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의 나날, 스물 다섯 번째-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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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의 나날, 스물 다섯 번째
랭정을 되찾아 핸더슨이 텔레비죤으로 남조선 정세를 보게 해준 의도가 무엇일까를 곰곰 궁리해 보았다. 남조선에 가면 너는 죽게 될 것이니 빨리 사실대로 말하라고 꾸민 작간이 틀림없었다. 그가 나에게 텔레비를 보여준 것은 의도적이고 계획적인 위협의 일종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네가 그래도 난 어림없어' 나는 핸더슨의 작간을 파악하고 겁먹은 나를 스스로 달랬다. 마리아가 또 녹색 단복 한 벌을 사들고 나타났다. 그녀는 올 적마다 옷이나 과자 등 선물을 들고 오는데 나는 그것에 현혹되는 내 마음을 더욱 경계해야 했다. 그들의 회유작간인 줄 뻔히 알면서도 마음의 흔들림은 걷잡을 수 없이 심했다. 단복을 받아드는 순간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마음의 동요를 일으켰다.
북조선에서는 옷 한 벌을 구하려면 여간 힘든 게 아니였다. 돈이 있더라도 상점에 아예 물건이 잘 나오지 않아 살 수가 없었다. 좀 괜찮다 하는 옷은 외화상점 판매원이나 외국에 다녀온 사람들과의 뒷거래를 통해 구해 입었다. 특히 단복은 북에서 인기가 높은 옷이였다. 단복은 운동복이지만 집에 있을 때 간소복으로도 입을 수 있고 외출할 때도 입을 수 있어서 북조선 사람이면 누구나 갖고 싶어 한다. 단복을 한 벌 구하면 동무들에게는 물론 직장에까지 입고 나와서 자랑을 하는 옷이며 이것을 보는 사람들은 아주 부러워했다. 그러나 단복을 구하기란 하늘에 별 따기처럼 힘들었다. 면으로 된 단복은 잘 구겨지고 힘이 없어서 나일론으로 된 단복이 더욱 인기가 있다. 단복을 구하려면 각종 체육단에 소속되어 있는 운동선수나 지도성원에게 개별적으로 부탁하여 웃돈을 주고 구입하는 길밖에 없었다.
일반 주민들 사이에서 단복이 이와 같이 선호의 대상이 되자 1985년경에는 외화상점에서 ‘바꾼돈' 13원씩에 팔았다. 또 1987년도경에는 4.15 김일성 생일 선물로 중학생 이상 학생들에게 단복 한 벌에 30원씩 내고 살 수 있게 해주었다. 그것을 사기 위해서 사람들은 눈이 시뻘개져서 덤볐다. 기회를 놓치면 또 언제나 그런 기회가 있을지 기약이 없기 때문이였다.
우리 집도 막내 동생 범수를 위해서 단복을 구입한 적이 있었다. 어린 나이에 피부암으로 죽은 범수는 단복을 좋아했다. 5년간 피부암에 걸려 고생하다가 15살 나던 1987년에 세상을 떠났다. 그해가 마침 단복을 구입할 수 있는 해여서 어머니는 범수가 얼마 살지 못할 것을 눈치 채고 범수를 기쁘게 해주기 위해 단복을 구입했던 것이다. 입맛대로 치수를 골라 살 수도 없는 립장이여서 어머니가 사온 단복은 범수에게는 큰 단복이였지만 범수가 얼마나 좋아했는지 모른다. 단복을 머리맡에 놓아 주자 가끔 정신이 들 때마다 그것을 만져보면서 간병하는 어머니를 향해 만족한 웃음을 짓곤 했다. 결국 범수는 그 단복을 한 번 입어 보지도 못하고 손에 쥔 채 눈을 감았다.
북조선에서 이렇게 귀하게 생각해 오던 단복을 마리아로부터 선물받자 나는 불길한 예감마저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이제 곧 모든 것이 끝날 모양이구나 하는 예감이였다. 곧 죽게 될 나에게 이 단복이 무슨 소용인가. 범수처럼 좋아하면서 손에 쥐고 죽으란 말인가. 나는 단복을 받고 착잡한 마음이 들어 한참동안을 심란해 했다. 불현듯 살고 싶다는 현실적이고도 절실한 심정으로 흔들리고 있는 마음을 진정시키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이 단복은 내가 바레인에서 인도되여 처음 서울 땅을 밟을 때와 1988년 1월 15, 남조선 려객기 KAL 858기를 폭파한 장본인이라고 밝히기 위해 처음 사람들 앞에 나섰을 때 입었던 바로 그 옷이다.
단복을 받고 혼란에 빠져 우울해 하는 나를 보며 마리아는 무슨 영문인지 몰라 자꾸 쳐다보았다. 마리아가 돌아가고 오후 2시 쯤 테리라는 영국인 수사관이 오꾸보를 데려왔다. 테리는 바레인에서 고용되어 수사기관에서 간부로 복무하고 있는 중년 남자였다.
나레이션 : 대남공작원 김현희의 고백, 랑독에 박수현이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