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sode 40 - 이기호 "원주통신" - Part 3
그러니까 그건 지금으로 부터 정확히 팔년 전 겨울에 있었던 일이었다. 팔년전이라면 내가 대학을 졸업한 후, 거의 일년 넘게 방바닥과 혼연일체, 이심전심의 심정으로 살아가고 있던, 그런 시절이었다. 뭐 이유야 말 안 해도 번하지 않겠는가. 삼류대학을 그것도 아슬아슬한 성적으로, 토익성적이나 운전면허증도 없이, 유학경력이나 인턴사원 경력하나 없이, 그렇게 배째라 식으로 졸업을 했으니, '그래. 너 참 잘했구나. 여기 니 친구 방바닥하고 서로 인사 나누렴. 저런, 방바닥이 어깨가 없네. 그럼 니가 방바닥에게 어깨동무를 해주고. 자, 치즈. '하는 꼴이 되는 것이었다. 그 시간이 한달이 가고 두달이 가고, 세달이 지나더니 어느새 일년이, 거기에 또 반년이 더해진 것이었다. 물론 그 기간동안 내가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았다는 말은 아니다. 나도 이력서도 넣어보고 소위말하는 '압박면접'이라는 것도 딱 한번 본적이 있긴 있었다. 하지만 면접관이 나에게 한 질문이라는 것이, '한라산을 서울로 옮기는 방법' 이었다. 마음 같아서야, '왜 한라산을 니들 마음대로 서울로 옮기고 난리냐. 난 제주도에 가본 적도 없다.' 하고 소리펴 주고 싶었지만, 정작 내 입에서 나온 답변이라는 것이, '그러니까, 저기, 저... 서울에 있는 북한산을 한라산으로 바꾸고, 저기...그 뭐냐...제주도에 있는 한라산의 이름을 북한산으로 바꾸는 겁니다.' 였다. 결과는 당연히 탈락. 그렇게 오랜기간 집안에서만 머물다보니, 나도 나였지만, 그런 나를 바라보는 부모님의 속이라는 것도 참. 말하지 않아도 나도 잘 알고 있었다. 그렇게 꼭 길고 낮은 한숨을 듀엣으로 내쉬지 않아도, 들릴락 말락, 그래도 다 들리게, '저거, 저거, 언제 사람구실 제대로 하려나. '하지 않아도, 나도 부모님께 충분히 미안하고 죄송한 마음을 갖고있었다. 그러니까 나도 분명 사람이었어니까. 정말 방바닥은 아니었으니까.
일년정도 지나고 난 뒤 부터는 방바닥에 누워 전에 없이 많은 책들을 읽기도 했다. 거실 장식장에 말 그대로 장식용으로 꽂혀있던 톨스토이 전집과 전후세계문학걸작선과 노벨문학상 전집 따위의 책들이 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던 것이다. 아, 그것에 대해선 약간의 부연설명이 필요할 듯하다. 어느 날인가 아버지가 거실에 있던 텔레비전을, 당시 내 유일한 말벗이었던 삼십이 인치 브라운관 텔레비전을, 내겐 한마디 상의 없이 그냥 안방으로 옮겨버린 것이었다. 그러니 자연, 텔레비전 바로 뒤에 있던 장식장이 눈에 들어올 수 밖에. 시간은 많고, 할 일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었던 나는 그 책들을 한권 한권 읽어나갔다. 눈으로 읽다가 지치면 초등학교 일학년 아이처럼 소리내어 한문장 한문장 읽어나가기도 했다. 그것 이외에 입 밖으로 말을 꺼내놓을 일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내 방 창문이 희부연히 밝아져 올 때 까지, 턱 근육이 뻣뻣해져 올 때까지, 큰 소리로 책을 읽고 또 읽었다. 종종 내 책읽는 소리에 잠을 설친 어머니가 내 방을 들여다보기도 했다. 어머니는 아무 말 없이 한숨을 깊게 내쉬고 다시 안방으로 돌아가곤 했다. 그러지 않으면 당장 말을 읽어버리기라도 할 것 처럼 무슨 오기를 부리듯 내가 나에게 말을 걸고 또 내가 나에게 답을 해 주었다. 왜 그랬는지 잘 모르겠지만 그땐 그렇게 밖에 할 수 없었다. 그것이 내 독서 법이었다. 그런 와중에 그 친구에게서 전화가 온 것이었다. 나와 중학교 동창이었던 용구라는 친구였다. 싸움도 잘 하고, 당구도 잘 치고, 담배도 잘 피우던, 입술도 두껍고 주먹도 두꺼웠던 용구. 사실 나는 처음 전화를 받고 조금 놀랐다. 용구와 나는 중학교 때는 어땠는지는 몰라도, 그 뒤로는 거의 연락이 없었던 사이였기 때문이었다. 고등학교도 서로 다른 곳으로 갔고, 사는 동네도 달랐기 때문에 그 이후론 거의 만날 기회가, 아예 단 한번도 만났던 기억이 없는 친구였다. 얼핏 용구가 고등학교를 중도에 그만두었다는 소문을 듣긴 들었지만 그때도, "아, 그랬구나." 하고 말았을 정도 였다. 그땐 그런 친구들이 꽤 여럿 있었으니까. 그러니까 그 친구가 근 십년 만에 내게 전화를 걸어와, "야, 진짜 반갑다. 이게, 이게 얼마만이야!" 했을 때도 나는 그저 건성건성, "어, 어, 그러네. "하고 말았을 뿐이었다. 머리 속으론 계속, '이 친구가 우리집 전화번호를 어떻게 알아냈지? 누구에게서 알아낸 것일까? '하는 추측만 해댔다. 하지만 그런 마음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솔직히 나는 눈물이 날 정도까진 아니였지만, 가슴 한 구석이 잠시 저릿저릿해질 정도까지는 친구의 전화가 반갑고 또 반가웠다. 그건 근 일년만에 처음으로 나에게 걸려온 나를 찾는 전화였다. 나는 용구가 전화를 일찍 끊을 까봐 그것이 불안해, 아주 천천히 느릿느릿한 목소리로 통화를 했다. 용구는 계속 '반갑다. 보고싶다.' 라는 말을 반복했고, 그래서 나도 계속 '그래, 정말 그러네.' 하고 대답해 주었다. 그외엔 별달리 할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자 용구가 대뜸 오늘 당장 만나자는 말을 꺼냈다.
"야, 뭐 원주가 넓기를 하냐. 당장보지 뭐. 오늘 낮에 바뻐?" "오늘? 아니 뭐 바쁜 건 아니지만." "그럼 됐다. 야, 나와라. 내가 술 한잔 진하게 살게!" 나는 잠시 망설였다. 술을 마시고 싶지 않은 것도 아니었고, 용구를 만나고 싶지 않은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나는 누군가를 만나고 싶었고, 그 누군가와 술도 마시고 싶었다. 그러나 내겐 차비가 없었다. 아버지가 출근을 하자마자 어머니도 외출을 한 상태였다. 그때 내가 가진 전 재산이라곤 엊그제 어머니 콩나물 심부름하고 남은 이백원이 전부였다. 그러니 그게 못내 마음에 걸렸던 것이었다. 아무리 친구가 술을 산다지만 그래도 내 나이 스물 일곱인데, 일곱 살 짜리도 친구를 만날 땐 이백원을 들고 나가지 않을 텐데 하는. 하지만 나는 용구에게 그러자고 했다. 용구의 말처럼, 원주가 뭐 넓기를 하나, 걸어가면 되지. 넉넉잡고 한시간이면 충분할 테니, 까짓것. 나는 전화를 끊자 마자 욕실로 들어가 일주일만에 처음으로 머리를 감았다. 면도도하고 헤어젤도 듬뿍바르고 콧노래도 부르고 생각해 보니,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기분이 제법 괜찮았던 것 같다. 누군가를 어떤 정해진 시간에 만난다는 것이 그것 자체만으로도 내겐 꽤 의미있는 일로 다가왔으니까. 날씨는 꾸물꾸물 잔뜩 흐려있었지만 내 마음은 정반대였다. 일은 그렇게 시작된 것이었다.
용구가 만나자고한 곳은 단계택지 삼거리에서 우측으로 백 미터 쯤 더 들어간, 이층짜리 단독주택들이 띄엄띄엄 늘어선, 원주시 외곽의 신흥주택단지였다. 주택단지 중간쯤에 오면 눈에 확 들어오는 빨간간판하나가 보일거라고, 그곳으로 찾아오면 된다고, 사실 그곳이 내 일터라고, 용구는 말했다. 해서, 나는 용구가 무슨 간장게장 전문점이나 삼겹살집을 차린 것으로 짐작했다. 주택단지에 자리한 영업집이라는 것이 어차피 거기서 거기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러나 내가 집에서 부터 한시간 넘게 걸어가 찾아낸 빨간 간판엔 이런 글씨가 적혀있었다.
룸쌀롱 토지
길이가 사 미터는 족히 넘어보이는 그 빨간 간판은 너무도 평범한 주택 대문위에 세워져 있었고 그래서 더 길고 무거워 보였다. 간판 옆으로 가지만 앙상하게 남은 감나무와 대추나무가 마치 호위병처럼 각각 한 그루 씩 서있었고, 감나무 중간엔 '미시 항시 대기'라고 적힌 세로로된 플래카드가 바람에 펄럭이고 있었다. 나는 대문앞에 서서 오랫동안 그 간판을 올려다 보았다. 주택단지 한가운데 이런 룸쌀롱이 있다는 것이 신기하기도 신기했지만, 그 특이한 상호가 계속 마음에 남았던 것이었다. 간판에 적힌 토지는, 굵은 궁서체로 쓰인 그 토지는, 분명 단번에 박경리 선생의 그 토지를 연상시키는 그런 토지였던 것이다. 룸쌀롱 이름치곤 어딘가 어색하고 또 불경스러워 보이기까지 했지만, 뭐 룸쌀롱 자체가 그런 곳이니, 그게 그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게 간판을 올려다 보며 몇 분을 서성거리고 있자, 웬 젊은 청년 한명이, 눈부시게 새하얀 와이셔츠만 달랑 걸친 청년이, 대문을 열고 황급히 뛰어 나왔다. 청년의 한 손에는 커다란 빗자루가 들려있었다.
"저기 혹시 박 상무님 만나러 오신 사장님 아니신가요?" 그제야 나는 용구의 성이 박 씨인것을 기억해 냈다. 내가 살짝 고개를 끄덕이자 청년을 들고 있던 빗자루를 그 자리에 내팽개치고 다시 내 앞으로 두세걸음 다가와 구십도로, 그러니까 보통 기역자가 아닌 고딕 기역자 모양으로, 허리를 꺾으며 소리쳤다.
"어서옵쇼, 사장님!!" 나는 청년에 의해 곧장 대문 안으로 안내되었다. 대문 안에는 잔디가 깔린 작은 정원이 있었고, 작은 연못이 하나 있었으며, 덩치가 커다란 백구 한 마리가 쓸쓸하게 묶여 있었다. 백구 옆으론 바람빠진 축구공이 하나 있었고, 녹슨 자전거와 항아리 몇 개도 눈에 들어왔다. 그러니까 그 풍경은 여타 가정집과는 별 차이없는 금방이라도 철수와 영희가 바둑이와 함께 뛰어 놀 것만 같은 그런 친숙한 표정이었다. 집 내부 사정도 정원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은은한 원목 물결무늬가 고스라니 드러나는 거실 바닥과 그 위에 깔린 베이지색 러그와 단정한 슬리퍼들과 카키색 페브릭 소파와 커다란 텔레비전과 스피커가 큰 오디오와 작은 벽난로까지, 현관앞 프런트와 방문 위에 적힌 아라비아 숫자만 아니라면 이곳이 정말 영업집인지 혹 용구네 가정집은 아닌지 분간이 안 될 정도였다. 와이셔츠을 입은 청년은 나보다 두세걸은 앞서 삼번방의 문을 열었고, 그러곤 또다시 나를 향해 허리를 꺾었다.
병풍이 있고, 붉은 색 (not clear)가 있고, 커다란 상과, 도자기와 검은 좌식의자가 놓인 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