멍은 얼어붙은 듯 아무런 말도 새어 나지 않았다 이튿날 새벽 예불을 마치고 내가 청운과 더불어 원혜대사에게 아침 인사를 드리 러 갔을 때 스님은 어저께 금불각 구경을 갔었니 하고 물었다

내가 겁에 질린 얼굴로 참배했었다고 대답하자 스님은 꽤 만족한 얼굴로 불은이로다 했다

나는 맘속으로 그건 부처님이 아니었어요 부처님의 상호가 아니었어요

하고 소리를 지르고 싶은 충동을 깨달았으나 굳이 입을 닫고 참을 수밖에 없었다 이때 스님은 내 맘속을 헤아리는 듯 그래 어느 부처님이 제일 맘에 들더냐 하고 물었다

나는 실상 그 등신불에 질리어 그 곁에 모신 다른 불상들은 거의 살펴 보지도 못했던 것이다 다른 부처님은 미처 보지도 못했어요 가운데 모신 부 부처님이 어떻게 나 무 무서운지 나는 또 아래턱이 덜덜덜 떨리어 말을 이을 수 없었다

원혜대사는 말없이 떨리는 나의 얼굴을 가만히 건너다 보고만 있었다

그러자 나는 지금 금방 내 입으로 부처님이라고 말한 것이 생각났다

왜 그런지 그렇게 말해서는 안될 것을 말한 듯한 야릇한 반발이 내 속에서 폭발되었다

그렇지만 아니었어요 부처님의 상호 같지 않았어요 나는 전신의 힘을 다하여 겨우 이렇게 말해 버렸다 왜 머리에 얹은 것이 화관이 아니고 향로래서 그러니

그렇지 그건 향로야

원혜대사는 조금도 나를 꾸짖는 빛이 아니었다

오히려 나의 그러한 불만에 구미가 당기는 듯한 얼굴이었다 나는 잠자코 원혜대사의 얼굴을 쳐다보고 있었다

곁에 있던 청운이 두어 번이나 나에게 눈짓을 했을 만큼 나의 두 눈은 스님을 쏘아 보듯이 빛나고 있었다 자네 말대로 하면

부처님이 아니고 나한님이란 말인가

그렇지만 나한님도 머리 위에 향로를 쓴 분은 없잖아

오백나한중에도

나는 역시 입을 닫은 채 호기심에 가득 찬 눈으로 스님의 얼굴을 쳐다 볼 뿐이었다 그러나 원혜대사는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들려 주지 않았다 그렇지 본래는 부처님이 아니야 모두가 부처님이라고 부르게 됐어

본래는 이 절 스님인데 성불을 했으니까 부처님이라고 부른 게지 자네도 마찬가지야

스님은 말을 마치고 가만히 두 손을 모아 합장을 한다 나도 머리를 숙이며 합장을 올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날 아침 공양을 마치고 청정실로 건너 올 때 청운은 나에게 턱으로 금불각 쪽을 가리키며 나도 첨엔 이상했어

그렇지만 이 절에서 영검이 제일 많은 부처님이라고 영검이라고

나는 이렇게 물었지만 실상은 청운이 서슴지 않고 부처님이라고 부르는 말에 더욱 놀랐던 것이다 조금 전에도 원혜대사로 부터

모두가 부처님이라고 부르게 됐다는 말을 듣긴 했지만 그때까지의 나의 머리 속에 박혀 있는 습관화된 개념으로써는

도저히 부처님과 스님을 혼동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럼 그래서 그렇게 새전이 많다오

청운의 대답이었다

그는 계속해서 들려 주었다

스님의 이름은 잘 모른다

당나라 때다

일천수백 년 전이라고 한다

소신공양으로 성불을 했다

공양을 드리고 있을 때 여러가지 신묘하고 기이한 일이 일어났다

이것을 보고 들은 수많은 사람들이 구름같이 모여들어서

아낌없이 새전과 불공을 드렸는데 그들 가운데 영검을 보지 못한 사람은 하나도 없다 그 뒤에도 계속해서 영검이 있었다

지금까지 여기 금불각 등신불에 빌어서 아이를 낳고 병을 고치고 한 사람의 수효는 수천 수만을 헤아린다

그 밖에도 소원을 성취한 사람은 이루 다 헤아릴 수가 없다

나도 청운에게서 소신 공양이란 말을 들었을 때 몸이 부르르 떨렸다

그러면 그럴 테지

나는 무슨 뜻인지 이렇게 중얼거렸다

그리고 잇달아 눈을 감고 합장을 올렸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의 입에서는 나도 모르게 염불이 흘러 나왔다 아아 그 고뇌

그 비원

나의 감은 두 눈에서는 눈물이 번져 나왔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는 발작과도 같이 곧장 염불을 외었다 나도 처음 뵜을 때는 가슴이 뭉클 했다오 그 뒤에 여러번 보고 나니까 차츰 심상해지더군 청운은 빙긋이 웃으며 나를 위로 하듯이 말했다 그것은 그렇다 하더라도 나에게는 아무래도 석연치 못한 것이 있다

소신 공양으로 성불을 했다면 부처님이 되었어야 하지 않는가 부처님이 되었다면 지금까지 모든 불상에서 보아 온 바와 같은

거룩하고 원만하고 평화스러운 상호는 아니라 할지라도

그에 가까운 부처님다움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 거룩하고 부드럽고 평화스러운 맛은 지녔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금불각의 가부좌상은 어디까지나 인간을 벗어나지 못한 고뇌와 비원이 서린 듯한 얼굴이 아니던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거의 어떠한 대각보다도 그렇게 영검이 많다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 나의 머리 속에서는 잠시도 이러한 의문들이 가셔지지 않았다

더구나 청운에게서 소신공양으로 성불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뒤부터는

금불이 아닌 새까만 숯덩이가 곧잘 눈에 삼삼거려 배길 수 없었다 사흘 뒤에 나는 다시 등신금불을 찾았다 사흘 전에 받은 충격이 어쩌면 나의 병적인 환상의 소치가 아닐까 하는 마음과 또 청운의 말대로 여러 번 봐서 심상해 진다면 나의 가슴에 사무친 오뇌와 비원의 촉수도 다소 무디어지리라는 생각에서 이다 문이 열리자 나는 그날 청운이 하던 대로 이내 머리를 수그리며 합장을 올렸다

입으로는 쉴새 없이 나무아미타불을 부르며 눈까풀과 속눈썹이 바르르 떨리며 나의 눈이 열렸을 때 금불은 사흘 전의 그 모양 그대로 향로를 이고 앉아 있었다 거룩하고 원만한 것의 상징인 듯한 부처님의 상호와는 너무나 거리가 먼 우는 듯한 웃는 듯한 찡그린 듯한 오뇌와 비원이 서린 듯한

가부좌상 임에는 변함이 없었으나

그 무어라고 형언할 수 없는 슬픔이랄까 아픔 같은 것이 전날처럼 송두리째 나의 가슴을 움켜잡는 듯한 전율에 휩쓸리지는 않았다 나의 가슴은 이미 그러한 슬픔이랄까 아픔 같은 것으로 메워져 있었고 또 그에게서 거룩하고 원만한 것의 상징인

부처님의 상호를 기대하는 마음은 가셔져 있었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나는 다시 눈을 감고 합장을 올리며 입술이 바르르 떨리듯 오랫동안 나무아미타불을 부른 뒤 그 앞에서 물러났다 그 날 저녁 예불을 마치고 청운과 더불어 원혜대사에게 저녁 인사를 갔을 때 스님은 나를 보고

너 금불을 보고 나서 괴로워 하는구나 했다 나는 고개를 수그린 채 입을 열지 못하고 있었다 그럼 너 금불각에 있는 그 불상의 기록을 봤느냐 스님이 또 물으시기에 내가 못 봤다고 했더니 그러면 기록을 한번 보라고 했다 이튿날 내가 청운과 더불어 아침 인사를 드릴 때 원혜대사는 자기가 금불각에 일러 두었으니 가서 기록을 청해서 보고 오라고 했다 나는 스님께 합장하고 물러나와 곧 금불각으로 올라갔다 금불각의 노승이 돌함에서 내어 준

폭이 한 뼘 남짓 길이가 두 뼘 가량되는 책자를 받아 들었을 때 향기가 코를 찌르는 듯했다

두터운 표지 위에는 금 글씨로 만적선사 소신성불기 라 씌어 있고 책모리에는 금물이 먹여져 있었다

표지를 젖히자 지면은 모두 재빛 바탕이요 그 위에 사연은 금글씨로 다음과 같이 씌어져 있었다 만적은 법명이요 속명은 기 성은 조씨다 금릉서 났지만 아버지가 어떤 이 인지는 잘 모른다 어머니 장씨는 사구라는 사람에게 개가를 했는데

사구에게 한 아들이 있어 이름을 신 이라 했다 나이는 기와 같은 또래로 모두가 여나믄 살씩 되었었다 하루는 어미 장씨가 두 아이에게 밥을 주는데 가만히 독약을 신의 밥에 감추었다 기가 우연히 이것을 엿보게 되었는데 혼자 생각하기를 이는 어머니가 나를 위하여 사씨 집의 재산을 탐냄으로써 전실 자식인 신을 없애려고 하는짓이라 하였다 기가 슬픈 맘을 참지 못하여 스스로 신의 밥을 제가 먹으려 할 때 어머니가 보고 크게 놀라 질색을 하며 그것을 빼앗고 말하기를

이것은 너의 밥이 아니다 어째서 신의 밥을 먹느냐 했다

신과 기는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며칠뒤 신이 자기 집을 떠나서 자취를 감춰 버렸다 기가 말하기를 신이 이미 집을 나갔으니 내가 반드시 찾아 데리고 돌아오리라 하고

곧 몸을 감추어 중이 되고 이름을 만적이라 고쳤다

처음에는 금릉에 있는 법림원에 있다가 나중은 정원사 무풍암으로 옮겨서 거기서 해각선사에게 법을 배웠다 만적이 스물 네 살 되던 해 봄에

나는 본래 도를 크게 깨칠 인재가 못되니 내 몸을 이냥 공양하여 부처님의 은혜에 보답함과 같지 못하다 하고

몸을 태워 부처님 앞에 바치는데 그 때 마침 비가 쏟아졌으나

만적의 타는 몸을 적시지 못할 뿐 아니라 점점 더 불빛이 환하더니 홀연히 보름달 같은 원광이 비치었다

모인 사람들이 이것을 보고 크게 불은을 느끼고 모두가 제 몸의 병을 고치니

무리들이 말하기를 이는 만적의 법력 소치라 하고 다투어 사재를 던져 새전이 쌓여졌다 새전으로써 만적의 탄 몸에 금을 입히고 절하여 부처님이라 하였다 그 뒤 금불각에 모시니 때는 당나라 중종 십 육년 성력 이년 삼월 초하루다 내가 이 기록을 다 읽고 나서 청정실로 돌아가니 원혜대사가 나를 불렀다 기록을 보고 나니 괴롬이 덜하냐

스님이 물었다

처음같이 무섭지는 않았습니다마는

그 괴롭고 슬픈 빛은 가셔지지 않았습니다

내가 대답하자 스님은 고개를 끄덕이며

당연한 일이야 기록이 너무 간략하고 섬소해서 라고 했다 그것이 자기는 그보다 훨씬 많은것을 알고 있는 듯한 말씨였다 그렇지만 천 이백 년도 넘는 옛날 일인데

기록 이외에 다른 일을 어떻게 알겠읍니까

또 내가 물었다

이에 대하여 원혜대사는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가 있는데 절에서는 그것을 함부로 이야기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으며 그러니까 그만치 금불각의 등신불에 대해서는 모두들 그 영검을 두려워하고 있는 셈이라고 정색을 하고 말했다 원혜대사가 나에게 들려 준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이것은 물론 천이백 년간 등신금불에 대하여 절에서 내려오는 이야기를 원혜대사가 정리해서 간단히 한 이야기이다 만적이 중이 되기까지의 이야기는 대개 기록과 같다 그러나 그가 자기 몸을 불살라서 부처님께 공양을 올린 동기에 대해서는

전해 오는 다른 이야기가 몇 있다

그것을 차례로 쫓아 이야기하면 다음과 같다 만적이 처음 금릉 법림원에서 중이 되었는데 그때 그를 거두어 준 스님에 취뢰라는 중이 있었다 그 절의 공양을 맡아 있는 공양주 스님이었다 만적은 취뢰 스님의 상좌로 있으면서 불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취뢰 스님이 그에 대한 일체를 돌보아 준 것이다

만적이 열 여덟 살 때 그러니까 그가 법림원에 들어온지 오년 뒤

취뢰 스님이 열반하시게 되자

만적은 스님의 은공을 갚기 위하여 자기 몸을 불전에 헌신할 결의를 했다

만적이 그 뜻을 법사 운봉선사에게 아뢰자 운봉선사는 만적의 그릇됨을 보고

더 수도를 계속하도록 타이르며 사신을 허락지 않았다

만적이 정원사의 무풍암에 해각선사를 찾았다는 것도 운봉선사의 알선에 의한 것이다

그가 해각선사 밑에서 지낸 오 년 간의 수도생활이란 뼈를 깎고 살을 가는 정진이었으나

법력의 경지는 짐작할 길이 없었다

만적이 스물 세 살 나던 해 겨울에

금릉 방면으로 나갔다가 전날의 사신을 만났다

열 세 살 때 자기 어머니의 모해를 피하여 집을 나간 사신이었다

그리고 자기는 이 사신을 찾아 역시 집을 나왔다가

그를 찾지 못하고 중이 된 채 어느덧 꼭 십년만에 그를 다시 만난 것이다

그러나 그때 만난 사신을 보고는

비록 속세의 인연을 끊어버린 만적으로서도 눈물을 금할 수 없었던 것이다

착하고 어질던 사신이 어쩌면 하늘의 형벌을 받았단 말인가 사신은 문둥병이 들어 있었던 것이다

만적은 자기의 목에 걸렸던 염주를 벗겨서 사신의 목에 걸어 주고

그 길로 곧장 정원사에 돌아왔다

그때부터 만적은 화식을 끊고 말을 잃었다 이듬해 봄까지 그가 먹은 것은 하루에 깨 한 접시씩뿐이었다 그때까지의 목욕 재개는 말할 것도 없다 이듬해 이월 초하룻날

그는 법사 스님 운봉선사와 공양주 스님 두 분만을 모시고 취단식을 봉행했다 먼저 법의를 벗고 알몸이 된 뒤에

가늘고 깨끗한 명주를 발끝에서 어깨까지 목 위만 남겨 놓고 전신에 감았다 그리고는 단위에 올라가 가부좌를 개고 앉자 두 손을 모아 합장을 올렸다

그리하여 그가 염불을 외우기 시작하는것과 동시에 곁에서 들기름 항아리를 받들고 서 있던 공양주 스님이

그의 어깨에서부터 기름을 들어부었다

기름을 다 붓고 취단식이 끝나자 법사 스님과 공양주 스님은 합장 을 올리고 그 곁을 떠났다 기름에 결은 만적은 그때부터 삼월 초하루까지 한 달 동안 단위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가부좌를 갠 채 합장을 한 채 숨쉬는 화석이 되어 가고 있었다

이례에 한 번씩 공양주 스님이 들기름 항아리를 안고 흰 천으로 만든 장막안으로 들어가

어깨에서 부터 다시 기름을 부어 주고 돌아가는 일밖에 그 누구도 이 장막 안을 엿보지 못했다 이렇게 한 달이 찬 뒤

이날의 성스러운 불공에 참여하기 위하여 산중의 스님들은 물론이요

원근 각처의 선남 선녀들이 모여들어

정원사 법당 앞 넓은 뜰을 메꾸었다

소신공양은 오시 초에 장막이 걷히면서부터 시작되었다 오백을 헤아리는 승려가 단을 향해 합장을 하고 선 가운데

공양주 스님이 불 담긴 향로를 받들고

단 앞으로 나아가 만적의 머리 위에 얹었다 그와 동시 그 앞에 합장하고 선 승려들의 입에서

일제히 아미타불이 불려지기 시작했다

만적의 머리 위에 화관같이 씌워진 향로에서는 점점 더 많은 연기가 오르기 시작했다

이미 오랫동안의 정진으로 말미암아 거의 화석이 되어 가고 있는 만적의 육신이지만

불기운이 그의 숨골 정수리를 뚫었을 때는 저절로 몸이 움칠해졌다

그리하여 그때부터 눈에 보이지 않게 그의 고개와 등가슴이 조금씩 앞으로숙여져 갔다 들기름에 결은 만적의 육신이 연기로 화하여 나가는 시간은 길었다 그러나 그 앞에 선 오백의 대중은 아무도 쉬지 않고 아미타불을 불렀다 신시말에 갑자기 비가 쏟아졌다

그러나 웬일인지 단위에는 비가 내리지 않았다 만적의 머리 위로는 더 많은 연기가 오르기 시작했다 염불을 올리던 중들과 그 뒤에서 구경하던 신도들이 신기한 일이라고 눈이 휘둥그래 져서 만적을 바라보았을 때 그의 머리 뒤에는 보름달 같은 원광이 씌워져 있었다 이때부터 새전이 쏟아지기 시작하여 그 뒤 삼 년간이나 그칠 날이 없었다 이 새전으로 만적의 타다가 굳어진 몸에 금을 씌우고 금불각을 짓고 석대를 쌓았다 원혜대사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동안 나는 맘속으로 이렇게 해서 된 불상이라면 과연 지금의 저 금불각의 등신금불같이 될 수밖에 없으리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많은 부처님 불상 가운데서

그렇게 인간의 고뇌와 슬픔을 아로새긴 등신불이 한 분쯤 있는 것도 무방한 일일 듯 했다

그러나 이야기를 다 마치고 난 원혜대사는 이제 다시 나에게 그런 것을 묻지는 않았다

자네 바른 손 식지를 들어 보게 했다

이것은 지금까지 그가 이야기해 오던 금불각이나 등신불이나 만적의 분신공양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엉뚱한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나는 달포 전에 남경 교외에서 진기수씨에게 혈서를 바치느라고

내 입으로 살을 물어 뗀 나의 식지를 쳐들었다 그러나 원혜대사는 가만히 그것을 바라보고 있을 뿐 더 말이 없다

왜 그 손가락을 들어 보이라고 했는지

등신불 김동리, 한국단편소설오디오북, 한국문학, 소설읽기, 오디오명작, Korean Novel, Korean Audio Book, (CC) ㅣ책읽어주는 여자 (2) Dong-ri Kim, koreanisches Kurzgeschichten-Hörbuch, koreanische Literatur, Romanlesung, Audio-Meisterwerk, koreanischer Roman, koreanisches Hörbuch, (CC) und Eine Frau, die liest (2) Dong-ri Kim, Korean short story audio book, Korean literature, novel reading, audio masterpiece, Korean Novel, Korean Audio Book, (CC) and A woman who reads (2) Dong-ri Kim, Audiolibro coreano de relatos cortos, Literatura coreana, Novela coreana, Novela coreana, Audiolibro coreano, (CC), y Una mujer que lee (2) Dong-ri Kim, livre audio de nouvelles coréennes, littérature coréenne, lecture de roman, chef-d'œuvre audio, roman coréen, livre audio coréen, (CC) et Une femme qui lit (2) バカ仏キム・ドンリ, 韓国短編小説オーディオブック, 韓国文学, 小説を読む, オーディオ名作, Korean Novel, Korean Audio Book, (CC) と本を読んでくれる女 (2) Дон-ри Ким, аудиокнига корейских рассказов, корейская литература, чтение романов, аудиошедевр, корейский роман, корейская аудиокнига, (CC) и Женщина, которая читает (2)

슬픔이랄까 아픔 같은 것이

보는 사람의 가슴을 콱 움켜잡는 듯한

일찌기 본적도 상상 한 적도 없는

그러한 어떤 가부좌상이었다

내가 그것을 바라보는 순간부터

나는 미묘한 충격에 사로 잡히게 되었다고 말했지만 그러나 그 미묘한 충격을 나는 어떠한 말로써도 설명할 길이 없다 다만 나는 그것을 바라보고 있는 동안

처음 보았을 때 받은 그 경악과 충격이 점점 더 전율과 공포로 화하여

나를 후려갈기는 듯한 어지러움에 휩싸일 뿐이었다고나 할까 곁에 있던 청운이 나의 얼굴을 돌아다 보았을 때도 나는 손끝 하나 까딱하지 못하며

정강마루와 아래턱을 그냥 덜덜덜 떨고 있을 뿐이었다 저건 부처님도 아니다 불상도 아니야

나는 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이렇게 목이 터지도록 소리를 지르고 싶었으나

나의 목구멍은 얼어붙은 듯 아무런 말도 새어 나지 않았다 이튿날 새벽 예불을 마치고 내가 청운과 더불어 원혜대사에게 아침 인사를 드리 러 갔을 때 스님은 어저께 금불각 구경을 갔었니 하고 물었다

내가 겁에 질린 얼굴로 참배했었다고 대답하자 스님은 꽤 만족한 얼굴로 불은이로다 했다

나는 맘속으로 그건 부처님이 아니었어요 부처님의 상호가 아니었어요

하고 소리를 지르고 싶은 충동을 깨달았으나 굳이 입을 닫고 참을 수밖에 없었다 이때 스님은 내 맘속을 헤아리는 듯 그래 어느 부처님이 제일 맘에 들더냐 하고 물었다

나는 실상 그 등신불에 질리어 그 곁에 모신 다른 불상들은 거의 살펴 보지도 못했던 것이다 다른 부처님은 미처 보지도 못했어요 가운데 모신 부 부처님이 어떻게 나 무 무서운지 나는 또 아래턱이 덜덜덜 떨리어 말을 이을 수 없었다

원혜대사는 말없이 떨리는 나의 얼굴을 가만히 건너다 보고만 있었다

그러자 나는 지금 금방 내 입으로 부처님이라고 말한 것이 생각났다

왜 그런지 그렇게 말해서는 안될 것을 말한 듯한 야릇한 반발이 내 속에서 폭발되었다

그렇지만 아니었어요 부처님의 상호 같지 않았어요 나는 전신의 힘을 다하여 겨우 이렇게 말해 버렸다 왜 머리에 얹은 것이 화관이 아니고 향로래서 그러니

그렇지 그건 향로야

원혜대사는 조금도 나를 꾸짖는 빛이 아니었다

오히려 나의 그러한 불만에 구미가 당기는 듯한 얼굴이었다 나는 잠자코 원혜대사의 얼굴을 쳐다보고 있었다

곁에 있던 청운이 두어 번이나 나에게 눈짓을 했을 만큼 나의 두 눈은 스님을 쏘아 보듯이 빛나고 있었다 자네 말대로 하면

부처님이 아니고 나한님이란 말인가

그렇지만 나한님도 머리 위에 향로를 쓴 분은 없잖아

오백나한중에도

나는 역시 입을 닫은 채 호기심에 가득 찬 눈으로 스님의 얼굴을 쳐다 볼 뿐이었다 그러나 원혜대사는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들려 주지 않았다 그렇지 본래는 부처님이 아니야 모두가 부처님이라고 부르게 됐어

본래는 이 절 스님인데 성불을 했으니까 부처님이라고 부른 게지 자네도 마찬가지야

스님은 말을 마치고 가만히 두 손을 모아 합장을 한다 나도 머리를 숙이며 합장을 올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날 아침 공양을 마치고 청정실로 건너 올 때 청운은 나에게 턱으로 금불각 쪽을 가리키며 나도 첨엔 이상했어

그렇지만 이 절에서 영검이 제일 많은 부처님이라고 영검이라고

나는 이렇게 물었지만 실상은 청운이 서슴지 않고 부처님이라고 부르는 말에 더욱 놀랐던 것이다 조금 전에도 원혜대사로 부터

모두가 부처님이라고 부르게 됐다는 말을 듣긴 했지만 그때까지의 나의 머리 속에 박혀 있는 습관화된 개념으로써는

도저히 부처님과 스님을 혼동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럼 그래서 그렇게 새전이 많다오

청운의 대답이었다

그는 계속해서 들려 주었다

스님의 이름은 잘 모른다

당나라 때다

일천수백 년 전이라고 한다

소신공양으로 성불을 했다

공양을 드리고 있을 때 여러가지 신묘하고 기이한 일이 일어났다

이것을 보고 들은 수많은 사람들이 구름같이 모여들어서

아낌없이 새전과 불공을 드렸는데 그들 가운데 영검을 보지 못한 사람은 하나도 없다 그 뒤에도 계속해서 영검이 있었다

지금까지 여기 금불각 등신불에 빌어서 아이를 낳고 병을 고치고 한 사람의 수효는 수천 수만을 헤아린다

그 밖에도 소원을 성취한 사람은 이루 다 헤아릴 수가 없다

나도 청운에게서 소신 공양이란 말을 들었을 때 몸이 부르르 떨렸다

그러면 그럴 테지

나는 무슨 뜻인지 이렇게 중얼거렸다

그리고 잇달아 눈을 감고 합장을 올렸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의 입에서는 나도 모르게 염불이 흘러 나왔다 아아 그 고뇌

그 비원

나의 감은 두 눈에서는 눈물이 번져 나왔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는 발작과도 같이 곧장 염불을 외었다 나도 처음 뵜을 때는 가슴이 뭉클 했다오 그 뒤에 여러번 보고 나니까 차츰 심상해지더군 청운은 빙긋이 웃으며 나를 위로 하듯이 말했다 그것은 그렇다 하더라도 나에게는 아무래도 석연치 못한 것이 있다

소신 공양으로 성불을 했다면 부처님이 되었어야 하지 않는가 부처님이 되었다면 지금까지 모든 불상에서 보아 온 바와 같은

거룩하고 원만하고 평화스러운 상호는 아니라 할지라도

그에 가까운 부처님다움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 거룩하고 부드럽고 평화스러운 맛은 지녔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금불각의 가부좌상은 어디까지나 인간을 벗어나지 못한 고뇌와 비원이 서린 듯한 얼굴이 아니던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거의 어떠한 대각보다도 그렇게 영검이 많다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 나의 머리 속에서는 잠시도 이러한 의문들이 가셔지지 않았다

더구나 청운에게서 소신공양으로 성불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뒤부터는

금불이 아닌 새까만 숯덩이가 곧잘 눈에 삼삼거려 배길 수 없었다 사흘 뒤에 나는 다시 등신금불을 찾았다 사흘 전에 받은 충격이 어쩌면 나의 병적인 환상의 소치가 아닐까 하는 마음과 또 청운의 말대로 여러 번 봐서 심상해 진다면 나의 가슴에 사무친 오뇌와 비원의 촉수도 다소 무디어지리라는 생각에서 이다 문이 열리자 나는 그날 청운이 하던 대로 이내 머리를 수그리며 합장을 올렸다

입으로는 쉴새 없이 나무아미타불을 부르며 눈까풀과 속눈썹이 바르르 떨리며 나의 눈이 열렸을 때 금불은 사흘 전의 그 모양 그대로 향로를 이고 앉아 있었다 거룩하고 원만한 것의 상징인 듯한 부처님의 상호와는 너무나 거리가 먼 우는 듯한 웃는 듯한 찡그린 듯한 오뇌와 비원이 서린 듯한

가부좌상 임에는 변함이 없었으나

그 무어라고 형언할 수 없는 슬픔이랄까 아픔 같은 것이 전날처럼 송두리째 나의 가슴을 움켜잡는 듯한 전율에 휩쓸리지는 않았다 나의 가슴은 이미 그러한 슬픔이랄까 아픔 같은 것으로 메워져 있었고 또 그에게서 거룩하고 원만한 것의 상징인

부처님의 상호를 기대하는 마음은 가셔져 있었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나는 다시 눈을 감고 합장을 올리며 입술이 바르르 떨리듯 오랫동안 나무아미타불을 부른 뒤 그 앞에서 물러났다 그 날 저녁 예불을 마치고 청운과 더불어 원혜대사에게 저녁 인사를 갔을 때 스님은 나를 보고

너 금불을 보고 나서 괴로워 하는구나 했다 나는 고개를 수그린 채 입을 열지 못하고 있었다 그럼 너 금불각에 있는 그 불상의 기록을 봤느냐 스님이 또 물으시기에 내가 못 봤다고 했더니 그러면 기록을 한번 보라고 했다 이튿날 내가 청운과 더불어 아침 인사를 드릴 때 원혜대사는 자기가 금불각에 일러 두었으니 가서 기록을 청해서 보고 오라고 했다 나는 스님께 합장하고 물러나와 곧 금불각으로 올라갔다 금불각의 노승이 돌함에서 내어 준

폭이 한 뼘 남짓 길이가 두 뼘 가량되는 책자를 받아 들었을 때 향기가 코를 찌르는 듯했다

두터운 표지 위에는 금 글씨로 만적선사 소신성불기 라 씌어 있고 책모리에는 금물이 먹여져 있었다

표지를 젖히자 지면은 모두 재빛 바탕이요 그 위에 사연은 금글씨로 다음과 같이 씌어져 있었다 만적은 법명이요 속명은 기 성은 조씨다 금릉서 났지만 아버지가 어떤 이 인지는 잘 모른다 어머니 장씨는 사구라는 사람에게 개가를 했는데

사구에게 한 아들이 있어 이름을 신 이라 했다 나이는 기와 같은 또래로 모두가 여나믄 살씩 되었었다 하루는 어미 장씨가 두 아이에게 밥을 주는데 가만히 독약을 신의 밥에 감추었다 기가 우연히 이것을 엿보게 되었는데 혼자 생각하기를 이는 어머니가 나를 위하여 사씨 집의 재산을 탐냄으로써 전실 자식인 신을 없애려고 하는짓이라 하였다 기가 슬픈 맘을 참지 못하여 스스로 신의 밥을 제가 먹으려 할 때 어머니가 보고 크게 놀라 질색을 하며 그것을 빼앗고 말하기를

이것은 너의 밥이 아니다 어째서 신의 밥을 먹느냐 했다

신과 기는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며칠뒤 신이 자기 집을 떠나서 자취를 감춰 버렸다 기가 말하기를 신이 이미 집을 나갔으니 내가 반드시 찾아 데리고 돌아오리라 하고

곧 몸을 감추어 중이 되고 이름을 만적이라 고쳤다

처음에는 금릉에 있는 법림원에 있다가 나중은 정원사 무풍암으로 옮겨서 거기서 해각선사에게 법을 배웠다 만적이 스물 네 살 되던 해 봄에

나는 본래 도를 크게 깨칠 인재가 못되니 내 몸을 이냥 공양하여 부처님의 은혜에 보답함과 같지 못하다 하고

몸을 태워 부처님 앞에 바치는데 그 때 마침 비가 쏟아졌으나

만적의 타는 몸을 적시지 못할 뿐 아니라 점점 더 불빛이 환하더니 홀연히 보름달 같은 원광이 비치었다

모인 사람들이 이것을 보고 크게 불은을 느끼고 모두가 제 몸의 병을 고치니

무리들이 말하기를 이는 만적의 법력 소치라 하고 다투어 사재를 던져 새전이 쌓여졌다 새전으로써 만적의 탄 몸에 금을 입히고 절하여 부처님이라 하였다 그 뒤 금불각에 모시니 때는 당나라 중종 십 육년 성력 이년 삼월 초하루다 내가 이 기록을 다 읽고 나서 청정실로 돌아가니 원혜대사가 나를 불렀다 기록을 보고 나니 괴롬이 덜하냐

스님이 물었다

처음같이 무섭지는 않았습니다마는

그 괴롭고 슬픈 빛은 가셔지지 않았습니다

내가 대답하자 스님은 고개를 끄덕이며

당연한 일이야 기록이 너무 간략하고 섬소해서 라고 했다 그것이 자기는 그보다 훨씬 많은것을 알고 있는 듯한 말씨였다 그렇지만 천 이백 년도 넘는 옛날 일인데

기록 이외에 다른 일을 어떻게 알겠읍니까

또 내가 물었다

이에 대하여 원혜대사는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가 있는데 절에서는 그것을 함부로 이야기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으며 그러니까 그만치 금불각의 등신불에 대해서는 모두들 그 영검을 두려워하고 있는 셈이라고 정색을 하고 말했다 원혜대사가 나에게 들려 준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이것은 물론 천이백 년간 등신금불에 대하여 절에서 내려오는 이야기를 원혜대사가 정리해서 간단히 한 이야기이다 만적이 중이 되기까지의 이야기는 대개 기록과 같다 그러나 그가 자기 몸을 불살라서 부처님께 공양을 올린 동기에 대해서는

전해 오는 다른 이야기가 몇 있다

그것을 차례로 쫓아 이야기하면 다음과 같다 만적이 처음 금릉 법림원에서 중이 되었는데 그때 그를 거두어 준 스님에 취뢰라는 중이 있었다 그 절의 공양을 맡아 있는 공양주 스님이었다 만적은 취뢰 스님의 상좌로 있으면서 불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취뢰 스님이 그에 대한 일체를 돌보아 준 것이다

만적이 열 여덟 살 때 그러니까 그가 법림원에 들어온지 오년 뒤

취뢰 스님이 열반하시게 되자

만적은 스님의 은공을 갚기 위하여 자기 몸을 불전에 헌신할 결의를 했다

만적이 그 뜻을 법사 운봉선사에게 아뢰자 운봉선사는 만적의 그릇됨을 보고

더 수도를 계속하도록 타이르며 사신을 허락지 않았다

만적이 정원사의 무풍암에 해각선사를 찾았다는 것도 운봉선사의 알선에 의한 것이다

그가 해각선사 밑에서 지낸 오 년 간의 수도생활이란 뼈를 깎고 살을 가는 정진이었으나

법력의 경지는 짐작할 길이 없었다

만적이 스물 세 살 나던 해 겨울에

금릉 방면으로 나갔다가 전날의 사신을 만났다

열 세 살 때 자기 어머니의 모해를 피하여 집을 나간 사신이었다

그리고 자기는 이 사신을 찾아 역시 집을 나왔다가

그를 찾지 못하고 중이 된 채 어느덧 꼭 십년만에 그를 다시 만난 것이다

그러나 그때 만난 사신을 보고는

비록 속세의 인연을 끊어버린 만적으로서도 눈물을 금할 수 없었던 것이다

착하고 어질던 사신이 어쩌면 하늘의 형벌을 받았단 말인가 사신은 문둥병이 들어 있었던 것이다

만적은 자기의 목에 걸렸던 염주를 벗겨서 사신의 목에 걸어 주고

그 길로 곧장 정원사에 돌아왔다

그때부터 만적은 화식을 끊고 말을 잃었다 이듬해 봄까지 그가 먹은 것은 하루에 깨 한 접시씩뿐이었다 그때까지의 목욕 재개는 말할 것도 없다 이듬해 이월 초하룻날

그는 법사 스님 운봉선사와 공양주 스님 두 분만을 모시고 취단식을 봉행했다 먼저 법의를 벗고 알몸이 된 뒤에

가늘고 깨끗한 명주를 발끝에서 어깨까지 목 위만 남겨 놓고 전신에 감았다 그리고는 단위에 올라가 가부좌를 개고 앉자 두 손을 모아 합장을 올렸다

그리하여 그가 염불을 외우기 시작하는것과 동시에 곁에서 들기름 항아리를 받들고 서 있던 공양주 스님이

그의 어깨에서부터 기름을 들어부었다

기름을 다 붓고 취단식이 끝나자 법사 스님과 공양주 스님은 합장 을 올리고 그 곁을 떠났다 기름에 결은 만적은 그때부터 삼월 초하루까지 한 달 동안 단위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가부좌를 갠 채 합장을 한 채 숨쉬는 화석이 되어 가고 있었다

이례에 한 번씩 공양주 스님이 들기름 항아리를 안고 흰 천으로 만든 장막안으로 들어가

어깨에서 부터 다시 기름을 부어 주고 돌아가는 일밖에 그 누구도 이 장막 안을 엿보지 못했다 이렇게 한 달이 찬 뒤

이날의 성스러운 불공에 참여하기 위하여 산중의 스님들은 물론이요

원근 각처의 선남 선녀들이 모여들어

정원사 법당 앞 넓은 뜰을 메꾸었다

소신공양은 오시 초에 장막이 걷히면서부터 시작되었다 오백을 헤아리는 승려가 단을 향해 합장을 하고 선 가운데

공양주 스님이 불 담긴 향로를 받들고

단 앞으로 나아가 만적의 머리 위에 얹었다 그와 동시 그 앞에 합장하고 선 승려들의 입에서

일제히 아미타불이 불려지기 시작했다

만적의 머리 위에 화관같이 씌워진 향로에서는 점점 더 많은 연기가 오르기 시작했다

이미 오랫동안의 정진으로 말미암아 거의 화석이 되어 가고 있는 만적의 육신이지만

불기운이 그의 숨골 정수리를 뚫었을 때는 저절로 몸이 움칠해졌다

그리하여 그때부터 눈에 보이지 않게 그의 고개와 등가슴이 조금씩 앞으로숙여져 갔다 들기름에 결은 만적의 육신이 연기로 화하여 나가는 시간은 길었다 그러나 그 앞에 선 오백의 대중은 아무도 쉬지 않고 아미타불을 불렀다 신시말에 갑자기 비가 쏟아졌다

그러나 웬일인지 단위에는 비가 내리지 않았다 만적의 머리 위로는 더 많은 연기가 오르기 시작했다 염불을 올리던 중들과 그 뒤에서 구경하던 신도들이 신기한 일이라고 눈이 휘둥그래 져서 만적을 바라보았을 때 그의 머리 뒤에는 보름달 같은 원광이 씌워져 있었다 이때부터 새전이 쏟아지기 시작하여 그 뒤 삼 년간이나 그칠 날이 없었다 이 새전으로 만적의 타다가 굳어진 몸에 금을 씌우고 금불각을 짓고 석대를 쌓았다 원혜대사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동안 나는 맘속으로 이렇게 해서 된 불상이라면 과연 지금의 저 금불각의 등신금불같이 될 수밖에 없으리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많은 부처님 불상 가운데서

그렇게 인간의 고뇌와 슬픔을 아로새긴 등신불이 한 분쯤 있는 것도 무방한 일일 듯 했다

그러나 이야기를 다 마치고 난 원혜대사는 이제 다시 나에게 그런 것을 묻지는 않았다

자네 바른 손 식지를 들어 보게 했다

이것은 지금까지 그가 이야기해 오던 금불각이나 등신불이나 만적의 분신공양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엉뚱한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나는 달포 전에 남경 교외에서 진기수씨에게 혈서를 바치느라고

내 입으로 살을 물어 뗀 나의 식지를 쳐들었다 그러나 원혜대사는 가만히 그것을 바라보고 있을 뿐 더 말이 없다

왜 그 손가락을 들어 보이라고 했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