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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라의 오디오북 (Novella Audio Books), 동백꽃 김유정ㅣ한글자막(CC), 한국단편, 소설읽기, 오디오명작, Korean Novel, Korean Audio Book,

동백꽃 김유정ㅣ한글자막(CC), 한국단편, 소설읽기, 오디오명작, Korean Novel, Korean Audio Book,

안녕하세요

노벨라예요

편안한 마음으로 소설 한편 뚝딱 들어보는 시간입니다

김유정의 대표작 동백꽃이 오늘 이야기예요

작가 김유정의 고향은 강원도여서

그의 작품에는 강원도 방언이 자주 나오는데요

오늘 이야기의 제목인 동백꽃이

생강나무 꽃의 강원도 방언이랍니다

생강나무는 가지를 꺾으면 알싸한 생강 향기가 나고 꽃에서도 그 향기가 난다고 해요

옛날 여인들이 동백나무 열매에서

추출한 동백기름을 머리에 발랐는데요 강원도는 동백나무가 자랄 환경이 안 되어서 생강나무 열매에서 기름을 내서 동백기름 대신 썼답니다

그래서 붙여진 이름이 동백나무 또는 동박나무랍니다

노란 동백꽃 그 알싸한 향기가 나는 이야기 김유정의 동백꽃

함께 들어보세요

오늘도 또 우리 수탉이 막 쫓겼다

내가 점심을 먹고 나무를 하러 가려고 나올 때였다 산으로 올라서려니까

등뒤에서 푸드득 푸드득 하고 닭이

홰를 치는 소리가 야단스럽다

깜짝 놀라서 고개를 돌려 보니

아니나 다를까 두 놈이 또 엉겨붙었다 대강이가 크고 꼭 오소리같이 실팍하게 생긴 점순네 수탉이 덩치 작은 우리 수탉을 함부로 해내는 거다 그것도 그냥 해내는 것이 아니라

푸드득하고 면두를 쪼고 물러섰다가

좀 사이를 두고 푸드득하고 모가지를 쪼았다

이렇게 멋을 부려 가며 여지없이 닦아 놓는다

그러면 이 못생긴 것은 쪼일 적마다

주둥이로 땅을 받으며 그 비명이 킥 킥 할뿐이다 물론 미처 아물지도 않은 면두를 또 쪼이면 붉은 선혈은 뚝뚝 떨어진다

이걸 가만히 내려다보자니

내 대강이가 터져서 피가 흐르는 것같이 두눈에서 불이 번쩍 난다

대뜸 지게 막대기를 메고 달려들어 점순네 닭을 후려칠까 하다가

생각을 고쳐먹고 헛매질로 떼어만 놓았다 이번에도 점순이가 쌈을 붙여 놨을 것이다 바짝바짝 내 기를 올리느라고 그랬음에 틀림 없을 것이다 고놈의 기집애가

요새 들어서 왜 나를 못 잡아먹어

고렇게 아르릉 거리는지 참 모를 일이다 나흘 전 감자건만 하더라도

나는 저에게 조금도 잘못한 건 없다

계집애가 나물을 캐러 가면 갔지

남 울타리 엮는 데 쌩이질을 하는 건 다 뭐냐 그것도 발소리를 죽여 가지고

등 뒤로 살며시 와서

야 너 혼자만 일하니

하고 쓸데 없는 수작을 하는 것이다 어제까지도 저와 나는 이야기도 잘 안하고

서로 만나도 본체만체 하고

이렇게 점잖게 지내던 터이련만

오늘로 갑자기 대견해졌음은 웬일인가 항차 망아지만한 계집애가 남 일하는걸 보구 그럼 혼자 하지 떼루 하냐

내가 이렇게 내뱉는 소리를 하니까

너 일하기 좋니

한여름이나 되거든 하지 벌써 울타리를 하니 잔소리를 두루 늘어놓다가

남이 들을까봐 손으로 입을 틀어 막고 그 속에서 깔깔댄다 별로 우스울 것도 없는데 날씨가 풀리더니

이 놈의 계집애가 미쳤나 하고 의심했다 게다가 조금 뒤에는

자기 집 쪽을 할금할금 돌아보더니

행주치마 속에 꼈던 바른손을 뽑아서

내 턱밑으로 불쑥 내민다

언제 구웠는지 더운 김이 홱 끼치는 굵은 감자 세 개가 손에 뿌듯이 쥐였다 느 집엔 이거 없지

하고 생색내는 큰소리를 하고는

제가 준 것을 남이 알면 큰일 날테니 여기서 얼른 먹어 버리란다 그리고 또 하는 소리가

너 봄감자가 맛 있는거다

난 감자 안 먹는다 너나 먹어라 나는 고개도 돌리지 않고 일하던 손으로

그 감자를 도로 어깨 너머로 쑥 밀어 버렸다 그랬더니

그래도 가는 기색이 없고

뿐만 아니라 쌔근쌔근하고

심상치 않은 숨소리가 점점 거칠어진다

이건 또 뭐야 싶어서 그때에야 비로소 돌아다보니 나는 참으로 놀랐다

우리가 이 동네에 들어온지 거의 삼년째가 되지만

여태껏 가무잡잡한 점순이 얼굴이

이렇게까지 홍당무처럼 새빨개 진 법이 없었다 게다가 눈에 독을 올리고 한참 나를 요렇게 쏘아보더니 나중엔 눈물까지 어리는 게 아닌가

그리고는 바구니를 다시 집어들더니

이를 꼭 악물고는 엎어질 듯 자빠질 듯 논둑으로 횡하게 달아나는 것이다

어쩌다가 동네 어른이

너 얼른 시집 가야지 하고 웃으면

염려 마서유 갈 때 되면 어련히 갈라구 이렇게 천연덕스레 받는 점순이었다

본시 부끄럼을 타는 계집애도 아니거니와 또 분하다고 눈에 눈물을 보일 얼간이도 아니다

분하면 차라리

내 등어리를 바구니로 한번 모질게 후려 쌔리고 달아날지언정 그런데 고약한 그 꼴을 하고 가더니

그 뒤로는 나를 보면 잡아먹으려고 기를 복복 쓰는 것이다 설혹 주는 감자를 안 받아먹는 게 실례라면 주면 그냥 주지

니 집엔 이거 없지는 다 뭐냐

그렇지 않아도 저희는 마름이고

우리는 그 손에서 배재를 얻어 땅을 부치기 때문에

늘 굽신거린다

우리가 이 마을에 처음 들왔을 때

집이 없어 곤란하게 지낼 때 집터를 빌리고

또 그 위에 집을 짓도록 마련해 준 것도 점순네의 호의였다 그리고 우리 어머니 아버지도 농사때 양식이 딸리면 점순네서 부지런히 꾸어다 먹으면서

인품 그런 집은 다시없을거라고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곤 하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열일곱씩이나 된 것들이 수군수군하고 붙어 다니면

동네 소문이 사납다고 주의를 시켜 준 것도 또 우리 어머니였다

왜냐하면 내가 점순이 하고 일을 저질렀다간 점순네가 노할 거고

그럼 우리는 땅도 떨어지고 집도 내쫓기고

그런 까닭이었다

그런데 이놈의 계집애가 까닭 없이 기를 복복 쓰며 나를 말려 죽이려고 드는 거다

눈물을 흘리고 간 담날 저녁나절이였다 나무를 한 짐 잔뜩 지고 산을 내려오는데 어디서 닭이 죽는소리를 친다

이거 뉘집에서 닭을 잡나 하고

점순네 울타리 뒤로 돌아오다가

나는 고만 두 눈이 똥그래졌다

점순이가 저희 집 봉당에 홀로 걸터앉았는데 이게 치마 앞에다 우리 씨암탉을 꼭 붙들어 놓고는

이놈의 씨닭 죽어라 죽어라

요렇게 암팡스레 패 주는 게 아닌가

그것도 대가리나 치면 모른다만

아주 알도 못 낳으라고

그 볼기짝께를 주먹으로 콕콕 쥐어박는 거다 난 눈에 쌍심지가 오르고 사지가 부르르 떨렸지만

사방을 한번 휘둘러 보고나서야

점순이 집에 아무도 없는 걸 알았다

잡은 참지게 막대기를 들어서

울타리의 중턱을 후려치며

이놈의 계집애 남의 닭 알 못 낳으라구 그러냐

하고 소리를 빽 질렀다

하지만 점순이는 조금도 놀라는 기색 없이 그대로 의젓하게 앉아서

제 닭 가지고 하듯 또 죽어라 죽어라 하고 패는 거다

이러는 걸 보면

내가 산에서 내려올 때를 맞춰서

미리부터 닭을 잡아 가지고 있다가

네 보라는 듯 내 앞에서

줴지르고 있음이 확실하다

그러나 그렇다고 남의 집에 뛰어 들어가

계집애하고 싸울 수도 없는 노릇이고

내 형편이 썩 불리함을 알았다

그래서 닭이 맞을 때마다

지게 막대기로 울타리를 후벼칠 수 밖에

별 도리가 없었다

왜냐하면 울타리를 치면 칠수록

울섶이 물러앉으며 뼈대만 남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나만 밑지는 노릇이다

아 이년아 남의 닭 아주 죽일 거냐

내가 도끼눈을 뜨고 다시 꽥 호령을 하니까 그제서야 울타리께로 쪼르르 오더니

울밖에 섰는 나의 머리를 겨누고

닭을 내팽개친다

에이그 더럽다 더러워

더러운 걸 널더러 입때 끼고 있으랬니

망할 계집애 같으니

하고 나도 더럽단 듯이

울타리께를 횡하고 돌아내리는데

이 서슬에 놀란 암탉이

나의 이마빼기에다 물지똥을 찍 갈긴다

그걸 본다면

알집만 터졌을 뿐 아니라

골병이 단단히 든 듯싶다

나는 약이 오를대로 올랐는데

점순인 나의 등을 향해서 나에게만 들릴 듯 말 듯한 음성으로

이 바보야

너 배냇병신이지

거기까진 참을만 했으나

야 니 아버지가 고자라며

뭐 울 아버지가 그래 고자라구

할 양으로

열딱지가 나서 고개를 홱 돌려 바라봤더니 그때까지 울타리 위로 나와 있어야 할 점순이의 대가리가 어디 갔는지 보이질 않는다

그러다 돌아서 오는데 아까한 그욕을

울타리 밖으로 또 퍼붓는 것이다

욕을 이토록 먹어 가면서도

대꾸 한 마디 못한 걸 생각하니

돌부리에 채여 발톱 밑이 터지는 것도 모를 만큼 분하고

급기야는 두눈에 눈물까지 불끈 내솟는다

그러나 점순이의 침해는 이것뿐 이 아니다

사람들이 없으면 틈틈이 제 집 수탉을 몰고 와서 우리 수탉과 쌈을 붙여 놓는다

제 집 수탉은 썩 험상궂게 생기고

쌈이라면 홰를 치는 고로

으레 이길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툭하면 우리 수탉이 면두며 눈깔이

피로 흐드르하게 만들어 놓는다

어떤 때에는 우리 수탉이 나오지를 않으니까 요놈의 계집애가 모이를 쥐고 와서 꾀어내다가 쌈을 붙인다

이렇게 되면 나도 다른 잇속을 차리지 않을 수 없었다 하루는 우리 수탉을 붙들어서

넌지시 장독께로 갔다

쌈닭에게 고추장을 먹이면

병든 황소가 살모사를 먹고 용을 쓰는 것처럼 기운이 뻗친다고 한다

장독에서 고추장 한 접시를 떠서

닭 주둥아리께로 들여 밀고 먹여 보았다 닭도 고추장에 맛을 들였는지

거스르지 않고 거의 반 접시 정도

곧잘 먹는다

그리고 먹고 바로는 용을 못쓸 테니

얼마쯤 기운이 돌도록 횃속에다 가두어두었다

밭에 두엄을 두어 짐 져내고 나서 쉴 참에 닭을 안고 밖으로 나왔다

마침 밖에는 아무도 없고

점순이만 저희 울안에서

헌옷을 뜯는지

혹은 솜을 터는지

웅크리고 앉아서 일을 할 뿐이다 나는 점순네 수탉이 노는 밭으로 가서 닭을 내려 놓고 가만히 맥을 보았다 두 닭은 여전히 엉켜붙어 쌈을 하는데 처음에는 아무 보람이 없었다

멋지게 쪼이는 바람에

우리 닭은 또 피를 흘리고

그러면서도 날갯죽지만 푸 드득 푸드득하고

올라 뛰고 뛰고 할 뿐

그럴듯하게 한번 쪼아 보지도 못한다 그러나 한번은

어쩐 일인지 용을 쓰고 펄쩍 뛰더니 발톱으로 눈을 하비고 내려오면서 면두를 쪼았다

큰닭도 여기에는 놀랐는지

뒤로 멈씰하면서 물러난다

이 기회를 타서 작은 우리 수탉이 또 날쌔게 덤벼들어 다시 면두를 쪼니까 그제서는 억세고 사나운 그 대강이 에서도 피가 흐르지 않을 수 없다

그래 알았다

고추장만 먹이면 되는구나

하고 나는 속으로 아주 쟁그러워 죽을 것 같았다 그때 뜻밖에 내가 닭쌈을 붙여 놓는 데 놀라서 울타리 밖으로 내다보고 섰던 점순이도 입맛이 쓴지 눈쌀을 찌푸렸다

나는 두 손으로 볼기짝을 두드리며 연방 잘한다 잘한다하고 머리끝까지 신이 뻐쳤었다 그러나 얼마 되지 않아서 난 넋이 풀려 기둥같이 묵묵히 서 있게 되었다 왜냐하면 큰 닭이 한번 쪼인 앙갚음으로 호들갑스레 연거푸 쪼는 서슬에 우리 수탉은 찔끔도 못하고 막 곯는다 이번엔 점순이가 깔깔거리면서 되도록 이쪽에서 많이 들으라고 웃는 것이다 나는 보다 못해 덤벼들어서

우리 수탉을 붙들어 가지고 집으로 들어왔다 고추장을 좀더 먹였더라면 좋았을 걸 너무 급하게 쌈을 붙인 것이 퍽 후회가 난다 장독께로 돌아와서 다시 턱밑에 고추장을 들이댔다 흥분으로 말미암아 그런지

도무지 먹질 않는다

나는 할 수 없이 닭을 반듯이 눕히고 그 입에다 궐련 물부리를 물렸다 그리고 고추장 물을 타서

그 구멍 으로 조금씩 들여 부었다

닭은 좀 괴로운지 킥킥하고 재채기를 하지만 난 당장의 괴로움은

매일 같이 피를 흘리는 데 댈 게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한 두어 종지 가량 고추장 물을 먹이고 나서 난 고만 풀이 죽었다

싱싱하던 닭이 왜 그런지 고개를 살며시 뒤틀고는 손아귀에서 뻐드러지는 것이 아닌가 아버지가 볼까 봐 얼른 홰에다 감추어 두었더니 오늘 아침에서야 겨우 정신이 든 모양 같다 그랬던 걸 오늘도 오다 보니까

또 쌈을 붙여 놓았으니

이 망할 계집애가

틀림없이 우리집에 아무도 없는 틈을 타서 몰래 들어와

홰에서 꺼내 가지고 나간 것이 분명하다

나는 다시 닭을 잡아다 가두고

그렇다고 산으로 나무를 하러 가지 않을 수 없는 형편였다

소나무 삭정이를 따며 가만히 생각해 보니 암만해도 고년의 목쟁이를 확 돌려 놓고 싶다 이번에 내려가면 망할 년 등줄기를 한번 되게 후려쳐 줘야 겠다 하고 싱둥겅둥 나무를 지고는 부리나케 내려왔다 거의 집에 다 내려와서

나는 호드기 소리를 듣고 발이 딱 멈췄다 산기슭에 널려 있는 굵은 바윗돌 틈에 노란 동백꽃이 소보록하니 깔려 있다 그 틈에 끼어 앉아 점순이가

청승맞게 호드기를 불고 있는 것이다

그보다 더 놀란 건

고 앞에서 또 푸드득 푸드득 하고 들리는 닭의 횃소리다 필연코 요년이 나를 약을 올리려고 또 닭을 집어내다가

내가 내려올 길목에다 쌈을 시켜 놓고 저는 그 앞에 앉아서 천연스레

호드기를 불고 있음이 틀림없다 난 약이 오를 대로 올라

두 눈에서 불과 함께 눈물이 퍽 쏟아졌다 나뭇지게도 벗어 놀 새 없이 그대로 내동댕이치고는 지게 막대기를 뻗치고 허둥 허둥 달려들었다 가까이 와 보니 과연 내 짐작대로

우리 수탉이 피를 흘리고 거의 빈사 지경이었다 닭도 닭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 하나 깜짝 없이 고대로 앉아서 호드기만 부는 그 꼴에 더욱 치가 떨린다

동네에서도 소문이 났지만

나도 한때는 걱실걱실히 일 잘 하고 얼굴 예쁜 계집애인 줄 알았더니 지금 보니 그 눈깔이 꼭 여우 새끼 같다

나는 대뜸 달려들어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큰 수탉을 단매로 때려 엎었다 닭은 푹 엎어진 채

다리 하나 꼼짝 못 하고 그대로 죽어 버렸다 나는 멍하니 섰다가

점순이가 매섭게 눈을 홉뜨고 달려드는 바람에 뒤로 벌렁 나자빠졌다

이놈아 너 왜 남의 닭을 때려죽이니 그럼 어때

하고 일어나다가

뭐 이 자식아 뉘 집 닭인데 하며 배를 떼미는 바람에 다시 벌렁 자빠졌다 그리고 나서 가만히 생각을 하니

분하기도 하고 무안도스럽고 또 한편으론 일을 저질렀으니

이젠 땅이 떨어지고 집도 내쫓기게 될지 모른다 나는 비슬비슬 일어나며

소맷자락으로 눈을 가리고는

얼떨결에 엉 하고 울음을 놓았다 그러나 점순이가 앞으로 다가와서

너 다음부턴 안 그럴거니

하고 물을 때 비로소 살길을 찾은 듯싶었다 나는 우선 눈물을 씻고 뭘 안 그러는지 명색도 모르지만 그래 하고 무턱대고 대답했다 다음에 또 그래 봐

내가 계속 못살게 굴 테니까

그래 그래 이젠 안 그럴거야 닭 죽은 건 염려 마

내가 안 이를 테니까

그리고 뭣에 떠다 밀렸는지

나의 어깨를 짚은 채

그대로 퍽 쓰러진다

그 바람에 내 몸뚱이도 겹쳐서 쓰러지며 한창 피어 퍼드러진 노란 동백꽃 속으로 폭 파묻혀 버렸다

알싸한 그리고 향긋한 그 냄새에 나는 땅이 꺼지는 듯

온 정신이 고만 아찔했다 너 암말 말어

그래

조금 있더니 요 아래서

점순아 점순아

이년이 바느질을 하다 말구 어딜 갔어 하고 어딜 갔다 온 듯 싶은 그 어머니가 역정이 대단히 났다

점순이가 겁을 잔뜩 집어먹고 꽃밑을 살금살금 기어서 산아래로 내려간 다음 나는 바위를 끼고 엉금엉금 기어서 산위로 치빼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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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Hello

노벨라예요 I'm Novella

편안한 마음으로 소설 한편 뚝딱 들어보는 시간입니다 It's time to listen to a novel with a relaxed mind.

김유정의 대표작 동백꽃이 오늘 이야기예요 Today's story is Kim Yoo-jung's representative work, Camellia Flower.

작가 김유정의 고향은 강원도여서 Writer Kim Yoo-jung's hometown is Gangwon-do.

그의 작품에는 강원도 방언이 자주 나오는데요 Gangwon-do dialect is often used in his works.

오늘 이야기의 제목인 동백꽃이 The title of today's story, Camellia

생강나무 꽃의 강원도 방언이랍니다 Gangwon-do dialect of ginger blossoms

생강나무는 가지를 꺾으면 알싸한 생강 향기가 나고 When the branches of a ginger tree are cut, a sweet ginger scent is released. 꽃에서도 그 향기가 난다고 해요 It is said that flowers also smell

옛날 여인들이 동백나무 열매에서 In the old days, the women of the camellia

추출한 동백기름을 머리에 발랐는데요 I applied the extracted camellia oil to my hair. 강원도는 동백나무가 자랄 환경이 안 되어서 Gangwon-do does not have an environment for camellia to grow. 생강나무 열매에서 기름을 내서 동백기름 대신 썼답니다 I made oil from the ginger fruit and used it instead of camellia oil.

그래서 붙여진 이름이 동백나무 또는 동박나무랍니다 Hence the name camellia or camellia.

노란 동백꽃 그 알싸한 향기가 나는 이야기 The story of the yellow camellia that smells sweet 김유정의 동백꽃 Kim Yoo-jung's Camellia

함께 들어보세요 listen together

오늘도 또 우리 수탉이 막 쫓겼다 Our rooster just got chased again today

내가 점심을 먹고 나무를 하러 가려고 나올 때였다 It was time for me to go out to wood after lunch. 산으로 올라서려니까 I want to climb the mountain

등뒤에서 푸드득 푸드득 하고 닭이 Behind the back, the chicken

홰를 치는 소리가 야단스럽다 The sound of the fan is annoying

깜짝 놀라서 고개를 돌려 보니 I turned my head in surprise

아니나 다를까 두 놈이 또 엉겨붙었다 Not surprisingly, the two got tangled up again. 대강이가 크고 꼭 오소리같이 실팍하게 생긴 점순네 수탉이 A rooster with a large stature and a skinny look like a badger 덩치 작은 우리 수탉을 함부로 해내는 거다 You're just messing around with our little rooster. 그것도 그냥 해내는 것이 아니라 It's not just about doing

푸드득하고 면두를 쪼고 물러섰다가 After eating, pecking at the noodles and backing away

좀 사이를 두고 푸드득하고 모가지를 쪼았다 After a while, I ate and pecked the branches.

이렇게 멋을 부려 가며 여지없이 닦아 놓는다 I wipe it off without leaving any room for being stylish like this

그러면 이 못생긴 것은 쪼일 적마다 Then every time this ugly thing is pecked

주둥이로 땅을 받으며 그 비명이 킥 킥 할뿐이다 It hits the ground with its snout, and the scream just kicks in. 물론 미처 아물지도 않은 면두를 또 쪼이면 Of course, if you squeeze the noodles that have not yet healed, 붉은 선혈은 뚝뚝 떨어진다

이걸 가만히 내려다보자니

내 대강이가 터져서 피가 흐르는 것같이 두눈에서 불이 번쩍 난다

대뜸 지게 막대기를 메고 달려들어 I ran in with a crowbar. 점순네 닭을 후려칠까 하다가

생각을 고쳐먹고 헛매질로 떼어만 놓았다 I changed my mind and set it aside in vain. 이번에도 점순이가 쌈을 붙여 놨을 것이다 바짝바짝 내 기를 올리느라고 그랬음에 틀림 없을 것이다 It must have been to keep my spirits up. 고놈의 기집애가

요새 들어서 왜 나를 못 잡아먹어

고렇게 아르릉 거리는지 참 모를 일이다 It's hard to tell if it's purring evenly. 나흘 전 감자건만 하더라도

나는 저에게 조금도 잘못한 건 없다 I haven't done anything wrong to me

계집애가 나물을 캐러 가면 갔지

남 울타리 엮는 데 쌩이질을 하는 건 다 뭐냐 What's with all the fence-sitting? 그것도 발소리를 죽여 가지고

등 뒤로 살며시 와서

야 너 혼자만 일하니 Hey, you work alone.

하고 쓸데 없는 수작을 하는 것이다 어제까지도 저와 나는 이야기도 잘 안하고

서로 만나도 본체만체 하고

이렇게 점잖게 지내던 터이련만

오늘로 갑자기 대견해졌음은 웬일인가 항차 망아지만한 계집애가 남 일하는걸 보구 그럼 혼자 하지 떼루 하냐

내가 이렇게 내뱉는 소리를 하니까

너 일하기 좋니

한여름이나 되거든 하지 벌써 울타리를 하니 It's the middle of summer. They're already building a fence. 잔소리를 두루 늘어놓다가

남이 들을까봐 손으로 입을 틀어 막고 그 속에서 깔깔댄다 You cover your mouth with your hand and giggle in the middle of it because you don't want anyone to hear you. 별로 우스울 것도 없는데 날씨가 풀리더니 It's not funny, but then the weather cleared and the

이 놈의 계집애가 미쳤나 하고 의심했다 게다가 조금 뒤에는

자기 집 쪽을 할금할금 돌아보더니 He looked back at his house and said.

행주치마 속에 꼈던 바른손을 뽑아서

내 턱밑으로 불쑥 내민다

언제 구웠는지 더운 김이 홱 끼치는 You'll be able to see when you've baked a hot, steaming 굵은 감자 세 개가 손에 뿌듯이 쥐였다 느 집엔 이거 없지

하고 생색내는 큰소리를 하고는 and makes a loud noise, and then

제가 준 것을 남이 알면 큰일 날테니 여기서 얼른 먹어 버리란다 그리고 또 하는 소리가

너 봄감자가 맛 있는거다

난 감자 안 먹는다 너나 먹어라 I don't eat potatoes. You can have them. 나는 고개도 돌리지 않고 일하던 손으로

그 감자를 도로 어깨 너머로 쑥 밀어 버렸다 그랬더니

그래도 가는 기색이 없고

뿐만 아니라 쌔근쌔근하고

심상치 않은 숨소리가 점점 거칠어진다

이건 또 뭐야 싶어서 그때에야 비로소 돌아다보니 나는 참으로 놀랐다

우리가 이 동네에 들어온지 거의 삼년째가 되지만

여태껏 가무잡잡한 점순이 얼굴이

이렇게까지 홍당무처럼 새빨개 진 법이 없었다 게다가 눈에 독을 올리고 한참 나를 요렇게 쏘아보더니 나중엔 눈물까지 어리는 게 아닌가

그리고는 바구니를 다시 집어들더니

이를 꼭 악물고는 엎어질 듯 자빠질 듯 논둑으로 횡하게 달아나는 것이다

어쩌다가 동네 어른이

너 얼른 시집 가야지 하고 웃으면

염려 마서유 갈 때 되면 어련히 갈라구 이렇게 천연덕스레 받는 점순이었다

본시 부끄럼을 타는 계집애도 아니거니와 또 분하다고 눈에 눈물을 보일 얼간이도 아니다

분하면 차라리 If I'm frustrated, I'd rather use

내 등어리를 바구니로 한번 모질게 후려 쌔리고 달아날지언정 그런데 고약한 그 꼴을 하고 가더니

그 뒤로는 나를 보면 잡아먹으려고 기를 복복 쓰는 것이다 After that, if they see me, they'll try to eat me. 설혹 주는 감자를 안 받아먹는 게 실례라면 If it's rude not to take the potato that's being offered, you can use the 주면 그냥 주지

니 집엔 이거 없지는 다 뭐냐

그렇지 않아도 저희는 마름이고

우리는 그 손에서 배재를 얻어 땅을 부치기 때문에

늘 굽신거린다

우리가 이 마을에 처음 들왔을 때

집이 없어 곤란하게 지낼 때 집터를 빌리고

또 그 위에 집을 짓도록 마련해 준 것도 점순네의 호의였다 그리고 우리 어머니 아버지도 농사때 양식이 딸리면 점순네서 부지런히 꾸어다 먹으면서

인품 그런 집은 다시없을거라고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곤 하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열일곱씩이나 된 것들이 수군수군하고 붙어 다니면

동네 소문이 사납다고 주의를 시켜 준 것도 또 우리 어머니였다

왜냐하면 내가 점순이 하고 일을 저질렀다간 점순네가 노할 거고

그럼 우리는 땅도 떨어지고 집도 내쫓기고

그런 까닭이었다

그런데 이놈의 계집애가 까닭 없이 기를 복복 쓰며 나를 말려 죽이려고 드는 거다

눈물을 흘리고 간 담날 저녁나절이였다 나무를 한 짐 잔뜩 지고 산을 내려오는데 어디서 닭이 죽는소리를 친다

이거 뉘집에서 닭을 잡나 하고

점순네 울타리 뒤로 돌아오다가

나는 고만 두 눈이 똥그래졌다

점순이가 저희 집 봉당에 홀로 걸터앉았는데 이게 치마 앞에다 우리 씨암탉을 꼭 붙들어 놓고는

이놈의 씨닭 죽어라 죽어라

요렇게 암팡스레 패 주는 게 아닌가

그것도 대가리나 치면 모른다만

아주 알도 못 낳으라고

그 볼기짝께를 주먹으로 콕콕 쥐어박는 거다 난 눈에 쌍심지가 오르고 사지가 부르르 떨렸지만

사방을 한번 휘둘러 보고나서야 After swinging it around in all directions, I realized that the

점순이 집에 아무도 없는 걸 알았다

잡은 참지게 막대기를 들어서

울타리의 중턱을 후려치며 Hitting the middle of the fence with the

이놈의 계집애 남의 닭 알 못 낳으라구 그러냐

하고 소리를 빽 질렀다

하지만 점순이는 조금도 놀라는 기색 없이 그대로 의젓하게 앉아서

제 닭 가지고 하듯 또 죽어라 죽어라 하고 패는 거다

이러는 걸 보면

내가 산에서 내려올 때를 맞춰서

미리부터 닭을 잡아 가지고 있다가

네 보라는 듯 내 앞에서

줴지르고 있음이 확실하다

그러나 그렇다고 남의 집에 뛰어 들어가

계집애하고 싸울 수도 없는 노릇이고

내 형편이 썩 불리함을 알았다

그래서 닭이 맞을 때마다

지게 막대기로 울타리를 후벼칠 수 밖에

별 도리가 없었다

왜냐하면 울타리를 치면 칠수록

울섶이 물러앉으며 뼈대만 남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나만 밑지는 노릇이다

아 이년아 남의 닭 아주 죽일 거냐

내가 도끼눈을 뜨고 다시 꽥 호령을 하니까 그제서야 울타리께로 쪼르르 오더니

울밖에 섰는 나의 머리를 겨누고

닭을 내팽개친다

에이그 더럽다 더러워

더러운 걸 널더러 입때 끼고 있으랬니

망할 계집애 같으니

하고 나도 더럽단 듯이

울타리께를 횡하고 돌아내리는데

이 서슬에 놀란 암탉이

나의 이마빼기에다 물지똥을 찍 갈긴다

그걸 본다면

알집만 터졌을 뿐 아니라

골병이 단단히 든 듯싶다

나는 약이 오를대로 올랐는데

점순인 나의 등을 향해서 나에게만 들릴 듯 말 듯한 음성으로

이 바보야

너 배냇병신이지

거기까진 참을만 했으나

야 니 아버지가 고자라며

뭐 울 아버지가 그래 고자라구

할 양으로

열딱지가 나서 고개를 홱 돌려 바라봤더니 그때까지 울타리 위로 나와 있어야 할 점순이의 대가리가 어디 갔는지 보이질 않는다

그러다 돌아서 오는데 아까한 그욕을

울타리 밖으로 또 퍼붓는 것이다

욕을 이토록 먹어 가면서도

대꾸 한 마디 못한 걸 생각하니

돌부리에 채여 발톱 밑이 터지는 것도 모를 만큼 분하고

급기야는 두눈에 눈물까지 불끈 내솟는다

그러나 점순이의 침해는 이것뿐 이 아니다

사람들이 없으면 틈틈이 제 집 수탉을 몰고 와서 우리 수탉과 쌈을 붙여 놓는다

제 집 수탉은 썩 험상궂게 생기고

쌈이라면 홰를 치는 고로

으레 이길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툭하면 우리 수탉이 면두며 눈깔이

피로 흐드르하게 만들어 놓는다

어떤 때에는 우리 수탉이 나오지를 않으니까 요놈의 계집애가 모이를 쥐고 와서 The bitch comes in with a birdseed and says 꾀어내다가 쌈을 붙인다 Peel and stick

이렇게 되면 나도 다른 잇속을 차리지 않을 수 없었다 하루는 우리 수탉을 붙들어서

넌지시 장독께로 갔다

쌈닭에게 고추장을 먹이면

병든 황소가 살모사를 먹고 용을 쓰는 것처럼 기운이 뻗친다고 한다

장독에서 고추장 한 접시를 떠서

닭 주둥아리께로 들여 밀고 먹여 보았다 닭도 고추장에 맛을 들였는지

거스르지 않고 거의 반 접시 정도

곧잘 먹는다

그리고 먹고 바로는 용을 못쓸 테니

얼마쯤 기운이 돌도록 횃속에다 가두어두었다

밭에 두엄을 두어 짐 져내고 나서 쉴 참에 닭을 안고 밖으로 나왔다

마침 밖에는 아무도 없고

점순이만 저희 울안에서

헌옷을 뜯는지

혹은 솜을 터는지

웅크리고 앉아서 일을 할 뿐이다 나는 점순네 수탉이 노는 밭으로 가서 닭을 내려 놓고 가만히 맥을 보았다 두 닭은 여전히 엉켜붙어 쌈을 하는데 처음에는 아무 보람이 없었다

멋지게 쪼이는 바람에

우리 닭은 또 피를 흘리고

그러면서도 날갯죽지만 푸 드득 푸드득하고

올라 뛰고 뛰고 할 뿐

그럴듯하게 한번 쪼아 보지도 못한다 그러나 한번은

어쩐 일인지 용을 쓰고 펄쩍 뛰더니 발톱으로 눈을 하비고 내려오면서 면두를 쪼았다

큰닭도 여기에는 놀랐는지

뒤로 멈씰하면서 물러난다

이 기회를 타서 작은 우리 수탉이 또 날쌔게 덤벼들어 다시 면두를 쪼니까 그제서는 억세고 사나운 그 대강이 에서도 피가 흐르지 않을 수 없다

그래 알았다

고추장만 먹이면 되는구나

하고 나는 속으로 아주 쟁그러워 죽을 것 같았다 그때 뜻밖에 내가 닭쌈을 붙여 놓는 데 놀라서 울타리 밖으로 내다보고 섰던 점순이도 입맛이 쓴지 눈쌀을 찌푸렸다

나는 두 손으로 볼기짝을 두드리며 연방 잘한다 잘한다하고 머리끝까지 신이 뻐쳤었다 그러나 얼마 되지 않아서 난 넋이 풀려 기둥같이 묵묵히 서 있게 되었다 왜냐하면 큰 닭이 한번 쪼인 앙갚음으로 호들갑스레 연거푸 쪼는 서슬에 우리 수탉은 찔끔도 못하고 막 곯는다 이번엔 점순이가 깔깔거리면서 되도록 이쪽에서 많이 들으라고 웃는 것이다 나는 보다 못해 덤벼들어서

우리 수탉을 붙들어 가지고 집으로 들어왔다 고추장을 좀더 먹였더라면 좋았을 걸 너무 급하게 쌈을 붙인 것이 퍽 후회가 난다 장독께로 돌아와서 다시 턱밑에 고추장을 들이댔다 흥분으로 말미암아 그런지

도무지 먹질 않는다

나는 할 수 없이 닭을 반듯이 눕히고 그 입에다 궐련 물부리를 물렸다 그리고 고추장 물을 타서

그 구멍 으로 조금씩 들여 부었다

닭은 좀 괴로운지 킥킥하고 재채기를 하지만 난 당장의 괴로움은

매일 같이 피를 흘리는 데 댈 게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한 두어 종지 가량 고추장 물을 먹이고 나서 난 고만 풀이 죽었다

싱싱하던 닭이 왜 그런지 고개를 살며시 뒤틀고는 손아귀에서 뻐드러지는 것이 아닌가 아버지가 볼까 봐 얼른 홰에다 감추어 두었더니 오늘 아침에서야 겨우 정신이 든 모양 같다 그랬던 걸 오늘도 오다 보니까

또 쌈을 붙여 놓았으니

이 망할 계집애가

틀림없이 우리집에 아무도 없는 틈을 타서 몰래 들어와

홰에서 꺼내 가지고 나간 것이 분명하다

나는 다시 닭을 잡아다 가두고

그렇다고 산으로 나무를 하러 가지 않을 수 없는 형편였다

소나무 삭정이를 따며 가만히 생각해 보니 암만해도 고년의 목쟁이를 확 돌려 놓고 싶다 이번에 내려가면 망할 년 등줄기를 한번 되게 후려쳐 줘야 겠다 하고 싱둥겅둥 나무를 지고는 부리나케 내려왔다 거의 집에 다 내려와서

나는 호드기 소리를 듣고 발이 딱 멈췄다 산기슭에 널려 있는 굵은 바윗돌 틈에 노란 동백꽃이 소보록하니 깔려 있다 그 틈에 끼어 앉아 점순이가

청승맞게 호드기를 불고 있는 것이다

그보다 더 놀란 건

고 앞에서 또 푸드득 푸드득 하고 들리는 닭의 횃소리다 필연코 요년이 나를 약을 올리려고 또 닭을 집어내다가

내가 내려올 길목에다 쌈을 시켜 놓고 저는 그 앞에 앉아서 천연스레

호드기를 불고 있음이 틀림없다 난 약이 오를 대로 올라

두 눈에서 불과 함께 눈물이 퍽 쏟아졌다 나뭇지게도 벗어 놀 새 없이 그대로 내동댕이치고는 지게 막대기를 뻗치고 허둥 허둥 달려들었다 가까이 와 보니 과연 내 짐작대로

우리 수탉이 피를 흘리고 거의 빈사 지경이었다 닭도 닭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 하나 깜짝 없이 고대로 앉아서 호드기만 부는 그 꼴에 더욱 치가 떨린다

동네에서도 소문이 났지만

나도 한때는 걱실걱실히 일 잘 하고 얼굴 예쁜 계집애인 줄 알았더니 지금 보니 그 눈깔이 꼭 여우 새끼 같다

나는 대뜸 달려들어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큰 수탉을 단매로 때려 엎었다 닭은 푹 엎어진 채

다리 하나 꼼짝 못 하고 그대로 죽어 버렸다 나는 멍하니 섰다가

점순이가 매섭게 눈을 홉뜨고 달려드는 바람에 뒤로 벌렁 나자빠졌다

이놈아 너 왜 남의 닭을 때려죽이니 그럼 어때

하고 일어나다가

뭐 이 자식아 뉘 집 닭인데 하며 배를 떼미는 바람에 다시 벌렁 자빠졌다 그리고 나서 가만히 생각을 하니

분하기도 하고 무안도스럽고 또 한편으론 일을 저질렀으니

이젠 땅이 떨어지고 집도 내쫓기게 될지 모른다 나는 비슬비슬 일어나며

소맷자락으로 눈을 가리고는

얼떨결에 엉 하고 울음을 놓았다 그러나 점순이가 앞으로 다가와서

너 다음부턴 안 그럴거니

하고 물을 때 비로소 살길을 찾은 듯싶었다 나는 우선 눈물을 씻고 뭘 안 그러는지 명색도 모르지만 그래 하고 무턱대고 대답했다 다음에 또 그래 봐

내가 계속 못살게 굴 테니까

그래 그래 이젠 안 그럴거야 닭 죽은 건 염려 마

내가 안 이를 테니까

그리고 뭣에 떠다 밀렸는지

나의 어깨를 짚은 채

그대로 퍽 쓰러진다

그 바람에 내 몸뚱이도 겹쳐서 쓰러지며 한창 피어 퍼드러진 노란 동백꽃 속으로 폭 파묻혀 버렸다

알싸한 그리고 향긋한 그 냄새에 나는 땅이 꺼지는 듯

온 정신이 고만 아찔했다 너 암말 말어

그래

조금 있더니 요 아래서

점순아 점순아

이년이 바느질을 하다 말구 어딜 갔어 하고 어딜 갔다 온 듯 싶은 그 어머니가 역정이 대단히 났다

점순이가 겁을 잔뜩 집어먹고 꽃밑을 살금살금 기어서 산아래로 내려간 다음 나는 바위를 끼고 엉금엉금 기어서 산위로 치빼지 않을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