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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김영하의 ‘책 읽는 시간’ 팟캐스트 (Reading Time podcast), Episode 5 - 김영하 “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 - Part 2

Episode 5 - 김영하 “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 - Part 2

그 산동대학에 초청을 받아서 갔는데, 저하고 누가 갔냐하면 (중국작가죠) 비페이위(Bi Feiyu)라는 작가인데, 한국에는 “청의”라는 그리고 아마도 “의미”라는 소설이 나와있을거예요. 인상적인 소설입니다. “청의”라는 소설의 작가인 비페이위하고 또 몇 명의 다른 작가들하고 산동대학에 갔는데 그 전에는 홍콩에 있었습니다. 홍콩 친예대학이라는 곳에 일종의 작가 레지던스 프로그램으로 가있었는데요, 홍콩 대학과 산동대학이 어떤 그런 문화교환 프로그램 같은 걸 갖고 있었기 때문에 저희는 홍콩 대학 관계자하고 같이 신동대학에 일종의 초청을 받아서 가게된거예요. 근데 가기전에 ‘어떤 부분을 낭독을 할 것이냐'를 작가들한테 미리 물었어요. 작가들이 얘기를 해줬는데 왜냐하면 산동대학의 사람들은 한국말을 모르잖아요. 한국어를 모르기 때문에 제가 한국말로 읽는 것은 좀 어렵겠고, 학생들 중에서, 그 국제학부 학생들 중에서 중국어로 읽고 (만다린이죠) 중국어로 읽고, 영어로 읽고 싶다. 영어판이 있거든요. ( “파괴할 권리”는) 영어로 읽고 싶다 얘기를 하더라고요. 그렇다면 나도 한국어로 읽겠다. 그러면 삼 개 국어로 읽게 되지 않겠느냐. 뭐 이런 여러가지를 조정해야했어요. 그렇기 때문에 어떤 부분을 읽을 것인지는 작가하고 조율을 해야만 학생들이 미리 준비를 해서 연습을 해야할 것 아니겠어요. 그 학생들도 이제 중국말로 영어로. 제가 읽으려고 하는 부분들을 미리 연습을 하게 됩니다. 그러더니 출발하기 한 열흘 전 즈음에 (열흘 전인가요 보름 전인가에)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를 읽겠고, 그 중에서는 이 부분을 읽겠다고 제가 얘기를 했던 거예요. 원래 제가 낭독을 하면 이 소설을 읽을 때 해외에서 라든가 뭐 낭독을 할 때는 아주 가장 앞부분을 낭독을 합니다. 소설이라는 것은 앞부분을 읽는게 가장 편합니다. 그 왜그러냐하면 앞부분이야말로 독자들에게 처음 말을 거는 부분이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앞부분이 가장 흡입력이 있을 수 밖에 없고, 또 흡입력이 없다 하더라고 그 부분 부터 읽어야 사실은 그 뒤도 궁금하고 또 서서히 끌려들어가는 그런 맛이 있거든요. 뒤에가면 강렬한 부분이 있지만 잘못 읽으면 생뚱맞아요. 잘못 읽으면, 막 감정이 고조되는 부분을 읽어주는데 도데체 왜 저러는지 ...생뚱맞은거죠. 아주 잘 알려진 텍스트라면 상관이 없겠습니다만, 대부분의 책은 그래서 작가들은 앞부분을 읽는 것을 선호합니다. 그래서 제가 앞부분을 읽는데 일단 그 앞부분을 한번, 늘 낭독하는 부분이니까요. 이 부분을 한번 먼저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1793년에 제작된 다비드의 유화, '마라의 죽음'을 본다. 욕조 속에서 피살된 자코뱅 혁명가 장 폴 마라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머리에는 터번처럼 생긴 수건을 두르고 있고 욕조 밖으로 늘어뜨려진 손은 펜을 쥐고 있다. 흰색과 청색 사이에 마라가 피를 흘리며 절명해 있다. 작품 전체의 분위기는 차분하고 정적이다. 어디선가 레퀴엠이 들려오고 있는 것만 같다. 그를 찌른 칼은 화면 아래에 배치되어 있다.

나는 이미 여러 차례 그 그림을 모사해보았다. 가장 어려운 부분은 마라의 표정이다. 내가 그린 마라는 너무 편안해 보여서 문제다. 다비드의 마라에게선 불의의 기습을 당한 젊은 혁명가의 억울함도, 세상 번뇌에서 벗어난 자의 후련함도 보이지 않는다. 다비드의 마라는 편안하면서 고통스럽고 증오하면서도 이해한다. 한 인간의 내부에서 대립하는 이 모든 감정들을 다비드는 죽은 자의 표정을 통해 구현했던 것이다. 이 그림을 처음 보는 사람의 시선은 가장 먼저 마라의 얼굴에 머문다. 표정은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는다. 그리하여 시선은 크게 두 방향으로 움직인다. 한쪽 팔에 들려진 편지로 시선이 옮겨지거나 아니면 욕조 밖으로 비어져나와 늘어진 다른 팔을 따라간다. 죽은 마라는 편지와 펜, 이 두 사물을 끝까지 놓치지 않고 있다. 거짓 편지를 핑계로 접급한 테러리스트에게 살해된 마라는 답장을 쓰려다 살해되었다. 마라가 끝까지 움켜쥔 펜이 차분하고 고요한 이 그림에 긴장을 부여한다. 다비드는 멋지다. 격정이 격정을 만드는 것이 아니다. 건조하고 냉정할 것. 이것은 예술가의 지상 덕목이다.

마라를 죽인 샬롯 코데이라는 여자는 단두대에서 생을 마감했다. 지롱드 당의 청년 당원이었던 샬롯 코데이는 자코뱅의 마라를 제거하기로 결심하고 거짓 편지를 미끼로 접근, 목욕중인 마라의 가슴에 칼을 꽂았다. 1973년 7월 13일의 일이었고 그때 그녀의 나이 스물다섯이었다. 사건 직후 체포된 확신범 코데이는 나흘 만인 7월 17일 목이 잘렸다.

자코뱅 당의 거두였던 마라가 죽은 후, 로베스피에르의 공포정치가 시작된다. 다비드는 자코뱅의 미학을 알고 있었다. 공포라는 연료 없이 혁명은 굴러가지 않는다. 시간이 흐르면 그 관계가 뒤집힌다. 공포를 위해 혁명이 굴러가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 공포를 창출하는 자는 초연해야 한다. 자신이 유포한 공포의 에너지가 종국엔 그 자신마저 집어삼킬 수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 로베스피에르는 결국 기요틴에 의해 목이 잘렸다.

화집을 덮고 일어나 목욕을 했다. 작업을 하는 날이면 반드시 몸을 청결히 해야한다. 목욕을 끝내고 면도를 산뜻하게 하고 난 다음에 나는 도서관에 간다. 도서관에서 나는 여러 가지 일을 한다. 의뢰인을 찾고 자료를 검색한다. 이일은 길고 지루하지만 참아내야 한다. 한 달이 걸릴 수고, 때론 반 년이 걸릴 수도 있다. 그러나 의뢰인만 찾아낸다면 반 년 정도는 그럭저럭 살아갈 수 있으므로 나는 검색 기간에 그리 구애받지 않는다. 도서관에는 주로 역사책이나 여행 안내서를 읽는다. 일을 끝내고 돈을 받으면 나는 여행을 떠난다. 여행 안내책자들은 복잡한 사실들을 간단학 명쾌하게 축약해 놓는다 한 도시에는 수십만 개의 인생이 있고 수 백년의 역사가 있고, 인생과 역사가 교직하면서 만들어온 흔적이 있다. 그 모든 것을 여행안내책자들은 단 몇 줄로 줄여버린다.

이를테면 파리에 대한 소개는 이렇게 시작한다. “파리는 세속적인 곳이라기 보다는 종교적, 정치적, 예술적 자유의 성지이고, 그 자유를 알리는 외침이거나 그것에 대한 숨은 바람이다. 파리는 관용의 정신으로 로베스피에스, 퀴리, 와일드, 사르트르, 피카소, 호치민, 조이스, 그리고 호메이니와 같은 사상가, 예술가, 혁명가, 그리고 많은 비범한 사람들에게 망명처를 제공해주었다. 파리는 19세기의 뛰어난 도시계획의 훌륭한 산물이지만 파리의 음악과 예술, 극장이 그러한 것처럼 건축물도 중세풍에서부터 아방가르드적인 것, 아니 아방가르드를 넘어서는 것까지 다양한 양식의 건물이 어우러져 있다. 역사롸 새로움, 문화와 문연 그 자체의 자기 인식인 파리가 이세상에 존재라지 않았다면 우리 모두가 그것을 창조해냈을 것이다.”

파리에 대해서 더이상의 말은 필요없다. 이런 까닭에 나는 여행안내서 읽기를 즐긴다. 그것은 역가서도 마찬가지이다. 압축할 줄 모르는 자들은 뻔뻔하다. 자신의 너저분한 인생을 하릴없이 연장해가는 자들도 그러하다. 압축의 미학을 모르는 자들은 삶의 비의를 결코 알지 못하고 죽는다.

네, 잘 들으셨습니까.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1 장, ‘마라의 죽음' 부분입니다. 시작하는 부분인데요. 이 부분 뭐, 제가 아까도 말쓴 드렸다시피 정말 저의 집에 틀어박혀 갖고, 방에 틀어박혀서, 그때 이제 백수였으니까, 집안의 눈치를 약간 의식을 하면서, 또 젊을 때, 그때가 제가 스물 일곱, 아마 그 즈음 됐을 텐데요. 끓어오를 때죠. 지금도 제가 읽다보니까 그 당시 어떤 사고의 격렬함. 근데 이제 좀 이금 보면 약간, 내가 과연 저런 사람이었나 싶을 때도 있는데, 하튼 격렬함 이런 것들이(약간 좀 쑥스럽기도 합니다만) 그런게 느껴지는 텍스트죠. 하여간 저 부분을 읽는데 저 부분은 뭐 별 문제가 없습니다. 그래서 또 즐겨 읽기도 하는데 왜냐하면 이 소설을 읽어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뒤로가면 좀 지뢰밭입니다. 야한 부분도 많고요. 공개적인 자리에서 읽기는 좀 쑥스러운 부분이 많아서, 제가 저 앞부분, 1장의 앞부분을 읽고, 어떨 때는 1 장을 전부다 읽을 때도 있어요. 원고지, 200 자 원고지로 한 40 매 정도 되는 그런 분량인데. 그걸 그냥 다 읽을 때도 있어요. 하여튼 그것은 이제 자살 안내인이 자기 삶의 철학을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어던 부분들은 저게 이제 제 인생의 철학이거나 저의 예술관으로 생각하셔서, ‘어 김영하가 뭐 그랬다는데? 압축할 줄 모르는 자들은 뻔뻔하다 뭐 이렇게 말했다는데?' 그것은 제 예술관이 아니고, 약간 좀 이상한 사람이죠. 저 주인공, 약간 과대망상, 자기를 신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인데, 그 사람의 발언입니다. 제가 얼마 전에 제 블로그에서도 얘기를 했었는데, 트위터에서 얘기를 했나요? 기억이 잘 안 나는데, 소설이라는 것은 인물들의 발언을 상대화시킬 수 있는 그런 장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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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 5 - 김영하 “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 - Part 2 Episode 5 - Youngha Kim " I Have the Right to Destroy Me " - Part 2 Episode 5 - 김영하 "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 - Part 2

그 산동대학에 초청을 받아서 갔는데, 저하고 누가 갔냐하면 (중국작가죠) 비페이위(Bi Feiyu)라는 작가인데, 한국에는 “청의”라는 그리고 아마도 “의미”라는 소설이 나와있을거예요. その山東大学に招待されて行ったのですが、私と誰が行ったかというと、(中国の作家である)ビ・フェイユ(Bi Feiyu)という作家で、韓国には「清の」という、そしておそらく「意味」という小説が出ているはずです。 인상적인 소설입니다. 印象的な小説です。 “청의”라는 소설의 작가인 비페이위하고 또 몇 명의 다른 작가들하고 산동대학에 갔는데 그 전에는 홍콩에 있었습니다. 「青衣」という小説の作者である飛飛飛偉と他の何人かの作家と一緒に山東大学に行きましたが、その前は香港にいました。 홍콩 친예대학이라는 곳에 일종의 작가 레지던스 프로그램으로 가있었는데요, 홍콩 대학과 산동대학이 어떤 그런 문화교환 프로그램 같은 걸 갖고 있었기 때문에 저희는 홍콩 대학 관계자하고 같이 신동대학에 일종의 초청을 받아서 가게된거예요. 香港秦芸大学というところに、ある種の作家レジデンスプログラムで行ったのですが、香港大学と山東大学が何かそういう文化交流プログラムのようなものを持っていたので、私たちは香港大学の関係者と一緒に新東大学に招待されて行くことになりました。 근데 가기전에 ‘어떤 부분을 낭독을 할 것이냐’를 작가들한테 미리 물었어요. でも、行く前に「どの部分を朗読するのか」を作家さんたちに事前に聞きました。 작가들이 얘기를 해줬는데 왜냐하면 산동대학의 사람들은 한국말을 모르잖아요. 作家さんたちが話してくれたのですが、山東大学の人は韓国語がわからないじゃないですか。 한국어를 모르기 때문에 제가 한국말로 읽는 것은 좀 어렵겠고, 학생들 중에서, 그 국제학부 학생들 중에서 중국어로 읽고 (만다린이죠) 중국어로 읽고, 영어로 읽고 싶다. 韓国語がわからないので、私が韓国語で読むのはちょっと難しいだろうし、学生の中で、その国際学部の学生の中で、中国語で読んで(北京語ですね)、中国語で読んで、英語で読みたい。 영어판이 있거든요. 英語版があるんですよ。 ( “파괴할 권리”는) 영어로 읽고 싶다 얘기를 하더라고요. ("破壊する権利"は)英語で読みたいという話をしていました。 그렇다면 나도 한국어로 읽겠다. それなら私も韓国語で読みます。 그러면 삼 개 국어로 읽게 되지 않겠느냐. そうなると三ヶ国語で読めるようになるのでは? 뭐 이런 여러가지를 조정해야했어요. まあ、いろいろと調整する必要がありました。 그렇기 때문에 어떤 부분을 읽을 것인지는 작가하고 조율을 해야만 학생들이 미리 준비를 해서 연습을 해야할 것 아니겠어요. そのため、どの部分を読むかは、作家と調整して、学生が事前に準備をして練習する必要があるのではないでしょうか。 그 학생들도 이제 중국말로 영어로. その生徒たちも今、中国語で英語で。 제가 읽으려고 하는 부분들을 미리 연습을 하게 됩니다. 私が読もうとしている部分を事前に練習することになります。 그러더니 출발하기 한 열흘 전 즈음에 (열흘 전인가요 보름 전인가에)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를 읽겠고, 그 중에서는 이 부분을 읽겠다고 제가 얘기를 했던 거예요. そうしたら、出発の10日前ぐらいに(10日前なのか半月前なのか)「私は私を破壊する権利がある」を読むと、その中でこの部分を読むと言ったんです。 원래 제가 낭독을 하면 이 소설을 읽을 때 해외에서 라든가 뭐 낭독을 할 때는 아주 가장 앞부분을 낭독을 합니다. もともと私が朗読をするとき、この小説を読むとき、海外とかで朗読をするときは、一番前の部分を朗読します。 소설이라는 것은 앞부분을 읽는게 가장 편합니다. 小説というのは、前半を読むのが一番楽です。 그 왜그러냐하면 앞부분이야말로 독자들에게 처음 말을 거는 부분이잖아요. なぜかというと、冒頭の部分こそ、読者に最初に話しかける部分じゃないですか。 그렇기 때문에 앞부분이 가장 흡입력이 있을 수 밖에 없고, 또 흡입력이 없다 하더라고 그 부분 부터 읽어야 사실은 그 뒤도 궁금하고  또 서서히 끌려들어가는 그런 맛이 있거든요. だから、前の部分が一番吸引力があるはずだし、また、吸引力がないって言っても、その部分から読まないと、実はその後ろも気になるし、徐々に引き込まれるような味わいがあるんですよ。 뒤에가면 강렬한 부분이 있지만 잘못 읽으면 생뚱맞아요. There is a strong part in the back, but if you read it wrong, it's ridiculous. 後ろに行くと強烈な部分がありますが、読み間違えると違和感があります。 잘못 읽으면, 막 감정이 고조되는 부분을 읽어주는데 도데체 왜 저러는지 ...생뚱맞은거죠. 読み方を間違えると、ちょうど感情が高ぶるところを読んでくれるのに、一体なぜあんなことを......おかしな話です。 아주 잘 알려진 텍스트라면 상관이 없겠습니다만, 대부분의 책은 그래서 작가들은 앞부분을 읽는 것을 선호합니다. 非常によく知られているテキストであれば問題ないのですが、ほとんどの本は、作家はそのため最初の部分を読むことを好みます。 그래서 제가 앞부분을 읽는데 일단 그 앞부분을 한번, 늘 낭독하는 부분이니까요. だから、私は前の部分を読むのですが、まずその前の部分を一度、いつも読む部分ですからね。 이 부분을 한번 먼저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この部分を先に読んでみましょう。

1793년에 제작된 다비드의 유화, '마라의 죽음’을 본다. 1793年に制作されたダビデの油彩画「マラの死」を見る。 욕조 속에서 피살된 자코뱅 혁명가 장 폴 마라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浴槽の中で殺害されたジャコバン革命家ジャン・ポール・マラの姿が描かれている。 머리에는 터번처럼 생긴 수건을 두르고 있고 욕조 밖으로 늘어뜨려진 손은 펜을 쥐고 있다. 頭にはターバンのようなタオルをかぶり、浴槽から垂れ下がった手はペンを握っている。 흰색과 청색 사이에 마라가 피를 흘리며 절명해 있다. 白と青の間にマラが血を流して絶命している。 작품 전체의 분위기는 차분하고 정적이다. 作品全体の雰囲気は穏やかで静謐な雰囲気です。 어디선가 레퀴엠이 들려오고 있는 것만 같다. どこからかレクイエムが聞こえてくるような気がする。 그를 찌른 칼은 화면 아래에 배치되어 있다. 彼を刺したナイフは画面下に配置されている。

나는 이미 여러 차례 그 그림을 모사해보았다. 私はすでに何度かその絵を模写したことがある。 가장 어려운 부분은 마라의 표정이다. 一番難しいのは、マラの表情です。 내가 그린 마라는 너무 편안해 보여서 문제다. 私が描いたマーラは、あまりにリラックスして見えるのが問題だ。 다비드의 마라에게선 불의의 기습을 당한 젊은 혁명가의 억울함도, 세상 번뇌에서 벗어난 자의 후련함도 보이지 않는다. ダビデのマラには、不意の奇襲を受けた若き革命家の恨みも、世間の煩悩から解き放たれた者の清々しさも見えない。 다비드의 마라는 편안하면서 고통스럽고 증오하면서도 이해한다. ダビデのマーラは、快適でありながら苦痛であり、憎しみながらも理解する。 한 인간의 내부에서 대립하는 이 모든 감정들을 다비드는 죽은 자의 표정을 통해 구현했던 것이다. 一人の人間の内部で対立するこのすべての感情を、ダビデは死者の表情を通して具現化したのである。 이 그림을 처음 보는 사람의 시선은 가장 먼저 마라의 얼굴에 머문다. この絵を初めて見る人の視線は、まず最初にマラの顔に留まります。 표정은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는다. 表情は何も教えてくれない。 그리하여 시선은 크게 두 방향으로 움직인다. こうして視線は大きく二つの方向に動く。 한쪽 팔에 들려진 편지로 시선이 옮겨지거나 아니면 욕조 밖으로 비어져나와 늘어진 다른 팔을 따라간다. 片方の腕に掲げられた手紙に視線が移ったり、あるいは浴槽の外に空っぽになって垂れ下がったもう片方の腕を追う。 죽은 마라는 편지와 펜, 이 두 사물을 끝까지 놓치지 않고 있다. 死んだマーラは、手紙とペン、この2つのものを最後まで手放さない。 거짓 편지를 핑계로 접급한 테러리스트에게 살해된 마라는 답장을 쓰려다 살해되었다. 偽の手紙を口実に接近したテロリストに殺されたマーラは、返事を書こうとして殺された。 마라가 끝까지 움켜쥔 펜이 차분하고 고요한 이 그림에 긴장을 부여한다. マラが最後まで握りしめたペンが、穏やかで静謐なこの絵に緊張感を与えている。 다비드는 멋지다. ダビデはかっこいい。 격정이 격정을 만드는 것이 아니다. 激情が激情を作るのではない。 건조하고 냉정할 것. ドライで冷静であること。 이것은 예술가의 지상 덕목이다. これは芸術家の地上の徳である。

마라를 죽인 샬롯 코데이라는 여자는 단두대에서 생을 마감했다. マラを殺したシャーロット・コーデイという女性はギロチンで命を落とした。 지롱드 당의 청년 당원이었던 샬롯 코데이는 자코뱅의 마라를 제거하기로 결심하고 거짓 편지를 미끼로 접근, 목욕중인 마라의 가슴에 칼을 꽂았다. ジロンド党の青年党員であったシャロット・コデイは、ジャコバンのマラを排除することを決意し、偽の手紙を餌に近づき、入浴中のマラの胸にナイフを突き刺した。 1973년 7월 13일의 일이었고 그때 그녀의 나이 스물다섯이었다. 1973年7月13日のことで、当時彼女の年齢は25歳だった。 사건 직후 체포된 확신범 코데이는 나흘 만인 7월 17일 목이 잘렸다. 事件直後に逮捕された確信犯コーデイは、4日後の7月17日に首を切られた。

자코뱅 당의 거두였던 마라가 죽은 후, 로베스피에르의 공포정치가 시작된다. ジャコバン党の首領だったマラの死後、ロベスピエールの恐怖政治が始まる。 다비드는 자코뱅의 미학을 알고 있었다. ダビデはジャコバンの美学を知っていた。 공포라는 연료 없이 혁명은 굴러가지 않는다. 恐怖という燃料がなければ、革命は転がらない。 시간이 흐르면 그 관계가 뒤집힌다. 時間が経てば、その関係は逆転する。 공포를 위해 혁명이 굴러가기 시작하는 것이다. 恐怖のために革命が転がり始めるのである。 그 공포를 창출하는 자는 초연해야 한다. その恐怖を生み出す者は初演しなければならない。 자신이 유포한 공포의 에너지가 종국엔 그 자신마저 집어삼킬 수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 自分が流布した恐怖のエネルギーが、最終的には自分自身も巻き込んでしまう可能性があることを認識しなければならない。 로베스피에르는 결국 기요틴에 의해 목이 잘렸다. ロベスピエールは結局、ギョロチンによって首を切られた。

화집을 덮고 일어나 목욕을 했다. 画集をかぶせて起き上がり、お風呂に入る。 작업을 하는 날이면 반드시 몸을 청결히 해야한다. 作業をする日は必ず体を清潔にしなければならない。 목욕을 끝내고 면도를 산뜻하게 하고 난 다음에 나는 도서관에 간다. お風呂に入り、髭剃りを済ませた後、私は図書館に行きます。 도서관에서 나는 여러 가지 일을 한다. 図書館で私はいろいろな仕事をしています。 의뢰인을 찾고 자료를 검색한다. クライアントを探し、資料を検索する。 이일은 길고 지루하지만 참아내야 한다. この仕事は長くて退屈だが、我慢しなければならない。 한 달이 걸릴 수고, 때론 반 년이 걸릴 수도 있다. 一ヶ月かかる手間、時には半年かかることもある。 그러나 의뢰인만 찾아낸다면 반 년 정도는 그럭저럭 살아갈 수 있으므로 나는 검색 기간에 그리 구애받지 않는다. |the client|if I find||||||||||period||| しかし、クライアントさえ見つかれば半年くらいはまあまあ生きていけるので、私は検索期間にあまりこだわらない。 도서관에는 주로 역사책이나 여행 안내서를 읽는다. the library||history books||guidebook| 図書館では主に歴史書や旅行ガイドを読む。 일을 끝내고 돈을 받으면 나는 여행을 떠난다. 仕事を終えてお金をもらったら、私は旅に出ます。 여행 안내책자들은 복잡한 사실들을 간단학 명쾌하게 축약해 놓는다 한 도시에는 수십만 개의 인생이 있고 수 백년의 역사가 있고, 인생과 역사가 교직하면서 만들어온 흔적이 있다. 旅行ガイドブックは複雑な事実を簡潔に簡略化する 一つの都市には数十万の人生があり、数百年の歴史があり、人生と歴史が交わりながら作り上げてきた痕跡がある。 그 모든 것을 여행안내책자들은 단 몇 줄로 줄여버린다. そのすべてを、旅行パンフレットはたった数行にまとめてしまう。

이를테면 파리에 대한 소개는 이렇게 시작한다. 例えば、パリの紹介はこのように始まります。 “파리는 세속적인 곳이라기 보다는 종교적, 정치적, 예술적 자유의 성지이고, 그 자유를 알리는 외침이거나 그것에 대한 숨은 바람이다. "パリは世俗的な場所というよりも、宗教的、政治的、芸術的な自由の聖地であり、その自由を知らせる叫びであり、その隠れた願いである。 파리는 관용의 정신으로 로베스피에스, 퀴리, 와일드, 사르트르, 피카소, 호치민, 조이스, 그리고 호메이니와 같은 사상가, 예술가, 혁명가, 그리고 많은 비범한 사람들에게 망명처를 제공해주었다. パリは寛容の精神で、ロベスピエス、キュリー、ワイルド、サルトル、ピカソ、ホーチミン、ジョイス、そしてホメイニーのような思想家、芸術家、革命家、そして多くの非凡な人々に亡命先を提供してきました。 파리는 19세기의 뛰어난 도시계획의 훌륭한 산물이지만 파리의 음악과 예술, 극장이 그러한 것처럼 건축물도 중세풍에서부터 아방가르드적인 것, 아니 아방가르드를 넘어서는 것까지 다양한 양식의 건물이 어우러져 있다. パリは19世紀の優れた都市計画の素晴らしい産物だが、パリの音楽や芸術、演劇がそうであるように、建築も中世的なものからアバンギャルドなもの、いやアバンギャルドを超えたものまで様々な様式の建物が混在している。 역사롸 새로움, 문화와 문연 그 자체의 자기 인식인 파리가 이세상에 존재라지 않았다면 우리 모두가 그것을 창조해냈을 것이다.” 歴史と新しさ、文化と文淵そのものの自己認識であるパリがこの世に存在しなければ、私たち全員がそれを創造していたでしょう。"

파리에 대해서 더이상의 말은 필요없다. パリについてはもう言うまでもない。 이런 까닭에 나는 여행안내서 읽기를 즐긴다. そんなわけで、私は旅行ガイドを読むのが好きです。 그것은 역가서도 마찬가지이다. それは力価でも同様である。 압축할 줄 모르는 자들은 뻔뻔하다. 圧縮できない者は恥知らずである。 자신의 너저분한 인생을 하릴없이 연장해가는 자들도 그러하다. 自分の惨めな人生を無為に延長していく者たちもそうである。 압축의 미학을 모르는 자들은 삶의 비의를 결코 알지 못하고 죽는다. 圧縮の美学を知らない者は、人生の理不尽を知らずに死ぬ。

네, 잘 들으셨습니까. はい、よく聞きましたか。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1 장, ‘마라의 죽음' 부분입니다. "私は私を破壊する権利がある、"第1章、「マラの死」の部分です。 시작하는 부분인데요. 冒頭の部分です。 이 부분 뭐, 제가 아까도 말쓴 드렸다시피 정말 저의 집에 틀어박혀 갖고, 방에 틀어박혀서, 그때 이제 백수였으니까, 집안의 눈치를 약간 의식을 하면서, 또 젊을 때, 그때가 제가 스물 일곱, 아마 그 즈음 됐을 텐데요. この部分、まあ、僕がさっきも言ったように、本当に自分の家に引きこもって、部屋に引きこもって、当時はもう無職だったので、家の目を少し意識しながら、また若い頃、その頃が僕が二十七歳、たぶんその頃だったと思うんですけど。 끓어오를 때죠. 沸騰する時です。 지금도 제가 읽다보니까 그 당시 어떤 사고의 격렬함. 今読み返してみると、当時のある事故の激しさ。 근데 이제 좀 이금 보면 약간, 내가 과연 저런 사람이었나 싶을 때도 있는데, 하튼 격렬함 이런 것들이(약간 좀 쑥스럽기도 합니다만) 그런게 느껴지는 텍스트죠. でも今思えば、ちょっと、私が果たしてあんな人だったんだろうかと思うこともあるんですけど、ハートの激しさみたいなものが(ちょっと恥ずかしいですけど)感じられるテキストです。 하여간 저 부분을 읽는데 저 부분은 뭐 별 문제가 없습니다. とにかくあの部分を読むのですが、あの部分は別に問題ありません。 그래서 또 즐겨 읽기도 하는데 왜냐하면 이 소설을 읽어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뒤로가면 좀 지뢰밭입니다. だから、この小説を読んだことがある方はご存知だと思いますが、後ろに行くとちょっと地雷原です。 야한 부분도 많고요. エロいところもたくさんあります。 공개적인 자리에서 읽기는 좀 쑥스러운 부분이 많아서, 제가 저 앞부분, 1장의 앞부분을 읽고, 어떨 때는 1 장을 전부다 읽을 때도 있어요. 公の場で読むのはちょっと恥ずかしい部分が多いので、私はその前の部分、1章の前半を読んで、時には1章を全部読むこともあります。 원고지, 200 자 원고지로 한 40 매 정도 되는 그런 분량인데. 原稿用紙、200字の原稿用紙で40枚くらいの分量なんですけど。 그걸 그냥 다 읽을 때도 있어요. それを全部読んでしまうこともあります。 하여튼 그것은 이제 자살 안내인이 자기 삶의 철학을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とにかくそれは、今や自殺案内人が自分の人生哲学を語ることになります。 어던 부분들은 저게 이제 제 인생의 철학이거나 저의 예술관으로 생각하셔서, ‘어 김영하가 뭐 그랬다는데? ある部分は、あれはもう私の人生哲学だったり、私の芸術観だと思われて、「えー、キム・ヨンハが何言ってたっけ? 압축할 줄 모르는 자들은 뻔뻔하다 뭐 이렇게 말했다는데?' 圧縮できない者は恥知らずだ、なんて言ったそうですが? 그것은 제 예술관이 아니고, 약간 좀 이상한 사람이죠. それは私の芸術観ではなく、ちょっと変わった人です。 저 주인공, 약간 과대망상, 자기를 신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인데, 그 사람의 발언입니다. あの主人公、ちょっと過大妄想、自分を神だと思っている人ですが、その人の発言です。 제가 얼마 전에 제 블로그에서도 얘기를 했었는데, 트위터에서 얘기를 했나요? 少し前に私のブログでもお話したのですが、Twitterでお話しましたか? 기억이 잘 안 나는데, 소설이라는 것은 인물들의 발언을 상대화시킬 수 있는 그런 장르죠. よく覚えていないのですが、小説というのは、登場人物の発言を相対化できるようなジャンルですよね。