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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희의 고백 (Kim Hyun-hee's confession), 눈물의 고백, 서른 여덟 번째-206

눈물의 고백, 서른 여덟 번째-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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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의 고백, 서른 여덟 번째

나는 그 말을 되새기며 마음속으로 굳은 결심을 다져야 했다.

‘그렇다. 영생불멸의 정치적 생명을 지키자. 조국의 자랑스러운 딸이 되자. 8년 동안의 그 꿈 많던 시절을 집을 떠나 인고의 나날로 보낸 이유가 무엇인가? 조선 사람으로서 같은 피를 갖고 민족애를 가진 사람이면 누구나 떨쳐 나서서 이룩해야 할 민족적 사명이자 염원인 민족통일을 위해 이 한몸을 바치는 거다.' 이런 결심을 굳히고 나니 용기가 샘솟고 마음도 편안해졌다. 그때 공항 안내 방송에서 로마행 비행기가 이륙한다는 방송이 흘러 나왔다. 나는 다시 무서운 현실로 돌아왔다. 이제야말로 단 한 가닥의 희망도 모두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이제 공항 홀 안에는 우리 두 사람만이 남아 절망감에 떨고 있었다. 이윽고 여권을 회수해 갔던 동양인이 굳은 표정으로 다가왔다.

“나는 바레인 주재 일본대사관 직원입니다. 이 여권 중 하찌야 마유미씨의 여권은 위조라는 것이 판명되었기 때문에 하찌야 신이찌 씨는 다른 곳으로 여행 할 수 있지만 마유미 씨는 일본 비행기로 일본에 돌아가서 일단 조사를....”

이 말을 듣는 순간 눈앞이 캄캄해지고 귀가 멍멍해져 그 뒷말은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이 말은 곧 자살선고나 마찬가지였다. 김 선생도 이미 최후를 결심한 듯 나를 타일렀다.

“마유미, 마음을 굳게 먹고 앰플을 깨물어야 해. 우리 정체가 드러났으니 살려고 애쓰다나면 오히려 더욱 비참하게 죽게 될 테니까. 나는 이 나이에 죽어도 한이 없지만.... 정말,,,,미안하구만...”

이 노인도 속으로 울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어떤 어려운 일에 부딪쳐도 침착하기만 하더니 말까지 더듬으며 제대로 이어가질 못하고 있었다. 나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할 때는 그의 목소리가 심하게 떨리기까지 했다. 나 역시 흐르는 눈물 때문에 말을 할 수가 없어 머리만 끄덕여 결심을 알렸다. 한편으로는 그처럼 하늘같이 믿고 있던 김 선생 역시 혁명전사이기 이전에 결국 하나의 약한 인간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고 약간의 충격을 받았다. 대선배의 혁명전사로서가 아닌 인간 김승일로서의 모습을 처음 대하는 셈이었다. 그의 그런 모습이 더욱 가슴을 아프게 했고 서럽게 만들었다.

눈물이 가득 고여 있는 눈에 어른거리는 것은 엄마의 얼굴이었다. 2~3년에 한번 씩 이틀 휴가를 얻어 집에 가면 딸의 건강한 모습에 기뻐하시다가도 초대소로 돌아가는 날은 아침부터 어두운 수심이 가득하던 엄마의 얼굴. 그때는 이런 엄마의 심정은 미처 헤아리지 못하고 당에 선발된 자부심과 긍지로 들뜬 기분이 되어 지도원을 따라나섰었지. 나는 결국 엄마의 가슴에 대못을 박은 딸이 되었다. 20여성상 딸을 고이 키우시느라 인생을 다 바치다시피 하신 엄마와 영원히 이별할 시간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 생각을 하니 삶과 죽음이 종이 한 장 차이로 가깝다는 허망함이 뼈저리게 느껴졌다.

‘엄마, 용서하세요. 보고 싶어요. 그리워요. 그리고 엄마를 사랑해요. 부모보다 먼저 가는 불효막심한 딸을 미워하지 마세요. 죽는 것이 우리 모두를 덜 불행하게 하는 길임을 이해해주세요, 엄마!' 나는 마음속으로 부모님께 속죄를 드렸다. 마음의 정리와 준비는 되었다. 만약 죽지 못한

다면 나는 온갖 치욕과 고통을 다 겪다가 처참하게 죽게 될 것이고 가족들은 배신자의 가족으로 낙인찍혀 나보다 몇 배 더 큰 고통과 멸시를 당할 것이다. 자살하는 데에 있어 호의 착오도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옆에서 줄담배만 피우고 있는 김 선생에게 한 가지 당부를 했다.

“할아버지, 약을 먹을 순간이 오면 신호해서 같이 행동해야 해요. 제가 먼저 깨물테니 확실히 죽었는가를 확인하신 후에....” 김 선생은 깊은 상념에 빠져 내 말을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건성으로 고개만 끄덕거렸다.

나레이션 :대남공작원 김현희의 고백, 랑독에 박수현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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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의 고백, 서른 여덟 번째-206 Confession of Tears, Thirty-Eighth - 206 Исповедь слез, тридцать восьмая - 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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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의 고백, 서른 여덟 번째

나는 그 말을 되새기며 마음속으로 굳은 결심을 다져야 했다.

‘그렇다. 영생불멸의 정치적 생명을 지키자. 조국의 자랑스러운 딸이 되자. 8년 동안의 그 꿈 많던 시절을 집을 떠나 인고의 나날로 보낸 이유가 무엇인가? 조선 사람으로서 같은 피를 갖고 민족애를 가진 사람이면 누구나 떨쳐 나서서 이룩해야 할 민족적 사명이자 염원인 민족통일을 위해 이 한몸을 바치는 거다.' 이런 결심을 굳히고 나니 용기가 샘솟고 마음도 편안해졌다. 그때 공항 안내 방송에서 로마행 비행기가 이륙한다는 방송이 흘러 나왔다. 나는 다시 무서운 현실로 돌아왔다. 이제야말로 단 한 가닥의 희망도 모두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이제 공항 홀 안에는 우리 두 사람만이 남아 절망감에 떨고 있었다. 이윽고 여권을 회수해 갔던 동양인이 굳은 표정으로 다가왔다.

“나는 바레인 주재 일본대사관 직원입니다. 이 여권 중 하찌야 마유미씨의 여권은 위조라는 것이 판명되었기 때문에 하찌야 신이찌 씨는 다른 곳으로 여행 할 수 있지만 마유미 씨는 일본 비행기로 일본에 돌아가서 일단 조사를....”

이 말을 듣는 순간 눈앞이 캄캄해지고 귀가 멍멍해져 그 뒷말은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이 말은 곧 자살선고나 마찬가지였다. 김 선생도 이미 최후를 결심한 듯 나를 타일렀다.

“마유미, 마음을 굳게 먹고 앰플을 깨물어야 해. 우리 정체가 드러났으니 살려고 애쓰다나면 오히려 더욱 비참하게 죽게 될 테니까. 나는 이 나이에 죽어도 한이 없지만.... 정말,,,,미안하구만...”

이 노인도 속으로 울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어떤 어려운 일에 부딪쳐도 침착하기만 하더니 말까지 더듬으며 제대로 이어가질 못하고 있었다. 나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할 때는 그의 목소리가 심하게 떨리기까지 했다. 나 역시 흐르는 눈물 때문에 말을 할 수가 없어 머리만 끄덕여 결심을 알렸다. 한편으로는 그처럼 하늘같이 믿고 있던 김 선생 역시 혁명전사이기 이전에 결국 하나의 약한 인간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고 약간의 충격을 받았다. 대선배의 혁명전사로서가 아닌 인간 김승일로서의 모습을 처음 대하는 셈이었다. 그의 그런 모습이 더욱 가슴을 아프게 했고 서럽게 만들었다.

눈물이 가득 고여 있는 눈에 어른거리는 것은 엄마의 얼굴이었다. 2~3년에 한번 씩 이틀 휴가를 얻어 집에 가면 딸의 건강한 모습에 기뻐하시다가도 초대소로 돌아가는 날은 아침부터 어두운 수심이 가득하던 엄마의 얼굴. 그때는 이런 엄마의 심정은 미처 헤아리지 못하고 당에 선발된 자부심과 긍지로 들뜬 기분이 되어 지도원을 따라나섰었지. 나는 결국 엄마의 가슴에 대못을 박은 딸이 되었다. 20여성상 딸을 고이 키우시느라 인생을 다 바치다시피 하신 엄마와 영원히 이별할 시간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 생각을 하니 삶과 죽음이 종이 한 장 차이로 가깝다는 허망함이 뼈저리게 느껴졌다.

‘엄마, 용서하세요. 보고 싶어요. 그리워요. 그리고 엄마를 사랑해요. 부모보다 먼저 가는 불효막심한 딸을 미워하지 마세요. 죽는 것이 우리 모두를 덜 불행하게 하는 길임을 이해해주세요, 엄마!' 나는 마음속으로 부모님께 속죄를 드렸다. 마음의 정리와 준비는 되었다. 만약 죽지 못한

다면 나는 온갖 치욕과 고통을 다 겪다가 처참하게 죽게 될 것이고 가족들은 배신자의 가족으로 낙인찍혀 나보다 몇 배 더 큰 고통과 멸시를 당할 것이다. 자살하는 데에 있어 호의 착오도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옆에서 줄담배만 피우고 있는 김 선생에게 한 가지 당부를 했다.

“할아버지, 약을 먹을 순간이 오면 신호해서 같이 행동해야 해요. 제가 먼저 깨물테니 확실히 죽었는가를 확인하신 후에....” 김 선생은 깊은 상념에 빠져 내 말을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건성으로 고개만 끄덕거렸다.

나레이션 :대남공작원 김현희의 고백, 랑독에 박수현이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