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R/ENG SUB]오디오북ㅣ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_김수현ㅣ잠잘때듣는이야기ㅣ책읽어주는라디오ㅣ책읽어주는남자ㅣ위로ㅣ보통의존재ㅣ애쓰지않고
안녕하세요. 레오의 책 읽는 밤 레오입니다.
2021년 해가 바뀌면서 나이는 한 살 먹었는데
전보다 나아진 것이 없다고 느껴진다면
오늘 제가 가지고 온 책을 소개해 드리고 싶어요.
김수현 저자의 '나로 살기로 했다'입니다. 이 책에서는 저자가 느끼는 냉담한 현실에서 어른살이를 위한 to do list를 말하고
있는데요 여기에서 어른살이라고 하는 것은
아마 어른답게 살아가는 방법을 말하는 것 같아요.
제가 지금 들고 있는 책은 100쇄 기념 스페셜 에디션인데요.
아마 뒤에 독자들의 평이 더 추가 되어 있는 버전인 것 같아요.
이만큼 베스트셀러 작품인데요.
평범하지만 아름다운 우리 보통의 존재들을 위하여
우리는 어떻게 해야 누구도 부러워 하지 않으면서
나를 인정하고 사랑하는 방법을 알게 될까요.
이 책을 읽으면서 그 방법을 찾아 볼게요.
'인생에 숫자를 지울 것' 입니다.
소제목부터 확 와 닿지 않으세요 인생에서 숫자를 지워야 된다.
우리는 참 숫자에 민감하죠.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 이렇게 질문
하는 사람도 있구요. 자 읽어보겠습니다.
인터넷에서 떠돌았던 나라별 중산층의 기준이다.
먼저 영국인데요. 옥스퍼드대에서 제시한 중산층의 조건. 영국.
페어플레이를 할 것 자신의 주장과 신념을 가질 것
나만의 독선을 지니지 말 것 약자를 두둔하고 강자에 대응할 것
불의 평등 불법에 의연히 대처할 것
네 영국 부분을 읽어보니까 좀 추상적 이긴 같긴 한데.. 음 뭐랄까요. 조금
멋있는 것 같아요. 자 다음 볼게요. 다음은 프랑스인데요.
퐁피두 대통령이 '삶의 질'에서 정한 중산층의 기준이라고 합니다.
외국어를 하나 정도 구사하여 폭넓은 세계 경험을 갖출 것 한 가지 이상의 스포츠를 즐기거나 하나 이상의 악기를 다룰 것
남들과 다른 맛을 낼 수 있는 별미 하나 정도는 만들어 손님을 대접할 것 사회 봉사단체에 참여하여 활동할 것
남의 아이를 내 아이처럼 꾸짖을 수 있을 것
굉장히 세 번째 부분이 인상적인데요. 남들과 다른 맛을 낼 수 있는
별미 하나 정도는 만들어서 손님을 대접한다. 음.. 요리에 약한 저로서는
굉장히 갑자기 배워보고 싶다는 느낌이 드네요.
자 다음 드디어 대한민국입니다. 연봉 정보 사이트 직장인 대상 설문
에서 나온 결과라고 하는데요. 좀 깜짝 놀라실 거예요.
부채 없는 아파트 평수 30평 월 급여 500만 원 이상
자동차는 2000cc급 중형차 예금액 잔고 1억 원 이상
해외여행은 1년에 몇 번
정말 숨 막히는 리스트인 것 같아요.
영국 프랑스와 비교했을 때 우리나라 기준에 빠짐없이 등장하는 것.
그건 바로 숫자다.
한번은 인터넷 서핑을 하다 나의 결혼 가능 점수를 알려준다는
배너 광고를 본 적이 있다. 사주 사이트인가 했는데 그건 결혼정보회사
사이트였다. 나이 키 몸무게 자산 액수 연봉
등 수많은 숫자를 입력하고 나면 소고기처럼 등급을 매겨 나의 결혼
가능 점수도 알려준다는 거였다.
이게 진정한 의미의 한국형 알파 고가 아닐까 싶었다.
소고기 등급처럼 매긴다는 저자의 풍자가 굉장히 와 닿습니다.
우리는 무엇이든 숫자로 책정하는 것을 너무 좋아한 나머지
나 자신의 값어치를 매기는 일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그렇게 세워진 숫자의 삶 속에서 개인은 이력서에 쓸 숫자들을 위해
분투하고 집의 평수로 관계에 금을 긋고
파업이나 집회가 있으면 어떤 가치 의 충돌인지가 아니라
얼마의 돈을 손해보고 있는지를 헤드라인으로 읽는다.
그야말로 가치는 잊은 채 서로의 값어치만 묻는 숫자의 삶이다.
그런데 숫자라는 건 언제나 비교하기 쉽고 서열을 매기기
용이하다는 특징이 있다. 예를 들어 세모와 동그라미를 비교하여
서열을 매길 수는 없지만 1과 2를 비교하여 서열을 매기는건
누구나 할 수 있다. 결국 숫자의 삶이란
쉴 새 없이 비교되며 서열이 매겨지는 삶인 것이다. 그 안에서 우리는 낮은 값어치가 매겨질까 안절부절
못하고 자신의 위치와 서열을 끊임없이
확인한다.
그렇다면 삶의 모든 것을 숫자로 측정할 수 있을까
아이큐가 지혜를 측정할 수 없고 친구의 숫자가 관계의 깊이를 증명
할 수 없으며 집의 평수가 가족의 화목함을 보장
할 수 없고 연봉이 그 사람의 인격을 대변할
수는 없다. 진정한 가치는 숫자로 측정되지
않는다. 그러니 만약 당신이 우월한 존재가 아닌
비교할 수 없는 존재가 되고 싶다면
가장 먼저 삶에서 숫자를 지워야 할 것이다.
삶의 가장 중요한 것은 숫자가 담을 수 없는 것들에 있다.
어느 날 문득 나 자신이 초라하고 무력하게 느껴졌다.
애매한 나이에 애매한 경력과 애매한 실력. 나는 제대로 갖춘 것도 보장된 것도 없는 애매한 사람이었다.
어쩌다 이렇게 애매한 어른으로 자라버렸을까.
그때 나는 내가 뭘 잘못했을까 생각했다.
전공 선택을 잘못했던 걸까? 대학교 때 조금 더 열심히 하지
않은 게 잘못이었을까?
일하며 더 버티지 못한 게 잘못 이었을까?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잘못이 없었다.
물론 내 인생에는 약간의 실수와 방황과 오류가 있었지만
그건 삶에 있을 수 있는 시행착오가 아닌가.
나는 학창 시절 선생님 말에 이유가 궁금했듯이
아무 잘못 없는 개인이 왜 초라함을 느껴야 하는지 알고 싶었다.
그때의 나는 많은 책을 읽었는데 취미의 책 읽기가 아니라 정말 궁금해서 읽었다.
나는 왜 초라해졌는가에 대하여 나는 왜 부족한가에 대하여 나는 왜 아무것도 아닌가에 대하여
저자가 이렇게 많은 책을 읽었던 것을 통해서 우리가 그 생각을
전달받을 수 있을 것 같아요.
보통의 존재로 충분히 행복할 것
어린 시절 차를 타면 언제나 해가 나를 따라온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언젠가 세일러문 정도의 마법소녀가 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다.
물론 성인이 되어서도 이런 생각을 계속 한다면 중증의 과대망상 판정을 받기 딱
좋을 것이다. 그래도 나이를 먹으면
악의 무리로부터 세상을 구하는 영웅은 아닐지라도
어딘가 특별한 어른이 되어있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현실의 나는 평범한 어른 으로 자라났다.
화려한 삶도 아니며 무한의 자유를 누리지도 않는다.
여전히 소고기는 마음껏 사 먹기 어렵고
좁은 생활 반경 속에서 멋없는 일상은 반복된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평범한 어른 중의 한 사람이 되었다는
사실을 깨닫는 지점 어린 시절 내가 품었던 이상을 떠나
보내는 지점 어른의 사춘기는 그 지점에서 오는 게 아닐까.
물론 그 순간이 슬프고 씁쓸하기는 하다.
하지만 어린 시절의 환상과 기대감 에서 벗어나
특별하지 않은 보통의 존재로서 자신의 삶을 꾸리는 것
어른의 숙제란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앞으로도 세일러문이 돼서 지구를 구할 일도
소르본 대학의 교수가 될 일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원하는 건 나의 동창들이 내 소식을 듣고 배가 아파 복통을 일으키는 것도 아니고
친척들이 가문의 영광이라며 나를 우러러보는 일도 아니다.
대신 내겐 쓰고 싶은 글이 있고 조금 더 잘 해보고 싶은 그림과
디자인 일이 있다. 가족과 시간을 더 보내고 싶고
수영을 배워서 바다에서 마음껏 시간을 보내고 싶고
다양한 관점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 며 나의 세계를 확장하고 싶다.
내 삶에는 많은 제약이 있고 보장된 것은 없지만
특별하지 않은 보통의 삶에도 허락된 많은 것들이 있다.
어른의 사춘기는 자신의 평범함을 인정하고
그 안에서 자신의 삶을 채울 수 있을 때 종결되는 것이며
우리는 그 순간 진짜 어른이 될 것이다.
성장판이 닫히고 상상력이 줄어든 것만으로 어른이 된 것은 아닌 것 같아요.
우리가 진짜 어른이 되는 순간은 저자는 이렇게 말하고 있네요. 너무 인상적이어서 다시 한 번 읽어 볼게요.
어른의 사춘기는 자신의 평범함 을 인정하고 그 안에서 자신의 삶을 채울 수
있을 때 종결되는 것이며
우리는 그 순간 진짜 어른이 될 것이다.
정말 감동적이에요.
초등학교 2학년 때 장래희망을 말하는 시간이 있었다.
나는 퀴리 부인에 대해 어디선가 주워듣고는
퀴리 부인과 같은 여성 과학자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실상 나는 정자와 난자 시절부터 과학자와는 거리가 멀게 태어난
사람이지만 초등학교 2학년의 나는 그런 공수표를
남발해도 괜찮았다. 아홉 살짜리 꼬마가 구체적으로
물류회사에서 구매를 담당하고 싶다거나
중견회사에서 회계 관리를 하고 싶다고 하는 게 더 이상한 일이 아닌가.
그런데 문제는 나이를 먹어서도 우리의 꿈이
무엇을 할 것인가가 아니라 무엇이 될 것인가에 머물러 있을 때 발생한다.
예전에 한 피부과 의사와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그는 서울에 있는 의대를 나와 강남에서 피부과 전문의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대화를 나누는 동안 의사가 아닌 한 개인으로서
그에게 어떤 개성이나 철학도 느끼지 못했고
오히려 성장하지 못한 아이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문득 그에게 지금 행복하냐는 질문을 했다.
그러자 그는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아니." 라고 답했다.
남들이 보기엔 그럴듯한 직업을 가졌다고 할 수 있겠지만
더 좋은 학벌에 더 큰 병원에서 일하지 못하는 것을 아쉬워할 뿐이었다.
많은 책에서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직업을 가진 이들이
실제론 행복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더니
그가 그런 사람이었다.
열심히 공부하는 것에 매달려 청소년기를 보냈던 그는
의대에 갈 수 있어서 의대에 갔다고 한다.
다른 생각을 할 여유는 없었고 대학에 가서도 빡빡한 의과 공부와
인턴을 거쳐 지금에 이르렀다.
그런데 그는 왜 행복하지 않을까? 그는 사회적 지위와 경제적 안정
주변 사람들의 인정을 좇으며 자신의 내면을 바라보지 못했고
그것은 그의 내면을 공허하게 만들었다.
그런 그에게 중요했던 건 의사가 되는 것이었다.
자신의 공허한 내면과 희미한 정체성을 채우기 위해 의사라는 직업적 정체성에 기댄 것이다.
그런데 그는 여전히 행복하지 않았다. 의사가 되면 해결될 거라 여겼지만
더 큰 병원과 더 높은 연봉과 더 좋은 배경에 붙잡혀 있을 뿐 텅 빈 내면은 어떤 외적 가치로도 채워질 수 없었다.
물론 한 개인에게 직업은 단순히 돈벌이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하지만 직업이란 보다 자기다워지는 일이지
없는 자아를 창조하는 일이 아니다. 시작이 되는 눈 뭉치가 있어야
눈덩이를 굴릴 수 있다.
내면은 돌보지 못한 채 외면의 가치만을 좇는 한
언제나 비교 속에서 살 뿐 결코 진짜 행복과 자존에는 닿을 수 없으니.
우리에게 절실한 건 우리를 증명할 명함이 아니라
누구에게도 증명할 필요 없는 나 자신이 되는 것이다.
한동안 별 일 아닌 일에도 걱정을 반복한 적이 있다.
미리 걱정을 해두면 막상 문제가 벌어졌을 때
안도감이 들어서 그랬다.
그런데 일어나지 않은 일을 앞서 걱정하는 건
전쟁이 일어날까 두려워 땅굴에서 살거나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당장 쓰지 않을 물건을 대량 구매
해놓는 것과 같다.
삶의 낭비이자 비합리적인 일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 이 낭비를 줄일 수 있을까.
걱정은 대체로 비합리적이고 지나치게 부정적인 생각에서 촉발된다.
그렇기에 과장된 걱정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막장 드라마 급의 개연성을 가진 왜곡된 생각을
바로잡는 것에서 시작된다.
당신의 걱정을 들여다보자. 일어날 확률이 낮은 최악의 경우를
떠올리고 있지는 않은가? 겨우 기침을 단서로 폐병을 염려
하고 있지는 않은가? 그 날조된 미래에 붙잡혀 지금을
망치지 말자.
당신의 괴로움은 당신이 쓴 엉터리 각본 때문이다.
우리가 걱정하고 있는 것을 천천히 들여다 볼 필요가 있을 것 같아요.
저도 어렸을 때부터 초등학교에 가기 전에도 걱정을 했고 구구단을 외우기 전에도 걱정을
했던 것 같아요. 여러분도 사소한 일 그리고 아직
발생하지 않은 일에 대해서 걱정을 해본 적 있으세요?
우리는 누구나 작고 큰 걱정을 하기 마련입니다.
네 계속 읽어볼게요.
결혼은? 취업은? 연애는? 저축은? 사람들은 이런 질문이 불편하다고 착각한다.
사실은 질문이 불편한 게 아니다. 그 질문 뒤에 나에 대해 내리는 타인의 판단이 불편한 거다.
자신들의 방식과 다르다는 이유로 나를 잘못된 사람으로 만드는 시선과 판단.
자신에 대해서도 잘 모르면서
타인에 대해선 심리학자이자 프로파일러 이자
가장 중립적 비평가로 둔갑하여 너무나 쉽게 판단한다.
그러나 누군가 이차방정식을 이해 하지 못한다면
문제는 이차방정식이 아닌 그 사람의 이해력 부족에 있듯이
누군가 우리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것 역시 우리의 문제가 아니라 상대의 이해력 문제일지 모른다.
그러니 그들에게 쩔쩔 맬 필요도 없고
우리를 증명하려 애쓸 필요도 없다.
우리는 편협한 이들에게 이해 받으려 사는 게 아니며
당신의 삶은 당신의 것이다.
3인칭 시점을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여기는 오만은
언제나 진실을 오독하기 마련이다.
'모두에게 정중하되 누구에게도 쩔쩔매지 않기 위하여' 라고 하는
저자의 '애쓰지 않고 편안하게' 에서의 문구가 떠오르네요. 우리는 편협한 이들에게 이해 받으려 사는 것이 아닙니다.
나의 삶은 나의 것이죠. 네 계속 볼게요.
우리는 종종 마음에 두고 있는 상대의 심중을 해석해
그린라이트 여부를 확인하고 싶어한다.
그런데 상대에게 연락하지 않는다 라는 한 가지 행동조차
첫째 손가락이 부러졌다. 둘째 아웃 오브 안중 이다.
셋째 중요한 일을 앞두고 매우 바쁘다.
넷째 먼저 연락이 오길 기다리고 있다.
등의 성향이나 상황에 따라 다른 이유가 있을 수 있다.
한 가지 경우로 판단하기엔 언제나 사람 바이 사람, 케이스 바이 케이스인거다.
그렇기에 어떤 연애 고수의 조언도
타로 카드 아줌마의 호언장담도
상대의 진심을 해석할 순 없다. 그럼에도 그 사람의 그린라이트
여부를 알고 싶다면 가장 적절한 질문은
'그 사람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가 아니라
'나는 그 사람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다.
그 질문의 대답으로 '나는 그 사람이 좋다' 라는 결론에
도달한다면 그것이 그 사람에게
전진해야 할 진짜 그린라이트가 될 것이다.
사랑도 되면 한다 쯤의 생각으로 안전거리 확보에만 열을 올린다면
겁쟁이에게 사랑은 너무 과분하다.
네 이 부분을 읽고 많은 생각이 들었는데요.
우리는 어떤 사랑이 다가올 때 그 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재보고 가늠하지 않나요
겁쟁이에게 사랑은 과분하다는 말이 와 닿습니다.
자 다음 계속 읽어볼게요.
내 첫 여행은 한 달 일정의 배낭여행이었는데
혼자 하는 여행에 불안했던 나는
짐들을 잔뜩 챙겼다. 책만 세 권에 고데기도 두 종류를 챙겼으니
짐을 쌀 때 미쳤던 게 틀림없다.
두 개의 가방을 낑낑 지고 다녔던 나는
여행이 일주일 남았을 땐 완전히 지쳐버렸다.
모든 상황이 지긋지긋했고 무거운 짐을 지고 다니는 나 자신에게
신물이 났다. 가방을 풀고 필요한 물건만 남긴 뒤
짐 절반은 쓰레기통에 버려버렸다.
그렇게 절반의 짐을 버리며 불편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들었지만 여행의 발걸음은 한결 가벼워졌다.
여행 중에 만났던 지인은 1년 반 넘게 여행 중이었는데
그가 가진 짐이라고는 배낭 하나가 전부였다.
그는 최소한의 짐만을 챙겼고 필요한 것이 있으면 그때그때 구입했다. 예를 들면 입고 있는 옷이 낡으면
현지 시장에서 구입하는 식이었는데
그 자체로 여행의 즐거움이라고 말했다.
우리는 삶이 불안하다며 너무 많은 짐을 챙기지만 사실 그렇게 많은 짐이 필요하진 않다.
필요할 때 충당할 수도 있고 약간의 불편함을 감수하는 쪽이
이득일 수도 있다.
삶이란 오랜 여정이다. 최대한 가볍게 살아가야 지치지 않는다.
그러니 삶을 조금 더 가볍게 하고 싶다면
불안한 마음에 버리지 못했던 것들을 다시 한 번 마주하고
그것들을 덜어내는 용기를 갖자.
여행 내내 한 번도 꺼내지 않았던 짐과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대한 걱정과
삶을 무겁게 만드는 불필요한 욕구와
잘못한 것 없는 부끄러움과 지치게만 하는 과잉된 관계.
이 모든 것에 대한 최후통첩. 그 포기가 우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
자유롭게 살고 싶거든 없어도 살 수 있는 것을 멀리하라.
- 톨스토이
이제 이 책을 읽으며 나 자신에게 관심을 기울일 준비가 되지 않으셨나요?
284페이지의 저자의 메시지를 전하며 오늘 영상을 마쳐볼게요.
냉담한 세상에서 인간성을 잃지 않고 살아가기 위하여
우리는 자기 자신에게 조금 더 주의를 기울여야 하고
부당함과 모욕과 불안에 당당하게 맞서야 한다.
그리고 나와 타인을 위해 더 나은 사회를 위해 자신의 몫을 해야 한다.
보통의 존재가 내가 아닌 것을 시기하지 않으며
차가운 시선을 견디고 있는 그대로의 나로서 살아가기 위하여
당신이 조금은 자유로워졌기를 바란다.
우리에게 건투를 빈다.
우리에게 건투를 빈다는 저자의 메시지가 너무나도 가슴을 울립니다.
오늘 레오의 책 읽는 밤과 함께 해주셨는데요
여러분께서도 있는 그대로 나로 살기로 한 하루가 되길 바라면서
지금까지 김수현 지음의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 였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